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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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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태호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흥분과 혼란을 가라앉히고 침착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오늘 간담회 주제가 자연사 아닌가? 어쩌면 특종과도 같은 사례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차분히 상황을 풀어보기로 했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 보고 싶군요. 물에 빠지신 게 자연스럽게 찾아온 죽음으로의 길이었다고 하셨나요?”
  이 태호가 차분하게 묻자 그도 일단은 대화분위기로 돌아섰다.  
  “그렇소.”
  그는 이 태호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듯 편안하게 앉았다.
  “그걸 자연사라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광의에서는 포함시켜도 될 겁니다.”
  그가 제법 논리적으로 나오자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또 궁금해졌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돼서 그렇습니다. 그런 게 자연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자연사는 말 그대로 촛불이 농이 다해 꺼져가듯 모든 장기의 활력이 떨어져 심장과 폐의 박동이나 호흡 기능이 정지되는 것 아닌가요? 근력이 소진해서 수술도 불가능하고 인공심폐기를 달아도 소용없는 상태 말입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설혹 물에 빠져 의식을 잃는다 해도 몸의 각 장기나 심폐기능은 정상이므로 영양주사와 호흡기만 달아주면 얼마든지 회생이 가능한 상태 아닌가요. 젊으시기에 자연사라는 말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런 사고를 옆에서 보고 돕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요?”
  차분히 이야기를 하니 이 태호 자신부터 당황하고 흥분했던 마음이 현저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당신의 논리지. 그런 논리대로 라면 70, 80, 90… 언제 죽어도 자연사라는 건 없오.”
  그는 이 태호를 당신이라 불렀다. 여섯 살 위이니까 받아들일 만했다.  
  “제 논리라뇨? 저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자연사는 사는 대로 열심히 살다가 예기치 못한 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겁니다.”
  “……”
  “이런 말을 압니까? 신은 선하게 산 사람은 일찍 데려간다고 하였소. 왜냐? 오래 살게 놔두면 죄를 지을까봐. 반대로 죄가 많은 사람은 오래 살게 두어 반성하고 회개를 한 뒤 데려간다고 하였소. 모두를 천국에 데려가시려는 은총 아닌가요?”
  그건 곽 신부가 들려준 말과 같았다.
  “나를 그대로 두었으면 이미 천국에 갔을 텐데, 당신이 간섭하는 바람에 이제 지옥에 갈지도 모르게 되지 않았소?”
  이 태호는 그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일찍 이라고 해도… 평균수명은 참고가 되어야지요.”
  “평균수명? 참 애매한 것을 잘도 갖다 붙이는군. 자연재해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병으로 죽고…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 알지요? 살인을 당하지 않는 한 모든 죽음은 자연사입니다. 대체 무엇을 가지고 평균수명이라 하는 지나 아십니까?”
  “학술적으로 0세 평균여명이라고 표현한다는 건 압니다.”
  이 태호는 교과서 적으로 말했다.
  “잘 아시는군. 정확히 말하면 그 해 태어난 0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생명 연수의 평균치를 의미하는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의학의 발달 덕분에 삶의 가치를 못 느끼는 식물인간의 수치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요. 이게 평균 수명의 맹점입니다. 너도나도 혼동하는 겁니다. 뭘 알고 하는 얘깁니까?”
  “그런가요?”
  그는 오히려 이 태호를 설득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죽는 평균연령과 통계로서의 평균수명은 성격이 다르므로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내가 갖고 있는 자연사의 정의를 알려 드릴까요? 고의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은 모든 죽음이 자연사입니다.”
  “사고사도 그렇습니까?”
  “물론이죠.”
  이 태호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묻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
  이 태호는 되도록 공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일반적? 아까 말씀드렸지. 일반적인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그는 이 태호를 똑바로 보았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낸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아시오? 그런 용기를 낼 땐 뭔가 반대급부가 있어야겠죠?”
  “반대급부요?… 선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도 자칫 잘못될 뻔 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려다 같이 죽었다는 뉴스 나도 무수하게 보았지요. 그러니 가만히 있는 게 일반적인 것이란 말이오. 구한다고 뛰어드는 건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오.”
  “이러지 마십시오. 그럼 본능을 이야기 하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어지는 건 인간의 본능 아닙니까?”
  “그것도 당신 본능이지!”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점잖게 얘기를 해서는 안 되겠군. 당신 본능을 가지고 왜 인간을 거들먹거려! 당신 얘기를 하면서 자꾸 일반적이니 어쩌니 건방떨고!”
  “……?”
  “황망중이라도 내가 도와달라고 했나? 내가 도움을 청했어?”
  “그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건 아니었다.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보듯, 살려달라는 비명도 지른 일이 없었다. 이 태호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럼 뭐야. 당신에게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울 만큼의 사람이라는 판단이 있었다는 거네.”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선생을 모릅니다. 다만 앞뒤 볼 것도 없이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 있었을 뿐이죠. 일반적으로…”
  그는 되풀이되는 이 태호의 일반적이라는 말에 짜증을 냈다.
  “당신은 계속 개인적인 생각을 일반적 논리인 것으로 포장하고 합리화시키는데, 내가 왜 당신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까. 우습지 않아요? 나는 내 이야기를,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해야지 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냐구요?”
  “……”
  “보시오. 사람이 그렇게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입니까?”
  그는 비수로 찌르듯이 말했다. 이 태호의 안색은 아예 하얘졌다. 말도 더듬거렸다.  
  “아니죠… 그렇게 됐나요? 듣고 보니… 아니군요. 일반적인 것은… 그래요.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이 태호는 그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래,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거야.…
  “일반적이라는 말이 부적절하다싶어… 본능이라고 바꿔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본능. 위기에 처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돕고 싶은 본능…”
  “억지 부리지 마. 당신 본능이 아닌 인간의 본능도 함부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것이야!”
  그는 잘라 말하고 다음 말을 했다.
  “반대급부! 즉 자기 이익이 있겠다 싶을 때 뛰어드는 것이오. 아무 것도 기대하는 게 없으면 그냥 구경하며 자극이나 즐기는 게 인간의 본능이란 말이오. 알아듣소?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에 직면한 사람 구하겠다고? 그게 본능이라고? 설득력이 있는 말을 해야지!”
  “……”
  “다시 말하겠소. 당신이 내게 한 간섭은 일반적인 일도, 본능적인 행동도 아니었소. 알겠소? 뭔가를 바라는 마음, 혹 공명심에서의 행동이었을지도 모르지. 대체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권리로 나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겁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결코 아무 것도 생각한 게 없습니다.”
  “점점 더 웃기는군? 아무 것도 바란 것이 없다고?”
  “진심입니다. 바란 것이 없습니다.”
  “바라는 것 없이 그런 용기를 냈어? 위험을 무릅쓰고? 그럼 뭐야. 아무 바라는 것도 없는 놈이 적선하듯 내 목숨을 건져주었단 말인가? 그런 거였어? 이런 개자식 같으니라고…”
  거칠어진 그의 입에서 이제는 육두문자가 나왔다. 이 태호도 다시 흥분했다. 빠가사리 같은 민물고기가 혈관 속을 마구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욕까지 하십니까? 정말 억울하군요. 그래도 사회 통념이란 것이 있는 법 아닙니까?”
  “또 통념!… 내 경고하는데, 더 이상 말을 돌리지 마! 거꾸로 생각해 볼 수 없을까? 만약 당신이 나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당신을 비난할 사람이 있을 것 같나?”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 해도 당신은 비난 받을 대상이 아니야. 아직도 내 말을 모르겠어? 답이 안 나오면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119요원이나 구조대원처럼 사회가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구경만 했다면 어떨까. 비난을 면치 못할 거 아닌가?”
  “그건 그렇겠죠.”
