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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맑게 하고 소화를 돕는 차. 차는 인간에게 무한한 활력을 주며 오묘한 사색의 숲으로 인도한다. 성품이 부드러워 늘 마셔도 부작용이 없는 인생의 반려. 색향미를 음미하며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용서와 이해와 조화의 심미안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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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다인



어두컴컴한 봄날의 새벽, 작은 새들이 수목 사이 영묘한 분위기에서 지저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당신은 작은 새들이 끼리끼리 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인간이 꽃을 칭찬하게 된 것은 아마도 연가(戀歌)와 더불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않기에 아름다우며, 조용하기에 향기로운 꽃처럼 소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원시인은 사랑하는 소녀에게 꽃다발을 바쳤을 때 처음으로 야수의 영역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자연에만 대립하는 용맹에서 빠져나와 인간의 영역으로 높여졌습니다. 그리고 미묘한 무용(無用)의 용(用)을 알게 되었을 때 예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꽃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치 않는 우리들의 벗입니다. 우리들은 꽃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또 노래하며 춤추고, 꽃을 가지고 혼례를 올리고, 세례를 받습니다. 꽃 없이는 함부로 죽을 수도 없습니다. 백합꽃으로 신에게 빌고, 연꽃과 함께 명상하고, 장미와 국화를 내걸고 전투에 임합니다. 꽃 이야기로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꽃 없이 어떻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꽃이 없는 세계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꽃은 병자의 머리맡에서 부드러운 위로를 주며, 피로한 마음의 어두운 곳에 축복을 뿌립니다. 그 정등(靜證)한 맑음은 힘을 잃은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어 우주에 대한 신뢰의 념을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한결같은 눈망울이 우리들의 상실한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들이 죽어서 흙에 누웠을 때, 묘지를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것도 꽃인 것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는, 꽃과 벗하며 살아가면서도 야수의 영역에서 별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양의 가죽을 한 겹 벗기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이리가 곧 이빨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10세에 짐승이 되고, 20세에 미치광이가 되며, 30세에 실패(失敗)하고 40세에 행여나 하는 한탕주의자가 되고, 50세에 죄인(罪人)이 된다고 합니다. 야수처럼 그대로 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겁니다. 굶주림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며, 사리사욕은 당연한 것처럼 신성시됩니다.
신의 영역은 우리 눈앞에서 차례차례 붕괴되어 갔습니다. 단지 하나, 영원히 남게 된 제단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자기」라는 지상의 우상을 세우고 향을 피웁니다. 이 제신이 가장 위대한 신이며 재산은 그의 예언자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대자연을 짓밟아 황폐시켰습니다.
물질을 정복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들 자신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화라든지 풍아라든지 하는 미명(美名)하에 얼마나 잔학무도한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 돌아본 적이 있습니까?

우아한 꽃이여, 별의 눈물이여,
이슬이나 햇빛을 노래하는 나비와 벌을 기다리며
뜰에 말없이 서있는 꽃이여!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운명을 알고나 있는지.
여름을 실어 나르는 산들바람을 즐기며
행복한 꿈이라도 꾸어 두려무나.
금방이라도 무정한 손이 너의 목덜미를 조이면서
몸을 비틀고 손발을 낱낱이 자른 뒤
조용한 집과 이별하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잔학무도한 사람이 혹 절세미인일지도 모른단다.
제 손가락에 네 피가 묻어있는 동안
아, 아름답구나!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것이 너를 동정함일까.

네가 소녀라면  
얼굴 한 번 쳐다봐주지도 않는 무정한 사나이의
앞가슴에 꽂혀지는 것을 어찌 받아들일까.
마지막에는 좁은 화병에 담겨  
빈사상태에서 마른 목을 축이려 해도
썩은 물이 있을 뿐.

