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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중편
2011.09.18 13:54

정리없는 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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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5일을 기다려, 예약된 시간에 서 봉진은 서울대학병원 내과 강성구 박사 진료실을 찾았다. 부인이 동행했음은 물론이다. 박사가 물었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까?”
  “네. 경시종합병원이라구…”
  서 봉진은 어물어물했다.
  “진단이 나왔습니까?”
  “…확실한 결과는 못 들었습니다만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얼핏 하더군요.” 하다가 서 봉진은 어조를 바꿔 빠르게 말했다. “거기서 처음에는 종합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점점 더 아프고 힘들어서 다시 갔더니 정밀 검사를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검사를 받았는데요. 결론은 그 병원이 신뢰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 검사를 해 보려고 여기 온 겁니다.”
  “CT도 찍어봤습니까?”
  “…예, 찌 찍었죠. 찍어야 한다니까.”
  서 봉진은 우물쭈물 대답했지만 의사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거기 기록을 가져오시는 게 좋은데… 검사를 새로 하려면 두세 달 실히 걸립니다.”
  “두세 달이나 걸립니까?”
  서 봉진은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석 달 이상 걸릴 지도 모르죠. 환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환자가 소중하니까요.”
  “만약 암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서 봉진은 그렇게 묻고 말았다. 답답함 밑에선 초조함과 불안감이 들끓고 있었다. 의사는 그 물음에서 눈치를 채고 말았다.
  “암 진단을 받았군요.”
  “아닙니다. 확진은 없었습니다.”
  서 봉진은 펄쩍 뛰었다. 그럼에도 강 박사는 말했다.
  “췌장암 진단은 어떤 의사도 가볍게 내리지 않습니다. 신중히 다뤄야할 장기이기 때문이죠. 확진을 받았으면 최대한 빨리 조치하는 게 현명합니다. 차일피일 하다 다른 곳에 전이라도 된다면 회생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겁니다.”
  “전이는 어떻게 되죠?”
  “혈관을 따라서도 되고 임파선을 따라서도 됩니다. 또 세포증식으로 주위를 잠식하기도 하고요.” 하고 설명하던 의사는 정신을 차린 듯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자, 정리를 하시죠. 검사를 하시려면 초음파를 먼저 하시고 다음 CT를 찍으세요. 지금 신청하면 모래 초음파 하게 되고 CT는 보름 후에 찍을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제발… 제 형편이 그렇게 기다릴 수가 없는데요.”
  “왜요? … 왜 안 됩니까?”
  서 봉진은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암 확진을 받으셨죠. 그렇죠?”
  서 봉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의사는 말했다.
  “의사를 믿으셔야 합니다. 설혹 마음에 안 들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 있어도 믿고 인정하셔야 됩니다. 믿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
  “결정을 하세요. 정히 새로 검사를 하시겠다면 하시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죠?”
  “두 가지 검사 결과를 봐야 다음 예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췌장 쪽이라면 담즙 검사도 필요하고, 암이 의심되면 조직검사를 해야 합니다.”
  과정은 경시종합병원과 똑같았다. 경시종합병원에서 그런 차례로 다 받은 검사였다. 그렇게 해서 암 확진을 받은 것 아닌가. 의사는 설명하기에 지쳐가는 듯 했다. 그러나 서 봉진이 딱해 보였든지 성의를 다했다.
  “췌장은 병변을 검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장기입니다. 췌장암이라면 예후가 가장 안 좋은 암의 하나입니다. 완치 가능성도 적을 뿐더러 환자가 느끼는 고통도 상당합니다. 췌장이란 지방이나 단백을 분해하는 효소가 나오는 곳인 데요. 음식을 먹으면 이 효소들이 나오므로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겁니다. 암이든 염증이든 췌장의 제1치료 원칙은 금식입니다. 적게는 몇 주에서 많게는 몇 달까지 금식들을 합니다. 음식을 먹으면 이 효소들이 나와 췌장을 녹이기 때문입니다. 자각 증상이 나타났다면 지체해선 안 되는 병이란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드릴 말씀이 없군요. 확진이 나왔다면 담즙검사, 조직 검사까지 다 마쳤을 겁니다.”
  “췌장이 그렇게 어려운 장기입니까?”
  서 봉진은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는 표정으로 의사를 보았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 결정을 하세요. 여기서 몇 달을 더 허비하실 겁니까? 수술까지 마치려면 아마 1년은 잡아야 할 겁니다.”
  의사는 직접 말은 안 해도 처음의 병원으로 어서 돌아가라는 투였다. 서울대학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제스처일까? 개인병원 같으면 얼른 받아들일까?…
  “……”
  서 봉진은 더 말하지 못하고 일어나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출입문을 열고 대기실로 나왔다. 의사가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 듯 그냥 나왔다. 눈시울이 붉게 젖은 모습으로 나온 남편을 보고 부인이 얼른 다가온다.
  “왜요? 어떻게 됐어요?”
  “새로 검사를 받으려면 또 몇 달 걸린대…”
  “어떻게 해요, 아는 사람도 없고…”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아, 몸은 점점 더 아프고.”
  서 봉진은 아내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토, 일요일을 보낸 후 월요일 오후 경시종합병원 홍보과장실. 서 봉진 부부가 노크했다. 다시 안 올 것처럼 병원을 뒤로 한 지 9일만이었다. 류 시형 과장은 반갑게 친구 부부를 맞았다.  
  “잘 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니?”
  “……”
  서 봉진은 말을 못하고 부인이 대신 말한다.
  “서울대학병원에 갔었어요. 새로 검사를 받으려면 한정 없이 기다려야할 거 같아요.”
  “병원의 생리가 그래요.”
  류 시형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의사 선생님께 잘 말해 주세요. 정말 암인가 다시 한 번 확실히 살펴봐 달라고도 하시구요…” 부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알아봤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암이 확실하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의사들 말로는 수술 외엔 길이 없습니다.”
  “수술하면 괜찮을까요?”
  “글쎄요. 저도 모르죠. 의사들도 사전에 할 말은 없을 겁니다. 열어봐야 알게 되는 거니까요.”
  “열어보다니요?”
  “개복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서 봉진은 계속 말이 없다.
  “완치 여부도요?”
  “물론이죠.”
   서 봉진은 등이 괴로운 듯 안절부절못하며 인상을 자꾸 찡그린다. 묻는 것은 계속 부인이다.
  “수술을 한다면, 여기선 기다리지 않고 수술할 수 있을까요?”
  “그거야 제가 어떻게든… 최대한 힘을 써 볼게요.”  
  부인은 남편을 본다. 그냥 한참을 보기만 하다가 이윽고 말한다.
  “어떻게 해요?”
  서 봉진은 힘이 없다. 어떻게 할 바를 모른다. 그렇다고 류 시형이 강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부인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결정을 유도한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수술하기로 해요. 여보…”
  “그래야지 뭐…”
  마지못해 동의하는 서 봉진…
  “시형 씨가 좀 도와주세요.”
  부인의 말에 류 시형은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3내과 과장에게 전화를 한다. 한참 전화를 하고 난 뒤 원무과에 전화를 한다. 서너 곳 통화를 하고난 류 시형은 소파로 돌아와 서 봉진에게 묻는다.  
  “바로 입원할 수 있겠니?”
  “……”
  “여기도 사실 만원이야. 입원실 기다리는 것도 오래 걸려.”
  보다 못해 부인이 나선다.
  “그렇게 해주세요. 지금 뭘 망설이겠어요. 할 수 있어요.”
