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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수상
2002.10.20 02:42

수상 - 여행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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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습 어디나 같아


본소중한 것은 본능적인 느낌

여행 경험이 제법 쌓인 후 여기저기 지면에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정리 소개하는 것이 적지않은 나의 일과가 되었다. 남을 가르치는 것이 곧 자기 지식의 정리이듯, 글을 쓰면서는 언제나 나의 견해를 다듬어 본다. 그것이 나만의 것에 그치지않고, 객관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거듭하는 것은 문화란 참 고귀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렵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각기 다른 자연과 환경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어려운 가운데서 인간다운 유모어와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독자로부터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리는 세상의 모습이 기행자의 뜻(觀點)에 따라 어쩌면 이렇게 달라지느냐는 것이다. 글을 읽고 다시 한번 그 나라를 다녀왔다든가 다녀와야 겠가고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나의 시각이 유별난 탓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행에 너무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운, 주마간산(走馬看山)식도 권하지 않을 뿐이다. 훌륭한 명승 고적도 찾는 이의 뜻이 없다면 평범한 자연에 불과하고, 이름없는 범경도 뜻을 두고 대하면 아름답고 유서깊은 선경이 된다는 따위 인위적인 가감은 더더욱 조심한다.

내게 소중한 것은 본능적인 느낌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호기심만 본능이 아니라 무엇이든 비교하는 버룻 또한 인간 본능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먹고 마시고 놀자 여행일지라도 눈에 뜨이는 것은 보지않을 수 없고, 새로운 사회의 견문은 우리와 그들을, 내 나라와 그 나라를 비교해보게 만든다. 그래서 열등의식을 갖게되건, 우월의식을 갖게되건 생각은 깊어지는데, 이때의 느낌 - 내가 글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이때의 느낌들이다. 의문이 생기면 우열로 답하지않고 나름대로 공존의 논리를 펴본다. 그러면 거기 질서가 생기고 우정이 싹튼다.
  
여행전문지 편집의 애환

나의 여행은 "여행"이라는 월간 잡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제5공화국이 들어선지 얼마안 된 82년, 복잡한 국내외적 상황에 의해서 "해외여행을 자유화한다는" 바람이 조심스럽게 불었었다.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 잔치인 '86아시언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확정되면서 만들어진 분위기였다. 그것은 외부의 요구였고 객관적 상황도 개방을 하지않으면 안될 시기였다. 우리는 희망에 부풀어 남보다 먼저 "월간 여행"이란 여행전문잡지를 만들어 이 사회에 던졌었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나는 이것을 대단한 기회로 여겼었다.  
"도대체 여행을 싫다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잡지는 크게 성공하여 내 이름도 곧 유명해질 것 같았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 했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당국은 문화교류차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까지 까다롭게 심사하고 축소시켜 버렸다. 문호를 개방하면 온통 국민들이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과소비나 일삼고 나라 망신이나 시킬 것처럼 노파심을 보였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속셈은 무리한 정치상황의 은폐였다. 국내 언론은 통제할 수 있었지만 외국 언론까지 잠재울 순 없었다. 세계의 언론은 한국의 상황을 주요뉴스를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몇달 뒤 "월간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여행전문잡지가 창간되었다. 그러나 늦게 창간된 "나그네"가 1년만에 먼저 문을 닫았고 월간 여행도 만 2년을 견디지 못했다. 정치상황만 탓할 일이 아니라 관광분야도 낙후되어 있었다. 여행사도 몇 곳을 제외하고는 영세하기 짝이 없어 해외는 커녕 국내여행상품도 활발하지 못했었다. 전문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심도는 얕았고, 해외여행중 호텔이나 식당, 비행기 안에서의 실수담 따위를 화제의 중심으로 삼는 정도였다. 해를 손으로 가리려 하듯, 뒤떨어진 국민의식·문화의식을 자위적 문장으로 서툴게 포장하는 것이 식자들의 원고였다. 다만 하나 기여한 것이 있다면 여행의 자유를 원하는 국민의 소리를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일 뿐이다. 두 잡지의 탄생과 소멸은 관광시장을 본격적으로 국제화하려던 관광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잊혀졌다.    

사회나 경제와도 밀접한 여행

여행전문지를 만들면서 나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글을 얻기 위해 많은 여행인들을 만났다. 순수한 해외여행자가 드물었던 시대에 여행다닌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일은 갑갑하고 힘들었지만, 그러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분이 금세 달라지곤 했다.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풍기는 향기 때문이었다. 차츰 여행이 우리들 인생의 바람직한 성장에 얼마만큼 필요한 경험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내 가슴에 "여행"은 신앙처럼 심어졌고 여행을 통한 다양한 문화 관찰은 문학과 더불어 삶의 과제가 되었다.  