이것이 정녕 정해진 너의 운명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일본 땅에서 피어났다면
어느 땐가는 가위와 작은 톱을 가진 무서운 인간
스스로 꽃꽂이 선생이라 칭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는 의사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특권을 휘두르기에
너는 당연히 싫어질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고통에 잔신경을 쓰지 않듯이
꽃꽂이 선생은 너를 절단하고 구겼다 비틀었다 해가며,
엉뚱한 형상으로 변형시켜놓고 혼자 희열을 느낀단다.
뼈를 부러뜨린 뒤 지혈을 시켜준답시고
새빨간 숯불로 너에게 화상을 입히고
피의 순환을 돕는다면서 몸에 침봉을 박아준단다.
주는 음식이란 소금과 산(酸), 명반이나 때로는 유산…
너희가 기절할 것같이 보이면
발에 탕수를 부우며 자만에 차서 이렇게 말한단다.
내 처치로 꽃의 생명이 2~3주 길어질 거야. 하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붙잡혔을 때 바로 죽는 것이 좋았을 것을.
이런 벌을 받다니 전생에 무슨 악업을 쌓았단 말이냐.

서양 사회에서 함부로 꽃을 낭비하는 상황은, 동양의 꽃 선생이 꽃을 다루는 것과 비교할 때 더욱 오싹해집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댄스파티장이나 연회장의 테이블을 장식하기 위하여 많은 꽃들이 잘려졌다가 다음 날 거의 버려지고 맙니다.
그것은 아마도 굉장한 양일 것입니다. 그 꽃을 연결시키면 한 대륙 쯤 화륜(花輪)으로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에서 이와 같이 무신경하게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에 비하면 동양의 꽃꽂이 선생들의 죄과는 별 것 아닐지 모릅니다. 꽃꽂이 선생은 적어도 자연계의 경제는 생각합니다. 세심한 통찰로 희생자를 가려 선택하고, 사후 유해인 꽃에 예를 다합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꽃을 장식하는 것은 다분히, 부를 과시하는 일시적인 기분일 따름입니다.

그 시끄러운 행사가 끝나면 꽃들은 어디로 갈까요? 시든 꽃들이 무정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보면 슬퍼집니다.
꽃은 아름답게 태어났음에도 왜 이처럼 불행해야 할까요. 작은 벌레도 위기에 처해서는 독을 휘두르고, 어떤 순한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싸움을 합니다.  
모자에 꽂힌 장식품이 자기들의 깃인 줄 안다면 새는 멀리 날아 도망갈 것입니다. 모피 코트로 털을 빼앗기는 동물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몸을 숨깁니다.
슬픈 일입니다. 날개 없는 꽃들은 폭군 앞에 그저 서 있을 뿐.
꽃들이 죽음의 고통에서 비명을 울려도 양심이 마비된 우리들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히 쓰이고 불평 없이 온갖 심부름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잔인한 방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땐가는 그 잔인함으로 인해 꽃이라는 벗에게 미움을 받아 황폐한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야생의 들꽃이 감소되고 있음은 알고 있습니까. 현명한 꽃의 현자(賢者)가 있다면, 인간이 더 인간다워질 때까지 땅을 떠나라고 명령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꽃들을 아예 하늘로 이주시킬 지도 모릅니다.

초목을 기르는 사람을 칭찬해야 합니다. 식목 분을 취급하는 사람은 가위를 휘젓는 사람보다 인정이 있어서, 보는 사람도 유쾌해집니다. 물과 햇볕에 신경을 쓰고, 해충과 서리를 조심하고, 잎이 돋아나는 것이 늦으면 걱정하고, 나뭇잎의 색이 건강하고 영롱하면 우쭐해 합니다.
동양에는 꽃 재배술이 옛부터 있었으며, 시인과 마음에 드는 식물과의 관계가 시가(詩歌)나 화제가 되는 일도 잦았습니다.