  류 시형은 전화로 통화한 내용을 설명한다.
  “바로 입원을 하세요. 3내과 과장도 신경 써 주겠다고 했고 암센터장이 직접 집도를 하겠다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외과 전문의예요. 최대한 빨리 수술날짜가 잡힐 거예요.”
  “고맙습니다.”
  부인은 머리를 숙여 류 시형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서 봉진도 맺힌 마음을 풀고 인사했다.
  “고맙다.”
  삶의 최대의 적인 암 선고를 받는 과정에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하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다 내 팔자겠지… 서 봉진은 체념했다.
  “그럼 내려가자.”
  류 시형은 업무를 뒤로 미루고 서 봉진 부부를 데리고 원무과로 가 바로 입원실을 잡아주는 등 수속을 도와주었다. 홍보과장 소개라는 걸 분명히 하여 나중에 할인 혜택을 받도록 조치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면 사과해야 할까요?”    
  6층 608호, 입원실로 가면서 부인이 물었다. 류 시형은 고개를 저었다.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의사들은 그런 일 자주 당하니까 다 이해해요. 그러니까… 그저 약간 쑥스러워 하는 표정이면 좋겠죠.”
  날이 갈수록 의사를 불신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도 그 불신에 단련이 되고 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시 온 걸로 족한 것이다. 류 시형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부인도 미소를 보였다. 얼마만의 미소인지 모를 미소를.
  “기분이 착잡하구나.”
  608호로 들어서며 서 봉진이 말했다.  
  “마음을 굳게 가져. 암도 요즘은 수술만 깨끗이 하면 괜찮아.”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췌장은 수술하기 힘든 곳이래. 수술을 잘못하면 수술하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긴다더라.”
  “나도 들었어. 그런데 요즘은 장비도 좋고 기술도 좋아, 믿음만 보여주면 돼. 의사에게 믿음을 보여주면 의사는 열정을 갖게 되는 거야. 삼위일체가 되는 거지.”
  “기분에는 이대로 죽을 것만 같구나.”
  “방정맞은 소리! 그딴 소리 다시는 하자 마!”
  류 시형은 얼른 핀잔을 줬다. 그러나 서 봉진의 기분은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설혹 그렇게 되더라도 정리할 시간은 주겠지. 그래도 42년 살았으니 정리할 건 하고 가야지.”
  “정리는 그렇게 한꺼번에 하는 게 아냐. 평소에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하는 거지.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자.”
  “아냐, 만약을 생각해서 너에게 하나만 부탁하자. 수술하고 어쩌고 하다가 훌쩍 가버리는 사람이 많잖아. 그나마 남은 시간 의사들에게 다 빼앗기고 허망하게 가는 거지. 난 그렇게 가기 싫다… 내 인생을 어느 정도는 내가 정리하고 가고 싶어. 도와준다고 약속해 줄래?”
  “글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알았어?”
  류 시형은 잔뜩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비장하게 얘기하는 거야. 그러나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약속해 줘.”
  서 봉진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자 류 시형은 더 말이 안 나왔다.
  “알았어. 최대한 그 약속 지키도록 할게.”
  서 봉진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또 부인의 눈에 맺혔던 이슬이 툭툭 떨어진다. 류 시형도 울컥 눈물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사흘 후에 수술을 했다. 암센터장이 직접 집도했다. 췌장은 어려운 곳이라서 6명이나 투입됐다. 암 센터장 외에 전공의 세 명, 간호사 두 명이 붙어 무려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류 시형은 누구보다 수술 결과가 궁금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서 봉진 부인과 함께 수술실 밖을 지켰다. 오후에도 급한 업무만 대충 처리하고 이제나저제나 결과를 기다렸다. 10시 반에 시작한 수술이 오후 5시 반에 끝났다. 끝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류 시형은 암센터로 달려갔다.  
  “센터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홍보과장님. 웬일로… 아아, 오늘 수술환자가 친구시라고 했죠?”
  “맞습니다. 아주 절친한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시간이 좀 걸렸어요.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췌장을 다 떼어냈죠. …몇 달만 일찍 손을 댔어도 한결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 좀 있긴 하네요.”
  “결과가 안 좋습니까?”
  류 시형의 얼굴이 그 말에 어두워졌다. 의사는 일축했다.
  “아니에요. 지금 좋다 나쁘다 할 건 없죠. 수술은 잘 됐어요. 괜찮을 겁니다. 그러나 췌장이니까, 며칠 두고 예후를 봐야지요.”
  “그렇군요. 얼마나 지켜봐야 할까요?”
  “한 보름은 잡아야죠? 보름 정도 지켜봐서 괜찮으면 퇴원해서 보름 정도 쉰 다음, 그 다음 치료를 시작해야죠.”
  “알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류 시형은 인사하고 암센터를 나왔다.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같은 병원 직원이지만 의료진과 행정직은 군대의 장교와 사병처럼 구별이 엄격했다. 병원은 의사들의 왕국이어서 ‘왕족의 용어(?)’로 따로 소통하는 벽이 있기에 행정직이 소통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같은 말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반복해야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해당 환자나 보호자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 외에는 말하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류 시형은 회복실로 가서 부인을 만났다. 통통하고 복스럽던 부인의 얼굴이 한 달 새 병든 사람처럼 수척해져 있었다. 부인은 친정어머니가 오셨다며 인사를 시킨다. 옛날에 한 번 뵌 것도 같은 분이다.
  “아이구, 이렇게 애를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환갑을 넘은 어머니는 류 시형의 손을 잡고 고마워한다. 부인은 담담하다.  
  “그렇게 매일 자리 비우셔도 돼요?”
  “병원 홍보과장이란 게 할 일이 있나요? 병원은 광고가 금지된 기관이에요.”
  “어머, 참 그렇죠. 그럼 하시는 일이 뭐에요?”
  “안 좋은 소문 안 나게 막는 게 홍보과장 일이죠.”
  류 시형은 힘들어하는 서 봉진 부인을 웃게 하려고 농담을 했다. 부인이 말했다.
  “재미있네요.”
  그 뜻이 통했는지 부인은 웃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의사선생님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더군요. 그러나 깨끗이 잘 됐대요.”
  “저도 들었습니다.”
  “조금 일찍 수술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하시데요. 지체하지 말고 빨리할 걸…”
  “제게도 그런 소릴 하더군요.”
  “그 소릴 들으니까 이 병원 처음 왔을 때 바로 검사하고 수술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한두 달이라도 먼저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요.”
  “그러나 함부로 할 수는 또 없는 일이지요.”
  “할 수 없죠 뭐.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죠. 아무튼 예상보다 범위가 넓어 췌장은 물론이고 간 쪽 혈관 일부도 절제했대요. 쓸개도 잘라내고 십이지장도… 다른 곳에 전이 여부는 며칠 두고 봐야 한 대요.”
  남편이 큰 수술을 받다보니 의학 상식이 늘었는가? 부인은 의학 용어들을 술술 구사했다.  
  “수술할 때 떼어낸 것 가지고 조직병리검사가 새로 나와야하니까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샅샅이 훑었다니까 괜찮을 거예요. …어떻게 의식은 좀 있습니까?”
