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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단편
2022.07.03 13:08

회춘의 빛 – 씨놀(Sea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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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설/ 보타메디


 

1

 

저희 연구 결과를 전부 공개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투자자가 있어 일부 시장에 선을 보이는 겁니다. 1999년에 천연물신약 카테고리로 들어왔고, 2004년 이 물질에 씨놀(Seanol)이란 이름을 제가 붙였습니다. 바다(Sea)와 폴리페놀(polyphenol)의 합성어입니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새로운 식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저희 연구팀의 산물이기에 제가 아니라 우리의 발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것도 아니라는 자세입니다. 우린 미래 세대에게 줄 선물을 발견하고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로 인해 앞으로 인류의 수명과 질병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개발품이 1,000조 이상의 가치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증명해 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글쎄요. 어떻게 증명할까요. 허가서 등록증 같은 걸 보여드리면 될까요?

씨놀을 이용해서 미웨이라는 식품을 만들어 20205월부터 시판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식품의 전문가는 주부나 주방장이겠죠. 음식 체인점을 하는 식품 사업가도 될 수 있겠네요,

병 고치는 건 관심없습니다. 식품이니 우리는 식품 전문가로부터 좋은 평가 받으면 됩니다.

한 달에 식재료를 2천만 원어치 사서 4천만 원 매출 올리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미웨이를 사용하면 식 재료비가 15백만 원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이익이 25백만 원이 되나요? 아닙니다. 음식의 맛과 질이 높아지니 매출은 30% 이상 늘어납니다. 식재료비를 5백만 원 줄이는 데 사용되는 미웨이 값은 5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우리 제품의 논리입니다. 출시되자마자 재 주문율이 100%임은 물론, 전국으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습니다.

상추가 며칠 되어 시들었을 때 미웨이 한 스푼 넣은 물에 상추를 적시면 곧 싱싱해집니다. 족발을 삶을 때 한 스푼 넣어주면 부드러워지고 냄새도 없어집니다. 밥 지을 때 한 스푼 넣으면 이삼일 지나도 하얀 밥이 누래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큰 스픈이 아닙니다. 티 스픈 하나의 양으로 그런 훌륭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씨놀을 이용하여 상품화한 만나스 올(All)2020년 초에 상품화했습니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마시는 줄기세포 활성화제입니다. 물에 넣으면 잘 녹습니다. 하루에 한 번 500cc의 물에 만나스 올 0.7g을 타두었다가 목이 마를 때 음료로 마시면 질병이 있는 사람들에겐 놀라운 개선 효과가 나타납니다.
위장장애가 있어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은 4, 5일 이내에 개선이 되고. 얼굴색은 2주 이내에 밝아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운동 능력이 향상되고, 몸무게가 줄고 체형도 점차 바로 잡힙니다. 성장기의 청소년은 키 성장에 효과가 크고, 성인도 2~3cm 커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피부가 개선되는 효과는 두세 달이면 확연히 나타나고, 나아가 뇌 기능이 젊어지기에 어느 정도 진행된 기억장애나 치매, 중풍 등도 진행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습니다.

우린 이 기술을 탄생시키기까지 20년을 연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중 15년을 재래식 연구로 보내 시간을 낭비한 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 연구가 결과 탄탄해진 면도 있을 겁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최근 5년간 오늘의 씨놀을 이만큼 완성했습니다.

중장년 이상이 되면 누구나 가져보는 희망이 있습니다. 10년만 젊어질 수 있다면, 아니 5년만 젊어질 수 있다면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수많은 임상에서 구부러진 노인의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습니다. 완전히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머니는 펴지는데 3년 걸렸고, 약간 구부러진 할아버지 허리는 두 달 만에 펴졌습니다. 치매가 심해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던 할머니가 예전처럼 딸을 알아볼 수 있게끔 도와드리는 데는 8개월이 걸렸습니다. 씨놀이 일정 수준까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도와드린 것입니다. 꾸준히 드시면 좀 더 나아지시겠지요.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까요? 우리의 개발품이 1,000조 이상의 가치라는 말이 이제는 실감되실까요?

 

이게 약입니까? 치료입니까? 하고 묻지 마십시오. 이것은 식품이고 회춘입니다. 그러면 값이 엄청 비쌀 것 같습니까? 비용도 하루 3천 원 내외, 라면 한 그릇 사서 드시는 값에 불과합니다.

조선의 명의 허준도, 중국의 전설적 의사 화타도, 우리 모두 잘 아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이 곧 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몸 안의 자연치유력이 모든 질병의 진정한 치유제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제품은 근원에서 우리 몸 안의 자연치유력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물질이며 음식입니다. 핵심은 세포입니다.

나이 들면 피할 수 없는 노환은 근감소증이 이끕니다. 근감소증은 WHO가 인정하게 된 질병으로 의료보험 코드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약도 없고 치료는 더더욱 캄캄합니다.

나이 들면 세포 내 수분이 감소하고 그러면 세포 자체가 쪼그라드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세포에 수분을 다시 채워주어 젊고 건강할 때의 세포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노화는 방지되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의 연구 테마입니다. 세포 안에 수분량이 적정하면 건강해지고, 건강한 세포가 연쇄적으로 건강한 세포를 생산합니다.

모든 화학성분은 서로 결합합니다. 물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서 생깁니다. 제일 센 결합은 금속결합으로 소금 나트륨하고 염소가 붙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센 결합은 수소결합입니다. 물은 물끼리 연결됩니다. 그런데 물은 온도가 높아지면 날아가고 흩어집니다. 우리 물질이 들어가서 물들을 결합시켜 그물을 만들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로 만들어진 그물이 물이 든 세포를 감싸므로 세포 안에 수분을 적정하게 유지시키니 건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포끼리는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니 그 시너지 효과는 우리가 함부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2차 성징까지 한다는 게 이제까지의 정설입니다. 1차는 태어났을 때 생식기만으로 남녀를 구분지을 뿐 몸의 변화는 상관없습니다. 2차 성징은 사춘기나 청소년 때 남녀가 신체의 변화를 보이며 성숙해지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제 우리 제품으로 3차 성징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소화기의 세포든 이틀이면 다 새로 납니다. 피부세포는 4주 걸립니다. 백혈구는 2시간 적혈구는 6~8주가 생명입니다. 건강한 세포가 더 건강한 세포를 만들어 바톤 터치 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걸 정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3차 성징 시대를 견인합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처럼 뼈와 근육이 바뀐다는 것, 노인에게 근육이 생기는 걸 우리는 3차 성징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은 6070대가 되면 대동소이해집니다. 배는 내려오고 근육은 없어지고뼈가 다시 단단해지고 근육이 생기면 걸음걸이며 자세가 모두 달라지겠지요. 중년 부인들의 처진 가슴이 다시 올라오는 사례는 많이 봤습니다. 할머니들 가슴 올라오는 건 아직 확인 못 했지만요. (웃음)

 

노인이 저리되면 아이들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까 궁금해지지요? 아이에게 임상을 하니 뼈의 밀도가 현저히 높아지고 성장도 빨라졌습니다. 10세 전후의 아이들은 100일 사이에 8센티 정도 크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크면 보통은 훌쩍 마르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장딴지가 딴딴한 상태로 성장한걸 보면 키가 크면서 근육까지 좋아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세포가 활성화된 증거입니다.

이렇게 결과가 환상적이니 의심을 하고 시비 거는 학자들이 왜 없겠습니까. 세포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걸 못 나가게 하는 거지 들어오는 게 증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말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세요? 일단 지금의 세포에 수분의 양이 증가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건강해졌지 않습니까. 그거면 된 거 아닙니까?

 

시든 상추가 싱싱해지고 커졌다고 하니 물을 먹여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시 시들해질 것이라고 호언하면서 지켜본 주방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채소 세포에 수분이 들어가 세포대사가 활성화되고, 그 세포가 이웃 세포를 건강하게 해주기에 4~5일 가도 그대로 싱싱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그 주방장들은 하나 같이 미웨이 홍보대사로 변신했습니다.

그러면 암 환자도 되돌릴 수 있느냐? 암이 현대 사회에 주는 부담이 무거운 만큼 당연히 나와야 하는 질문이겠지요. 암이 무엇일까요. 비정상으로 발생되는 세포입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암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암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중간에 보고드리는 식으로 말하면 진행이 멈추기는 하는데 돌린다는 확신은 아직 못 얻었습니다. 초기 폐암 환자와 초기 유방암 환자 임상에서 이런 사례는 있었습니다. 조직검사 후 암 확진을 받은 분이 치료 중에 씨놀을 만났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정밀검사를 해본 의사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진이었나 봅니다. 암이 아니네요.”

진행을 멈춘 사례입니다. 우리 연구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지요, . 이거 정말 엄청난 거구나.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이것도 시중의 많은 제품처럼 만병통치라는 물질이겠네요, 하는 비웃음 섞인 소리로 비하하려 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근원에 들어가 세포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장기를 세분하면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포끼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 건강한 세포는 이웃 세포를 건강하게 합니다. 세포가 건강하면 몸은 좋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 상처나 바이러스에 집착을 합니까. 병균을 죽여서 내 세포를 보호하려 하지 말고, 내 세포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병균이 자생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알약을 먹거나 연고를 발라서 병균을 쫓아내면, 그 병균은 일시 도망갔다가 약효 사라지면 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식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신약이 아니고 식품이라니까 투자자 중에는 가볍게 여기는 분도 있었습니다. 등하불명 같은 소리입니다. 식품시장은 약 시장의 5배 규모입니다. 약 시장이 년 2,000조라면 식품시장은 경에 가깝습니다.

상추나 족발, 쌀밥을 예로 들었지만 닭 튀기는 기름에 넣으면 30% 덜 들고 오래 쓰고 맛도 좋고 더 아삭거립니다. 냄새도 잘 잡습니다. 기름이 산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씨놀은 이렇게 모든 생물에 작용합니다. 일본의 아지노모도, 한국의 미원 미풍이 한 때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했었지요. 지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화학물이 아닌) 자연물이면서 효능은 월등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FDA로부터 식품으로 또 의약품으로 동시에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당뇨합병증 임상허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약품이 아니고 식품이라고 하느냐? 약이라면 국내는 물론 국제무역에서 인증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국력이 막강한 미국이나 일본 중국의 약을 한국에 들여와 판매허가를 얻는 건 쉽지만 반대로 국력이 약한 한국의 약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의약품은 허가 없이 팔 수 없는 게 상식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식품은 어느 나라도 막지 않고, 또 막을 수 없습니다.

