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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맑게 하고 소화를 돕는 차. 차는 인간에게 무한한 활력을 주며 오묘한 사색의 숲으로 인도한다. 성품이 부드러워 늘 마셔도 부작용이 없는 인생의 반려. 색향미를 음미하며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용서와 이해와 조화의 심미안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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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敎思想과 茶


茶道와 禪

다도가 선(禪)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일반에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도는 선의 의식(儀式) 가운데에서 발전하여 온 것으로 도교의 시조 노자(老子)도 차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 풍속습관의 시원(始原)이 기록된 교과서에는, 손님에게 차를 접대하는 예절이 그 유명한 노자의 제자 관윤(關尹) 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관윤이 함곡관(函谷關)에서 노자에게 황금빛 불로장수(不老長壽) 영약(靈藥)을 바쳤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도교 교도들이 그렇게 먼 옛날에 차를 마셨는지는 고사하고라도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도교와 선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다도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입니다. 간단히 설명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옛 현인들은 스스로의 교의(敎義)를 알기 쉽게 이해시키려고 계통을 세우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역설(逆說)을 잘 활용하였으며 불확실하고 서투른 진리를 주입식으로 설득하려 하기보다, 바보스럽게 이야기하여 결국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노자 역시 기발한 역설을 사용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둔한 자는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껄껄 웃는다.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道)』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老子․上士楣章四一)
「道」의 문자를 풀이하면「경(經)」이란 의미이며 영어로는 Nature(자연), the Supreme Reason(최고원리), the mode(양상 : 樣相) 등으로 번역되어 왔는데, 이 역어(譯語)는 어느 것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도교 내부에서도 경우에 따라 그 쓰임의 의미를 달리 했기 때문입니다.
노자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만물을 내포하는 일물(一物)이 있다. 그것은 천지개벽 이전에 태어났다. 그저 조용하게 외로이 홀로 고독하게 서있으며, 변치 않는다. 그것은 회전(回轉)하지만 아무런 위험도 없고 하늘의 어머니가 된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이것이 「도」다. 또한 그것은 무한(無限)이며 무한은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소멸(消滅)이며 소멸은 회귀(回歸)이다」(老子․有物混成章第二十五).

도는 「경」이라기보다도 「통로(通路)」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변전(變轉)의 정신, 즉 새로운 형(形)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에게 회귀하는 영원한 성장인 것입니다. 도교인들이 좋아하는 상징인 용(龍)이, 운무(雲霧)에서 생겨 용으로 굳어지고, 다시 운무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무한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도」란 대추이(大推移)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해석하면 우주의 기운(氣運)입니다. 그 절대성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본질이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도교에서 중시하는 참다운 것의 계승이란, 중국 남부 지역의 개인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유교(儒敎)로 대표되는 중국 북부 지역의 공유주의(共有主義)와 대립합니다.
중국은 유럽처럼 광대합니다. 광대한 대륙을 흐르는 두 개의 큰 하천에 의하여 북부와 남부로 나뉘고, 두 개의 전혀 다른 이질 문화권으로 분리됩니다. 양자강(揚子江)과 황하(黃河)는 유럽의 지중해와 발트해 같아서, 몇 세기에 걸쳐 통일을 이룬 오늘날에도 남부중국인과 북부중국인은 라틴민족과 튜턴민족(게르만 민족의 하나)과의 차이만큼이나 그 사상과 신앙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 ― 특히 봉건시대에는 그 사상의 서로 다름이 더욱 현저하였으니 남부의 미술, 시가(詩歌)는 북부의 것과는 전혀 다른 대기(大氣)를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노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양자강 하반(河畔)의 자연시(自然詩)의 선구자 굴원(屈原)은 같은 시대 북부 문인들의 산문적 윤리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도교사상의 싹은 노자의 출현 훨씬 이전에 볼 수 있으니, 중국의 고문헌, 『역경(易經』에서 그 편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 주(周) 왕조의 성립과 더불어 중국의 고전문화는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 문화는 법률과 관습만은 중히 여겨서 오랜 세월 개인주의의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주(周)가 분열하여 많은 독립왕국이 성립되면서 비로소 자유사상이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하자, 노자와 장자는 남부사람으로 그 신학파(新學派) 최대의 주창자(主唱者)가 되었습니다.
한편에서 공자(孔子)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렇게 나뉘다보니 노자의 도교도, 공자의 유교도, 양측을 다 이해하지 않고는 그 어느 한쪽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도교에서의 절대(絶對)란 너무 상대적이어서, 도교인은 사회 법률이나 도덕률을 매도하기도 합니다. 선악이란 그저 상대적인 용어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定義)한다는 것은 그것을 한정하는 것이므로「일정(一定)」이라든가 「불변」이라는 말처럼 성장의 정체를 표현하는 용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굴원(屈原)은 「성인은 잘도 세상과 더불어 추이(推移)한다」고 했습니다.
도덕이나 규범 역시 과거의 사회적인 필요성에서 탄생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사회가 어느 때고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통을 준수하려고 하면 개인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육이란 것은 이런 가당치도 않는 미망(迷妄)을 믿게 하기 위한 일종의 무지(無知)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인간에게 유덕(有德)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그저 행실 바르고 요령껏 처신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자기중심으로 초조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자신이 옳지 못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결국 남을 용서하는 아량도 없을뿐더러 타인에게 진실을 말하지도 못합니다.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조차 진실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도리어 잘난 체로 자신을 숨겨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양심이란 것을 배양(培養)하고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가 이렇게 한심스러운데 어떻게 세속에 충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남에게 무엇인가 베푸는 것은 그 보상으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명예라든지 정절(貞節)이라든지는 진(眞), 선(善)도 팔아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매물(賣物)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교도 매입(買入)할 수가 있습니다. 역시 꽃과 음악으로 짙게 장식한 진부한 도덕률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웅장한 집과 매끄러운 말씀을 제거한다면 대체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믿음을 상품으로 하는 기업은 크게 번성(繁盛)하고 있습니다. 적은 부담으로 무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한 번으로 천국행 티켓과 모범시민 증서를 가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서도 자기를 과시하는 일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유능한 사람이라면, 조만간 세상에 알려져 경영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기선전에 매달리는지. 아마도 노예제도가 있던 옛날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아닐런지요.