  “아직요…”
  하면서 둘은 죽은 듯 누워있는 서 봉진의 모습을 본다. 코에 고무호스를 끼고 있고, 췌장을 떼어낸 관계로 췌장 기능을 대신할 비닐 팩을 허리춤에 달고 있다. 인슐린 주입이 가능한 소형의 휴대장치이다. 물론 췌장기능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췌장 β-세포의 기능까지 인공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긴 했는데 부피가 커서 휴대가 불가능한 흠을 갖고 있다. 앞으로 서 봉진은 저 작은 주머니를 늘 차고 다녀야 한다. 그렇게 활달하던 녀석이 마흔 둘에 이렇게 꺾이다니…
  밤 9시가 넘었다. 류 시형은 시계를 보고 일어났다. 어차피 함께 있어야 더 도움 될 일은 없었다. 모녀가 있는 게 더 편할 것도 같았다.
  “전 이만 집에 가겠습니다. 불편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류 시형은 그렇게, 일상적인 휴대전화 번호에다 집 전화번호까지 비상전화인양 전해주고 608호를 물러 나왔다. 어머니는 계속 고맙다 감사하다 였고, 부인은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한 류 시형은 아침 회의를 끝내자마자 608호부터 들렸다. 친정어머니는 안 계시고 부인만 지키고 있었다. 의료진의 아침 왕진이 지난 후였다.
  “안녕하세요, 친구 깨어났어요?”
  류 시형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의 얼굴도 어제보단 많이 밝아졌다.
  “네. 깨어났어요.”하고 답한 부인은 서 봉진에게 말한다. “여보. 류 과장님 오셨어요.”
  류 시형은 침대에 다가가 인사했다.
  “봉진아, 좀 괜찮니?”
  그제야 서 봉진은 류 시형을 알아본다.
  “시형이구나. 그래 고맙다.”
  “기분이 어때. 등줄기 느낌은?”
  “편해. 모처럼 푹 잤어.”
  서 봉진은 정말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고 좋아한다. 류 시형은 위로했다.  
  “수술은 잘 됐대. 더 늦었으면 힘들었을 거래. 이젠 괜찮아질 거야.”
  “고맙다. 여러 가지로…”
  부인이 말한다.
  “당뇨 수치가 높아지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당뇨요? 의사는 뭐라고 해요?”
  “췌장을 절제했으니까, 일단 인슐린 분비가 줄어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래요. 좀 지나면 정상이 될 거라고 하긴 하는데… 그러면서 혈액검사를 해본다며 피를 뽑아갔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류 시형도 이 방면의 상식은 없지만 안심하게 해 줄 필요는 있었다.
  “과일 좀 깎아 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하고 부인은 음료수를 내민다. 어느 새 문병을 다녀간 사람이 많은지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
  “당뇨도 정상이 되고 두 주 정도 지나면 퇴원할 수 있을 거래네요. 모든 게 잘 된 것 같아요.”
  “천만다행이에요. 부인의 음덕이 큽니다.”
  류 시형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의사는 우선 환자나 보호자가 안심하도록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류 시형도 안다. 수술할 때 떼어낸 조직 병리검사도 아직 안 나온 상태 아닌가…
    
  
  류 시형은 매일 한 번 이상 서 봉진의 입원실을 드나들었다. 이삼 일 회복세를 보이는 것 같던 서 봉진은 사 일째 되는 날 다시 아파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고통을 호소했다. 이제는 머리까지 아파 아침 회진 때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의사가 뭐래?”
  “전에도 그랬냐고 물어서 전에는 안 그랬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너무 신경 써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든데… 스트레스일 거라구 하면서.”
  “그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마 원인을 찾아볼 거야. 걱정하지 마라. 내일이면 무슨 말이 있겠지.”
  “머리가 너무 아프구나.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부인이 거들었다. 얼굴이 어둡다.
  “어제 또 잠을 못 잤어요. 옛날 등줄기 어쩌구 할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해요.”
  “귀찮아하더라도 의사에게 자꾸 많이 물어보세요. 저도 알아보겠지만 제가 알아보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그리고 어찌됐든 마음은 편하게 가지세요. 수술 후유증이란 것도 있는 거니까.”
  류 시형은 그렇게 말하고 입원실을 나왔다.
  류 시형은 서 봉진의 상태를 자세히 (사실대로) 알아볼 방법이 없나 찾아보았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그래도 건진센터 윤 과장이었다. 윤 과장은 전공의 사회에선 신참이라 나이도 어린 편이고 경험도 부족한 편이었다. 또 이 병원에 부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깊이 있는 소통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가정의학계의 국가적 거목을 스승으로 두고 있는데다 공부는 잘 한 듯 보였다. 게다가 윤 과장은 윤 과장대로 병원에 온 지 얼마 안 된 만큼 병원 내 기반이 약하기에 병원 사람들을 사귀고 싶어 하는데 그 대상의 하나가 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홍보과장이었다. 류 시형은 윤 과장을 만나 서 봉진의 상황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윤 과장은 선 듯 시간을 내어 췌장암의 어려움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췌장은 자각증상이 일 때가 중증 이상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일 때가 많다는 말씀이죠. 그 전에는 아무 느낌이 없어요. 원인도 모르죠. 일반 건강검진에서는 췌장의 상태가 잡히지 않습니다. 암 확진이 나오면 5년 생존율이 5% 이하일 정도로 예후가 매우 나쁜 암에 속합니다. 이유는 물론, 암이 한참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죠. 발견 당시 수술 절제가 가능한 경우가 20% 이내이고, 육안으로 보기에 완전히 절제되었다 하더라도 미세 전이에 의해 생존율이 적은 겁니다. 항암제 및 방사선 치료에 대한 반응도 낮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뭡니까. 발견됐다 하면 사형 선고네요?”
  “사실이에요. 생존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증상이 없거나 비 특이적일 때 ― 말하자면 조기 발견하는 길밖에 없어요. 조기 발견으로 수술하는 것. 그러나 췌장은 후복막에 다른 장기들에 둘러 싸여져 있고, 초기에 증상이 없어 유난히 조기진단이 어렵습니다. 종합건진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건 그 이유죠. 췌장암의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검사들은 복부 초음파,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EUS), 양성자방출 단층촬영(PET), 혈청종양 표지자(CA19-9) 등인데, 증상도 없는데 비싼 돈 들여 이런 검사를 하겠다고 나설 사람 또한 없는 거죠.”
  “감지 가능한 증상이 그렇게 없어요?”
  “제일 알기 쉬운 게 황달 증세인데… 황달 증세를 보이는 건 더 중증이에요.”
  “그 참… 어려운 병이네요.”
  류 시형은 비로소 췌장에 대해 자세히 알 게 되었다. 윤 과장은 자신이 건강검진으로 최초의 연루자임을 의식하는 듯,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도 같았다.  
  “통증이 있거나 황달이 나타나면 담석증 여부를 감별하기 위해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됩니다. 췌장 종양이나 담관 확장, 간 전이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조영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지만, 그러나 검사자에 따라 정확도가 다르고, 비만 정도, 장내 공기 등에 의한 검사 상의 제약도 있어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네요. 쉽게 알려주시죠. 수술이 잘못되었을 때 나타나는 특별한 증상이 있을까요?”
  “일반적인 것은 수술 후 인슐린 분비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니까 당뇨 수치가 높아지는 걸로 나타날 수 있죠. 당뇨는 또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지요.”
  “잘못되면 당뇨 수치가 높아진다고요?”
  류 시형은 귀를 의심하며 윤 과장 말을 재확인했다. 서 봉진의 당뇨 수치가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잘못 됐을 때 그렇다는 말이에요.”
  윤 과장은 확실히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서 봉진 환자가 당뇨가 자꾸 더 높아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혈액검사를 한다고 피를 뽑아갔다는데… 수술이 잘못된 걸까요?”
