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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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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무성한 실크로드변의 장수촌

인더스 강변의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은 지구촌 3대 산맥인 힌두쿠시, 카라고룸, 히말라야를 모두 만날 수 있고, 이슬람 국가이면서 불교유적이 많은 수수께끼 땅이며, 인간 한계 수명인 1백세를 훨씬 넘게 사는 노인 왕국, 훈자밸리가 있는 나라였다…

카라코룸 하이웨이와 인더스 강

파키스탄 항공(PIA)의 초청이 있었다. 양국간 직항편 운항을 앞두고, 파키스탄을 보여주고 싶다는 취지였다. 물론 속셈은, 한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이려는 홍보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흥미로운 것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곳을 보여주는 알뜰한 스케줄 때문이다. 그들이 제시한 9박 10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장수촌" 훈자였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장수촌에 예민한 관심 보이는 것을 간파한 스케줄일 수 있었다.

인간 적정 수명이 120세라는 소리는 20세기 초 실크로드를 답사한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장수촌이 발견되었는 데 120세 노인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파키스탄령 잠무카슈미르주 북서부, 길기트 위에 있는 훈자(Hunja)밸리였다.    

장도에 오른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6월 하순인데 낮기온이 40℃를 넘었다. 모래땅이어서 지열은 없었지만 그래도 태양이 너무 뜨거워 견디기 힘든 여행이었다.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서 받은 파키스탄 첫 인상은 웃기는 것이었다. 가방 하나에 포터가 한명씩 달라붙어 옮겨 주었다. 한 명에 미화 1불씩 달라고 했다. 큰 가방은 둘이들고 "히히히" 웃으며 각 1불씩 달라고 했다. 우리를 마중나온 가이드는 적은 돈이지만 절대 그런 식으로 베풀지 말라며 그들을 쫒아버렸다. 공항 입구 차단기는 18세기에나 있음직한 원시적인 것이었다. 긴 막대 한쪽 끝에 돌멩이 주머니가 있었다. 반대쪽 끝은 끈을 매달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차를 한 대씩 통과시키고 있었다. 핵 보유국이고, 항공기술은 우리보다 낫다는 나라 국제공항 풍경이었다. 70년대까지는 경제 과학 수치가 우리보다 나은 나라였다. 그곳도 군사독재로 정체되면서 퇴보한 나라의 하나였다.    

첫 날을 고도(古都) 라호르에서 보낸 우리는 이튿날 아침 훈자를 향했다. 16인승 버스로 하루 한나절을 가야한다고 했다. 아보타바드에서 시작되는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2시간쯤 달려가면 인더스강을 만난다고 했다. 우리는 흥분했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를 발생시킨 인더스강 유역을, 그것도 옛 실크로드를 차를 타고 달린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였다. 만년설 봉우리를 배경으로 넓고 깊게 흐르는 푸른 인더스 강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아보타바드를 지나니 과연 그림같은 녹색의 전원지대가 펼쳐졌다. 마을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가는 데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바람이 몰아쳤다. 태풍같았다. 하지만 한시간 쯤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개었다. 우리나라 남쪽지방같은 풍경은 산악지대로 들어갈수록 점차 삭막해지더니 인더스 강을 만날 즈음에는 고비사막을 연상케 했다. 이후 강을 끼고 이어진 길은 산악형 사막을 가로질러 이어졌다. 그것이 본격 하이웨이요 옛 실크로드였다. 우리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계곡을 깊게 흐르는 강물은 가도가도 급류였고 죽음의 빛깔인 쟂빛이었다. 산도 돌도 흙도 물도 모두 쟂빛 일색이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보타바드에서 길기트·훈자를 지나 4000m의 훈자랍 고개에서 국경을 넘고 티베트를 관통하여 중국 시안(西安)까지 벋은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완성된 것은 1973년. 도로는 파키스탄 공병대가 담당하고, 교량은 중국인이 만들어 우정의 도로라고 명명되었다. 20년간 계속된 공사에서 약 1천명이 희생되었을 정도로 힘들고 험한 공사였다. 완성되었다지만 수시로 바위덩이가 굴러내리고 지반이 무너져 위험하기 짝없는 길이었다.

살기 힘든 땅인 듯 싶지만 얼마쯤 가면 사람이 보였고, 사람이 보여 주위를 돌아보면 어느 쪽인가 버불(buble)나무 꼿꼿이 서있는 오아시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곳은 또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물줄기가 회돌이쳐 흘렀다.

일행 중 한명이 뒤쪽에 갑자기 나타난 만년설 봉우리를 가리켰다. 세계적으로 이름난산악인을 많이 삼켜 "킬러마운틴"으로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8146m)"였다. 히말라야 산맥 서쪽 끝에 있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낭가파르바트가 보이기 시작한 곳에서 10km 더 올라가니 세계 3대 산맥인 힌두쿠시·히말라야·카라코룸이 머리를 맞댄 삼각지대에 이르렀다. 다시 30km를 가니 등산·트래킹의 명소이며, 사진작가를 매혹시키는 독특한 아름다움의 길기트에 닿았다.  


훈자의 장수비결은 문명과 단절된 생활

실크로드 제일의 장수촌 훈자(Hunja)는 길기트에서 100km 북쪽에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650km이며, 해발 2,400m 지점에 흰눈 덮인 봉우리를 배경으로 실크로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라코룸 산맥의 깊숙한 곳으로 살구나무가 많아 꽃 피는 계절에는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만년설의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녹지대에 3천명 정도 인구가 웃마을 아랫마을 식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데 실제로 100세 이상 되었음직한 노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인더스강 상류의 한 줄기인 훈자강이 역시 마을을 감싸듯 회돌이쳐 흘렀다.