3000년간 인류가 찾던 독성이 없는 식품이자 의약. 2천 년 전 인류가 소금을 발견한 것과 같은 쾌거. 그것을 순 한국인들인 우리가, 씨놀연구회가 해냈습니다. 이제 씨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로 함께 가실까요?

보타메디 리서치(Btamedi Research)CEO 이행우였습니다.

 

2

 

주말 오후, 모처럼 집에서 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행우가 안 보이네. 어디 갔나?”

나가서 놀아요. 공원에서 동네 형들하고.”

또 공이야? 그 녀석 커서 농구선수가 되려나?그림 있는 위인전 사준 건 좀 보나?”

가끔 봐요. 그런데 걔는 책보다 공 가지고 노는 게 더 좋은가 봐요.”

한창 클 때니까 마음껏 놀아야지그러나 놀 땐 놀더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무 걱정마세요. 때가 되면 하겠죠. 머리는 있는 것 같으니까?”

어머니가 보기에는 그랬다. 행우는 아이큐가 아주 높은 아이로 보였다. 관심이 없을 때는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무엇엔가 일단 관심을 가지면 당해내는 또래가 없었다.

행우는 1957년 대구에서 면장을 지내시던 이정형의 일곱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평범한 전업 주부였지만 아이들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었는데, 그러나 여섯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7년의 공백 후 마흔다섯에 만난 늦둥이 막내 행우에게 느끼는 정은 다른 아이 때와 달랐다. 행우만큼은 공부 부담 주지 않고 자유롭게 놀면서 소질을 키우며 자라게 하고 싶었다. 생각이 그랬던 만큼 어머니의 행우에 대한 관찰은 다른 아이 때 보다 세심했다.

 

행우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서울로 이사했다. 면장을 그만두고 서울에 와 작은 규모의 섬유가공업을 했다. 자녀를 일곱 명이나 둔 가장으로서 공무원 월급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섬유가공업은 아버지에겐 모험 같은 도전이었고, 자본도 넉넉지 않은 상태여서 온 가족이 이사하지 않고 막내인 행우만 데리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한남동에 자리를 잡았다가 장충동으로 옮겼다. 대구의 집은 그대로 두어 여섯 남매가 살도록 했다. 순서를 따지면 형, , 누나, , 누나, 형 그리고 행우 순이었다. 제일 작은 형이 행우와 일곱 살 차이여서 형들이 행우를 애기 취급하고 놀아주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당시 맏아들은 스물여덟으로 학업을 마치고 군 복무도 끝낸 뒤 직장에 다니는 때였고, 그 밑의 형도, 또 누나도 대구에 다 직장이 있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행우는, 틀에 박힌 학교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도 행우는 선생님 말씀은 잘 듣지 않고 공상하기를 좋아했다. 상상력이 풍부한만큼 궁금한 것이 많아 기회만 생기면 질문을 했다. 행우는 질문으로 따는 점수로 충분했다. 한편에서는 시간만 있으면 공을 가지고 놀았다.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은 중간이었다.

 

어머니가 행우의 아이큐 높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웠다. 구구단을 외우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 입에 달고 지내면서 자나 깨나 익히는 게 보통이었다.

행우는 3학년이 되어서도 구구단을 몰랐다. 아무리 다른 형제와 달리 방임하면서 기르자고 속내를 다졌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일이었다. 어느 하루, 어머니는 한숨을 섞어가며 말했다.

네 형들은 1, 2학년 때 모두 글을 다 익혔고 구구단도 달달 외었는데 너는 3학년이 되어서도 구구단 하나 제대로 모르니 장차 뭐가 될지 걱정이구나.”

그러자, 어린 행우는

그렇게 걱정되시면 구구단 해 볼게요.”

하더니 이틀 만에 어머니 앞에서 달달 외우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놀랍고 대견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면 그렇게 잘하는 것을, 행우 머리가 비상한 걸 엄마는 진작부터 알았지. 뭐 먹고 싶니?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그때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행우의 가슴에 새겨졌다.

 

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여름에 사건이 생겼다.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넘어져 머리를 많이 다쳤다.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급히 병원에 실려 갔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어린 행우는 안타깝고 슬펐다. 입원해 계신 동안 행우는 학교 시간 외에는 병원에서만 지냈다. 어머니는 말했다.

행우가 옆에 있어서 좋기는 한데, 그런데 행우야. 엄마는 네가 공부하는 모습이 더 보고 싶어. 엄마 옆에서 공부할래?”

저 공부 잘해요. 책 한 번만 보면 다 알아요. 중간쯤 하면 되잖아요?”

행우는 어른스럽게 답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중간으론 안 돼. 1등을 할 수 있는 아이야. 1등 할 아이가 중간쯤 하면 되겠니?”

여기서는 말고요. 엄마 다 나으면 공부할게요.”

엄마랑 약속하는 거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되었다. 그 해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3학년 2학기를 시작할 때 이번에는 학교에서 벌어졌다.

1학기를 마친 행우의 성적은 72명 중 딱 중간인 36등이었다. 가을학기가 시작될 때 담임선생은 특이하게 자리를 바꿔주었다. 1등과 36등이 같이 앉고, 2등은 37등과 3등은 38등과하는 식으로 자리 배치를 새로 해준 것이다.

1등인 여학생 재빈이와 같이 앉게 된 행우는 반갑다고 눈인사를 하며 앉았는데 재빈이는 새 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쌀쌀했다.

난 아직 5등 이내 들지 않는 애하고 짝을 해본 일이 없어. 넌 내 짝이 될 자격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하자고?”

선생님에게 항의할 거야. 짝을 바꿔달라고.”

그러면서 재빈이는 백목으로 책상 가운데 선을 긋고, 넘어오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

행우는 어이가 없어 머뭇거리다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럼 내가 5등 안에 들면 되겠구나?”

그랬더니 재빈이는 홱 고개를 돌려 행우를 보았다.

그게 가능하겠니? 36등이 어떻게 5등이 되니?”

다음 시험 때 보자.”

재빈이는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픽 웃으며 같이 앉은 것을 창피해했고 행우는 두고 보라며 씩 웃었다.

행우는 어머니와의 약속도 겹쳤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복습했다. 다음 성적 발표 때 행우는 1등을 했고 재빈이는 3등으로 밀렸다. 재빈이는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너 천재였니?”

행우는 이때도 어린아이답지 않게 능청을 떨며 말했다.

네가 자극을 준 덕분이야. 결국 네 덕분이지. 고마워.”

……?”

재빈이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후 행우가 싫어할 언행은 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행우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1등에서 잠시도 물러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장독대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어머니는 이후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어야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도 엄청 많았다. 아버지가 일하러 가신 날은 행우가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병원에 가면 행우는 묻는 게 많았다.

우리 엄마,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예전처럼 건강해지실 수는 없나요?”

약은 왜 그렇게 많아요? 약 안 드시면 안 돼요?”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미뤘고, 의사는 권위적인 모습만 보이며 잘 설명해주지 않았다. 간혹 한마디 해주는 것이 네 어머니는 넘어져서 다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환 때문이야.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지 않겠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하고 뭉뚱그리는 소리였다.

그래도 장독대에서 떨어지시기 전에는 건강하셨어요.”

그래. 큰 사고였지. 아마도 그 때문에 혈류장애가 생기신 것 같아. 그렇다면 노환에다 혈류장애가 더해진 거지. 그게 무슨 질환인지 알겠니?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텐데.”

하는 정도였다. 의사고 간호사고 행우가 알아듣게 답을 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에게 물어도 역시 답이 시원치 않았고 당사자인 어머니도 그때 그때 증세만 호소할 뿐이어서 행우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머리가 너무 아프구나. 두통이

어떻게 할까요. 병원에 가실래요?”

병원은 뭘, 엊그제도 다녀왔는데저기 선반에 있는 약을 다오.”

어머니는 약을 먹으면서 혼잣말을 한다.

에이그. 잠자는 시간 빼고 왜 이렇게 계속 아픈 건지오래 못 살 것 같구나.”

어린 행우는 펄쩍 뛰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오래 사실 거예요. 엄만 오래 사셔야 해요.”

그럼 얼마나 좋겠니. 우리 행우 결혼해서 아들딸 낳는 것까지는 보고 죽어야 하는데

크면 부모님은 제가 모실 거예요.”

에이그. 말이래도 대견하구나.”

 

행우가 급체를 한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당연히 약을 사다 주셨는데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엄마. 약을 먹었는데 왜 낫지 않아요.”

어머닌 웃었다.

약 먹는다고 금세 낫니? 며칠 지나야지.”

며칠 지나야 되는 거면 약 안 먹어도 되잖아요?”

행우의 말에 어머니는 또 웃었다.

그래도 약을 먹어야지.”

 

쉰여섯에 머리를 다친 어머니는 85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약을 달고 사셨는데, 아픔이 덜할 때면 틈틈이 어린 행우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버지가 사주신 그림이 있는 위인전 전집을 다 읽어주셨는데 발명왕 에디슨이나,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 등 행우처럼 일곱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위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전기는 반복해서 읽어주면서,

우리 행우도 일곱째고 막내고 머리가 좋지? 천재의 재능을 타고난 거야. 행우는 나중에 어떤 위인이 될까?”하며 기대를 보이곤 했다.

 

3

 

막내에 대한 부모의 정을 남다른 게 보통이다. 행우의 부모에겐 그런 막내가 늦둥이라 더 그랬다. 행우가 순한 데다 붙임성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다만 흠은 공부가 시시하다며 통 안 하는 것이었다.

행우로선 목표가 무산되어 더 하기 싫었다. 4학년 5학년 지속해서 일등을 한 것은, 내친김에 당시 최고 명문이라는 경기 중이나 서울 중에 진학하자는 목표에서였다. 그런데 5학년인 1968년 입시제도가 사라지고 중학 입시 평준화가 시행되었다.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거주지에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중학생이 된 행우의 성적은 다시 중위로 밀려났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행우는 공부보다 농구를 좋아했다. 또래에서는 키가 크고 훤칠한 편이어서 주위 사람들 모두 농구선수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행우 자신도 그 때는 농구 선수가 되는 꿈을 가졌었다. 행우는 농구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정신력을 다졌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활동하는 팀워크의 중요성도 익혔다.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조화라는 것을 일찍 터득했다.

 

한번은 타교 학생들과 농구 시합을 가졌는데, 주전인 자기가 지쳐 이길 수 있는 게임에서 진 적이 있었다. 그건 팀에 대한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걸 행우는 깊이 깨닫고 반성했다. 평소에 체력을 다져놓는 게 팀에 대한 기본 의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농구에는 그렇게 열정을 보였지만 공부에는 소홀한 갓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겨울방학 때 어머니 병이 다시 악화되었다. 대학병원을 전전했지만 여전히 병명 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의사들은 병명도 모른다면서 유사 질환에 준거해 약을 처방해 주었다. 철이 들기 시작한 행우는 의료계의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니 풀리지 않는 수학 공식처럼 머리를 어지럽혔다.