  류 시형이 말하자 윤 과장은 아차, 싶었던지 말을 돌려 얼버무린다.
  “일시적인 현상은 문제가 안 되죠. 계속 체크해 봐야 합니다.”
  “윤 과장님.”
  류 시형은 목소리를 바꿔 윤 과장을 불렀다.
  “서 봉진 환자에 대해서 예후를 정확히, 서실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류 시형은 간절했고, 그것이 알고 싶은 핵심이었다. 암센터장이 뭔가 얘기 안 하는 게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이야기 했다.
  “그래요?” 윤 과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암센터 장은 대학 선배니까, 내가 한 번 알아봐 드리지요.”
  “정말 부탁입니다.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세요.”
  류 시형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약속을 하자고 했다. 윤 과장은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엮어주었다.
  

  사흘이 지났다. 암센터 황 박사는 전공의로부터 서 봉진 환자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센터장님. 서 봉진 환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서 봉진이가 누구지?”
“열흘 전에 췌장 절제수술 한 환자 말입니다.”
“오, 어떻게 됐어?”
“뇌로 가는 임파선에 전이가 있는 걸로 나왔습니다. 자꾸 머리가 아프다는 게 뇌 쪽으로 전이돼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 혈액검사 결과는?”
“황달이 오는 것 같습니다. 빌리루빈 수치가 40입니다. 프로트롬빈타임도 정상을 벗어나고 있고…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할 조짐도 보이는 데요.”
“가려움증 같은 증세가 있다던가?”
“아직은 요.”
“그럼 어떻게 한다? 머리는 왜 그렇게 아파하지?”
“CT로 뇌를 찍어 볼까요?
“옳거니. 그래. 바로 찍어 보도록 하지!”
전공의는 바로 달려가 서 봉진 보호자에게 말했다.
“환자가 자꾸 머리가 아프다니까, 뇌 CT를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사자나 보호자나 이젠 묻고 말할 게 없었다. 그저 병원이 하자는 대로 하고 돈 내고 따를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며칠 기다려야 하는 CT를 그날 오후에 바로 찍었다. CT 필름을 본 황 박사는 흠칫 놀라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뭐야 이게…”  
방사선과 과장이 옆에서 같이 보고 있었다.
“황당하군요. 뇌로 전이가 되었네요.”
“아냐.”황 박사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로잡았다. “이건 전이된 게 아니야. 절대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니야. 애초에 더블 프라이머리 캔서(두 곳에서 동시에 암이 발생하는 것)였어. 틀림없어.”
“그럴까요?”
“틀림없다니까. 이 환자의 경우 췌장보다 더 급한 곳이 뇌였어…”
“어쨌든…” 방사선과 과장이 말했다. “이 상태라면 이 환자 며칠 못 견딥니다. 간 기능도  안 좋다면서요.”
“할 수 없지… 제 운명이지 뭐… 머리 쪽에 이런 게 있을 줄 상상이나 했나. 빌어먹을…”
“흔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흔한 일? 병원에서 생기는 일에 흔한 게 어디 있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 같이 새로운 일이지. 허허 참. 이제 이 환자를 어쩌지? 의리상 홍보과장에게 이야기해 줘야할까?”
황 박사는 약간 불안한 심기를 보였다. 홍보과장 친구라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홍보과장이 누군가. 원장이 특별히 아끼는 직원 아닌가? 황 박사는 켕기는 게 있어 불안해하는 게 역력했지만 아무도 그걸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한편에서 황 박사는 서 봉진 환자를 확실히 포기하는 자세를 보였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알려야겠군.”
황 박사는 침통한 얼굴을 했다.
“내일 쯤 이야기 해 주도록 하지. 할 수 없지 뭐…”
집무실로 돌아오니 윤 과장이 앉아있었다.
“오 윤 과장. 어떻게, 이 병원에 적응이 잘 돼 가나?”
“네, 선배님 덕분에…”
“웬일이야. 내 방엘 다 오고.”
“서 봉진이란 환자 있죠? 췌장수술 집도하신…”
“아, 그 환자…. 그 환자가 좀 안 됐네.”
황 박사는 앞뒤 생각 없이 방금 포기한 사람답게 안 됐다는 표정을 먼저 지었다.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됐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윤 과장은 눈을 크게 떴다. 좋은 얘기를 들으러 왔는데 묻기도 전에 포기한 듯한 말을 하다니…
“그 환자 말이야, 더블 프라이머리 캔서였어. 췌장보다 뇌가 더 급했었어… 그걸 간과한 거야. 안타깝지만… 이젠 늦었어.”
“더블 프라이머리 캔서요?”
윤 과장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뇌 쪽에 캔서(암)가 있었다면 그건 종합 건강진단에서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선배 앞에서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포기입니까?”
“응. 절망이야. 시간도 없어. 앞으로 잘해야 며칠? 이삼일 내로 황달이 올지도 몰라. 이미 진행되고 있어. 곧 끝이 나겠지… 내일 쯤 보호자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네.”
“그렇습니까?…”
윤 과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나오려고 하니 황 박사가 묻는다.
“무슨 일로 온 건데?”
“그냥 문안차 들린 겁니다.”
윤 과장은 그렇게 얼버무리고 황 박사 방을 나왔다. 윤 과장은 그 길로 방사선과에 들렸다. 방사선과 과장에게 부탁해 서 봉진의 뇌 사진을 보았다. 온통 암 세포에 둘러싸여 있어 엉망이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었어.’하고 윤 과장은 얼른 건진 센터로 돌아와 달포 전에 찍은 필름을 꺼내 보았다. 이건 아니었다. 세포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잘못 되었거나 수술 과정의 미스로 합병증이 생기고 전이가 된 게 분명했다. 윤 과장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걸 어떻게 한다.…


퇴근 무렵 홍보과장 류 시형은 건진 센터 윤 과장에게 시간 있으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윤 과장은 류 과장이 어떤 정보를 가지고 전화하는 것 같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둘은 돼지갈비 집에서 마주 앉았다. 술도 시켜 나눠마셨다.  
“어떻게… 서 봉진 환자에 대해 뭣 좀 들어보신 게 있습니까.”
류 시형은 궁금한 것을 물었다.
“황 박사를 만나긴 했는데… 서로 바쁘다보니까 별 얘긴 나누지 못했네요.”
윤 과장은 일단 그렇게 피했다.
“당뇨 수치가 엄청 높아진 게 걱정스럽네요.”
“황 박사는 경험도 많고 노련한 분이라 잘 했을 거예요.”
“췌장은 무섭다, 힘들다,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지 몰랐어요.”
“서 봉진 환자하고는 친했어요?”
“친했죠.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어요. 대학은 서로 달랐지만 그래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주 만났죠. 그 아내도 처녀 때 같이 어울리던 여자에요.”
“그렇군요.”
윤 과장은 점점 난처함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서 봉진이 앞으로 며칠을 더 살지 모르는 상황인데…
“친구 분이 잘못되면 어쩌죠? 지금 상황에선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거든요.”
윤 과장은 그렇게 우회적으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부탁 하나만 하십시다.” 류 시형은 아끼고 아꼈던 말을 꺼냈다. “만약에 말입니다만… 정 회생이 어려울 것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알려주라고 하세요. 직접 말하기 어려우면 저를 활용하세요. 친구가 나에게 처음부터 신신 당부를 했어요. 만약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다만 이삼 일이라도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마지막 시간까지를 의사들에게 다 빼앗기고 가고 싶지 않다고.”