  이 태호는 완전히 그의 논리에 말려들고 있었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나를 구했다면 나도 이러지 않아. 당신은 자격이 없었어. 타인의 인생이나 생명에 무단히 관여할 사회적, 법적, 종교적 어떤 자격도 없단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
  이 태호는 달리 항변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분한 기분은 쌓여갔다. 더 이상 밀리기 싫다는 생각도 불처럼 일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자격 운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군요.”
  “뭐야?”
  이 태호를 보는 그의 눈빛이 또 일그러지며 이글거렸다. 이 태호는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얼굴이 벌개 졌다. 그와 마주앉아있는 게 고통스러웠다.    “…모르겠습니다. 지금 선생과 왜 이런 대화를 해야 하는지!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좋습니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자살을 하려 하셨던 모양인데…“
  “그래도 이 새끼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는 아예 쌍욕을 하며 탁자를 탕!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그 울림에 찻잔이 하나 구르더니 떨어져 깨졌다. 찻집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한 불협화음이었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자살? 왜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해? 내가 자살 할 사람으로 보였어?!”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이 태호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럼 뭡니까. 익사 직전에 구해 줬는데, 이게 무슨 행팹니까? 날 보고 어쩌라는 말입니까? 선생 구하려다 나도 죽을 뻔 했단 말입니다.”
  “야 이 새끼야. 왜, 자격도 없는 놈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윤 정숙 사장이 달려와 ‘무슨 일이예요. 왜 그러세요?’ 하며 이 태호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종업원은 얼른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가지고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태호는 그에게 대들었다.  
  “그래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내가 원해서 했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 태호가 목소리를 높이자 윤 사장이 좀 더 분명하게 끼어들었다.  
  “왜 이러세요, 이 부장님. 도와 드릴까요?”
  “아뇨,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나 원 참, 하도 기가 막혀서…”
  “이 자식이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윤 사장 때문일까, 이 새끼 하던 것이 이 자식으로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이를 악다물고 짓씹는 건 마찬가지였다.  
  “손님…”
  윤 사장은 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긴 공간이 얼마 안 되는 찻집이라서 탁자를 쾅 하고 치는 일은…“
  “미안합니다. 하도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바람에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 분이요?” 윤 정숙은 이 태호를 잠시 보고 그에게 말했다. “이 분은 그럴 분이 아닌 데요. 점잖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인데요?”
  “천만에요. 지금 내 앞에서는 벽창호에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입니다.”
  윤 정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더 참견할 엄두를 못 냈다. 이 태호가 풀죽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윤 사장은 시간을 알려 주었다. 3시가 얼마 안 남았어요. 곽 신부님. 최 미형 박사님, 변호사님까지 모두 오셔서 저 편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스님은 같이 오셨고요. 하고.
  그때 한 성태 편집국장과 김 미숙 차장 양 정희 수습기자가 막 모퉁이찻집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15분 전이었다. 시간이 된 만큼 자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 태호는 난감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지?… 이 태호는 폐일언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미안합니다. 15분 후인 3시부터 여기서 간담회가 있습니다. 제가 사회를 봐야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상대해 드릴 수가 없네요.”
  “상대?… 정말 갈수록 기가 차군. 내가 이젠 당신이 상대해주는 사람이 된 건가?”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다.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태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가 되어 막다른 곳에 이른 느낌이었다. 그 소리에 찻집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들 두 사람 자리로 쏠렸다. 한 성태 국장이 달려왔다.  
  “왜 그래 이 부장. 이 분이 누군데?… 문제가 뭐야?”
  “예. 일이 좀 꼬였네요.”
  이 태호는 그렇게 말했다. 이런 우스꽝스런 장면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게 된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도와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한 국장에게 부탁했다.  
  “좀 도와 주셔야겠어요.”

  멀리서 보고 있던 곽 재수 신부와 선운스님 등 일행은 윤 정숙 사장을 불러 사연을 물었다. 윤 사장이 까닭을 알 리 없었다.
  “몰라요. 저 분은 저도 처음 보는 분이에요.”
  “저는 알 것 같아요.”
  김 미숙 차장이 눈을 반짝이며 나섰다.
  “3일 전인가, 남한강 유원지에서 물에 빠져 익사하려는 사람을 구해 줬다고 했어요. 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생명의 은인 아닌가.”
  “고마워서 찾아 왔겠죠.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그 사람이 저 사람인 건 맞을 거예요.”
  김 미숙은 직감으로 단정했다.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행 모두는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둘을 지켜보았다. 그때 이 태호의 내지르는 소리가 또 들렸다. 한 국장이 옆에 있어 힘을 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나의 도덕심과 정의감에서 당신을 구했습니다. 무엇을 원하고 한 일은 아닙니다. 나쁜 일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이만 끝냅시다.”
  목에 힘줄이 보이기까지 했다. 육두문자까지 거침없이 쓰던 그는 한 국장을 의식하며 애써 자신을 진정하는 것 같았다. 한 성태 국장은 둘을 번갈아 보다 이 부장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를 내가 물어도 될까?”
  그는 한 국장의 발언을 무시하고 이 태호에게 다그쳤다.
  “내게 답을 줘. 내가 묻지 않았던가?”
  그는 이 태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묻다니요? 뭘 물었습니까?”
  “이 자식이 그래도 오리발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잖아!”
  한 국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이 자식이라뇨?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선생은 가만있으시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한 국장을 무시했다. 그리고 계속 이 태호에게 다그쳤다.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답을 줘. 난 그 답을 들어야 겠어. 답을 듣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어!”
  “안 일어나면 어쩔 겁니까?”
  이 태호도 막 나갈 수밖에 없었다.
  “너를 따라다녀야지. 나는 지금 순전히 너 때문에 사는 거거든. 왜 내가 너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겠어.”  
  “아아, 국장님. 이 일을 어떻게 하죠?”
  3시가 되었다. 이 태호는 한 국장에게 구원을 청했다. 한 국장이 나섰다.
  “미안합니다만 우린 지금 3시부터 간담회가 있습니다. 보다시피 참석자들이 다 와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양해를 해 주시지요. 나중에 다시 얘기하시고…”
  그는 냉정했다. 물러설 기색을 안 보였다.
  “두 분의 관계나 사업, 개인사정까지 알고 싶지 않아요. 나와 관계된 부분만 저 자하고 이야기하자는 거니까 빠지세요.”
  “아니 이 부장. 도대체 무슨 사연이야. 사연이나 좀 알자구! 지금 이럴 시간이 아니잖아.”
  한 국장은 답답하여 이 태호를 다그쳤다. 이 태호는 두 손을 위로 올려 항복하면서 반항하는 시늉을 했다.  
  “전 할 말이 없습니다. 정 따지고 싶으면 우린 법치국가니까 법으로 하라고 하지요. 이런 식으로 잡고 늘어지면 경찰을 부르는 도리 밖에 없겠습니다.”
  “경찰? 하하하하”
  그는 찻집이 떠나가라 웃었고 한 국장은 ‘경찰까지?’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했다. 윤 사장이 또 쪼르르 다가와 그에게 사정했다.
  “손님. 제발…”

  16
  세 시 하고도 이십분이 지났다. 이 태호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했다.
  “선생님. 제발 이쯤에서 끝을 내십시다. 많은 분들이 간담회를 위해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답을 주라니까!”
  그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무슨 답을 어떻게… 저로서는 정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원하는 걸 말씀하십시오.”
  이 태호는 그냥 일어서려 했다.  
  “……?”
  그는 다시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 태호를 보았다. 증오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참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일어나려던 이 태호는 다시 털썩 앉았다.  
  “좋아요. 끝을 보십시다. 그렇게 기분 나쁜 눈으로 보지 말고 원하는 걸 주문하십시오. 돈을 원합니까?”