인간의 생명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겨울방학 기간 내내 행우는 고민했다. 고민 끝에 결국 직접 생명공학을 공부해 보자 하는 마음에서 이과로의 전과를 결심했다.

 

이때까지 행우에게는 장래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때문에 성적이 모자라는 과목이 있어도 과외수업 따위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학교 수업이 전부였다. 성적은 항상 중위를 맴돌았다. 농구에 대한 집착이랄까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농구 역시 (그가 다니는 학교가 농구에 명문도 아니었기에)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운동이었다.

그는 사범대학교부속고등학교(사대부고)를 다녔는데, 3학년에서 이과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하는 애들은 몇 있었지만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 신청은 그해에 행우 한 명뿐이었다. 담임선생은 걱정했다.

지금 너의 성적으로 전과해서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선생님이 보기엔 아닌데

노력하겠습니다. 문과에서 제 진로가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학교 가려고?”

연대나 고대를 희망합니다.”

목표를 이루려면 엄청 공부해야 하는데. 선생님 판단에 현재 성적으로는 불안해.”

해 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봐. 잘못하면 중요한 시기에 미아가 될 수 있어.”

해 내겠습니다.”

행우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선택이 쉽지 않은 것은 목표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은 의학이나 생명공학을 하겠다는 목표가 생긴 뒤였다. 다행히 그는 수학과 영어는 뛰어나게 잘했다. 행우의 의지가 단단함을 확인한 담임선생은 더 반대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목표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고려대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의대는 낙방했다. 대신 2지망으로 써낸 것이 화학과였는데 그것으로 굳어졌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화학으로 접근해도 얼마든지 생명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기 떼문이었다.

그가 재수를 해서라도 의대를 고집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고려대학교 의대는 정통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돌았기 때문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병원과 의대를 갖고 있었지만 재단 이사장의 잇따른 사업실패로 경영난에 부닥친 우석대학교를 고려대가 흡수 합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고대 내에는 은연 중 의대보다 화학과를 더 당당한 고려인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던 것이다.

입학 첫날 첫시간에 화학과 주임교수는 인상적인 한마디를 해주었다.

화학이란 아무도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증명한 사람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배우는 것이 화학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도전 정신이 강한 행우에게는 달달 외우는 쪽이 많은 의대 학습에 비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화학의 세계가 더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확신했다.

 

4

 

옛말에 골골 백 년이라 했는데 행우 어머니가 그랬다. 장독대를 오르다가 계단에서 굴러 머리를 다친 이후 골골, 하며 잔병치레는 많이 했지만 큰 질환은 없었다. 어머니 건강에 대한 걱정을 덜 하게 된 행우는 고3 때의 결심이나 의지가 한결 느슨해졌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중위권에 머무는 건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농구에 대한 열정은 대학에 와서 더 뜨거워졌다. 그는 농구를 통해 팀의 경영이며 나아가 마케팅까지를 몸에 익히게 되었다.

팀워크가 작동하는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훌륭한 선수일수록 자기희생을 기록으로 남기며 팀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 스포츠가 주는 아름다운 메시지인 것이다.

경기를 하다보면 친목을 위한 플레이도 있지만 져서는 안 되는 게임도 있었다. 이런 경우, 행우의 매니저 역할이 빛을 발하곤 했다. 상대 팀 전력과 전술에 대한 정보 수집은 물론 자기 팀의 대응 훈련과 체력 유지로 무장하여 이겨야 하는 게임에선 꼭 승리를 가져왔다. 그는 그렇게 농구에 몰두하면서 대학 생활을 즐겼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과 여학생과 로맨스도 피어났다.

화학과는 남자들이 선호하는 학과여서 여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 몇 안 되는 여학생 사이에 육인숙이라는 조신한 여학생이 있었다. 미팅 따위는 펄쩍 뛸 정도로 집과 학교밖에는 모르는 여학생이었다. 엄한 가정에서 자란 듯 품행이 단정하고 예절이 몸에 배어있어 쉽게 다가가 지지 않는 여성이었다.

로맨스의 단초는 1학년 때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대학 화학과 체육대회였다.

워낙 조신하여 남학생과 어울리기는커녕 말도 잘 안 하는 여학생 인숙이가 행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전국의 화학도가 모이는 체육대회예요?”

행우는 자기를 선택해 말을 걸어오는 것이 반가웠다.

그렇죠. 그러나 체육대회니까, 운동에 관심있는 학생들 위주일 거예요.”

저도 거기 가고 싶은데어떻게 가야 하죠?”

안암동의 고려대학교에서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가자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서울역에 흑석동 가는 버스가 있어요. 갈아타면 되죠.”

행우는 내심 나와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먼저 청하기 전에 제안하면 혹시라도 오해할까 조심스러워 버스 길을 알려주었다. 인숙은 뜨악해했다.

행우씬 안 가세요?”

당연히 가죠. 제가 농구팀 주전 겸 매니저인 걸요.”

그럼 가실 때 같이 가면 안 될까요?”

행우가 기다린 게 맞았다. 그녀가 먼저 제의를 했다.

그래도 되죠그런데 일행이 있어요.”

일행이 있으면 더 좋네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행우는 기분이 좋았다. 당시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누가 인숙이와 처음 데이트를 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중앙대학교에 데리고 가는 것이 데이트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스타트를 끊는 기분이었다.

농구경기가 벌어질 때, 그녀는 답례라도 하는 듯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행우를 응원했다.

체육대회 결과는 고려대학교가 우승이었다. 결과가 좋아서 대회를 마친 후 중앙대 근처에서 회식을 하는데 인숙이가 다가와 더 늦기 전에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은 상태라 행우는 뜨악했다. 그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일러주었다.

가시는 건 오신 길의 역순이에요. 여기서 가는 버스는 서울역으로 갑니다. 서울역에선 집에 가실 수 있잖아요.”

인숙은 행우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 데리고 왔으면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침없는 요구였다. 행우는 눈을 번쩍 뜨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래요? 잠시만요.

행우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여자가 당돌해 보이기도 했고 이게 과연 정당한 요구인가 의문이 일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잠시 생각한 끝에 그는 동료 학우들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일어섰다. 행우는 인숙의 요구를 일종의 프로포즈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체 남학생과 어울리는 일이 없었던 인숙이, 처음이면서 공개적으로 행우에게 의지하여 중앙대학까지 왔는데 갈 때는 혼자라면 초라할 것 같기도 했다. 그녀도 그런 생각에서 데려다 달라, 한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다음날 인숙은 어제 고마웠다고 거듭 인사하며 밥을 사겠다고 했다. 행우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겠다고 행우가 초대했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대학 같은 과 클래스메이트였던 만큼 두 사람의 데이트는 주변을 많이 의식해야 했다. 서로 좋아하다 혹시라도 다투거나 헤어지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나 서로에게 (학업에까지) 지장을 줄 것인데, 그런 경우 남자보다 여자 쪽의 피해 의식이 크리라고 생각한 행우는, 사전에 트러블이 생길만한 싹이라도 있다 싶으면 무조건 져주는 식으로 둘의 관계를 다져나갔다.

인숙이는 우수한 성적의 장학생이었다. 4년 연속 장학금을 받았다. 그런 만큼 행우가 공부 안 하는 걸 걱정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3학년에 올라가면서 행우가 ROTC(육군학군사관)를 지원했다. 인숙은 사귀는 친구로서 다소 부정적인 심기를 보였다.

공부하기 싫다는 걸 아예 광고하는 군요. ROTC에 지원하고.”

그러나 행우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느긋했다.

요즘은 안 그래요. 초창기에나 ROTC에 대해 부정적이었지 요즘은 경쟁률이 높아서 공부 안 하는 애들은 힘들어요.”

행우 씨가 무난히 합격한 걸 봐도 나에게는 아직도 아니네요.”

하하하. 그렇지 않다니까요내 영어나 수학 실력 좋다는 거 잘 알지 않아요?”

그 두 가지는 인정하지만

행우는 그렇게 여자 앞에서, 주장하지는 않으면서 우회해서 설득했다. 남자로서의 가치 있는 일은 밖에서 하면 된다는 게 행우의 자세였다.

재미있는 것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인숙이가 묻고 행우가 가르쳐 주었다. 그런 뒤 시험에 그 문제가 나오면 행우는 틀리고 인숙은 맞는 일이 많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렇게 대학생활 4년 내내 이어졌고 졸업 후 바로 결혼했다. 행우는 후일 이를 두고 프로포즈 없이 결혼했다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프로포즈는 여자 쪽에서 이미 했던 것 아닐까?

 

5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던 때가 국가적으로는 격변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가 선포되었고, 대학교 4학년 때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났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던 해 5 18 광주운동이 일어났고, 삼청교육대다 뭐다 하는 조치들이 잇달아 시행되어 사회가 냉각된 가운데 마침내 12/12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던 때 행우는 결혼하고 군에 복무했다.

병과는 당연히 화학이었는데 당시 육군의 상황에서는 딱히 화학장교로서의 역할이 없었다. 화생방 훈련이라는 게 있긴 했는데 독가스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이 덜 된 탓에 훈련 중에도 방독면 쓰는 것은 꺼려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행우는 위기상황에서는 방독면을 착용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안전한가를 역설하는 정도에서 주특기를 살릴 뿐 일반 보병장교나 다름없는 군생활을 했다. 한미연합훈련이나 협력 상황에서는 통역장교로 불려다니기도 했다.

 

군 생활 2년 차, 중위 때 팀 스피릿 훈련이 있었다. 팀 스프릿은 한국군에게는 최대의 연합훈련으로 거의 전 부대가 동원되었다. 청군과 황군으로 나뉘어 공격과 방어를 실전과 같이 하며 북한을 대단히 긴장하게 만드는 한미연합훈련이었다.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 본토와 해외기지에 배치하고 있는 미군을 신속히 투입시키고, 그 부대들로 하여금 한국군과 협동체제 하에 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인 만큼 미국으로서도 가볍지 않은 훈련이었다. 팀 스프릿은 보통 2주 동안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미 육··공군의 신속한 전략이동으로부터 지상 작전을 지원하는 공군작전, 한국 해역에서의 한미 연합 해상작전, 야전 기동훈련, 연합 상륙작전, 기동부대에 대한 지원 작전 등, 한국방위를 위한 협동태세의 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한 모든 훈련이 포함되어 있는데 행우가 입대하기 3년 전쯤부터는 참가 병력이 10만 명을 넘어섰고 동원 병기도 B-52 중폭격기 편대, 랜스 미사일 대대 등 핵 공격 능력을 갖춘 부대까지 동원되는 것으로 그 양상이 달라져 있었다.