류 시형은 서 봉진의 애원 같은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잘못 될 것을 예감해서 한 말일까? 그는 말했다. 그래도 42년이나 살았는데 정리할 건 하고 가야지… 수술하고 어쩌고 하다 중환자실에 누워, 남은 시간 의사에게 다 뺏기고 허망하게 가는 사람 많잖아. 난 그렇게 가고 싶지는 않아…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이제 포기다. 얼마 못 산다 싶으면 얼른 자기에게 사실대로 알려줘서 마흔두 살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정리도 못하고 갑자기 마감하는 게 싫댔어요. 여기서 암이라니까 못 미덥다고 서울대학병원에 갔었다는 데, 거기서 췌장은 힘들다는 얘기를 심각하게 해줬던 모양이에요.”
“친구 분 상태는… 아직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윤 과장은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담당 의사가 아직 얘기하지 않은 사실을 제 삼자가 얘기할 수가 없었다.
“수술이 잘못됐다면 의료사고가 되는 건가요?”
류 시형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수술 후에 당뇨가 높아지고 또 머리가 아프고 한 것이 의심의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서 봉진의 상태가 의료사고일 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류 시형의 말에 윤 과장은 움칠, 했다. 의사 사회에서 엄격히 보면 이 경우는 의료사고일 수도 있기에 그랬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을 조심해서 했다.  
“췌장은 의학계에서 공인된, 매우 어려운 장기입니다. 조직검사를 할 때부터 힘이 들어서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곤 하지요.… 그러니까 합병증 증세 정도로 의료사고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의료사고는 의사의 과실을 전제로 하는 말인데, 췌장의 경우는 그 특성상 의료사고라는 용어를 쓴 사례가 아직 없어요. 어떤 의사라도 완벽은 없으니까 가끔 분쟁은 생기죠. 분쟁으로 해서 병원과 합의를 보는 경우는 몇 번 봤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일단은 의사를 변호하는 쪽으로 윤 과장은 말했다. 가벼운 질문에 긴장하고, 진지하게 답변하는 윤 과장을, 류 시형은 의아해 하며 뚫어지게 보았다. 그래서 확인했다.
“내가 말을 잘못 했나요? 별 뜻 없이 얘기한 건데…”
그 소리에 윤 과장도 딴청을 부렸다.
“나도 일반적인 말을 한 건데요. 진지하게 들렸어요? 하하하.”
“그랬어요? 그럼 내가 너무 진지했나? 하하하”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서로의 진실을 의심하면서 주고받는 교묘한 웃음이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윤 과장은 도저히 그냥은 갈 수 없겠는지, 한 마디 흘렸다.
“홍보과장님. 친구 분이 정리할 시간 운운 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리네요. 아직 모르긴 하지만요.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정히 그런 말을 했고, 그 말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연습 삼아서… 그렇죠, 연습 삼아서라고 생각하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정리를 해보라고 하세요.”
윤 과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류 시형에게 그 말이 예사롭게 들릴 리가 없었다.
“아니 윤 과장님… 뭔가를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아시면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정말 부탁입니다.”
류 시형이 다시 진지하게 다가서자 윤 과장은 팔을 펴 손바닥으로 막으며 두 발이나 물러났다.
“아뇨. 전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말 그대로 연습 삼아서라고 했잖아요…”
류 시형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윤 과장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 더 역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오리발을 내민다면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 보십시다.”
류 시형이 돌아서자 윤 과장도 돌아섰다. 일단 돌아선 그는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멀어졌다. 류 시형은 윤 과장의 모습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한참 뒤까지 굳어버린 사람이 되어 서 있었다.


집에 갈까, 하던 류 시형은 병원으로 다시 들어왔다. 소주 한 병을 둘이 마신 정도였지만 바로 차를 몰고 가는 것엔 부담이 느껴졌다. 오렌지 주스를 사가지고 608호실에 들려 한 시간쯤 이야기하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다시 들어온 것이다. 외래환자가 없는 밤의 병원은 음산하고 조용했다. 서 봉진의 병실에는 부인만이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류 시형이 들어가니 부인이 모처럼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반긴다. 적적했던 모양이다. 여자의 웃음은 언제 어디서나 남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같다.
“어쩐 일이세요. 퇴근 안 하시고.”
“퇴근은 했죠. 요 앞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말이 꼬리를 물까봐 건진 센터 윤 과장과 저녁 먹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한 잔 하셨군요. 좋은 일이 있었나요?”
“좋은 일은요 뭘…”
류 시형은 건성 대답하며 서 봉진을 보았다. 서 봉진은 앉아서 TV를 보다가 류 시형을 맞았다.
“컨디션이 괜찮은 모양이네?”
“응. 좀 괜찮아.”
서 봉진은 TV를 끄고 류 시형에게 앉기를 권했다.
“머리 아픈 것도 괜찮아?”
“응. 한결… 참, 낮에 근삼이하고 석현이 다녀갔다.”
서 봉진은 낮에 동창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고 했다.
“이 근삼이? 그 자식 왔으면 나에게 전화를 좀 하라고 하지…”
“너 만나면 시간 걸린다고 그냥 갔어.”
“짜아식. 모처럼 여기까지 와 가지고…”
류 시형은 아쉬워했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들이었던 것이다.  
“야, 우리도 이젠 동창회 모임 가질 때가 됐잖아. 40이 넘었고, 이젠 자리 잡은 놈들도 꽤 있을 텐데.”
“아직 나서는 놈이 없잖아. 네가 나서보렴.”
“난 아직 바쁘지…”
그랬다. 평균 마흔두 살. 중간 관리직이나마 확실히 차지한 친구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각계각처에서 삶아가기 바쁜 나이들인 것이다.
서 봉진은 픽 웃으며 거래처 사람도 다녀갔다고 했다. 여기까지 일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내에서의 촬영이야 조수가 있어 작업이 되지만 야외 촬영은 서 봉진이 인정받는 전문가여서 직접 가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사업 때문에라도 서 봉진이 하루 빨리 쾌유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뭘 위해서든 빨리 나아야지. 나아서 일을 해야지.”  
부인이 케이크와 음료수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과일을 꺼내 깎았다.
“오늘 오후처럼 정신도 몸도 말짱하면 살겠어요. 이게 회복이 되는 신호면 얼마나 좋을까요.… 밖에 나가 2시간이나 산책도 했어요.”
“걸어서요?”
“아뇨. 휠체어를 이용했지만요.”
부인은 서 봉진의 컨디션이 오후에 반짝 좋아진 걸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류 시형이 보기에도 서 봉진의 안색이 한결 좋아 보였다.
“의사는 뭐래요? 뭐라고 말 안하던가요?”
“내일 종합적인 결과를 얘기해주겠다고 하던데요.”
“그랬어요?…”
류 시형은 내일이면 어느 정도 윤곽은 나온다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608호실에 들어설 때만해도 도망치듯 가버린 윤 과장이 눈에 어렸는데,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다.
“참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어요. 이 이가 이렇게 순식간에 이 모양이 될 줄 누가 예측이나 했겠어요? 한두 달 전만해도 펄펄 날던 사람이…”
부인이 말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나아진 것이다.
“병원에 있다 보면 더 그래요.” 류 시형이 말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 막 생겨요. 어떤 때는 멀쩡한 사람이 와서 죽어나가고… 물론 그 반대도 많죠. 모두가 죽을 것 같다는 사람은 와서 살아서 나가고… 여기 있으니까 인명재천이란 말이 정말 실감이 나요.”