차와 도교사상

도교사상은 대단히 큰 힘으로 계속해서 일어난 여러 가지 운동을 지배하였습니다. 힘이 강력했기에 같은 시대의 다른 사상을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진(秦)의 중국통일시대 도교는 사회의 일대 활동력이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당시의 사상가 수학자(數學者)․법률가․병법가(兵法家)․신비론자(神秘論者)․연금술사(鍊金術師), 또는 후일 양자강 하반(河畔)의 자연시인인 두보(杜甫), 이백(李白) 등이 도교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백마(白馬)는 희기 때문에 실재(實在)하는가, 혹은 단단(堅)하기 때문에 실재하는가를 생각한 실재론자(實在論者)나 선학자(禪學者)처럼 「청정(淸淨)과 절대(絶對)」를 논한 육조(六朝)의 청담가(淸談家)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교가 중국인의 국민성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고 「온화하기가 마치 구슬(玉)과 같다」고 한 일종의 세련된 신중함을 길러준 점에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중국 역사를 나오는 많은 도교인 중에는, 왕후나 은자(隱者)들이 각자 나름대로 교의(敎義)에 따라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 중에는 독특한 교훈과 재미있는 일화, 우의(寓意), 경구(警句)들이 샘솟듯 합니다.
혹시 「살아 있었다는 것도 없었으니 죽는다는 것도 없다」고 한 황제(皇帝)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듭니까.
바람을 타고 참된 정적을 음미한 열자(列子)와 같이 우리들 자신이 바람이 되고 천지간을 주유하는 황하상(黃河上)의 「태상노군(太上老君 : 老子)과 같이 공중에 살아보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현재는 중국의 기괴한, 이름뿐인 도교이지만, 내면에는 다른 어떤 종파에서도 볼 수 없는 유쾌하고 풍요한 상상들로 가득합니다.