 

훈련 중에 탱크부대가 연막을 치고 남한강을 건너는 작전이 있었다. (가상의) 적은 그걸 무반동 바추카포로 때리게 되어있어 탱크가 노출되면 안 되는 작전이었다. 작전계획은 보병이 짜는데 이 연막 도하작전 시간을 4시 반으로 잡아놓고 있었다.

연합지휘본부의 한국군 작전참모 변 대령은 시계를 보고 나서 이행우에게 명령했다. 탱크가 강을 건너야 하니까 연막 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시간에 맞춰 부교는 설치되었다. 이행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시간엔 아무리 연막을 쏴도 안쳐집니다.”

“4시 반에 건너야 해. 시간이 다 돼 가니까 얼른 준비해서 연막을 치라고.”

행우는 움직이지 않고 변 대령을 설득했다.

“4시 반이면 대기의 열기가 그대로입니다. 연막을 쏴봐야 공중에 둥둥 뜨고 바람에 다 흩어집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작전참모는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이행우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연막을 치라면 쳐. 이건 훈련이야. 연막 효과가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작전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지.”

행우의 상식으로선 명령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효과가 없을 걸 알면서 연막을 치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변 대령의 목소리가 커졌다.

, 잔소리 말고 치라면 쳐. 당장 나가서 연막을 쏘라고 지시하라고!”

참모님. 효과 없는 연막을 치느니 그냥 지나가면 되지 않습니까? 물자가 낭비되는 일도 없고.”

이 새끼가!”

얼굴을 붉히기까지 한 작전참모는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소리를 질렀다.

시간 다 돼 가잖아. 당장 가서 치지 못해?!”

한국군 진영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리자 옆에 있는 연합지휘부의 미군 작전참모 스티븐 대령이 “What happened?” 하며 다가왔다.

국군 작전참모 변 대령은 “Nothing하고 얼버무리며 행우에게 얼른 가서 명령대로 움직이라고 눈짓했다. 그래도 행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행우는 통역 업무로 스티븐 대령과 안면이 있는 처지였다. 스티븐 대령이 이행우 중위를 알아보고 직접 묻자 변 대령이 말을 가로챘다.

“4시 반에 연막을 치고 탱크부대가 도강해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이 중위 의견은 4시 반에는 연막이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이 중위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스티븐 대령은 이행우를 보았다. 이행우는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그 시간엔 대기의 온도가 높아 우리가 사용하는 발연기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훈련은 실전처럼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 효과도 없는 연막을 치고 탱크부대가 강을 건너는 게 실전 상황이라면 끔찍하게도 모두 희생당하고 말 겁니다.”

스티븐 대령은 물었다.

그렇다면 제시할 대안이 있소?”

행우는 거침없이 말했다.

해가 저물기 30분 전부터 대기에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게 보통입니다. 두 시간만 늦추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역전 현상이란 위의 대기 온도가 낮은 곳보다 더 높아지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낮에는 높은 곳의 온도가 낮아 대기가 순환하는데, 반대로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 대기가 순환되지 않음으로 연막이나 안개가 지표면에 머무는 것이다. 행우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며, 두 시간만 작전을 늦추면 그런 역전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스티븐 대령은 “I understandCopy that.” 하며 행우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변 대령과 함께 연합지휘부 작전회의실로 갔다.

회의 결과 행우의 제안대로 텡크부대 도하를 두 시간 늦춰 6시 반에 하기로 했다.

행우는 어깨가 무거워졌다. 막상 도강 시간이 변경되니 보통 긴장되는 게 아니었다. 연막 효과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기상 조건은 인간의 기대나 예측을 벗어나기 일쑤 아닌가. 밥 짓는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마을을 감싸는 때가 저녁이듯이, 일반적으로는 해질녁에 역전 현상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다.

연막을 치는 장비도 첨단 기술이 아니라 거리에 소독약 뿌리는 정도의 재래식 발연기였다. 행우는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6시 반부터 도강이 시작되므로 30분 전부터 행우는 가지고 있는 발연기 차량을 모두 동원해 연막을 쏘도록 조치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불과 20분 만에 짙은 새벽안개 같은 연막이 작전지역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가시거리가 1, 2m밖에 안 되는 연막이었다. 2사단장을 위시해서 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지휘관들이 이런 연막은 처음 본다고 극찬하는 일이 벌어졌다.

행우는 이 공로로 군사령관 표창 대상에 오르는 등 상훈 대상이 되었는데, 그런 상훈보다는 어떤 일을 할 때 (고집이 아닌) FM을 알고 있다면 그 FM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것을 더 큰 소득으로 여겼다.

 

6

 

전역 후 이행우는 한국화약에 입사, 정밀사업부로 발령받았다. 첫 직장이었다. 한국화약의 연구개발은 세 파트로, 하나는 화약사업부, 하나는 방위산업 쪽, 또 하나는 정밀(화학)사업부였다. 정밀사업부의 임무는 영농에 필요한 농약을 개발하거나 최신 기술을 도입해서 우리가 필요한 소재나 물질을 개발,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행우는 여기서 바이오의 세계에 접근했다. 앞에 ()’자가 붙어있지만 약 즉 바이오(bio)였다. 농약을 담당하면서 그는 농약이 사람 약보다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부가가치도 높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약은 듣든지 안 듣든지 단시일에 효과를 드러내고 끝나는 데 반해 농약은 한 번 뿌려놓으면 그것이 줄기를 타고 뿌리나 열매로 가서 그 뿌리나 열매를 사람이 먹기도 하고 또 토양에도 잔류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백 년을 봐야 하는 거였다.

또 사람의 약은 소화기관이나 호흡기 기관이나 혈관으로 넣어주면, 증상에 반응하고 소통도 할 수 있어 효능이 어느 정도인지 단시일에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 보통인데, 농약은 그 반응을 바로 알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특정한 부분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물리를 생각해야 했고 물질을 이동시키는 전달체도 살펴야 했다.

특히 살충제나 제초제, 육성제, 항균제 같은 농약은 독성이 강한 데다 비에 잘 씻겨 내려가지 않고 잔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끝내는 그 물질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사람에게까지 반응해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렇게 농약은 다루거나 쓰임에 있어 사람의 약보다 몇 배 까다로웠다. 농약을 만들다 사람의 약이 만들어지는 예는 많지만 거꾸로 사람의 약을 만들다 농약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는 일이었다. 기초 베이스가 없어 가벼운 신약 하나 만들어 내는 것도 버거운 우리나라라면 농약을 개발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실은 그렇지만 행우의 이상은 높았다. 한국화약 정밀화학팀의 연구는 물리화학을 넘어 양자화학. 나아가 생체고분자 연구까지를 테마로 하고 미래를 열자는 야심찬 기획을 갖고 있었다.

그 무렵 효소가 대두되었다. 생체 내 모든 화학 반응은 효소에 의해 촉매되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저분자를 산화·환원시키는 단순 반응에서 유전자 복제의 복잡한 반응에 이르기까지 관여하는 단백질의 기능 중 첫째로 중요한 것이 효소작용으로 드러났기에 이행우의 연구팀도 효소 연구를 바탕에 깔아야 했다.

 

그러나 연구 영역 그렇게 넓게 잡았지만 당장 기업에 돈이 되어주는 건 농약이었다. 이행우는 우리나라 농약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선발업체들이 취급하고 있는 품목과 유통과정, 시장규모 등을 조사했다. 조사 과정에서 일감으로 아프게 다가온 것은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물질이 (정말로)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폐수 정화 기술이든, 비료든 살충제 제초제 육성제든 하찮은 제품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선진국에서 개발된 것을 수입하거나 거액의 라이센스피(licence fee)를 주면서 응용하는 것이었다.

이 방면의 다국적 기업들은 시장조사를 통해 한국의 농가가 부담할 수 있는 최고치를 찾아낸 뒤 그걸 가격화 했다. 꼭 필요한 품목일수록 신기술로 얻어지는 이익을 최대한 저희가 다 가져가는 식의 높은 소비자가격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를 설득해서 비료값 후불제라는 제도를 만들게도 했다. 수확한 뒤 지불하라고 선심 쓰듯 한 것인데 농사지어봐야 비료 값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세간의 말 같은 건 이렇게 절묘한 마케팅기술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해법은 간단할 수 있었다. 기초과학 육성하고 기초기술자 양성하여 우리가 필요한 물질을 개발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기초 양성이라는 게 한두 달, 일이 년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짧게 잡아도 최소한 한 세대 30년 정도는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는데, 정부든 기업이든 눈앞의 실적에만 급급한 우리 실정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행우 자신이 나설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행우는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1985년 전후의 일들이었다.

이행우는 이때 기술을 가진 외국인(바이어)들을 많이 만났는데 같이 앉아 대화하기 힘들 정도로 벽이 높은 것을 느꼈다.

행우는 제품의 효능보다 개발에 대한 질문이 많은 편이었다. 그건 사실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표와 같았는데 상대는 여지없이 일축했다. 이게 얼마다 했을 때 너희가 필요하고 갖다 팔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거지 왜 개발이나 기술에 대해서 원가를 따지려 들고 알려고 하느냐며 일축하는 것이었다.

행우는 오해는 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우리가 사서 팔지만, 제품에 대해서 알아야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는 거 아니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

하지만 어떤 바이어에게도 먹히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기술력을 가져.”

그들은 더 이상 질문에 응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독일인 바이어 한센의 경우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 한국 실정에서 너무 비싸다.” 하니까 그자의 말이

너네는 기술이 없잖아. 능력있으면 너네가 만들면 되지 왜 우리에게 살려고 그래. 기술개발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데. 기술 개발하지 않고 사려면 값을 따지지 말아야지.”