“의료사고도 많다면서요?”
“의료사고보다 의료분쟁이 많아요. 이제는 옛날처럼 의사를 절대자로 보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무섭게 따지니까요. 꼬투리가 발견되면 무조건 실력 행사죠. 가족이 집단으로 현관에 드러눕고 난리에요.”
“그렇게 의료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요?”
부인의 물음에 류 시형은 후후후 웃었다.
“어쩌는지 사실대로 말해줄까요? 의료사고다, 하면 피해가족은 무조건 시위로 나와요. 분쟁으로 처리하면 99% 의사나 병원이 이기거든요. 왜냐하면 사고 여부를 판정하는 것도 의사들이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거죠. 그러니까 승복을 안 해요. 현관이나 원무과 앞에 모여서 무조건 시위부터 해요. 해당 의사는 피신을 시키죠. 막말로 사고가 났다 하면 휴가 가는 거예요. 우리 같은 행정직이 나서서 시위를 막고 설득하고 협상하고 그래요. 병원에 있으면서 하는 일 중에 제일 싫은 일이에요.”
“명백하게 의사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거 아녜요?”
“그런 일이 있죠. 신문에도 났지만 가위를 배속에 넣고 봉합하는 일도 있잖아요. 그러나 그런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모를까, 대개는 환자나 보호자 쪽에서 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요. 전문지식이 있어야하거든요. 만약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의사 쪽이 먼저 잘못한 게 없다, 라는 걸 증명하도록 제도를 만들면, 문제는 달라지겠죠. 그러나 현재는 의사가 잘못했다는 걸 환자나 보호자가 입증을 해야 하니까 어려운 거죠.”  
“……”
“의료사고가 났을 때 내가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논리는 하나에요. 세상에 어떤 의사가 있어 환자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것 아니냐. 인명재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거냐.… 하고 호소력 있게 얘기하면 차츰 수긍을 해요.”
“병원 생활이 보기보단 마음고생도 있으신 거네요.”
“무슨 일을 하던 마음고생은 있겠죠.”
그렇게 부인과 얘기하고 있는데 서 봉진이 ‘이것 좀…’ 하고 부탁한다, 혈당 조절을 위해 차고 있는 비닐 팩이 허리에 감긴 것이다. 부인이 달려가 엉켜있는 호스를 정리해 주었다. 그걸 보고 있던 류 시형이 말한다.
“봉진아. 넌 인마 마누라는 잘 얻었어. 늘 고마워하고 잘 해드려야 해.”
서 봉진은 그 말에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건 나도 인정해”
“지난 일이지만 그때 니 마누랄 더 좋아했던 건 병수였었어. 병수가 나한테 도와달라고까지 했던 거 너 아니?”
“후후후, 어렴풋이 알았지.” 서 봉진은 마누라 문제에서 승리감에 젖으며 빙긋 웃는다. “그런데 참 병수는 요즘 어디 있니?”
“화인그룹에 있어, 개발담당 이사가 됐단다.”
“출세했군…. 그래, 그리고 보니 결혼 전엔 꽤 친했는데 결혼 후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구나. 짜아식 -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데.”
“그때 성 장현인가 하는 영어선생 있었지. 알기 쉬운 영어숙어집 하나 내고 그거 산 놈, 안 산 놈 구별하면서 한 달 동안이나 난리쳐 댄 거.”  
“맞아. 난 그거 하나 살 돈이 없어가지고 쩔쩔맸었지… ”
“평균치면 한 권 사서 세 명이 써 먹었지 뭐… 하하하하”
“그래. 그런 일들이 분명코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20년도 더 지났구나.”
“…… 그런 저런 얘기들, 지금들 만나서 하면 참 재미있을 거야.”
“거 봐. 그런 의미에서도 이젠 동창들이 모임을 가질 때가 됐어. 40대가 되니까 모두들 옛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아. 네가 좀 나서 보렴. 그런 일은 네가 할 일 아니겠니?”
“나는 아직 바빠…”
한창 그렇게 옛날 얘기를 하며 회상에 젖는데 갑자기 서 봉진이 머리가 다시 아프다며 움켜쥐고 침대에 눕는다.
“많이 아파요?”부인이 놀라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는다.
“몰라. 갑자기 빠개질 것처럼 아파오네.”
서 봉진은 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류 시형은 시간을 보았다. 10시 반이었다. 그는 일어났다.
“쉬어야겠구나. 시간도 많이 됐고. 그럼 난 일어날게.”
“그래. 고맙다.”
서 봉진도 부인도 붙잡지 않았다. 일어나서 보는데 잠시 머리가 고통스러웠던 것이 진정 된 듯 머리를 싸쥐었던 서 봉진이 손을 내린다. 류 시형은 부인에게 말했다.
“내일 또 올 게요.”
        
다음날이 되었다. 출근을 하니 여자 직원이 쪼르르 달려와 608호실에서 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608호실에서?”
류 시형은 왜 휴대폰으로 안 하고… 하고 휴대폰을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있었다. 모두 서 봉진이었다. 얼른 전화를 했더니 부인이 받아 다급하게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세요. 이 이가 이상해요. 눈도 잘 안 보인다 하고 정신도 깜박깜박 해요. 무서워요.”
“알았습니다. 곧 갈게요.”
류 시형은 아침 회의가 있는 것도 무시하고 608호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서 봉진을 보는 순간 류 시형은 ‘아 불사!’하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온통 치자 물을 들인 것처럼 노랬다. 밤새 황달이 온 것이었다. 부인은 밤 새 같이 있었던 탓에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이 이 좀 보세요. 이 이가 글쎄…”
부인은 두려움에 떨면서 울지도 못했다.
“봉진아…”
류 시형은 서 봉진을 불렀다.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은 류 시형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난 지금은 아니었다.
“누구세요? 아. 문화부 강 과장님이구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엉뚱한 소리를 하며 못 알아보는 것이었다. 류 시형은 놀라서 서 봉진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댔다.
“야. 서 봉진. 너 왜 이래. 너 나 몰라? 시형이 몰라?”
한참 흔들어 대니 혼미한 가운데 잠깐 잠깐 정신이 돌아오는가?
“가만있자. 너 누구지?”
“시형이야. 류 시형!”
“시형이? 시형이는 경시병원에 있는데. 홍보과장으로…”
“임마. 여기가 경시병원이야!”
흔들고 고함치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부인은 한쪽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류 시형은 그 길로 암 센터로 달려가 황 박사를 만났다. 황 박사는 의국에서 아침 미팅을 마친 시간이었다.
“황 박사님. 서 봉진 환자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황 박사는 류 시형의 표정이나 태도가 몹시 거슬린다는 투였다.
“서 봉진 환자가 제 친구입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황 박사는 잠시 생각하다 참기로 했다는 듯 말했다.
“서 봉진 환자 문제를 오늘은 가족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노력했지만 상황이 안 좋네요. 가실 경우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 일 내에 황달 증세가 오고… 수 주 내지는 수개월 그 황달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간세포 손상 이후에 올 수 있는 현상이죠. 간수치가 떨어지면 황달수치가 상승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 때 프로트롬빈타임 같은 다른 간 기능 수치가 괜찮다면 성급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3개월을 보기 어렵습니다.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슨 소립니까. 황달이 이미 왔습니다. 제가 지금 보고 오는 길입니다.”
류 시형의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다.  
“벌써 왔다고요?”
황 박사도 눈썹을 들썩거렸다.  
“사람도 못 알아봅니다. 절친한 친구인 저를 못 알아본다구요.”