  “이 새끼가 또…”
  “이 새끼 저 새끼 마시고요. 모르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정말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알려 주시라고요.”
  “가만있어 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한 국장이 드디어 나섰다.
  “이 부장. 내게 얘기해 봐.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거야?”
  “잘못한 거 없어요. 3일전에 남한강 유원지 갔을 때, 저 분 타던 보트가 뒤집혀 물에 빠졌는데 수영을 못하시는 분이라 익사할 것 같았어요. 제가 뛰어들어 구해줬지요. 그런데 지금 찾아와서 어떻게 책임지려고 나를 구했느냐고 따지는 거예요. 나 원 참…”
  “뭐야? 이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자네 깡패야?”
  한 국장도 대번에 거칠어졌다.
  “……?”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래?”
  “몰라요. 뭘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수상할 뿐이죠. 무슨 거액 보험이라도 들어놓고 죽으려고 한 것만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 태호가 품고 있는 의심을 속삭이자 한 국장의 얼굴도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며 같이 일그러졌다. 이 태호는 그 보다 여섯 살 아래였지만 한 국장은 그 보다 대여섯 살 많았다. 한 성태 국장은 쌍소리가 목까지 올라 찼으나, 그러나 일단은 점잖게 시작했다.      
  “실례지만 선생 뭐하시는 분이요?”
  한 국장은 한 술 더 떠 어쩌면 협박 갈취 따위의 전과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이 태호는 윤 정숙 사장을 손짓으로 불렀다. 윤 사장이 다가오자 이 태호는 말했다.
  “우선 저 손님들 간담회 자리에 다 앉으시라고 안내해 주세요. 그리고 봐서… 내가 손뼉을 세 번 치면 경찰을 불러주세요. 알았죠?”
  “예 알았어요.” 하고 윤 정숙은 물러가 이 태호 부탁대로 움직였다.  
  한 국장은 재차 그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는 한 국장을 빤히 보다가 ‘우선 귀하께서 저 자와의 관계를 밝히시죠.’ 했다.
  “직장의 상사입니다. 이 사람은 취재부장. 나는 편집국장입니다. 됐오? 선생은 뭐 하시는 분이요?”
  “나요… 고등학교 국어선생이올시다.”
  한 국장이나 이 태호에겐 뜻밖이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 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무경우로 나오다니… 한 국장은 일단 신분을 무시하기로 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 이 부장이 구해준 것은 맞습니까?”
  “표현에 무리가 있군요. 저 자가 무책임하게 간섭한 것은 맞습니다.”  
  “저 자, 저 자식 하는 게 듣기 거북한데 좋게 말할 수는 없습니까?”
  “선생도 같은 생각을 하는 부류입니까?”
  “부류? 그게 고등학교 국어선생들이 보통 쓰는 용어입니까?”
  “……”
  그의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완연했다.
  “죽고 싶었던 겁니까? 아니면 사고를 가장하여 자살을 시도하기라도…”
  순간 그는 벌떡 일어나며 아까보다 더 세게 쾅! 하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탁자 위의 그릇들이 또 바닥에 떨어져 구르고 깨지고 했다.
  “가시오! 당장 꺼져! 당신까지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세상에 이런 일은 없오. 자기를 살려 준 사람에게 감사의 보답은 못할망정…”
  한 국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선생이라면서… 정작 자기 인생 공부는 부족한 거 아니오?”
  “부족하다면?”
  “나라도 가르쳐줘야지”
  “혹시 남을 가르칠 자격을 가진 게 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없오만… 그러나 은혜도 모르는 사람 바로잡아주는 일에 무슨 교수 자격씩이나 필요할까?”
  “참 나…”
  순간 그의 벌겋던 안색에 열꽃이 피어나는 듯 했다. 그는 이빨을 갈면서 말했다.
  “똑 같은 작자들이로군. 이렇게 기본도 안 된 인간들이 잡지를 만들고 있으니 세상이 갈수록 혼탁해질 수밖에.”
  “뭐라고?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당신 몇 살이나 된 사람이야?”
  “몇 살?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고 진보하나?”
  그가 말했다. 일순 한 국장과 이 태호는 말을 잃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진보하나?
  “나이를 먹으면 뭘 해. 질서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그는 막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 태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 손뼉을 세 번 쳤다. 윤 정숙은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찻집 안의 사람들은 더 참지 못하고 우르르 이 태호와 그가 마주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에워쌌다.
  “무슨 일이요? 이 부장”
  곽 신부와 선운 스님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
  “부장님 뭘 도와드릴까요?”
  김 미숙 차장이 물었다. 이 태호는 소리쳤다.
  “경찰을 불러 줘. 여기 이 사람이 나와 국장님까지 협박하고 있어. 이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말이야… 미치겠어.”
  “협박요? 분명 협박이라 그러셨죠?”
  김 미숙 차장은 그 단어에 놀라는 듯 했다. 윤 정숙 사장이 달려왔다.
  “신고했어요. 경찰이 온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부장님, 신부님이나 스님께 도움을 청하면 안 될까요?”
  “변호사도 있어요.”
  “맞아요. 좀 도와 달라고 해 주세요. 이상한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국어선생이라는데 한 국장한테까지 막말 해대며 난리에요.”
  “우리가 모두 옆에 있소. 이 부장.”
  곽 신부였다.
  “대체 무슨 일이요?”
  제가 큰소리로 설명 드리지요. 이 태호는 아예 일어섰다.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저 선생이 보트를 타다 뒤집어져 물에 빠졌습니다. 보아하니 맥주병이었죠. 익사 직전에 있는 걸 내가 뛰어들어 나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며 구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잘못한 겁니까?“
  “그게 왜 잘못입니까. 이 시대 사라져가는 의협심을 훌륭하게 보여준 모범적인 일이지요. 그런데요?”
  서울일보 박 정수 기자가 장단을 넣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람은 내게 와서, 무슨 자격으로 나를 구했느냐, 왜 그냥 두지 살렸느냐, 어떻게 책임지려고 구했느냐, 하고 따지고 있습니다. 환장할 노릇 아닙니까?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러 온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그걸 따지러 온 겁니다.”
  “그 참 어처구니가 없군요”
  박 기자가 그에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서울일보 기자입니다. 찻집 취재 때문에 여기 왔다가 이 차장님도 뵙고, 스님이며 신부님도 뵈었고, 선생님도 만나는군요. 그런데 보십시오. 뵙기에는 점잖은 분 같은데, 이게 무슨 상식 밖의 언행이십니까?”
  박 기자는 불과 삼십의 나이였다. 그러나 기자 기질이 배어 말은 대차게 내질렀다. 그를 불량한 사람이라고 미리 단정 짓고 나서는 것이었다.
  “신문기자라고 했소?”
  그는 낮은 어조로 느물거렸다.
  “쓰레기 기자가 아니라면 편견은 없어야 하지. 양편 이야기를 들어보고 정리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게 정석 아니오?”
  “보통은 그렇지요.”
  박 기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한 마디만 들어도 빤한 이야기 아닙니까? 생명을 구해준 분에게 무슨 따질 것이 있는 겁니까?”
  박 기자가 강하게 나오자 곽 신부가 손을 들어 말렸다.
  “아니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그의 이야기도 들어 봅시다.” 하고 난 뒤 “자. 말씀해 보시지요.” 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박 기자를 보며 뜸을 들인 뒤 좌중을 향해 말했다.  
  “우선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아무에게나 간섭받고 싶습니까?”
  “간섭 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곽 신부가 동의했다. 선운 스님도 동의했다. 순간 이 태호가 내질렀다.
  “아닙니다. 저 사람 화술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간섭받을 상황이면 간섭을 받아야지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태호는 우군이 많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고 있었다.  