하고 노골적으로 무안을 주는데 행우는 반발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스위스가 특허권을 가진 <포스파미돈>이란 농약 사건이 있었다. 과수원에서 많이 쓰는 살충제인데 연간 수요량이 제법 많은데도 1톤에 4천만 원이나 하는 비싼 농약이었다. 자료를 보니 특허 기간이 끝났기에 행우는 기술을 카피해서 이 농약을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제조비는 불과 5%에 불과해서 시장가격을 거의 10분의 1인 톤당 5백만 원으로 내려도 수입해서 파는 것보다 더 이익이었다. 그는 쾌재를 불렀다. 모처럼 나라에 도움 되고 회사의 이익증대에도 기여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한화가 톤당 5백만 원에 공급한다는 공시가 나가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그리도 기세 당당하게 고자세로 고가를 유지하던 스위스기업이 갑자기 십 분의 일 가격인 4백만 원으로 내리는 것이었다. 거대한 댐이 바늘구멍에 무너질 수 있다는 속담을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한화가 다시 38십만 원으로 수정 공지하자 독일기업은 35십만 원으로 다운했다. 손톱만큼의 시장도 내주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조요, 환화는 유사제품이라 약효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소문을 흘렸다. 이 사건은 결국 한화의 패배로 끝나야 했다. 벽을 넘으려면 우리 이름으로 신물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대로라면 국가 경제발전도, 기업의 미래도 기대할 게 없는 일이었다. 행우는 이런 구조라면 결국 내가 택한 이공이라는 쪽은 평생 선진국들이 만든 거 베끼다가 끝이 나겠구나. 하는 패배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수입하고 판매하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자꾸 개발에 대한 제안을 했다. 그러자 경영진에서 본사로 발령을 냈다. 이행우는 개발실에서 <개발프로젝트> 업무를 맡으면서 대덕기술단지에 있는 많은 훌륭한(?) 박사님들과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덕을 드나들면서 보니 유감스럽게 마찬가지 풍토였다. 박사들이 우리 거 창조할 생각은 안 하고 남이 개발한 거 베끼거나 응용할 궁리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항변했다.

가능한 프로젝트가 있어 제안하면 검토과정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고 거부되고, A라는 물질로 B를 만들면 기술 전환에 대해 검증받는 데 너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럼 결과를 얻기까지 우린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와중에 장사가 될듯한, 그럴듯한 레포트를 발견해서 찾아가 당사자를 만나니 한두 달, 길게 잡아도 반년이면 된다고 박사님들은 큰소리쳤다. 그래서 작심하고 3개의 프로젝트를 선정, 연구비 예산을 올려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 세 채에 해당하는 예산을 타 내 세 팀에 나누어주었다.

입사 3년 차, 이행우의 나이 28살 때였다. 힘들게 경영진을 설득, (당시로서는) 거액의 예산을 타내 야심 차게 신물질 개발에 나섰던 것이다. 책임이 따르는 기획을 한 탓으로 서울에서 대덕단지를 뻔질나게 오르내리다 나중에는 아예 대덕에 살다시피 하며 박사님들을 바라지했다. 그러나 반년이면 넉넉하다고 한 것이 2년이 지나도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결과물이라고 내어놓는 것이 비슷하기는 한데 원하는 선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마치 거품은 나오는데 비누는 만들 수 없는 거와 같았다. 그런 선에서 박사님들은 이윽고 할만큼 했다.’며 더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높은 자리에서 평생 부귀를 보장받은 사람들이라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짧은 기간에 결과물을 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다만 얼마큼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주어야 하는데 거머쥘 것이 없었다. 끝내 대덕연구단지에서의 시도도 대담하게 지원해준 경영진에게 보고할 건더기를 건지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자 행우는 좌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좌절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차라리 내가 공부해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 유학을 가서 석사 박사까지 하려면 최소 5, 6년 잡아야 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돈도 없었다. 퇴직금이 있는데 그것으로는 유학 준비하고 한 학기 정도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만약 실행을 한다면 그 이상은 뭘하든지 벌면서 공부해야 했다.

좌절감에 젖었다고 하나 그건 책임감 강한 행우의 자격지심이지 직장 내에서의 그는 진급도 되고 신임도 두터웠다. 성과를 올리는 업무가 더 많았기에 그냥 지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가 유학이라는 문제로 깊이 고민할 때 힘을 실어준 것은 입사 동기로 한 부서에서 4년을 지내온 유시옥(후일 영남대 화공과 교수가 되었다.)이었다. 그는 화공 쪽이었는데 비슷한 무렵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도 고민 중인데 동지가 있다면 용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가자. 우리가 여기서 과장 부장 된다 해고 그 인생이 뭐겠냐. 고민하지 말고 가자. 같이 가면 힘이 될 거 같다.”

망설이고 고민하던 행우도 이윽고 결심을 하고 둘은 손을 굳게 잡았다.

그래. 같이 가자.”

행우는 이듬해, 그러니까 29살을 맞으며 한화에 사표를 내고 유시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함께 갔지만 그가 택한 학교와 행우가 택한 학교는 500km나 떨어져 서로에게 그 이상의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7

집에서는 유학을 반대했다. 골골 하시는 어머니는 의견이 없었지만 칠순에 접어든 아버지는 반대했다. 아버지의 반대는 내가 얼마 못 살 것 같으니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유학 잠깐이면 됩니다. 갔다 와도 아버지는 살아계실 거예요.”

하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설득했으나 아버지는 좀체 동의하지 않았다.

대학교 4년을 같은 과에서 함께 지낸 아내의 반대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었다. 당신 공부하는 스타일을 내가 훤히 아는데, 그렇게 공부 안 하는 사람이 유학 가서 해낼 것 같으냐, 였다. 재산이나 넉넉하면 모를까, 가정 형편도 유학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이 때 불과 51세에 불과한 맏형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쇄소를 했었는데 화공약품 냄새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 건강한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나타나더니 덩어리가 만져진다 해 진단을 받은 결과 간암 말기라는 사형선고였다. 물론 그것이 침묵의 장기라는 상식은 있는 행우였지만 그래도 생명현상에 대한 물음표는 더 진해졌다.

형님의 장례를 치른 뒤 행우는 진지한 자세로 아내를 설득했다.

이대로라면 나의 삶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바이오에 대해 막연히 궁금한 것들이 많은데 유학을 가서 답을 찾아봐야겠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공부하겠다는 것을 약속한다. 2년 안에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다 접고 돌아와 평범하게 살겠다. 나를 실험할 수 있는 기간 몇 년만 허락해 달라

아내는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학비는 어떻게 해요. 또 체제 비용은요? 지금 퇴직금 받아서 가져간다는 돈으로는 겨우 한 학기 버틸까 말까예요.”

알아요. 계산해 봤어. 한 학기 정도 머물면 현지에 적응이 되겠지. 그러면 선배들처럼 시장에 뛰어들어 야채장사라도 하면서 공부해야지.”

공부에만 매달려도 목표를 이룰까 말까 한 사람이 야채장사하며 석사를 따고 박사에 도전한다고요?”

에이, 너무 그러지 마. 나한테 기본은 있잖아. 공부 안 해도 중간은 지키는 거하면서 행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지금 심정이 꼭 그때와 같아. 내가 하면 남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자신해. 한눈팔지 않고 공부에 매진할 거야. 믿어 줘.”

하도 진지하게, 또 간절하게 동의를 구하니 그제야 아내도 반대를 내려놓았다.

맏아들을 먼저 보냄으로 마음이 허탈해진 부모에게도 같은 말로 허락을 구했다.

생명현상(바이오)을 연구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버지 어머니 오래오래 사시도록 제가 직접 건강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옆에서 어머니가 행우를 거들었다.

여보, 미국 갔다 와서 우리 건강 직접 지켜주겠다고 하잖아요.”

지가 어떻게 지켜. 의사 공부하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버지는 아직 마뜩하지 않다.

아버지. 화학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약을 만드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화학자들이에요.”

그건 나도 안다만……

한참을 생각하시던 아버지는 이윽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하고 가고 싶으면 가야지 어쩌겠냐.”

하며, 그러나막내야. 나중에 지켜주는 것보다 아버지 죽기 전에 돌아와 주면 그게 더 좋겠구나. 약속하겠니?”하는 한마디를 귀에 꽂아 주었다.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하니 주변에서는 LA쪽으로 가야 볼 거 배울 거 많고, 한국 유학생도 많아 재미도 있다며 권했지만, 행우는 미국 중서부에 있는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를 선택했다. 이유는 첫째 학비가 비싸지 않았다. 학교가 나빠서 싼 게 아니라 동문들의 기부금이 많이 누적되어 있는 학교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학 기부금 순위에서 상위 10위 안에 드는 학교였다.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는 이 같은 동문들의 성원을 기반으로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6명 선으로 유지하고 학부생 절반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둘째는 그가 하고 싶은 바이오 계열에서 가장 명성이 있는 리언 레더먼 교수가 있다는 것이었고, 한국 유학생이 많지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목표한 대로 웨스턴일리노이대학교 석사과정에 무사히 안착했다. 토플성적이 좋아 언어연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학원에 직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점찍었던 레더먼 교수는 다른 학교로 옮겨 분야를 바꿔야만 했다.

국가와 언어가 바뀌니까 모든 게 생소하고 적응이 어려웠다. 공부시키는 법도 달랐다. 우리는 대체로 외우게 하며 가르치는 데 미국은 뭔지를 알고 이해하게 하는 쪽의 학습이었다.

행우는 한국식으로 우선 수강에 필요한 교재를 모두 외우기로 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 자면 잘 잤다 할 정도로 잠을 아끼며 교재를 전부 외우고 나니 제법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의 방식대로 학습하니 무리가 없었다.

행우는 그곳에서 스탠포드 출신의 자모지(Zamogi) 교수에게 물리화학을 배웠고, 한편에서 전자재료학과 소재화학 쪽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 자모지 교수 주관 하에 화학과 석사과정 전원(29)이 모여 시험을 보았다. 모두 네 문제를 주었는데 3개는 누구나 답을 적을 수 있는 쉬운 문제였고 하나가 까다로왔다. 그런데 평범한 세 문제는 합해서 20점이었고 까다로운 한 문제는 30, 합하여 50점 만점인 시험이었다. 시간은 100분을 주었다.

핵심 문제는 전기전자재료와 관련되어 물질의 이동 현상을 관찰하고 답을 적어보라는 것이었다. 모형과 가설을 세우고 물리적이고 정량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문제로 보였다. 물리화학은 물질의 특성과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현상의 중심에 있는 건 자연이었다. 따라서 물리 화학적 접근 방법과 사고방식은 자연과학, 의학, 그리고 공학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기반이 돠는 것이었다.

자모지 교수의 문제는 이런 특성을 두루 살려야 접근할 수 있는 다분히 추상적인 것으로, 복잡한 계산식을 적용해야 하고, 또 그것을 풀 능력이 있어야 했다. 행우는 자신이 없었다. 주위를 보니 모두 시계를 열심히 보며 정답을 찾느라 고심하고, 각자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나왔는지 적는 모양새였다.