“그래요? 아직 보고를 못 받아서… 알았습니다. 곧 회진을 시작할 시간이니 가보도록 하지요.”
“회진하면서 들린다고요? 바로 좀 가보시지 않고요?”
류 시형은 소리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찾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내 바로 가보지요.”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정리할 시간이라도 갖게 해 주세요.”
류 시형은 애원했다. 황 박사는 묻는다.
“무슨 정리요?”
“정리할 시간을 꼭 달라고 했단 말입니다. 친구가…”
류 시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닭 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그를 뒤에 두고 황 박사는 자기 방을 빠져 나와 608호실을 향했다. 류 시형 휴대폰의 컬러링이 울렸다. 홍보과 직원이었다.
“과장님. 빨리 아침 회의에 오시래요.”
    

오후가 되자 608호실은 슬픔의 바다가 되었다. 어린 아들과 딸도 왔고 부모 형제, 장인 장모 등 10여 명의 친인척이 모여 황달에다, 완전히 기억을 상실해버린 서 봉진의 불행을 슬퍼했다.
회복불능이라는 의사의 선고(?)도 있었다. 왜 그렇게 됐다는 것을 의학용어를 써 가며 부인에게 설명했지만 부인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니 알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지 몰랐다.  
“안됐지만… 준비하셔야합니다.”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귀는 막혀버렸고 눈물만 나왔다고 했다.
“안돼요. 아직 안 돼요.”
서 봉진은 점점 더 노란 물감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변했다. 가렵다면서 온 몸을 긁어댔고 부인 외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실자가 되었다. 서 봉진의 아버지와 형님은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자꾸 물었다. 그들 판단에 서 봉진 건은 틀림없는 의료 사고였다. 그러나 의심은 가지만 물증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오후에 608호를 다시 찾아온 류 시형은 할 말이 없었다. 부인은 시형을 붙잡고 흔들어대며 통곡했다.
“시형 씨. 우리 남편 어떻게 된 거예요? 의사가 다녀갔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이제 정리를 하라니요… 무슨 정리를 하라는 거죠? 하래는 대로 다했는데요.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요?”
“그런 소릴 했습니까?”
류 시형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서 봉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서 봉진은 이미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아이가 되어 있었다. 갓난아이가 옹아리하듯 입을 오물거리며 생각나는 대로 중얼대고 있었다.
“야, 서 봉진!”
류 시형은 평상시와 같이 서 봉진을 불러 보았다. 순간 서 봉진은 알아들은 듯 고개를 돌려 류 시형을 보았다. 그러나 곧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니, 이게 누구야. 병수 아니냐? 짜아식, 보고 싶어 했더니 이제야 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류 시형의 가슴은 비분으로 터질 것 같았다.
“봉진아 임마. 나 시형이야, 류 시형.”
그러나 서 봉진은 여전히 동문서답이다.
“그렇잖아도 시형이하고 네 얘기 했었어. 언제 왔니?”
부인이 울부짖는다.
“이봐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여긴 시형 씨에요! 시형 씨도 몰라봐요!”
서 봉진이 부인을 보았다. 이젠 마누라도 알아보지 못했다.  
“이건 누구야? 짜아식 니 부인이구나. 그래. 넌 니 부인을 한 번도 안보여 줬지. 결혼식에 날 초청도 안 했으니까. 지나고 나서 얘기지만 인마, 친구는 그러는 거 아냐!”
“여보, 왜 이래요. 나에요 나… 이젠 나도 몰라봐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하지만 병수하고는 오랜 친구에요.”
“여보… 정말 왜 이래요. 난 어떠하라고…”
부인은 통곡한다.
“서 봉진!” 류 시형은 서 봉진의 뺨을 갈겼다.
“너 정말 왜 그래! 정신을 차려보라고!”
그러나 서 봉진은 불가능했다.
“가만있자, 병수가 아닌가?… 아 진흥원 박 차장이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아, 봉진아…”
이윽고 류 시형도 서 봉진을 부둥켜안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인마, 이러면 어떻게 해. 어린 남매를 두고…”
“여보… 난 어떻게 해요. …무서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되요…”
그렇게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한참을 울부짖었다.


한편에서 서 봉진 가족들은 회의를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볼 때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건 사고야. 분명히 사고야. 수술이 잘못됐거나. 뭔가가 잘못 됐어. 그렇지 않다면 멀쩡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 악화될 수는 없어.”
서 봉진의 친 인척들은 류 시형이 병원 홍보과장인 것을 알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나 봉진이 아버진데…”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소?”
“잘못되다니요?”
류 시형이 되묻자 서 봉진의 형님이 나섰다.
“봉진이 친구라고 했지. 나 형 되는 사람인데… 우리가 보고 듣기엔 이건 의료사고야. 창창한 인생 하나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수는 없어.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을까?”
“……”
“병원 홍보과장을 생각하지 말고 서 봉진의 친구로서, 친구의 가족을 불쌍히 여긴다면 도와주게. 방법만 일러줘. 움직이는 건 우리가 할게. 의료진의 실수를 어떻게 규명해야 되는가?”
류 시형은 막막해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미는 대로 한다면 종합건진센터 윤 과장부터 내과 과장, 암센터 장을 모두 데려와 가족 앞에 대질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족의 의료사고 규명 노력을 도울 수도 없었다.
“방법만 일러줘. 우리 힘으로 가능할지 검토해볼 테니까. 자네에겐 아무 지장이 안 가도록 할게…”
“제가 알고 있는 방법은요…”
해 봤자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절차를 잘 밟아서 규명해 나가면 운 좋게도 결정적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얻을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환자 측이 승소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의학의 개방화와 함께 일반의 의학지식이 높아지면서 그 아성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 병원이나 의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승소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언론 보도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같은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다. 아직은 의사의 실수로 환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여겨지는 경우, 의심만 가지고 쉽게 조사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류 시형의 느낌에도 의료사고일 가능성은 있어보였다. 류 시형은 작심하고 아는 범위에서 되도록 자세하게 서 봉진의 가족에게 절차와 방법을 일러주었다.
“정히 의심이 되시면… 의료사고 피해자단체를 찾아가 상의하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여기서 할 일은… 가급적 빨리 병원을 옮기는 일입니다. 일단 환자를 옮겨놔야 사고 여부를 규명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병원을 옮겨라. 좋아요. 지금 상태에서 퇴원하겠다면 될까?”
“그냥은 힘들 겁니다. 먼저 옮겨 갈 병원을 수배한 뒤에, 그 병원 앰뷸런스가 와서 환자를 인수해 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진료 기록도 함께 갖고 가야지요.”
“알았어요. 그 다음은?”
“그 다음부터는 모든 걸 문서로 해야 합니다. 우선 담당의사에게 설명을 요구하세요. 의료 사고는 환자 본인이 의식불명이거나 사망한 경우와 같이 본인이 대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 봉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가족들이 담당 의사나 간호사 등에게 치료 경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가족들은 마치 류 시형이 말하는 그대로 진행할 것처럼 진지하게 들었다. 서 봉진의 형님은 일일이 메모까지 했다.