당․송 시대에는 도예의 발달과 더불어 꽃이나 나무를 심을 좋은 용기가 만들어졌으므로 화분마다 한사람씩 정해서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잎은 부드러운 토끼털붓으로 닦아내고, 모란은 성장한 미녀가, 겨울 동백은 야위고 창백한 얼굴의 스님이 씻었다는 옛 기록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노오[能]의 작품 중 아시카가[足利] 시대에 만들어진 분의나무[鉢の木]란 것이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밤 한 가난한 무사가 방랑하는 스님을 알뜰히 모시려고 하는데 불을 피울 나무가 없어 그가 아끼는 분의나무[鉢の木]를 절단한다는 내용인데, 그 스님은 호오조오 도끼요리[止條時賴]였습니다. 스님은 훗날 이 무사의 희생적 호의에 후한 보답을 했습니다.
노오[能]의 이 이야기는 오늘까지도 에도[江戶:東京]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약한 꽃을 보호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의 현종황제는 정원에 있는 나뭇가지에 금으로 만든 작은 방울을 매달아 놓아 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화사한 봄날 궁정 악사들과 정원에 모여 온화한 분위기에서 꽃을 기쁘게 해준 것도 그였습니다.
일본판 아서왕 전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요시쓰네[義經]가 묵필(墨筆)로 남긴 기묘한 고찰(高札)도 일본의 한 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매화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인데, 전국시대 특유의 처절함이 담긴 유머가 재미있습니다. 고찰에서 요시쓰네는 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일지(一枝) 절단은 일지(一枝) 절단이다.」
오늘날 마음 내키는 대로 꽃을 꺾고 함부로 예술작품을 파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벌이 주어지면 좋을 것입니다.
인간은 화분에 있는 꽃도 인간 본위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왜 식물을 그 본래의 자리가 아닌,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환경에 두고 꽃피우기를 강요할까요. 이는 새를 새장에다 가두어 놓고 「노래 불러라, 교미하라」하고 바라는 것이나 같습니다.
온실의 인공 열기에 질식할 것 같은 난(蘭)이 간절하게 고향인 남쪽 하늘을 연모(戀慕)하고 있음을 누가 알아줄까요.

이상적인 꽃 애호가란 꽃이 피어있는 현장으로 손수 가보는 사람입니다.
도연명(陶淵明)은 아무렇게나 둘러쳐진 대울타리 앞에 앉아서 들국화와 대화를 나누었고, 임화정(林和靖)은 석양 무렵 서호(西湖)의 매화 사이를 거닐며 꽃향기에 도취되어 무아지경이었습니다. 또 주무숙(周茂叔)은 자기의 꿈이 연꽃과 어울리기를 바라는 상념(想念)에서 작은 배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나라조[奈良朝]의 이름 높은 광명황후(光明皇后)는 이들과 같은 심경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 ꠏꠏ 꽃이여, 너를 꺾어들면 나의 손은 더러워진다. 지금 너희가 야생으로 서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에게 바치리라」
그렇다고 너무 감상적으로 빠져드는 것도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유유자적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노자(老子)도 「천지는 무정하다」(老子, 天地不仁章第五) 고 했고, 홍법대사(弘法大師) 역시 「흘러 흘러 또 흘러 생명은 흘러가며, 죽고 죽고 또 죽고, 죽음은 만물에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끝에는 파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괴가 없다면 신생(新生)도 없습니다. 파괴라는 변화야말로 유일의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죽음도 삶과 같이 기쁨으로 맞아들이지 못할까요? 양자는 일물(一物)의 표리(表裏) 관계로써 범천의 낮과 밤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낡은 것이 멸해야만 재생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들은 각양각색의 이름을 붙여 「죽음」이란 냉혹한 자비의 여신을 받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가 「성스러운 화중(火中)에 맞이한 일체를 탐식하는 것」의 그늘이었습니다.
또 신도(神道) 일본이 오늘날 그 앞에 엎드려 추망하는 것은 검혼(劒魂 ; 日本刀)의 얼음 같은 순결입니다. 조로아스터교(敎)의 신비스러운 불이 우리의 약한 마음을 불태우듯 신도 일본의 성스러운 검(劒)은 번뇌의 끈을 절단합니다. 재가 되어버린 망해(亡骸)에서 무한한 희망의 불사조가 파르르 날아 자유의 날개를 치는데서, 보다 고상한 인간상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꽃을 절단함으로서 새로운 형을 창조하고 고차원의 무엇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대로 좋지 않습니까.
꽃에게 바란다면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희생의 대열에 참가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죄는 순수와 간소에 철저함으로써 속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인(茶人)들은 이러한 사고에서 「화도(幻)」를 확립하였습니다.
일본의 다인이나 꽃꽂이 사범은 그렇게, 대부분 종교적인 차원에서 외경스럽게 꽃을 취급합니다. 손닿는 대로 꽃을 자르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일망정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그린 미적 구성에 바람직스러운 것을 주의 깊게 가려 꼭 필요한 부분만 절단합니다. 필요 이상 자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목할 것이 있다면 잎이 있는 경우, 반드시 꽃과 잎이 같이 어울리게 합니다. 식물의 생명을 종합미(綜合美) 입장에서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꽃꽂이는 일본과 다른 면이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몸통 없이 화경(花莖) 상부만 무더기로 꽃병에 꽂아 놓는 수가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꽃이 잘 꽂아지면 다인은 그것을 도꼬노마[上座 : 床の間]에 갖다 놓습니다. 생화 가까이에는 그 효과를 감소시킬만한 것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한 폭의 그림도 걸지 않습니다.
가까이 둘 수 있는 것은 꽃과 어울려 각별한 미적 효과를 낼 수 있을 때 만입니다. 꽃은 왕관을 쓰고 상좌에 모셔지는 것입니다.