행우는 답은 포기했다. 다만 추리로 가설을 세우고 더하기 빼기 하면서 수학이 아닌 논리로 문제의 답에 접근해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니 온갖 상황이 상상되었다. 세 문제는 아는 것이어서 20점은 확보했는데 답을 찾지 못한 문제가 걱정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으니 5점은 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5점을 받아 보태도 50점 만점에 25. 그러면 F가 아닌가. 첫 학기에 유급?

처참한 상상이었다. 겨우 이럴려고 힘들게 유학을 왔든가?

행우는 자탄하면서 다음 날 발표를 기다렸다.

 

이튿날 자모지 교수는 시험 결과를 발표한다면서 칠판에 크게 적었다.

“A- 한 명, B 두 명, 나머지 스물여섯 명은 F”라는 것이었다. 행우는 나도 당연히 F겠지 하고 지레짐작은 했는데, 그러나 그래도 동지가 스물여섯 명이나 되니 몽땅 유급시키는 일은 없겠지. 다행이다. 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한 명뿐이라는 A-가 바로 이행우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행우는 자모지 교수에게 물었다.

답을 쓰지 못했는데 어떻게 제가?”
자모지 교수는 웃었다.

그 문제에 정답이 뭐 필요한가. 답이 필요 없는 문제에 답을 쓴 학생들이 잘못됐지.”

순간 교실 안은 쓴 웃음으로 채워졌다.

 

그 일을 계기로 자모지 교수는 행우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마침 내 방에 학생이 필요한데 자네 내 방으로 오지 않겠나? 내 방에 오면 학비 면제되고 한 달에 400불 정도 제공이 되네.”

행우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보다 큰 행운이 없었다.

 

행우는 자모지 교수 덕분에 아르바이트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기쁜 소식을 집에 전하니 아내가 반색을 하며, 지푸라기일지라도 버틸 근거가 마련되었으니 아들과 함께 자기도 오겠다고 했다. 와서 돈을 벌어 남편 공부를 바라지하고 아들도 미국에서 공부시키자고 했다. 행우로서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아들과 함께 바로 건너왔는데, 슬픈 소식도 가지고 왔다. 행우 떠나고 한 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하니, 결심하고 공부하러 갔는데 연락하면 달려올 거 아니냐. 연락하지 말아라 해서 안 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그러면서 아버지가 시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꼭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며 유지를 전해주었다.

 

행우는 연구에 매진했다. 아내는 말 그대로 베이비시터 일자리를 찾아 남편을 바라지하고 아들을 학교에 보냈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마음은 풍성해진 행우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13개월 만에 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성적도 4.0 만점에 3.9 점을 얻어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미국까지 와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석사를 마치고 잠시 텀을 갖고 있는데 인근에 있는 미국 기업이, 학교에서 추천했다며 프로포즈를 했다. 행우는 아내를 생각하며 취직을 할까 망설였다. 취직을 하면 당장 생활고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의논하니 펄펄 뛰었다. 아버지의 유지를 상기시키면서, 여기까지 와서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다.

당신은 나이가 있어서 지금 중단하면 더는 공부를 못 할 거예요.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저 박사가 되세요. 정말 가족을 기쁘게 하려면 그렇게 하세요.”

나이가 있다는 말은 맞았다. 행우는 군대도 다녀왔고 회사생활도 4년이나 하다 왔으니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늙은 학생이었다. 그는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박사과정에서는 바이오를 공부하자고 마음먹었다.

 

이행우는 성적이 우수한 덕분에 내쇼날어워드 제도의 혜택을 이용할 수 있었다. 자모드 교수에게 진학할 뜻을 전하니 그는 주저없이 아이오와 대학의 전자재료학 권위자 앨런 교수에게 추천장을 써주었다. 추천장에 석사과정에서 물리화학과 전자재료학 소재화학 등 세 가지를 한 학생이라고 소개하니 앨런 교수는 수재라며 반가워했다.

첫 만남(인터뷰)에서 앨런 교수는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현상에 대한 질문을 했다.

“Why is the river rolling?”

강물이 출렁거리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That'sbecause the river bottom is not constant.”

행우는 얼른 그것은 강의 바닥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었다.

앨런 교수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하며 그녀는 여담처럼 말했다.

그건 물리학의 기본에 해당하는 쉬운 질문인데, 의외로 제대로 답하는 학생이 드물었다는 얘기였다. 대개는 잘 모르겠는데요. 바람 때문 아닐까요?’하는 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행우가 정확하게 답을 하니 반갑다는 것이었다.

맞아요. 강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지. 얕은 곳도 있고 깊은 곳도 있고 울퉁불퉁할 수도 있고그래서 서로 지나가는 속도가 다르고, 그래서 강물은 출렁거리지아이오와대학을 거쳐 가는 학생들도 강물과 같아요. 학문의 깊이가 달라 출렁거리지요.”

앨런 교수는 유머를 섞어가며 이행우를 만난 것을 즐거워했다.

 

아이오와 시티에 있는 아이오와 대학은 아이오와 주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 중심의 공립대학이었다. 이행우는 처음 생각대로 박사과정만큼은 바이오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추천을 받은 앨런 교수는 전자재료학이라 고민이었다.

지난 일은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바이오를 하려는 일에는 방해하는 기운이 나타났던 거 같았다. 아이오와도 그 징크스의 연장인가?

그러나 아이오와 대학은 전자재료학이 최강이었으므로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특히 파동과 레이저 쪽이 유명했는데 앨런이 전임교수였다. 동료들은 행우가 고민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행우는 부딪어보기로 했다.

앨런 교수를 찾아가 바이오를 하고 싶다고 간절히 말하자. 앨런은 아쉬어 하며 그쪽의 B교수에게 다시 추천장을 써주었다. B교수는 석사 때 지도교수였던 자모지 교수와 동문이어서 곧 친해질 수 있었다.

바이오는 실험하는 게 많았는데, B교수는 행우의 지식 폭이 넓으니 실험을 같이하자면서 행우에게 준비시키는 과제가 많았다. 차츰 실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때 이를 시기하고 심하게 비아냥거리는 백인이 나타났다.

라는 이름의 그는 소문난 레이시스트(racist)였다.

그도 같은 박사과정이긴 한데 이행우가 실험실에 있을 때면 어김없이 다가와 옆에 붙어서서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동양인은 똥 치우는 일에나 적합하지 실험실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우리 실험실에 어울리지 않는 냄새나는 놈이 있네.”

그는 제스처를 보태가며 행우를 자극하기도 했다. 행우가 흥분하여 먼저 난동이라도 부리도록 유도하는 것만 같았다.

행우는 그를 무시하고 아예 상대를 안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주변 학우들까지 신경을 쓰는 일로 확대됐다. 행우와 잭이 같이 있으면 금세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긴장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영화에서 보듯 한바탕 주먹으로 결투라도 할까, 참는 데까지 참아볼까, 온갖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그들 나라에 와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B교수에게 도움을 청할 일도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하루는 시간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고 또 자문하니, 그건 바이오 이전에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아이템, 생명공학 쪽에서 신물질을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이오를 고집할 것도 아니었다. 그때쯤 그는 소재화학 쪽에도 식견이 쌓였고 전지전자재료 부문에선 2차전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앨런 교수가 그 방면의 권위자였다. 2차 전지, 즉 고분자배터리는 차세대 세계 경제를 이끌 주요 아이템 중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때였다.

냉정하게 자신을 성찰해 보니 자신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고, 또 이제는 길을 정해야 하는 때였다.

그는 분노를 접기로 했다. 싸우지도 않기로 했다. 숲에 들어와서 한두 그루 나무에 집착해 싸우다 큰일을 그르치는 우를 범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 남의 나라에 와서 아까운 시간에 뭐 이런 놈하고 싸우냐.’

그는 져주기로 했고, 후일을 기약하며 조용히 그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래. 너나 실컷 실험해라. 더러워서 나 이 실험실에서 다시는 안 할게.”

 

그 길로 행우는 B교수를 찾아가 앨런 교수 밑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허락을 구했다.

잭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생각해보니 앨런 교수에게서 파동과 레이저를 연구하고 싶은 요구가 더 크다고만 했다.

B교수는 한두 달 상관이니 분야 바꾸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좋은 학생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하며 섭섭해했다. (선한 독자들이 짐작하듯 이 일은 며칠 지나기도 전에 진실이 밝혀져 잭은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행우가 나서서 징계를 받지 않도록 도왔고, 그 뒤 오랫동안 둘의 관계는 남다른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행우는 앨런 교수 지도 아래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아내는 집념을 보였다.

 

아이오와 대학 시절 또 하나 건진 것은 아홉 명의 인생 파트너를 만난 것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많지 않은 미국 중서부에 있는 대학에서 마음이 맞는 동반자를 아홉 명이나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행우 외에는 모두 바이오 쪽이었다. 그러나 행우도 바이오를 다뤄봐서 아는데 바이오는 홀로서기가 힘든 분야였다. 생물체의 기능과 정보를 활용하여 유용물질을 산업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학, 전자, 의약, 환경, 농업, 식품 등 여러 관련 부문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런 점에서 지식의 폭이 넓고 경험이 다양한 행우는 아홉 명의 디랙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76학번부터 84학번까지 연령도 다양했는데 군대도 다녀왔고 회사 경력도 있는 행우가 연령적으로도 제일 위였기에 그들은 행우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이들을 더욱 똘똘 뭉치게 해준 건 다름아닌 농구였다. 팀을 만들어 이끈 것이 행우였다. 팀웍이나 페어플레이 정신은 물론 기량면에서도 행우는 압도적이었다. 동료들은 농구 때문에 더 행우를 따랐다. 행우의 농구는 대학시절에도 그랬지만 그냥 농구가 아니었다. 그의 농구는 인생 경영이었다.

 

시간이 있을 때면 행우는 캠퍼스 학자들인 그들에게 한화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유학 와서 석박사를 달고 귀국하면 일단은 대접받을 확률이 높지만, 선진국이 개발한 거 베끼거나 비싼 라이센스 피 주고 응용이나 하는 따위 선에서 머문다면, 우리가 앞서가는 지식인으로서 국가의 미래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게 없지 않겠는가 하고 역설했다.

이해를 하자면 들면, 과거의 유학파는 소수에 불과해서 같은 레벨의 사람을 찾아 조직을 갖출 수 없었고,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도 드물기에 어쩔 수 없이 선진기술 응용하거나 베끼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자. 무엇이 됐건 혼자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특히 우리 분야는 혼자서는 안 된다. 팀을 만들어 우리의 것을 개발하도록 하자. 우리의 능력으로 신물질을 개발하여 우리가 가격을 정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만들자. 근원으로 올라갈수록 하나면 된다. 똘똘한 거 하나만 찾아내면 경제를 만들어 내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며 우리도 부를 누릴 수 있다.