“그 다음은 나타나는 현상에 따르면 됩니다. 환자에 대한 진료기록부는 의료법상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2000년 7월 13일부터 시행된 개정 의료법에 따라 환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직계존비속의 배우자가 진료기록의 열람·복사를 원할 경우 병원 측은 이에 응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소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빠른 시일 내에 '증거보전절차'의 하나로 진료기록부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신청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지체 없이 병원을 옮기면 그 전에 진료한 기록과 치료 과정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병이 악화되어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병원을 옮기는 자체가 의료 과오를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만약 봉진이가 저대로 죽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부검하는 방법이 있죠. 이 경우는 수사기관에 신고부터 하고 사체 부검을 해야 합니다. 사인을 정확하게 밝혀놓는 것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힘이나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의료사고 희생이 여실하다 싶으면 가족들이 흥분,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정도가 심하거나 기물을 파손할 경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나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힘으로 하고 싶진 않아요.”
“병원 측과 합의를 하게 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병원이 나서지 않고 담당의사가 합의하는 경우도 있는데, 합의가 이루어지면 아주 불공정한 경우 외에는 다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의료 전문 변호사들은 형사고소보다는 민사소송을 권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좋은지는 사안에 따라 다릅니다. 서 봉진의 경우도 마찬 가지겠죠.”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아버지가 물었다. 류 시형은 말했다.
“시효가 있죠. 의료 과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시효는 3년입니다. 봉진이 경우는 환자와 의료진 간에 진료계약이 맺어진 상태에서 일이 발생한 사례입니다. 불법행위 책임이 아닌 계약상의 채무불이행 ― 즉 불완전이행으로 일어난 사고일 수도 있다고 보면 그 시효는 10년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고 내용을 정리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의료 행위의 밀실성으로 인해 환자나 가족들은 의료 과정이나 절차를 진료기록 외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소송에서 그 과정을 되짚어 주장하고 입증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소송을 마음에 두신다면 지금까지의 자료를 우선 확보해야함은 물론, 이 시간 이후부터는 의사와의 면담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기록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 봉진의 가족들은 류 시형의 도움말에 모두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야기 하는 동안 류 시형은 답답했던 가슴이 많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류 시형은 이제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 봉진의 부인을 위로하고 싶지만 가족이 모여 있는 것으로 충분해 보였다.
“저는 이만 올라가 일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요. 고마웠어요.”
류 시형은 서 봉진 가족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그 자리를 물러났다.

                
오후 4시였다. 오후 4시라면 건진 센터는 하루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한가해지는 시간이었다. 류 시형은 어차피 일이 손에 잡히지는 않는 심정이었다. 그는 건진 센터를 찾아갔다. 어제 윤 과장이 보여준 수상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했던 건지도 물어보고 싶고, 그리고 답답한 가슴도 어떻게든 풀고 싶어서였다. 류 시형에겐 그래도 윤 과장이 제일 소통하기 만만한 의사였다.    
“어제는 왜 그렇게 가신 거요?”
류 시형은 윤 과장을 보자마자 따지듯이 물었다. 윤 과장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그냥 간 건데요. 뭐가 이상했어요?”
“죄 지은 사람 도망치듯 가신 거 같은데.”
류 시형은 농반진반(弄半眞半), 웃음을 섞어 그렇게 말했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윤 과장은 어제의 윤 과장이 아니었다. 밤새 무장을 단단히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일이세요?”
“친구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의문이 많은데 시원하게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고… 그래도 윤 과장님밖에 없다 싶어서 귀동냥을 왔지요…”  
“참. 그 친구 분 어때요?”
“완전히 황달이 왔어요. 아주 노래요. 그리고 의식불명이구요. 나는 물론, 제 마누라도 못 알아 봐요.”
“하이쿠야! 저걸 어떻게 하나…”
윤 과장은 그렇게 토해냈다. 류 시형은 앞으로의 일을 알고 싶어 했다. 윤 과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달이 왔다면 담관이 막한 거예요. 현재로선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네요. 수술하고 나면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와는 많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수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치료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재수술이나 무슨 구명 방법이 없나요? 황 박사는 포기하신 것 같던데.”
황 박사가 포기했다… 윤 과장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류 시형이 눈치 채도록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때로 의사는 자기의 과실을 숨기기 위해 환자가 합리적인 장소에서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췌장 수술 때 만들었던 담관 구멍을 내시경으로 찾을 수 있다면 이를 통해서 스텐트(관)를 삽입하여 좁아진 길을 넓힐 수는 있을 텐데… 그러자면 내시경 전문의가 또 동원되어야 하고, 그러다보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실만 광고하는 꼴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구명이 가능하다면 모르겠는데 성공률이 높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최고의 전문의라 하더라도 그런 시술은 쉽지가 않다. 내시경으로 안 되면 다시 수술을 해야 하고, 자꾸 문제가 커지며 복잡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호자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해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여기 더 머물게 해야 하고, 그렇게 머무는 사이에 ―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 여기서 끝을 보도록 해야만 했다.  
“천하의 황 박사가 포기했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겠죠. 하지만 ― 나는 인체의 과학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 이번 친구 건은 의혹이 많아요.”
“의혹을 가지면 모든 게 의혹이 돼요. 세상 일이 다 그렇잖아요. 의심할수록 더 의심을 갖게 되는 거…”
하긴 그렇다.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늘 불만투성이고 부정적이 된다.
“이번 일도 그런 정도의 일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야죠. 가톨릭에 이런 말이 있어요. 투 데이 포 미, 투모로우 포 유…(Today for me, tomorrow for you…) 직역하면 ‘날 위해 오늘, 당신을 위해 내일’이죠. 그것을 가톨릭에서는 보통, 오늘은 내가 죽고 내일은 네가 죽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요. 메멘토 호모, 쿠비아 풀비스 에스 에트 인 풀베렘 레베르테리스(Memento homo, quia pulvis es, et in pulverem reverteris). 인간이여, 너는 흙이며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 는 말과 함께.”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얘깁니까?”
“그럼요.” 윤 과장은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늦었어요. 비명에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결국 길은 하나입니다. 가실 분은 조용하게 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빨리, 자기 일상에 돌아가는 거…”
“그렇습니까?…”
류 시형은 윤 과장에게 더 얻어들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의사요, 이미 팔을 안으로 굽히고 류 시형을 대하고 있었다. 그런 윤 과장의 모습이 류 시형에게, 갑자기 외계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9층의 홍보과장실로 돌아오니 퇴근시간인 5시 반이었다. 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몸은 많이 피곤했다.
전화가 왔다. 서 봉진의 부인이었다. 병원을 옮기려고 하는데 시간이 넘어 안 된다고 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어디로 옮길 생각이냐고 물으니 경성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원무과 업무는 6시까지로 아직 남아있으니 시간 타령할 일은 아니었다.  
원무과에 알아보니 시간 때문이 아니라 의사가 승인을 않는다고 했다. 환자의 상태가 워낙 위험해서 그냥 일반 차량에 태워 보낼 수는 없다는 거였다. 최신구명장치가 완비되어 있고 의사가 동승한 앰뷸런스로 옮긴다면 동의하겠다는 거였다. 아니면 가는 중에 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책임질 수 없다는 거였다.
류 시형이 나서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망연자실해서 연락할 기운도 잃고 앉아있는데 부서 직원이 경리과에 다녀왔다며 월급명세서를 놓고 갔다. 급여는 통장으로 넣어주지만 명세서는 직접 나눠주었다.
무심코 명세서를 보던 류 시형은 아래 부분에 눈길이 멎었다. 건진 유치수당이라는 항목이 있고, 서 봉진 건진 유치로 25,000원의 수당이 기재되어 있었다. 또 서 봉진 진료비에 관련해서도 소정의 환자유치 수당이 있었다. 류 시형은 급여명세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백지를 꺼냈다. 그 백지에 류 시형은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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