손님이든 제자든 방에 들어오면 주인에게 인사하기 전에 먼저 생화를 향하여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꽃이 시들었을 때는 하천에 흘려보내거나 땅에 묻어주고, 때로는 꽃의 영혼을 위로하며 묘비를 세워주기도 합니다.
화도(幻)의 창립은 15세기 다도의 정립과 때를 같이 했습니다. 옛 이야기에, 최초의 꽃꽂이[生花]는 승려가 폭풍우에 떨어진 꽃을 모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소우아미[相阿彌]는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시대 제일가는 화가이며, 명망 있는 미술 감정가였는데, 동시에 초기 꽃꽂이의 달인이기도 했습니다.
다인 무라다 슈우고[珠光]는 그의 문인(門人)이었습니다. 화도사상(幻思想) 회화(繪畵)의 가노가[狩野家]에 필적하는 유명한 가계(家系)가 된 이게노보류[池之坊流]의 개조(開祖) 센노[專能]도 그의 문인(門人)이었습니다.
16세기 후반 리큐[利休]에 의하여 다도의 작법이 완성되면서 꽃꽂이[生花]도 대단한 진보를 하였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오다우라구[織田有樂] 후루다오리베[古田織部] 고에쓰[光悅] 고보리엔슈[小握遠州] 가다기리 세기슈[片桐石州] 등도 꽃꽂이의 새로운 조형을 창조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잊어서 안 될 것은, 다인들의 꽃 숭배는 이들의 심미적(審美的) 예법 ― 다탕(茶湯) ― 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꽃만이 독립된 신앙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꽃꽂이는 다실 내의 다른 예술품과 같이 장식체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키슈[石州]는 마당에 눈이 있을 때는 하얀 매화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별나게 눈에 띄는」 꽃은 다실에서는 추방되었습니다. 다인의 꽃꽂이는 그것이 본래 있어야 할 다실을 떠나면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꽃의 선이나 배분 등이 한결같이 다실 내에서 조화를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꽃만을 별개로 숭배하는 관습은 17세기 중엽, 꽃꽂이 선생이 출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꽃은 차츰 독립하여 화병이 주는 법칙 외에 달리 속박하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꽃꽂이에 새로운 개념이 생겨 새로운 방법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규칙과 유파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19세기 중엽 한 문인의 말을 빌리면 당시 꽃꽂이 유파가 백을 넘었다 합니다.
이들 유파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형식을 중시하는 파와 자연미를 중시하는 파입니다. 형식 파는 이게노보류[池之坊流]가 주류를 이루고, 회화에서의 가노파[狩野派]에 필적하는 고전 이상주의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 파 선생들의 작품은 단세쓰[探雪] 쓰네노부[常信]의 그림을 거의 모사한 것 같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연미를 중시한 쪽은 말 그대로 자연을 견본으로 삼았으며, 형의 수정은 단순히 그 미적 통일을 표현하기 위한 데 그쳤습니다. 이들의 작품에선 우키요에[浮世繪]나 사조파[四條派]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틈이 있다면 더 깊이, 이 시대 여러 꽃꽂이 선생들이 정한 구성상의 규칙을 세부까지 파고들어, 도쿠가와[德川] 시대의 장식을 지배했던 근본이념을 탐구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대체로 그들은 「주(主)의 원리」 천(天), 「종(從)의 원리」 지(地), 「화(和)의 원리」 인(人)에 대하여 논하면서, 이러한 원리를 구현하지 않는 꽃꽂이는 무미건조한 죽은 꽃이라 하였습니다.