행우는 그렇게 설득하며 손을 굳게 잡았고, 농구로 체력과 팀웍을 다지며 팀을 이끌었다.

 

바이오산업은 이제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산업분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기에 미래를 위해 단합하자는 행우의 설득은 더 힘이 있었다. (참고로, OECD가 회원국가를 중심으로 생물공학 통계를 위한 자료조사와 분석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이고, 우리나라에서 바이오산업의 범위를 생물화학, 생물환경, 생물의약, 바이오에너지 및 자원(생물농업 포함), 바이오식품, 생물전자, 생물공정 및 엔지니어링, 생물검정 및 생물정보 등 8개 분야로 분류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8

 

박사까지 마친 행우는 귀국을 준비했다. 아내는 이대로 미국에 살았으면 하는 눈치였는데 행우가 완강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따랐다. 행우는 누구보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건강이 걱정되었다.

귀국을 준비하는 데 뜻밖에도 한화 리쿠르트 팀이 아이오와에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 했더니 안면이 있는 그룹 인사팀의 장석구 차장이 이끄는 팀이었다. 조국이 날로 발전하여 인재 영입을 위한 리쿠르트 팀이 미국 주요도시를 순회한다는 건 국적자로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업설명회는 소강당에서 이루어졌는데 장 차장은 한눈에 이행우을 알아봤다. 한화에서 그만둘 때 행우의 직함은 과장이었다.

여어- 이 과장,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그는 두 팔을 벌려 안을 듯이 하며 이행우와의 재회를 반가워했다. 장 차장이 연배였다.

행우도 고향사람 만난 듯 반가웠다.

이 과장 여기온 지 얼마나 됐나, 4년 넘었지?”장 차장은 속으로 계산했다. “~ 5년은 안 됐고, 그럼 이제 석사는 마쳤을 테고 박사는 아직 멀었지?.”

……

행우는 그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웃었다. 장 차장은 자신이 약간 우월한 것처럼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우리 리쿠르트 대상이 안 되겠네. 조건이 아주 파격적인데 말야.”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갈 데는 많아요.”

행우는 그때 삼성전자가 손짓하고 있었다.

갈 데가 있더라도 공부는 마치고 가야지. 박사 언제 끝나?”

장 차장이 거듭 묻자 행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벌써 끝났는데요.”

뭐라구. 박시를 마쳤어?”

장 차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듯 부리나케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친 장 차장은 이행우를 다시 만났다.

역시 수재군, 내가 과거에 알아봤지. 그래도 놀랍습니다. 이행우 박사님. 4년 반에 석 박사를 다 마치시다니요.”

장 차장의 말에는 놀라움 외에 부러움도 섞여 있었다.

분야가 뭐였어? 박사 받을 때.”

전자재료 쪽이었죠.”

뭐야? 우리가 찾는 딱 그 사람이네,”

뭘 찾는 건데요.”

“2차 전지 개발사업이야. 딱이지.”

한화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베이스가 없다는 걸 내가 아는 데.”

당신이 와서 만들면 되지. 시작하는 거니까.”

그건 괜찮은 말이었다.

그렇다면장 차장은 능청을 떨며 서류를 내밀었다. “더 따져볼 거 뭐 있나. 서류에 사인하셔야지. 자 사인하는 자리는 여기입니다. 부장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행우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돌아가나 싶었다. 지금 이렇게 한화로 돌아간다면 이것이 금의환향일까? 한화에 대한 옛정도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장 차장의 정겨운 너스레에 기분이 한층 고무된 이행우는 사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화로 다시 돌아온 이행우는 연구소의 최연소 부장이 되어 슈퍼전자소재 개발팀을 꾸렸다, 목표는 2차 전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아이템이었다. 2차 전지의 꽃은 물론 자동차 밧데리 고분자 밧데리 였다.

지구 오염에 대한 위기 의식이 지구촌을 덮어가고 있었다. 얼마전만 해도 공해문제를 지역적 문제로 치부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국제기구의 연구로 오염 공해는 지구 전체에 미치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지구를 구하자는 차원에서 전기차 개발은 시작되었고 이와 함께 2차 전지 개발 경쟁도 가속화되었다. 2차 전지가 경제성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회용 배터리보다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총비용은 오히려 저렴하고 무엇보다 환경 영향이 적은 것이 장점이었다.

 

주된 목표가 2차 전지였던 것이지 신물질 개발도 임무의 하나였다. 세계적으로 과학기술이 격변하는 시기였다. 바이오쪽에서는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유전 정보를 모두 알 수 있게 되면서 베일에 싸였던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유전적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이 곧 확립될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한편에선 이와 같은 유전 정보를 이용한 천연물 의학이 선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성 질환의 치료에 대한 희망으로 의학계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기저기서 복제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톱으로 발표되는 때였다.

 

행우는 성품대로 차분히 연구를 진행하며 내실을 다지고 성과를 올렸다. 94년에는 한화기술상과 한화그룹 종합연구소 기술공로상을 받았고, 95년에는 국산 신기술 인증을 받고 장영실 상을 수상하는 등 업적을 쌓으며 한편에서 2차 전지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2차 전지는 단시간에 완성될 성격이 아니었고, 연구 진행 중에 한국이 IMF 사태를 맞았다. 모든 계획이 주저앉고 취소되고 후퇴하는 대혼란에 빠졌다.

국가적인 위기였다. 한화도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이행우가 진행하는 연구 이것저것에 중단 지시가 내려오니 이행우는 진퇴양난에 빠찌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신물질을 찾는 연구 사업은 모두 브레이크가 걸리니 이행우는 다시 긴 고민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이제까지의 투자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이 사업은 포기하면 안 된다고 제안서를 올리고 또 예산을 청구했다,

경영진은 그 제안과 예산을 모두 부결 처리했다. 그러면서 이행우에게 말했다.

이런 연구들이 그렇게 좋은 거면 들고 나가서 당신이 하시오.”

그건 최후통첩과 같았다.

 

9

 

그는 결국 한화연구소를 나와 창업을 하고, 자신의 연구 방향이나 실적이 경제성도 있고 비젼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창투사를 돌며 투자설명회를 한 것인데 LG창투가 5억 원 투자를 결정하면서 활로가 트였다. 행우는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하고 더욱 분발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30억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이행우 사업의 주 아이템은 바이오가 한쪽에 있긴 했지만 처음에 그건 무늬였고 한화 시절부터 추진해 온 2차 전지였다. 그것은 꿈의 기술이요 신기술의 집합체였다. 충전기나 분리막 소재, 출력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일렉포일, 검사장비, 나아가 에너지 저장장치 등 2차 전지 고지 정복에 필요한 한 가닥 신기술을 정복하는 데도 대학이나 연구소의 고급 연구인력, 그 방면의 전문기업 여럿이 협력해야만 하는 사업이었다.

카드뮴 전지를 넘어 리튬이온전지까지 기술이 올라가는 과정에서만도 많은 부품 회사들이 새롭게 생겨났고 이행우의 기술도 팔려 나갔다. 이행우가 일차 고지로 설정하고 역점을 둔 것은 자동충전기 쪽이었다.

자동충전기를 개발하다 보니 대전장치가 만들어졌다.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물질이 찾아진 것이다. 이 물질을 이용하면 때도 안 타고 김도 안 서린다. 행우는 이런 물질이 만들어지면 특허를 내고 그 기술을 팔아 매출을 일으키며 기업을 끌고 나갔다.

 

이때에 골골하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85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85세이니 노환으로 가셨다 해도 되지만 돌아가시기 수 개월 전 치매가 온 게 행우는 못내 안타까웠다.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환절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너 유학 갈 때, 미국에서 바이오 연구하고 돌아와 엄마 아버지 건강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니?”

기억도 희미해진 옛날 일이었다. 그러나 떠올리면 금세 생생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 그랬죠.”

그런데 아버지는 너 떠나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지

……? 죄송합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행우가 물었다.

왜요? 아버지가 보고 싶으세요?”

……?”

말씀하세요 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어디 불편하세요?”

아냐. 그냥 몸이 이상해서 그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병원에 가 보실래요?”

그런 정도는 아냐. 그냥 이상해서 그래. 옛날 생각이 자꾸 나고.”

제가 약속을 안 지킨 것 같아 섭섭하세요?”

아니라니까. 너와 더불어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어머니, 지금도 포기한 건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약속 지키려고 지금도 연구 켸속하고 있어요. 바이오라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네요.”

알았다. 신경쓰라고 한 얘기 아니야. 내가 괜한 얘기를 했구나.

 

그 대화가 정상적으로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이후 행우의 어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잠깐씩 정신이 나가면 이상한 소리를 하시더니 진행이 빨랐는지 며칠 안 가 행우조차 몰라보는 어머니가 되었다. 행우는 백방으로 치매에 좋은 처방을 알아보고 민간요법으로까지 시도해 보았지만 어너니의 치매는 돌려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해 가을 결국 저 세상으로 가셨다.

뭔지 모르게 어머니에게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되었다. 어머니 영전에서 행우는 비통해하며 반성했다.

바이오. 그렇습니다 어머니. 이 불효자가 바이오를 한다고 약속드리고는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더 오래 모시지 못하고, 편안하고 깨끗하게 보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어머니의 죽음은 이행우의 바이오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까지 바이오 연구는 존재감 없이 있었는데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행우는 현실로 복귀해서 바이오 쪽도 전자 재료 못지않은 비중으로 살리기로 했다. 그는 아이오와대학 시절을 떠올리고 거기서 옹기종기 가족처럼 지낸 식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바이오 가족이었다.

그래, 바이오 연구를 힘차게 병행하자. 아이오와 9인이 다시 뭉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

아이오와 9인이 서로 연락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모두 돌아와 대학이나 국책연구소, 기업 등에 자리를 잡았고 서로 연락은 하며 지냈다. 그러나 어떤 목표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행우는 아이오와 9인을 중심으로 연구소를 만들어 자주 만나며 뭉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이행우를 CEO 자리에 앉혔다. 8명이 모두 바이오요, 이행우만 전기전자재료 쪽인데 그러나 이행우도 처음 한화에 있으면서 바이오를 했던 만큼 베이스가 되어있고, 다른 동료에 비해 지식 폭이 넓은 데다 연령적으로도 위에 있어 디렉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모두 바이오를 했다지만 스타일은 달랐다. 연구소장을 맡은 신현철 박사(금호화학)는 수줍음을 많이 타 마케팅에는 약했지만 대신 약리나 효소면에서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탁월했다. 박광용 교수(중대)는 합성에 능했고 이봉호 교수는 분석과 관찰력이 돋보이는 식으로 특성이 달랐다. 또 이남호(제주대) 교수는 원료 채취나 유용성 연구 분야에 우뚝했고 김병관 교수(미네소타대)는 미생물 등 바이러스쪽이었다. 정희일 교수(한양대)와 송병호 박사, 최병욱 총장(한양대)은 성분 분석에서 돋보이는 학자들이었다. 이행우에게는 누구의 이야기도 허술하게 듣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여기에 원료를 추출하는 등 생산 쪽에 강한 김성호 박사가 가세했다.