  “당신은 입을 다물어야 할 시간이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 태호를 꾹 누르고 말을 이으려 했다. 그러나   ‘왜 내가 입을 다물어야 합니까?’ 하고 이 태호가 나섰고, 또 박 기자가 나섰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간섭받을 행동을 하면 간섭 받아야지요”  
  “좋소. 그렇다면 아무나에게?”
  그는 박 기자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죠?”
  “어떤 사람이 예기치 않게 크게 다쳤어. 아무나 치료해도 될까?”
  “농담 따먹기 하자는 겁니까? 당연히 구급차를 불러야하고, 의사가 해야지요.”
  “좋아. 다른 경우를 듭시다. 도둑질 하거나 나를 해친 놈을 붙잡았어. 직접 처벌하면?”
  “안 되죠. 사법 당국에 맡겨야지요.”
  “알긴 제대로 아시네. 함께 사는 사회라 복잡다단한 만큼 질서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분야를 나누고 전문가를 배출하여 역할을 나누는 거 아닙니까? 자격증을 주어 인정하는 거고.”
  “맞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젠 모두 알 거요. 오늘과 같은 일,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참견하지 마시오.”
  “그걸 그리 어렵게 말한 겁니까?”
  박 기자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뭬 어려워. 알면서 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린애 설득하듯 자상하게 설명한 거지.”
  “그건 맞아요.”
  한 해련 시인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도 간섭받는 걸 싫어해요.”
  “아아, 여기 변호사가 있소.”그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하 변호사가 나섰다. “내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변호사는 자격이 있는 거니까.”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난 의뢰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요. 난 있소.”
  이 태호는 매달렸다.    
  “가만,” 하고 곽 신부가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성직자도 참견할 자격이 있겠지요?”
  그러자 안 해만이 또 말했다.
  “왜들 이러실까요. 신부님. 신부님이 나설 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의 사회에만 해당되는 일 아닐까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선생은 종교가 무엇입니까?”
  “…지금 그걸 밝힐 분위기입니까?”
  “없으신 건 아니겠죠.”
  “물론이죠. 종교가 없는 인간은 동물이나 다름없으니까…”
  “참 훌륭한 생각을 가지셨군요.”곽 신부가 그 말을 흡족해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이제 말 돌리기는 그만 하고 오늘 문제의 요점을 얘기합시다. 우리가 시간이 없어요.”
  간담회를 해야만 하는 사정을 아는 곽 신부는 점잖게 주문했다. 그는 곽 신부의 말을 정정했다.  
  “말을 돌리고, 시간을 죽이는 것은 당신들입니다.”
  그는 이 태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이 내 삶에, 아니 내 운명에, 아무런 자격도 없이 간섭을 해서 분통이 터진 거고, 그래서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해 마십시오. 그 답만 얻으면 됩니다. 나는 죽으려고 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 현재의 삶이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사람도 절대 아닙니다.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다 싶은 때 자연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기회를 방해 받은 것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이 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죽기를 원한 겁니까? 진정… 그 말인가요?”
  곽 신부가 물었다. 그는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신부님까지 동문서답하지 마십시오. 누가 죽으려 했다고 했습니까! 방금도 죽으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고도 했습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기회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순간 박 기자가 끼어들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신부님.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 이야기 뒤에 뫼비우스의 띠 같은 뭔가가 있습니다. 공갈 협박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오면 넘기면 되겠습니다. 무슨 이유에선가 죽으려 했던, 그런 부류를 이 태호 부장님이 잘못 구해준 겁니다. 쓸데없는 데 자비를 베푼 거죠.”
  “기자라는 놈도 말을 꽤나 함부로 하는 군.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똑 같아!”
  그는 더러운 벌레를 보듯 침을 뱉고 찡그리며 박 기자를 보았다.
  “보시오 기자 양반. 나에게서 무슨 냄새가 납니까?”
  “예. 냄새가 나네요.”
  박 기자는 당당하게 응수했다.
  “무슨 냄새일 것 같소?”
  “글쎄요. 흐흐흐. 선생이 죽음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 뭔가 그런 게 있을 것 같군요.”
  박 기자는 확신에 차서 말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흠. 어디 기자다운 코를 가졌나 볼까? 구체적으로 예측해 보시지… 그게 뭘까, 를.”
  “그 따위 문제의 답을 찾는데 쓸 신경은 저에게는 없죠.”
  “그 따위 문제라니? 젊은 놈이 말을 그렇게 막 해도 괜찮은 건가?”
  “글쎄요. 귀하와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경우에는…”
  박 기자는 그를 귀하라고 부르며 하대했다.
  “으으, 정말 참기 힘들구만! 으 ― 썩은 세상…”
  그는 이 태호와 박 기자를 번갈아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던 그는 이 태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해, 진작 답을 주지 않고! 왜 이렇게 상황을 키워!”
  그 소리에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곽 신부가 다시 나섰다.
  “진정하시고, 제발 차근차근 이야기 합시다. 좋습니다. 종교를 초월하지요. 이 자리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내게 선생의 진솔한 심정을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속마음을 말입니다.”
  ‘신부님.’ 하고 그는 신부를 똑바로 보았다. “왜 자꾸 나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나는 지금 피해자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선생이 오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신부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원 참…’ 그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모두들 왜 이러는 겁니까. 정신이 어떻게 된 것들 아닙니까?… 오늘 문제의 주인공은 잘못을 저지른 이 사람이에요.”
  그는 이 태호를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신부가 나섰다.  
  “이 쪽은 내가 잘 아는 분입니다. 문제를 일으킬만한 분이 아니죠.”
  “팔이 안으로 굽은 것뿐입니다.”
  일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당장 폭탄의 뇌관을 터뜨릴 것 같은 그의 눈빛, 얼굴빛이 연출해 냈다. 곽 신부가 또 나섰다.  
  “그럼 말을 바꿉시다. 문제라든가, 주인공 여부를 떠나서…” 신부는 한 발 물러났다. “오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그러자 모두 조용히 하고 누군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의 발언을 기대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신부가 또 말했다.
  “그것이 자연스런 사고였든, 자살 시도였든, 평소에 죽고 싶어 했든… 어쨌든 죽을 거 살려줬으면 일반 통념으로는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런 통념을 누구 만들었습니까?”
  “통념은 자연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
  그는 또 신부를 보았다. 선운 스님이 나섰다.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하네요. 이렇게 와서 따지기까지 하는 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건데 뭘 원하시는 건지… 그걸 알면 이야기가 쉬어지겠지요.”
  “그렇겠네요. 그걸 들려주시지요.”
  곽 신부가 스님 발언에 힘을 보탰다.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술에 집중됐다. 그는 이제까지 흥분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모두 진지하게 들어줄 겁니까?”
  “물론이죠. 그러겠습니다”
  스님과 신부가 다짐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는 말을 시작했다.  
  “좋습니다. 여러분의 지성을 믿고 제 마음을 이야기하죠. 저는 삶과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 지닌 정상적인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많은 사건을 되풀이 경험하지만 죽음만은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일회적인 것이며 경험의 세계를 초월하는 사건입니다. 죽음이  허무를 말하거나 삶의 포기를 종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한 번뿐이기에 그 중요성은 크고 무거운 것이며 나아가 새로운 시작으로써의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희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신부님은 아사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임종의 순간에 하신 말씀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무엇이었나요.‘형제들이여!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시다.’하시고 가셨지 않습니까?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말씀하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선생은 형제님이시군요.”
  신부는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형제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삶과 죽음을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재의 영원한 지속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운 스님이 동의했다.
  “삶을 신의 선물로 이해한다면 죽음도 그 일부겠지요.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죽음은 하나의 보상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 즉 삶의 연속이라는 의미를 주는 것,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맞아들이는 변화, 신의 뜻,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 말입니다.”