힌두쿠시산맥에서 카슈미르 골짜기로 내려오다 만나는 목으로, 과거에는 실크로드를 오가는 행인들의 숙박지였다고 한다. 삼사십년 전만해도 하나의 왕국이었고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완성되기 전에는 찾아가기 여간 힘든 곳이 아니었다.

지금도 쉬운 곳은 아니었다. 16인승 버스로 이틀 걸렸다. 주행시간 만을 친다면 12시간 정도일 것이다. 인더스강을 끼고 시속 50∼60km로 지루하게 올라왔다. 오면서 계속 인더스강을 보았는데 흐름이 완만한 곳은 한 번도 없었다. 계속 급류였다. 게다가 좌우 기슭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걸죽하게 범벅된 흙탕물로 기분나쁜 잿빛의 연속이었다. 봄철 한 때 맑은 기운을 보인다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상류로 올라가면 맑아지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가도가도 잿빛은 여전했다. 비포장 군사도로같은 하이웨이라는 길도 끝없이 같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훈자만은 그렇지않겠지, 하고 기대하며 갔다. 살구나무 무성한 가운데 맑은 물 흐르고 새들 지저귀는 낙원을 꿈꿨다. 신선이 다 된 백발 노인들이 온화한 모습으로 맞아줄 것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훈자조차 끝내 그렇지 못했다. 산악형 사막 깊숙히 들어앉은 오아시스였다. 맑은 물도 없었고 중심마을은 빈민촌을 연상케했다.  

경사지를 이용한 계단식 논밭에 쿨(Kul)이라 불리는 수로를 만들고, 지하수를 이용하여 벼·옥수수·과일 따위 재배로 살고 있었다. 특히 살구가 풍성할 뿐이었다. 주민은 회교 이스마일파 신도가 대부분이며 전통적으로 파미르 지방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장수비결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으나 대체로 맑은 공기와 알맞은 기후, 살구씨 효능일 것으로 짐작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 중심마을인 발디트에서 만난 노인들은 주저없이 "문명과 단절된 생활"이 곧 장수비결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욕심부릴 일 없어 마음 편히 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카라고룸 하이웨이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밀려왔고, 상가가 번성하고 호텔이 들어서면서 마을 분위기도 변해버렸다. 장수 신화는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0년 전만해도 청소년들이 50km 정도는 가볍게 걸어 심부름 했는데 지금은 단 1km를 걷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승용차 찌프 오토바이 트랙터 버스가 아황산가스를 내뿜으며 비탈을 오르내리고, 일본 상인들이 미국 팝송을 팔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만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사람을 반가워하는 따뜻한 인정이었다.  


혜초가 유학했던 불교대학

훈자밸리에서의 실망은 엉뚱하게 탁실라의 졸리안 유니버시티에서 보상되었다.
금세기 초 실크로드를 탐사한 프랑스인 동양학자 P·펠리오는 돈황에서 여러 가지 귀중한 발견을 하였다.

설화의 주인공이었던 달마의 행적을 밝힘으로서 실존 인물로 증거하였고, 신라 승려 혜초(慧超704∼787)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발견하였다. 앞뒤가 떨어져 나간 일부였지만 그것이 8세기 인도·파키스탄·중앙아시아의 사회와 제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현존본은 인도 동부 갠지스강 유역의 마가다왕국(現비하르지방)에서 서술이 시작된다. 이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로 가서 다비장과 열반사를 보고 남쪽으로 여행,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에 닿았다. 다시 동쪽 라자그리하로 가서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립정사를 참배하고 법화경 설법지인 영취산(靈鷲山)을 돌아본 다음 부다가야에 이르러 오언시를 지었다. 이어 중천축국의 사대영탑(四大靈塔)과 룸비니를 방문하고 서천축국·북천축국을 거쳐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지방과 간다라문화 중심지, 카슈미르지방 등을 답사하였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온 것은 24세 때인 727년 11월이고 남아있는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16세 때 중국 광주(廣州)에서 인도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를 배운 것으로 되어있으니 8년∼9년 여행을 한 것이다. 혜초는 여행만 했을까?

훈자에서 내려와 "탁실라(페샤와르)"에서 옛불교대학 유적을 보았다. 서너길 실히 되는 보리수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안내원은 혜초를 알고 있었다. 혜초가 이곳에서 6년을 공부하였다고 말했다.  

옛 불교대학, 즉 졸리안 유니버시티 유적은 약 1백미터쯤 되는 언덕 위에 지붕없는 돌담 형태로 남아있었다. 2백평쯤 되는 내부면적은 둘로 나누어져 오른 쪽엔 안뜰이 있고 4기의 스투파(stupa/불탑) 모형, 지난 날 승려들이 공부를 했음직한 강의실도 있었다. 왼쪽에는 중앙에 열평쯤 되는 공중목욕탕이 있고 사방 벽을 따라 3평쯤 되는 일정한 규격의 방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혜초가 머물었던 방은 어디였을까.    

대학다운 면모는 이곳에 불교의 4대 종파가 다 모여있는데서 느낄 수있다. 사각으로 만들어진 모형 스투파의 각 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각각 다른 유파의 전형이었다. 한쪽은 보수계의 장로부불교, 한쪽면은 대승불교, 또 한쪽은 소승불교, 또 한쪽은 티베트불교의 상징물로 장식되어 있어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보니 부처님도 참 인종이 다양했다. 서양인도 있고, 중앙아시아인도 있다. 필자는 그 사이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를 발견하였다. 낮에도 빛이 들지않아 자연광으로 카메라에 담기 어려운 정도였는데 모나리자보다 더 신비감을 주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훈자에서의 실망을 보상해 주며 실크로드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그것이 혜초의 미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행 사보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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