여행의 심리는 사회나 경제와도 관계가 밀접했다. 나라가 가난했을 때는 바깥에만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되었었다. 선진국 국민들의 즐겁고 여유있는 삶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부러워했던 것이며, 이웃나라를 안방에서 건넌방 가듯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 나이들기 전에 우리 사회도 저렇게 자유로와지는 날이 빨리 와주도록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조국과 동포의 현실이 안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훌륭하고, 하나같이 우리보다 낫게 보였던 것도 문이 닫혀있는 탓이었다. 나가기 어려운 국민에게 모처럼 주어진 기회라 시간이 금쪽같을 수 밖에 없었다. "빨리빨리" 주요 볼거리만 보며 여러 나라를 도는 여행자가 태반이었다. 빨리빨리 봐야하는 것은 웬만큼 시간을 가지고 보아도 부족한 그 나라(地方)의 역사와 예술적 기념물들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여행자들은 바깥 세상의 일류, 최고와 내 나라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비교하며 빈곤한 조국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곤 했었다.

진정한 의식 발전은 여행 개방 이후의 일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못지않게 잘 살게 되니 "해외만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사라졌다. 선진국을 가 봐야 더 잘사는 것도 없으니 안스럽게 여길 것이 없어진 것이다. 보다 후진국을 여행하면서는 자긍심도 가지게 되었다.

여유가 생기니 한국인의 모습은 금세 멋있고 당당해졌다. 언제 그랬냐는듯 과거의 초라한 행색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문화국민임을 자랑하며 으시대는 사람이 많아졌다. 질서나 국제예절 등 의식수준은 밑바닥에 있는 그대로였다. 목에 힘을 주어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자 일부 부류는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돈으로 세상을 농락하려 들었다.  

그러자 한국인의 국민수준이 새로운 문제로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선진국 시민들의 질서, 매너, 에티켓에 반에 반도 쫒아가지 못하는 우리 수준을 세계 여론은 사정없이 꼬집었다. 내부에서도 반성과 자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개인여행자가 늘어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갔다. 소위 졸부들의 "돈자랑 여행"이 나라 이미지를 아예 땅바닥에 쓰려뜨렸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창피해서 못 나간다는 소리가 일각에서 나올 정도가 되었고 졸부를 양산해 내는 우리 사회구조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일었다. 어느 정도 국민 수준이 나아질 때까지 다시 옛날처럼 해외여행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관점을 바꿔 넓게 생각하면 해외여행 자유화야말로 우리 국민들의 안목, 수준이 제대로 잡히기 시작한 출발점이고 원동력이었다. 의식은 놀랄만큼 빠르게 향상되어 선진국 시민 못지않은 수준의 여행자가 늘어났고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인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로인한 국가적 민족적 이익은, 과소비를 일삼고 몰지각한 행동을 일삼는 소수를 무시해 버려도 좋을만큼 큰 것이라고 여겨졌다. 중요한 것은 큰 안목에서 볼 때 한국은 괜찮은 나라이며 한민족만한 문화민족도 세계에 드물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일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좁은 땅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살고있는 데서 빚어지는 후천적 문제일 것이다. 본성은 참 괜찮은 민족임을 나는 여행을 통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차제에 나의 여행철학도 밝혀보고 싶다. 다소 외람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나는 젊게 살고 싶어 여행을 즐긴다.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믿는 것이다.  

젊음을 유지하려면 생활 속에 "진지함과 재미"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여행이라는 테마에 이 두가지가 함께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는 재미만으로 부딪칠 수 없는 긴장이 있다. 용기와 모험을 필요로 하는 긴장 -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발동하는 이 긴장 - 그러나 지리 환경이 다른 여러나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진지한 만남은 곧 재미가 되며 견문으로 축적되고는 한다. 여행을 통한 인정의 교류가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게 하면 지구촌 한가족이란 말이 더욱 실감되고는 한다.  

사람들 사는 모양은 사실 어디나 같다. 겉으로는 다양하게 보일지 모르나 심미안에 비쳐지는 본능적인 모습들은 하나같이 똑 같다. 환경에 대항하여 만들어지는 삶의 지혜는 어떤 조건에서든 최선의 것들이어서,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하는 것이지 일방적 기준으로 우열을 논할 대상은 절대로 아니다. 여행은 기계문명의 발달로 편하게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자주, 되새겨보게 한다.  

마음이 넓어지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경건한 자세가 될쯤이면, 지구촌 다양한 민족의 소박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뜨게 된다. 공자 말씀에 있는 "알려고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게 낫고 좋아하는 것 보다 즐기는 낫다"는 말은 여행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알려고 하는 여행은 초보요, 좋아서 하는 것이면 중간이요, 최상의 자리는 즐기는 사람들 몫이다. 장담하건대, 이들은 공존(共存)이라는 두 글자를 지구촌 한가족의 가장 성스러운 목표로 여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이기를 희망한다. 여행에서 비롯되는 신앙이며, 여행으로 완성되는 이상적 인격의 전형적인 모습도 그런 경지일 것으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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