  그는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신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태호도 자세를 바꾸어 점차 귀를 더 기울이다가 얼른 김 차장을 불러 메모를 하도록 시켰다. 이것이야말로 간담회의 훌륭한, 일부 내용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으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저는 매일,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진실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늘 원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난 일요일 낮에 찾아왔습니다. 물론 아무런 준비는 없었습니다만 평소에 기다렸던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삶의 질곡에서 막 해방되려는 순간 저 자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은 것입니다. 나의 길을 막은 것이지요.”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만… 그러나 사회 통념에서 볼 때 아직 그렇게 가실 때는 안 됐지요. 보트가 뒤집힌 건 사고지요. 만약 그때 사고를 본 사람이 열 명이라면 열 명 다 구조하려고 했을 겁니다.”
  “아니지요 신부님. 바로 그 점입니다. 아까도 했던 말인데, 신부님은 사람의 생명을 아무나 간섭해도 된다고 보십니까? 신부가 아닌 사람이 종교적 구원을 하고, 법관이 아닌 사람이 복수한다고 직접 죄의 심판을 내리고 하는 것이 괜찮다고 보십니까?”
  “그건 아니지요. 사회적 규약과 질서는 지켜야지요.”
  “저는 저 사람에게 남의 생명에 간섭할 어떤 자격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그런 위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바라고 내 인생에 간섭했느냐고요.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한참 다소곳 듣는 것 같던 박 기자가 나섰다. “후후후. 저는 선생의 말씀이 말장난처럼 들리는 데요”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킬킬 거렸다. “신부님. 말은 그럴 듯하게 하고 있지만 기자인 제 직감에는 뒤에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게 더욱 선명해 지는 듯합니다. 냄새도 나고요. 후후후. 죽음을 원하는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람 보셨습니까?”
  “아니에요. 아닌 것 같아요. 옆에서 듣자하니 저분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저 분은 진지하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구경 하듯 간섭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한 해련 시인이었다. 그녀는 박 기자와 동행이면서 점차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니, 한 시인…”  박 기자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우리 기자들에게는 직감이라는 게 있어. 뭔가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해! 틀림없어. 뒤를 들추면 최소한 사회면 말단의 휴지통 거리라도 하나 건져질 거야.”  
  “아니에요. 시인에게도 직감이라는 게 있어요.” 예상을 깨고 한 해련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박 기자의 손을 톡톡 치며 “우린 우리 자리로 가요. 간섭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이끌었다. 한 해련이 돌아서자 박 기자는 그녀의 손을 잡아 되돌려 세우며 말했다.
  “잠시만 있어… 누구의 직감이 맞나 가려보자구.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17
  입구가 소란해졌다. 경찰이 온 것이다. 남녀가 파트너인 듯 30대 전후의 남녀 경찰이 왔다.
  “이쪽이에요”
  윤 정숙 사장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경찰은 여러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친숙하게 여기면서 비집고 들어와 신고자를 찾았다. 이 태호가 나서니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사람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글쎄… 지난 일요일 남한강 유원지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는 걸 구해줬더니 지금 찾아와서 왜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 어떻게 책임지려고 나를 살렸느냐, 하며 저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은 어이가 없었다. 남자 경찰관이 나섰다.
  “아니 멀쩡해 보이는 분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경찰은 공무를 행하는 자의 당당한 모습으로 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신고를 받고 왔으니 절차를 밟겠습니다. 신고하신 분 주민등록증을 잠시 주시죠.”
  경찰관은 이 태호의 신분증을 받아 파트너인 여성 경찰관에게 넘겼다. 일단 신원조회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어느 분입니까?”
  “저 분입니다.”
  이 태호는 그를 가리켰다. 경찰은 그의 주민등록증도 요구했다.
  “실례지만 주민등록증 좀 주시겠습니까?”
  그도 순순히 주민등록증을 내주었다. 남자 경찰은 그의 주민등록증도 여자 경찰에게 주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 지요.”
  경찰은 이 태호에게 물었다. 이 태호가 잡지사 기자라고 하자 저 사람은요? 하고 눈짓을 했다. 이 태호는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경찰관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고등학교 국어선생입니다.”
  “신고 내용은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했는데 요… 누가 누구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까?”
  경찰이 협박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언어처럼 구사하는 게 이 태호에겐 다소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질문은 남자 경찰이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여자 경찰이 다가왔다. 신원조회 결과 둘 다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남자 경찰 귀에 속삭이며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남자 경찰은 그 신분증을 일단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라고 했잖습니까?” 이 태호는 그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나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었으면 감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왜 구해주었냐고,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나를 찾아와서 협박을 하고 있다고요. 이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말입니다.”
  “협박을 당했다는 것을 증언해줄 분이 있습니까?”
  경찰관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박 기자가 말했다.    
  “아마도 데려가서 조사하면 금세 사연이 나올 겁니다. 노름빚이 있든가 여자관계가 복잡하거나 보험금을 노렸거나 뭔가 있을 겁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정신감정을 의뢰해 볼 수도 있겠죠. 허무주의에 빠져있거나 우울증일 수도 있습니다.”
  박 기자의 말에 그는 아까처럼 성내지 않았다. 차라리 웃음을 보였다. 경찰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흠… 일단 신고가 접수된 셈이니 그럼 경찰서로 가 주시겠습니까?”
  경찰은 상황을 살펴보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허허. 마음대로요? 무슨 혐의입니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일단 신고가 접수됐지 않습니까?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를 해야지요.
  “신고내용의 허와 실을 먼저 가리셔야지요.”
  그는 조소하며 말했다.
  “뭐요 아니, 이 양반이?…”  
  경찰관은 제지를 당한 불쾌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보십시오. 지금 여기, 남의 영업집에서 이 소란 피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찰서 가자고 할 수 있어요! 알아요?”
  신고당한 것만으로 그는 죄인이었다. 적어도 이 분위기에서는 그랬다. 경찰관은 윽박지르듯 했다. 그러나 그는 태연했다.
  “저런 사람은 혼을 내야 해! 겉보기엔 멀쩡한데 어쩌다…”
  박 기자 눈에도 그는 이미 불량자였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좋시다. 그러면 나도 저 자를 신고할까?”
  “……?”
  “보시오. 정작 신고해야 할 사람은 나요. 이 찻집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것도 저 자이지 내가 아니란 말이오. 저 자의 신고는 무고죄에 해당합니다. 무고죄의 벌칙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아시겠지?”
  경찰관은 그제야 그를 찬찬히 보았다. 자기가 덤벙대고 경솔했음을 느꼈다. 경찰관은 이 태호에게 물었다.  
  “저 분의 협박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요구가 뭡니까? 폭력을 휘둘렀습니까?”
  “아니오. 폭력은 아닙니다. 말로 그런 거지요. 아주 지능적입니다.”
  “지능적인 것도 좋습니다. 구체적으로만 말씀해 주십쇼. 금품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금품도 아닙니다.”
  “협박을 했다면 내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걸 묻는 겁니다.”
  “아직… 구체적인 요구는 없습니다.”
  “요구도 없고 폭력도 없다… 그럼 협박으로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니까요.”
  “폭력이나 무기를 사용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경찰관은 그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의를 구하는 듯도 했다. 경찰은 모두 들으라는 듯 말했다.
  “협박죄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개인이 법적으로 보호되어 있다는 신뢰를 침해하는 죄입니다. 단순히 말로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협박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금품 갈취 따위 재산상의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협박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건 강도나 공갈입니다. 따라서…” 하고 남자 경찰은 이 태호를 보았다. “이 일은 협박이라고 볼 수 없겠습니다.” 경찰은 갖고 있던 두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각각 돌려주면서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때였다. “아닙니다.”하고 박 기자가 소리치며 나섰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뭔가 사연을 뒤에 감추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린 증거로 나타나지 않은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경찰관이 물러서자 이번엔 그가 나섰다.