도교는 주로 미학적(美學的) 영역(領域)에서 아시아인의 생활에 공헌했습니다. 중국 역사가들은 도교를 「처세술(處生術)」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도교가 현재 ― 즉, 우리들 자신을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자기 존재를 의식하고 확인한다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신(神)과 자연이 융합하면서 어제가 내일과 헤어져 「현재」란 때를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현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한(無限)」인 동시에 「상대(相對)」의 영역입니다. 「상대성」이란 「조정(調整)」을 희구하는 것이며, 「조정」이란 바로 기술입니다. 인생의 술(術) ― 즉, 처세술은 우리들이 환경과 끊임없이 조정을 되풀이 하는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도교는 현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비탄과 고뇌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런 점이 유교나 불교와의 차이점입니다.
송(宋) 시대 우화(寓話)에 「초(酢)맛 보는 세 성인(三聖人)」이 있습니다. 간결하게 유교․불교․도교의 각각 다른 경향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어느 날 석가(釋迦), 공자(孔子), 노자(老子) 세 분이 함께 초(酢) 항아리(인생의 상징) 앞에서 만났습니다. 세 사람은 각각 자기 손가락으로 초를 찍어 맛을 봤습니다. 실제적인 공자는 시다고 했고, 석가는 쓰다고 했는데, 노자는 달다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희극(喜劇)은 모든 연기자가 화합하게 되면 더욱 흥미로워진다」고 도교인들은 주장합니다. 현세의 극(劇)을 성공시키려면 모든 요소가  균형이 잡고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야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극 전체를 알지 않으면 안 되며, 개인이란 개념 가운데 전체란 개념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이를 노자는 「득의(得意)의 무(無)」란 비유로 설명하면서「무」에 실재의 참다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방(房)의 실재(實在)는 지붕도 벽도 아니요,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주전자의 필요한 곳은 물이 들어가는 공간이지, 주전자의 형태나 그것을 만든 재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는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만능이라고 했습니다. (老子, 三十輻章 第十一).
만물은 무일 때만 운동이 가능해집니다. 자기를 비워 허하게 함으로서, 그 공간에 다른 것이 출입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자유스러운 지배자일 수 있습니다. 전체는 언제나 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도교사상은 모든 행동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왔습니다. 검술이나 씨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호신술을 유술(柔術)이라 하는데 그 용어도 도덕경 1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老子․天下柔弱章 第七十八). 천하의 가장 유약한 자는 천하의 가장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구절입니다. (老子․天下之至柔章 第四十三)
유술에서는 무저항 즉, 허를 사용하여 적의 힘을 끌어내고 소모시킵니다. 최후의 싸움에 이기기 위하여 자기 힘을 저축하는 기술적 노력이 유술인 것입니다.

노자의 설법

예술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리가 「암시(暗示)」라는 형태로 중시됩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둠으로서, 보는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으로 완성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위대한 걸작(傑作)이란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작품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예술 작품이 만든 빈 공간에 관객이 몰입되어서, 공간이 미적 감동으로 가득 채워지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술(術)」을 터득한 사람은 도교에서는 「사(士)」라 부릅니다. 「사」의 탄생은 자기 스스로가 감지하는 무심현묘(無心玄妙)의 경지에 들어감으로써 시작되는데, 반대로 거기에서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은 「사(士)」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의 총명의 빛을 덮어둔 채 세속 가운데로 뛰어들어야 사는 것입니다. (老子․知者不言章 第五十六)
또 그는 「일을 당하여서는 겨울날 냇가를 조심스럽게 건너는 사람처럼 주저하며, 이웃 사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움츠리고, 또 그 태도는 손님처럼 엄숙하고 조신해야 합니다. 조심할 때는 따스한 봄빛에 무르녹는 얼음처럼 융통무애(融通無碍)하도록 하며, 마음은 한결같이 질박해야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목(原木)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도량(度量)은 계곡처럼 넓고 비어두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사」인 자는 물건을 세밀하게 구별하지 말고,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면 자신도 어리석은 자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이 탁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老子․古之善爲士章 第十五).
「사」에게 있어서 인생의 세 가지 보배는 자비(慈悲)․검약(儉約)․겸양(謙讓)입니다. (老子․天下皆謂章 第六十七).
선(禪) 쪽으로 눈을 돌리면 도교의 교의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은 범어(梵語)의 선나(禪那 : Dhyana)에서 나온 명칭이며, 정려(靜廬)란 의미입니다. 선은 정진정려(精進靜廬)에 의하여, 구극적(究極的) 자성료해(自性了解)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려(靜廬)는 오도(悟道)에 들어가는 6대 방법(六大方法:육바라밀)의 하나로, 석가모니도 만년의 가르침에서는 이 방법에 비중을 두어 규칙을 만들고,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전했습니다.
선의 시조가 된 가섭(迦葉)은 그 깊은 뜻을 아난타(阿難陀)에게 전했고, 그 후 순차적으로 다음 대로 이어져 제 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렀는데, 달마는 6세기 전반, 중국 북부로 건너와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선을 철학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의 선은 한편에서는 인도의 나가라아수나[那迦閼刺樹那]의 부정론(否定論)과 닮았고, 다른 한 편은 샨가라아지리[商羯羅阿자利]가 계통을 세운 무명관(無明觀)과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선의 가르침은, 중국 6조사의 한 분인 혜능(慧能 ; 673~713) 선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남방선(南方禪)의 창시자입니다. 혜능의 뒤를 이은 마조대사(馬祖大師 ; 788滅)는 선을 중국인의 실생활 속에 넣어 중국화 시켰습니다. 마조의 제자 백장(百丈 ; 719~814)은 처음으로 선원(禪院)을 열고, 그것을 운영하기 위하여 의식(儀式)과 규칙(規則)을 확립시켰습니다.(禪林淸規二卷).