의자연파(擬自然派)에서는 꽃을 「정식(正式)」 진(眞), 「반정식(半正式)」 행(行), 「약식(略式)」 초(草)의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눠야 한다고 했는데 「정식(正式)」은 위엄 있는 장식을 단 무도복을 입은 꽃, 「반정식(半正式)」은 유유하고 우아한 외출복을 입은 꽃, 그리고 「약식(略式)」은 집안에서 매혹적인 실내복을 입은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꽃꽂이 선생이 꽃은 꽃보다 다인이 꽂은 꽃이 더 차분하고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특히 다인이 꽂은 꽃은 있어야 할 장소에 놓여질 때 예술이 되며, 참 생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들 마음에 호소해 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다인의 꽃꽂이는 의자연파(擬自然派)나 형식파(形式派)와 구별하여 자연파(自然派)라 불렀습니다. 다인은 「자기의 임무는 꽃의 선택까지」이며, 그 다음은 꽃으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늦겨울 다실에 들어가면 산 벚꽃나무의 가느다란 가지에, 봉오리 진 동백이 꽂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는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을 향합(響合)한 것입니다.
또 무더운 여름날 낮에 다회에 가면 도꼬노마[上座 : 床の間]의 유현한 공간에 한 송이 백합을 담은 화병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자태를 보고 있으면 백합이 조용히 세상사를 비웃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만의 독주(獨奏)도 좋지만 그림이나 조각과 협주곡이 되면 그 짜임새는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세기슈[石州]는 수반(水盤)에 수초를 띄워 호수의 식물처럼 꾸미고 윗벽에 기러기가 나는 그림을 걸었습니다.
또 다인 조하[紹巴]는 어부의 집 모양을 한 청동 향로와 갯벌의 야초, 거기에 포구의 적적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조합했습니다. 조하의 손님들은 그 구성에서 저물어 가는 가을을 느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꽃을 화제로 하면 이야기가 끝이 없는데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16세기 일본에서 나팔꽃은 아직 진귀한 꽃이었습니다. 리큐[利休]는 정원 가득히 나팔꽃을 심고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리큐의 나팔꽃 소문은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리큐의 다회에 다녀온 사람마다 하도 나팔꽃 예찬이 자자하자 히데요시도 한 번 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리큐는 날을 정해 아침 다회에 초대했습니다.
약속한 날 히데요시는 정원에 들어섰는데, 어디를 보아도 나팔꽃은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히데요시는 별로 좋지 않은 심기가 되어 다실에 들어섰습니다. 다실에 들어서니 거기에 그의 심기를 일변 시키는 것이 있었습니다. 도꼬노마[上座 : 床の間]에 놓인 송대(宋代)의 진귀한 청동기에 오직 한 송이의 나팔꽃이 꽂혀 있어 히데요시를 반겼습니다. 정원에 가득했던 나팔꽃 중 여왕 같은 나팔꽃임을 물론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꽃을 바치는 의미를 충분히 살폈습니다. 아마 꽃 자신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아름다움에 함께 봉헌하려는 뜻을 공감해 줄 것이라 믿어집니다. 꽃 중에는 인간처럼 겁쟁이가 아니어서 죽음이란 것에 긍지를 가지는 것도 있습니다.
벚꽃은 바람 부는 틈틈이 떨어져갑니다. 요시노[吉野]나 아라시야마[嵐山]의 그윽한 꽃 보라에 젖어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꽃잎은 맑은 시내를 보석처럼 춤추며 흘러갑니다. 웃으며 속삭이듯 물위를 떠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봄이여 안녕. 우리는 영원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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