  “내가 저 자를 무고죄로 신고했잖소! 왜 내 신고는 무시하는 거요?”
  그 소리에 경찰관은 주춤했다.
  “무고죄 신고는 경찰서에 오셔서 서면으로 해주셔야 합니다.”
  곽 신부가 자, 자. 여러분. 하고 수습에 나섰다.
  “제가 나설 자리인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죽음에 관한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곽 신부는 둘러앉은 사람들을 살펴 본 뒤 말을 이었다. “기묘하게도 오늘 우리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놓고 간담회를 하자고 모였습니다. 그런 날, 우연이지만 우리가 예정했던 것보다 더 심도 깊고 실제적인, 생생한 자리가 되었다는 감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결론이 만들어지기까지 이 토론을 계속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곽 신부는 그를 보았다.
  “그런데 이 토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솔직한 심정 표현이 필요한 것 같군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시라면 이 시대 지성인의 한 사람입니다.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저는 안 해만입니다.”
  그는 순순히 이름을 밝혔다. 분위기가 이쯤 되자 철수하려했던 남녀 경찰관도 엉거주춤 서 있었다. 결국 그 자리에는 이 태호와 안 해만 선생 외에 찻집 여 주인, 곽 신부, 한 부장. 산부인과 최 박사. 선운 스님. 하 변호사, 박 기자. 여 시인. 남녀 경찰 등 12명이 둘러 선 자리가 되었다. 박 정수 기자가 자칭 사회라도 보는 양 나서서 안 해만에게 주문했다.  
  “자, 그럼 안 해만 선생님. 저도 정중히 요청하겠습니다. 죽으시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보시오 기자 양반. 자꾸 당신의 잣대로 단어를 구사하는데, 그런 짓 좀 제발 그만합시다.” 그는 점잖게 지적하고 말을 이었다. “모두에게 거듭 밝힙니다. 나는 추호도 죽으려고 했던 마음은 없었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다만 언제 죽음이 와도 미련 없이 받아들일 자세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던 겁니다. 현명한 자는 정점에서 떠난다는 말이 있듯,  가급적 즐겁고 행복한 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거지요.”
  “잠깐만요.” 곽 신부가 축도하듯 양팔을 벌리고 말했다. “우리 모두 앉아서 들읍시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이 태호 부장이 준비했던 것보다 더 좋은 간담회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엔 의사 철학자 신문기자 여류시인 또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도 계십니다.”
  “기왕이면 저도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소개해 주세요, 신부님”
  윤 정숙 사장은 차를 내며 말했다.
  “아, 그렇죠. 여기 수필가도 있습니다.”
  그러자 윤 정숙 사장은 말했다.
  “차는 명상과 대화를 위한 것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든 차는 신선인귀(神仙人鬼)가 모두 좋아하니 삶과 죽음을 논하는 자리에 적격인 것도 같네요. 저희 집에서 제일 색향미 뛰어난 차를 정성껏 내겠습니다. 좋은 대화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에서입니다. 차 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녹음을 해도 되겠습니까? 지금부터의 이야기를?” 박 정수 기자가 양해를 구했다. “제 생각에도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는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 보였다.
  이 태호는 김 미숙 차장이 열심히 메모하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윤 정숙 사장은 박 기자에게 속삭였다. “모퉁이 찻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고 했던 말요”
  “과연 그렇군요.” 하며 기자는 녹음 단추를 눌렀다. 양 정희 수습이 있다가 저도 녹음기를 꺼내 스위치를 넣었다.  

  18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동서양이 다르고, 종교마다 차이가 있으며, 민족마다 구별됩니다. 더 세분하면 사람마다 DNA가 다르듯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은, 누구나 결국은 죽는다는 것이고, 죽음을 경험한 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죽는 것이 인간적이냐 하는 문제는 살아있는 모두에게 공통의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 해만이 막 말을 시작하는데 최 박사가 손을 들고 한마디 끼어들었다.  
  “이 자리에서 죽음을 가지고 논한다는 것은… 너무 광범위해서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힘들 겁니다. 오늘은 단지 안 선생의 경우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국장이 동의를 하자 둘러앉은 사람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좋습니다, 안 해만 선생님.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곽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안 선생은 일어섰다.
  “거듭 밝히지만 나는 죽으려고 한 일이 없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가정도 행복하고 직장도 건전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억지로 오래 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순리대로 살다 죽기를 희망하는 겁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노인을 보면서 깨끗하게 죽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보다 건강할 때 자연스럽게, 슬그머니 가는 것이 참 좋겠다고 마음을 보듬고 지냈던 것뿐입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렇게 살던 중 지난 일요일, 뜻하지 않은 순간에 그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설득력이 없어요. 죽음에 대해서 어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위선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죽음을 하찮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태호가 안 해만의 말을 끓었다.
  “그건 당신 멋대로의 해석이지!” 그는 동정어린 조소를 보내며 이 태호에게 말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삶에 애착은 왜 생기는지 아시오?” 그는 자신만만했다. “뭔가 이루지 못한 한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뭔가 놓기 싫은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건 맞는 것 같소!”
  한 국장이 안 해만의 견해에 동조했다. 철학을 전공한 한 국장은 같은 편이라고 무조건 편드는 일은 없었다. 평소에도 한마디 말에 담긴 진실을 소중히 여겼다. “한 보다는 소유가 더 애착을 낳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모자라게 소유한 사람보다 넉넉히 소유한 사람들이 더 강한 애착을 보인다는 사실이지요. 어느 쪽이든 살아있는 동안의 이야기일 뿐인데 말입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살아있는 동안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죽음을 경험하거나, 죽음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게 되면 달라지지요, 소유의 허상을 알게 되면, 삶의 폭이 한결 넓어지는 법입니다.”
  선운 스님도 동조했다.  
  “삶이란 잠시 인연 따라 나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가는 것입니다. 장작 두 개를 비벼서 불을 냈을 때 불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장작 속에서 왔을까요, 아니면 공기 중에서 왔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손에서 나왔을까요. 공기와 장작과 우리들의 의지가 인연 화합하여 잠시 불이 만들어 졌다고 봐야지요. 장작이 다 타고 나면 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 몸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사(生死)입니다.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갈 뿐.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 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안 해만은 스님에게도 정중하게 감사를 표한 뒤 말했다.
  “제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사람은 도구를 사용해서는 자살할 수 있지만, 스스로 호흡을 멈춰 자살을 할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이야기 같으면 새로운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안 해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차갑게 느껴졌던 안 선생의 목소리에 온기가 실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이 태호는 불안해 졌다. 차츰 그를 이해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변화하는 게 역겨웠다. 안 해만은 말했다.  
  “저는 가끔, 결코 자살의 수단이 될 수 없는 호흡을 멈추는 작업으로 죽음의 벽을 넘어가보곤 했습니다.”      
  “무슨 망발입니까. 산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태호는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이 태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는 제스처가 나왔다.
  “그럼 안 선생님은…” 윤 정숙 사장이 물었다.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입니까? 죽음을 경험하고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겁니까?”
  “글쎄요. 경험했다고는 못하겠죠.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인 담벼락에 기어올라 죽음의 세계를 잠깐 잠깐 구경은 한 것 같습니다.”
  “우리더러 당신 말을 믿으라는 말입니까?”
  이 태호가 또 끼어들었다. 안 선생은 무시했다.  
  “그 가능성은 신부님이 답을 도와주시지요.” 안 해만은 차분하고 점잖게 신부님의 도움을 청했다. “푸른빛의 신비함이라든가, 사후의 세계를 경험한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말입니다.”
  “푸른빛이라고 하셨나요? 푸른빛이라고 하시면 제가 한 말씀 하지요”
  한 해련 시인이 일어섰다. “대학에서 배웠지요. 푸른빛이 그리움과 이상을 상징함은 문학에서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하늘이 곧 천국이라는 등식에서 따온 것이죠. 그러나 알고 보면 사후의 세계를 푸른빛의 세계로 그리는 것은 달밤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푸른빛의 신비성은 살아있는 사람들 작품입니다.”