도교의 상대성

마조(馬祖) 시대 이후, 선종(禪宗)의 논의(論義)를 관찰해 보면 거기에는 양자강 풍토의 정신이 움직이고 있으며, 옛 인도의 이상주의와는 대조적인 중국 고유의 현실주의적 사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편파적인 종파의식(宗派意識)에 굳어 있다 해도, 남방선과 노자나 청담가(淸談家) 가르침과의 유사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도덕경』은 정신집중이 중요하며 올바른 조식(調息)이 필요한 점을 논하고 있는데, 이는 선의 명상(瞑想)에 불가결(不可缺)한 요소인 것입니다. 『도덕경』의 제일 좋은 주석서(注釋書)는 선(禪)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선에서도 도교처럼 상대성이란 것을 존중합니다. 어느 선사(禪師)는 선을 「남쪽 하늘에서 북극성을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술(術)」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진리란 반대물(反對物)을 이해함으로서 회득(會得)하기 쉬운 것입니다. 선(禪)도 도교처럼 개인주의를 신봉하며, 우리들 마음의 움직임과 관계되는 것만 실재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스님이 바람에 휘날리는 탑 위의 깃발을 보았습니다. 한 스님이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하자, 또 한 스님은 「아니, 움직이는 것은 깃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6조 혜능(慧能)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이다」라고. (無門關非風非幡).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백장(百丈) 조사가 제자와 삼림 속을 걷고 있을 때, 한 마리의 토끼가 두 사람에게 놀라서 도망을 쳤습니다. 「토끼는 왜 도망을 쳤을까?」하고 백장은 물었습니다. 제자가 「내가 두려워서겠지요.」라고 대답하니, 조사는 「아니야, 너에게 살생의 기운이 있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화에서 생각나는 것은 도교인이었던 장자(莊子)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장자가 친구와 강변을 산보했습니다. 「고기가 물 속에서 참 재미나게 놀고 있구나.」라고 장자가 감탄하니 친구는, 「당신은 고기가 아닌데 어찌하여 고기가 즐겁게 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당신은 내가 아닌데 어찌해서 내가 고기가 즐기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하십니까.」(莊子. 秋水十七).

도교는 유교와 대립합니다. 선 역시 가끔 정통 불교의 교리와 대립됩니다. 언어는 선이 제창하는 초절적(超絶的) 통찰(洞察)에 대하여 사고의 방해가 될 뿐입니다. 불전(佛典) 모두 눈여겨봐도 그저 개인의 사색에 대한 주석(注釋)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선문(禪門)의 도는 사물의 내부에 있는 본성과 직접 교류하는 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밖으로 나타나 있는 것은 진리의 명확한 체득(體得)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선문의 도는 그 추상(抽象)을 좋아하는 정신 때문에 고전적 불교파(佛敎派)의 채색(彩色) 그림을 배격하고, 수묵(水墨)의 소묘화(素描畵)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선문에는 우상 파괴주의자도 있는데, 이는 우상이나 상징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내부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단하화상(丹霞和尙)은 추운 겨울날 불을 피우기 위하여 나무로 된 불상(佛像)을 때려 부쉈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하고 옆 스님이 공포에 떨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선승은 차분히 「나는 이 재 속에서 고마운 사리를 얻고자 합니다.」했습        니다. 스님은 언성을 높이며 「목불(木佛)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습니까?」하고 질타했습니다. 그러자 화상은,「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부처님 입니까? 그렇다면 대단한 일이 아니지요.」하며 불쪽으로 가서 몸을 녹였습니다. (景德傳燈錄 第十四卷).

선은 동양사상의 뿌리

선은 본래의 동양사상에다 한 가지 특징을 첨가했습니다. 그것은 현세도 내세처럼 중요하다는 인식입니다. 사물의 상대 세계에 대소 구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동등한 것이라고 선문의 도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완전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내적인 영광의 반영(反映)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원(禪院)의 조직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한 점이 있습니다. 조사(祖師)를 제외하고 모든 스님은 선원의 잡다한 일 중에서 한 가지를 맡아야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참자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일을 맡기는 반면, 수행을 많이 쌓은 스님일수록 누구나 싫어하는 비천한 일을 맡는 것입니다. 이는 그 자체를 선 수행의 일부로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은 행동도 완전무결하게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까닭에 스님들은 정원의 잡초를 뽑으면서, 혹은 차를 점다(点茶)하면서 아득히 먼 논의(論義)를 계속합니다.
다도의 이상은 일상다반사에서 중요한 것을 찾는 선(禪)의 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도교(道敎)는 이렇게 다도에 미학적(美學的) 이상(理想)의 기반을 제공했으며, 선(禪)은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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