  “맞아요. 실제 사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푸른빛에 비중을 두지 않았어요, 사후의 세계에 색깔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한 국장이 말하자 이 태호는 또 악을 썼다.      
  “보세요. 색깔부터가 엉터리잖습니까?”
  안 해만은 신부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다. “신부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후의 세계를 체험했다는 사람을 만나보신 적이 없습니까?”
  “…만나 보았죠. 나는 여러 번 만났습니다.”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신부는 말했다.
  “사후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교통사고처럼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 경우. 병원에서 마취되어 수술을 받는 경우. 졸도를 하거나 빈혈을 일으키는 경우도 잠시 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때 이승과 저승을 곧잘 넘나들지요. 임종 때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집니다. 나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것이 사후의 세계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박 기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맞습니다. 의학적으로도 그건 사후의 세계입니다”
  최 박사가 판정을 내려 주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죽음이란 육체가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사람은 잠깐잠깐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깊이는 모르지만 가볍게는 얼마든지 사후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습니다.”
  “또 하나가 있겠지요.” 한 해련 시인이 말했다. “신앙에 심취하여 환상을 보는 것도 사후의 세계일 수 있겠지요.”
  “아니요. 그건 사후의 세계라 할 수 없습니다.” 곽 신부가 정정해 주었다. “그건 일종의 최면상태 – 환상이지요.”
  안 해만은 이런저런 중간 발언에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신부를 향해 말했다.
  “사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셨다면, 신부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겠지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사후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아닙니까? 알면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안심과 신뢰로 대체되며, 고생스러운 인생에 대해 동정심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그것이 매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종교적 평온으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군요…”
  신부는 어정쩡하게 답했다.
  “그렇게 죽음을 이해하면 현실의 삶이 넓어지는 법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삶과 죽음 어느 한 쪽을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오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자리가 진지해지니 철학적 견해도 필요할 것 같군요”한 국장이 나섰다. “진정한 철학은 죽음의 훈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기에 우리 영혼은 육체 안에 갇혀 지상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방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곧 철학입니다. 따라서 철학은 죽음에 이르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는 속성을 지닌 것이 됩니다.”
  “참으로 위험한 논리군요” 하 변호사도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삶이 부정된다면, 철학의 존재 이유가 너무 슬퍼지지 않나요?”
  “이야기가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최 박사가 말했다. “영혼의 별개성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함께 소멸된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따라서 영혼의 존재 여부보다는 윤리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나 순리 같은 쪽에서 말입니다.”
  “공감합니다.” 윤 정숙이 말했다. “저도 방금 윤리라는 두 글자를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은 윤리적인 삶, 윤리적인 죽음일 거예요. 진정한 윤리는 외부로부터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가운데서 확고부동한 인생관을 확립하는데 있는 것이겠죠.”  
  “뭡니까? 그렇다면 결국 죽음도 선택이란 말 아닙니까?”
  돌아가는 이야기가 이 태호에겐 마땅치 않았다. 이 태호가 반문하자 한 해련 시인이 정정해주듯 받았다.  
  “선택이 아니라 순리라고 말하고 있네요. 흐르는 물 같은… 맞아요. 순리를 선택인양 오해하는 데서 우주적 큰 질서는 엉키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아 저는 오늘 우연한 곳에서 좋은 시상(詩想)을 얻고 있어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 해련은 시인으로서 기뻐하며 감사기도를 올렸다. 대화가 계속될 수록 이 태호는 어리둥절해졌다. 화살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 같아서였다.  
  “너무들 좋아하지 마세요. 내세를 앞세워 현실을 오해하게 하는 모든 모순이 윤리에서 싹 터 잎이 되어 자랍니다. 윤리에는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가 수없이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답니다.”    
  “그래도, 죽음을 미화시켜 삶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것보다는 윤리를 내세우는 게 낫겠지요.”  
  “천만에요! 죽음이 더 솔직하고 설득적일 걸요. 모든 현대적 모순은,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죽음을 멀리하는 데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삶의 세계가 너무 발전하여, 죽음의 세계와 격차가 커진 데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것 참 흥미로운 주장이로군요.”
  최 박사가 눈을 반짝였다.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의 격차 – 삶의 질이 귀하고 높아짐으로서 죽음은 천해지고 낮아지고, 그래서 삶에 집착이 강해졌다?… 그것은 다시 죽음에 대해 불안 공포 비애 거부를 더 무겁게 하겠지요. 재미있군요.”
  “방정식으로 값을 쳐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박 기자가 말했다.
  “삶의 값과 죽음의 값?”
  “글쎄요, 그건 원래 같았던 것 아닐까요?”
  “같거나 적당했겠죠.” 안 해만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삶의 질이 발전했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 삶에 집착이 강해진 동기가 그것이며, 그것이 또한 균형을 깨뜨렸다고 봅니다. 쉽고 편하고 간단하고 넉넉하고 보기 좋은 삶이 경제력에 의해 좌우됨은 모두 인정하시겠지요. 너도나도 돈돈 하다보면 인간의 죄는 그만큼 많아지고 무거워지게 됩니다. 죄가 무거워질수록 신은 수명을 늘려줘야 하겠지요. 살아서 회개할 시간을 줘야하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욕을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산다는 것과 같은 논리일 겁니다.”
  “그 참, 하나의 조크 같은 말을 진지하게도 하시는 군요.”
  
  19
  “가만. 지금 이 자리가 무슨 자립니까. 죽음이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시는 겁니까?” 경찰관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런 자리에 어쩌다 제가 있는 거지요?”
  “협박 받고 있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파트너인 여자 경찰이 귀띔해 주었다.
  “옳지, 맞아요. 자 토론은 나중에 하시고 우선 공무를 끝내겠습니다.”
  경찰관은 일어서서 중앙으로 갔다.
  “지금은 어떤 입장입니까? 아까와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은데, 아직도 협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찰관의 물음에 이 태호는 얼른 답을 못했다. 안 해만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원인을 제공한 그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이곳에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요구는 있습니다. 그 부분이 해명되기 전에는 저는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이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경찰관은 고개를 돌려 안 해만을 보았다. “이제 선생이 원하는 것을 밝히십시오. 저 분을 무고죄로 고발하시려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경찰서에 오셔서 고발장을 접수하셔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과 죽음, 즉 인간 운명의 순리에 대한 것입니다.”
  안 해만은 일어서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여기 신부님이나 스님이 계신 것이 제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성직을 수행하는 분들은 영생을 믿으라고 하시죠? 영생을 믿으라고 하면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지요.”
  선운 스님도 곽 신부도 동의했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기에 육체의 삶과 죽음이 문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도 귀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낙태를 반대하는 운동도 벌리고 있습니다.”
  “육체로 태어나는 생명을 특별히 존중해서 하는 운동입니까?”
  “생명은 어떤 형태에서도 존중 되어야 됩니다. 존재 자체가 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신의 뜻이라고 하셨죠. 그럼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태어나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지우는 것이 신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자연스런 죽음을 방해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생명체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 치 앞일도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삶의 연속으로서 아름답게 맞이하기 위해 늘 주변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온전하고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보다 억지로 당하는 사건으로 생각해 준비하지 않으려 합니다.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불행한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가치 있게 살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내세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더욱 삶에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
  “나는 아닙니다. 넉넉한 가운데서의 죽음은 내 삶의 성취요 완성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적어도 나에게 죽음은, 두렵고 불안하고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기꺼이 받아들여 애벌레가 나비로 승화하듯 발전을 위한 변화의 과정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
  “여기 누가 내 믿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까?”
  일순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의 한마디, 한 마디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게 분명했다. 한 국장이 발언권을 달라는 듯 손을 들고 나섰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그런 믿음을 갖게 된 데는 아무래도 어떤 사연이 있는 듯 보이는 군요. 그 동기나 배경을 들어볼 수 없을까요?”
  “그렇군요.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 동기가 있을 것 같네요. 들려주시지요.”
  최 박사가 재청했다.
  “……”
  안 해만은 입을 열 듯 말 듯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이야기해 봐야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실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는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시지요.”
  한 국장이 거듭, 정중하게 요청하자 안 해만은 말했다.
  “내 어머니였습니다. 노인이었죠. 혼자 집에 계실 때 누전으로 불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시다 일을 당했습니다. 한 택배원이 물건을 배달하러 왔다가 불을 목격했고,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냈습니다. 곱게 늙으신 어머니였는데 온 몸에 4도 화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렇게 구출되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나는 그 택배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
  모두 조용했다. 그 다음에 나올 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의 우리 가정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해도 해도 끝없는 어머니의 수술비는 경제적 파탄을 몰고 왔고,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 행복했던 가정의 단란함을 산산이 부서뜨렸습니다. 온 가족, 온 구성원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3년도 안 되어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머니는 세 번의 자결 시도 끝에 결국 비참하게 절벽에서 몸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저런… 저희가 아픈 상처를 건드렸군요.”
  한 국장은 미안해했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여기저기서 동정의 소리가 들렸다. 안 해만은 계속했다.
  “아마도 불이 난 현장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비록 비명에 가셨지만 성대한 장례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상황은 반대가 되어 장례도 더 이상 초라하고 쓸쓸할 수 없었습니다.”  “……”    
  “처음과는 달리, 우리 가족은 어느 한 사람도 그 택배원을 고마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 택배원은 내 어머니를 구한 일로 용감한 시민상도 받고 소방청장 표창장도 받고 직장에서 승진도 하고… 각계에서 성금도 보내지면서 삶이 한층 나아졌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살폈습니다. 우리 고유의 삼신신앙 운명론까지 읽어가면서. 그렇게 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만약 택배원이 어머니를 구하지 않고 소방대원처럼 구할 위치의 사람이 구했다면 그건 숙명이 됩니다. 그러나 택배원의 행위는 인정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살아있는 무속이기도 했습니다. 택배원의 그 행위는 어머니가 누리고 있던 복을 대수대명해가는, 해서는 안 될 무서운 행위였습니다.”
  “그건 좀 무리한 해석 아닐까요?”
  한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안 해만은 눈을 치떴다.  
  “내가 처음에 말했지요.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당사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어머니의 원혼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것을 나는 여실히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안 해만은 제동을 거는 듯한 한 국장의 말에 불쾌감을 보였다. 한 국장은 미안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 인간은 보이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일은 모르는 게 정상입니다. 운명이나 미래, 행복이나 불행, 죽음 이후, 영혼 따위는 살아있는 그 누구도 모르는 영역입니다. 각자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느낌을 소중히 할 뿐이니 다만 그 느낌들이 존중되어야 하겠지요.”
  그 말끝에 누군가 외쳤다.
  “맞아요. 그 말씀이 맞습니다.”
  안해만은 그게 누군가를 찾아보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심령술사 등 영험하다는 무속인을 찾아 처방을 구했습니다. 여러 처방 중 가장 가슴에 닿는 방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택배원을 어머니 앞에 무릎 꿇리고, 어머니를 구함으로서 얻은 것을 모두 내놓고, 잘못했다고 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뭡니까. 마치 회교 율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강론을 듣는 것 같군요.”
  한 국장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곽 신부는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찾아가 만나서 이야기를 했죠. 아니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기름진 배를 만지며 웃을 뿐이었습니다. 길을 막고 물어보십시오. 그 무서운 불길 속에서 어머니를 구해준 사람에게 그게 할 소리냐고 되묻더군요.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법으로 하시지요.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럴 수 있죠. 사회 통념상 이해가 안 될 소리지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의 웃는 모습에서 내 어머니의 행복했던 시절 웃으시던 모습을 제가 본 것입니다.”
  순간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갑작스런 정적에 휩싸였다. 마치 안 해만의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나타난 것 같았다. 안 해만은 잠시, 그 순간을 회상하고 나서 말했다.
  “더 이상 그에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불현 듯 그를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도 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잠자코 그를 바라만 보며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니까 그가 변화를 보였습니다. 차츰 몸 둘 바를 몰라 하더니 이윽고는 덜덜 떨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더군요. 그 과정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과 택배원 본래의 모습이 무수히 교차하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안 해만은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았다. 허공을 보는 것이었다.
  “시간이 체념을 하도록 주었습니다. 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그 사람 안에 살아있는 어머니를 내가 어쩔 도리는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여, 내 어머니를 구함으로서 얻은 모든 것을 내놓고, 어머니 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살아서는 이루지 못할 과업으로 여기기로 한 것입니다.”

  “고전 소설 같은 이야기군요.”
  “전 무속 영화를 보는 것 같네요.”
  “죽어서 할 일을 찾는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군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나왔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다.
  “스스로 죽을 수는 없지만 죽음이 오는 것을 거부할 마음도 없이 산 건 그래서였습니다. 죽으면 죽는 대로 할 일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삶이 여간 편하고 여유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곧 무심(無心)이요 불성(佛性)이죠.” 스님이 말했다. “불성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의 전환으로 생사의 초월이나 극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제 보니 안 선생은 살아있는   부처시네요.”

  “그런 나에게,” 안 해만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이 태호를 가리키며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열기가 실리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이번에 똑같은 행위를 했습니다. 이제 나는 이 자가 내 운명을 대수 대명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 얼마나 분통터지는 노릇이 되겠습니까!”
  안 해만 선생은 호소력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 사람 때문에 내가 그런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겁니까.”
  “그 참 난감하군요. 듣고 보니 이해는 되는데 그렇다고 이 태호 부장을 나무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한 국장이 난색을 하며 말했다.
  “좋아요. 정리를 합시다. 어쩌면 되겠습니까?” 이 태호가 말했다. “나 보고 답을 달라는데 솔직히 나는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요구를 하십시오. 요구에 따르겠습니다.”
  안 해만은 모두를 보고 말했다.
  “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했다는데 아무런 기대 없이 그랬겠습니까? 아무런 공명심 없이 나섰겠습니까? 무엇인가 제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저를 구한다고 나섰습니다. 그냥 두어도 살 운명이면 살고, 죽을 운명이면 죽었을 타인의 운명에 아무런 사회적 자격 없이 제 마음대로 간섭을 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요. 잘못했습니다.” 이 태호는 억울해 하며 소리쳤다. 이 태호의 얼굴은 완전히 붉은 색이었다. “그러나 넘겨짚지 마십시오. 나는 선생을 구하면서 기대한 것이 없습니다!”
  이 태호는 발버둥 치듯 했다. 안 해만은 웃었다.  
  “솔직히 말해요. 그래야 나에게 용서를 받아. 자기만족을 위하거나, 좋은 일 한 번 하자는 최소한의 공명심조차 없었다고?”
  “……?”
  안 해만은 신부의 손에 들려있는 성경을 빌려 이 태호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에 손을 얹고 말해봐. 정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어?”
  “얼마든지 손을 얹고 말하지요. 아무런 기대도 없었습니다.”
  이 태호는 거침없이 성경에 손을 얹고 말을 씹어 뱉었다.
  “가증스러운 놈. 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말을 하다니!”
  “아니오. 진실입니다.”
  “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물속에서 허부적거리는 그 지경에서 누가 구해 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 수영을 할 줄 알면서 구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허우적거리는 동작 자체가 구원요청 아닙니까?”
  “도우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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