그들은 가족과 같아서 그들끼리 만날 때는 호칭이 필요 없는 정도였다. 그저 이름을 부르거나 형 동생으로 지냈다.

벤트리 창업 이후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고, 토론도 하고 필요하면 함께 실험도 하며 신물질의 힌트(정보)를 찾는 데 주력했다. 하찮은 들풀이나 약초, 해산물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연구 과제로 삼았으며, 개발 쪽에서 흘러나오는 풍문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이오를 논하다 보니 치매가 화제의 중심일 때가 많았는데 잡담을 모아보면 별소리가 다 있었다.

- 순천향병원에서 세 분의 교수가 치매약을 개발했대요. 각각 독자적으로 10년씩 했는데 모두 실패했답니다. 그들이 내린 정답은 애초에 어떻게든지 덜 늙고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 모두 웃었습니다. 그게 10년 연구의 결과라니.

- 치매가 가장 안타까운 질병이죠. 그러나 베이스가 없습니다. 뇌 혈류장애가 주원인이라는 건 밝히면서 왜 접근하지 못하는 걸까요.

- 약물은 개발됐답니다. 그걸 뇌세포에 전달할 방법을 못 찾는답니다. 그러면 약이 무용지물일 수밖에요.

- 3차원의 구조가 밝혀졌는데도 뇌막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어 시도조차 안 한다네요.

- 경제가 안 되는 연구는 우리에게 필요 없겠죠?

- 80년대만 해도 FDA가 나이 들어서 생기는 퇴행성질환들은 고칠 수 없다고 했지만 이제는 의식이 바뀌는데.

- 부작용 없이 노인성 질환을 고칠 수 있는 신물질이 어딘가 있을 겁니다.

- 하하하하. 우리가 진시황처럼 불로장생약을 찾는 건 아닐까 모르겠군요.

어쨌든 시간이 걸려도 선잔국에서 개발한 거 가져와 팔고 베끼고 하는 거 우린 하지 맙시다. 우리가 개발한 소재래야 당당해질 수 있는 거니까. 요즘 세계를 휩쓰는 한류 열풍도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그런 겁니다.

- 그럼요. 천천히 찾읍시다. 바쁜 사람 없잖아요. 똘똘한 거 하나만 찾아도 우리 아홉은 풍족해질 수 있습니다.

- 물론이죠. 하나의 가치가 수억, 수십 억 불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 대충 만들어놓고 마케팅 시작하는 나쁜 관행, 우린 이런 것도 하지 맙시다. 창의적이라고 해서 살펴보면 껍데기만 창의적이지. 알맹이나 깊이는 없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 돈보다 아픈 사람 고쳐주려는 측은지심을 더 가지면 좋은 일이 올 겁니다.

 

어쨌든, 그들이 목표하는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물질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이오 쪽에서의 신물질을 천연물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장님 문고리 잡기와 같을 수 있었다. 서두른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이야기를 들어도 (특히 화학이나 물리 쪽은) 우연히 찾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찾으려 하는 사람이 찾아내는 것 아닐까.

그들은 그렇게 벤트리라는 상호 아래 뭉쳐서 자료를 검토하고 역할을 나누어 연구를 진행했고 이행우는 그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등 뒷받침해 주면서 신물질 찾는 항해를 계속 했다. 이제까지의 파노라마 같은 과정은 모두 새로운 출정을 위한 베이스라고 여기기도 했다.

 

1997년이었다. 벤트리를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는 때에 팀원 중 하나인 이봉호 교수가 남해 보길도를 다녀왔다며 이행우의 집무실에 들렸다. 아이오와대학에 누가 먼저 입학했느냐는 식으로 따지면 9명 중 제일 선배였다. 이행우가 나이는 두 살 위였으나 선배로 깍듯이 모시는 교수이기도 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자취로 유명한 보길도에 갔었죠.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안주 중에 감태라는 게 있었어요. 그걸 먹으니 술이 하나도 안 취하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요. 새로운 얘기군요.” 이행우에겐 가벼운 말도 흘려듣지 않는 품성이 있었다. “그러나 술 안 취하는 게 감태 덕분인지 공기가 맑은 곳이어서인지는 모르죠. 원래 청정한 지역에 가서 마시면 평상시 보다 서너 배 마셔도 끄떡없다는 말은 있지 않나요?”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

하지만 감태라면 생각해 볼 여지는 있어요. 전복의 먹이 아닙니까?”

맞아요. 어떤 사람은 천 년을 사는 거북이들 먹이라고도 하더군요. 저는 감태를 처음 접해 봤습니다.”

천 년 사는 거북이 먹이요?”

그건 재미난 힌트였다. 이행우는 일어나 생명과학대사전에서 감초 항목을 찾아보았다.

감태(학명 : Ecklonia cava)는 갈조식물 다시마목 미역과의 해조(海藻)이다. 색은 갈색인데 건조하면 흑색으로 된다. 주로 제주도 일대 및 일부 남해안에 분포하며, 점심대의 수심 10m 내외의 깊은 곳에서 서식한다. 2-3년간 생장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전복의 주 먹이이기도 한 감태는 알긴산, 요오드 및 칼륨 등의 영양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건강식품자원이다. 후코이단과 플로로탄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 성분들은 항산화효과, 항암효과, 항염효과, 노화억제효과 및 고혈압 억제효과 등에 우수한 것으 알려져 있다.

사전에도 전복의 먹이라는 말은 나오는데 거북이 얘기는 없네요. 그 외에 특별한 것도 없고요.”

하하하. 누가 뭘 찾았다고 했나요? 감태라는 걸 처음 접했는데 느낌이 좋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날 두 사람은 그 정도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듬해 이봉호 교수는 가루를 담은 봉지를 들고 왔다.

그건 뭡니까?”

작년에 말한 그거에요, 감태. 이게 감태에서 대충 추출한 가루에요. 이걸 멸치에 뿌리니까 아무리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아요. 팀의 연구 과제로 올릴만합니다. 뭔가 재미난 게 얻어질 것 같네요.”

나도 자료를 찾아봤어요. 러시아와 일본에서 건드린 흔적이 있네요. 흥미가 동하네요. 몸 안의 방사성 물질 뽑아내는데 감태를 이용한 자료들이 있어요. 러시아 체르노빌 사건 때도 그랬고

감태가 나오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게 그렇게 불면증에 즉효랍니다. 영양제로 먹는 사람도 많고. 이거 먹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이보다 젊고 건강해요.”

그렇다면 노화방지에도 분명 효능이 있겠네요. 우리 몸의 다양한 오염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해조의 역할이 원래 오염된 바닷물 정화 아닙니까. 중금속 같은 거 다 빨아들인 뒤 자기는 전복 따위에 먹이가 되는 거죠, 그 전복을 우린 귀한 음식물로 여기고.”

이 교수님. 우리 말로만 옹아리 하지 말고 정식으로 감태 연구회를 만들어 회의도 하고 핵심 물질 추출해서 임상도 해 봅시다. 까짓 멸치에 뿌려 보존하는 정도라면 무슨 돈이 되겠습니까. 10억 정도 예산 세우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 예산이 가능하겠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해 보십시다. 볼수록 이게 만만히 볼 물질이 아니에요.”

아이오와팀의 감태 연구는 그렇게 이봉호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감태를 만난 것도 그렇게 우연이었다.

 

10

 

모두 한 역할 했지만 그중에서도 주축이 된 것은 이봉호 교수와 신현철 박사, 김성호 박사였다. 특히 김성호 박사는 이행우와 함께 있으면서 실험실에서 유용한 물질을 추출해 성분을 낱낱이 분석했다. 이행우는 이 물질에 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일편 특허를 출원하고, 일편에서 Y, K대 등과 계약을 맺고 임상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반응이 나왔는데 엉뚱하게도 이 물질이 성기능 개선에 탁원한 효능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임상을 담당했던 일단의 교수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글로벌 거대 제약사인 미국의 화이자가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했으나 임상시험 과정에서 남성 발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발기부전 치료제로 세상에 내놓은 비아그라가 한국에 들어온 때였다. VAT는 비아그라에 치명적일 수 있었다.

비아그라는 케미칼이고 이행우의 VAT는 천연물질이기 때문이었다. 한쪽은 작게나마 부작용이라는 게 있고 이행우 쪽은 천연물질이기에 부작용도 없었다. 성능은 VAT가 두세 배 월등했다. 둘이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행우는 한국이 약한 나라라는 걸 또 체감해야했다. 그리고 의사들은 알게 모르게 제약회사와 모종의 유착관계를 갖고 있었다. 임상에 참여하고 스스로 발표에 이름을 실었던 의학자들까지 안면을 바꾸며 공격해 오는데 이행우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아니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면 감당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상품화를 하지 못하게 막는 공작이었다. 이행우는 밴처기업으로서 맞서는 데까지 맞서다가 유야무야 상태에서 종결하는 것으로 합의해야만 했다.

크게 실망한 행우는 끝내 벤트리를 처분하고 가족을 이끌고 한국을 떠나 미국 시애틀에 새 보금자리를 차렸다. 미국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오와 팀이 이행우를 그냥 놔두지도 않았고. 이행우도 완전히 떠날 수 없었다.

벤트리를 인수한 회사는 자기 회사를 우회상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 벤트리의 기술이나 사업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벤트리의 사업 특히 바이오 분야는 행우에게 권리가 있었다.

 

감태 연구는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이행우는 미국에서 오가며 지원을 계속했다. 감태 연구가 진전을 보이자 이행우는 새 회사를 만들어 <보타메디>라 했고, VNT에는 <씨놀>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아이오와 팀도 <씨놀연구회>로 명칭을 바꾸고 컨퍼런스(conference)를 계속하니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학자가 늘어 회원수가 160명이나 되었다.

그렇게 새로 출발한 것이 2002년의 일이었다.

이후 임상은 주로 미국과 일본에서 했다. 미국은 오하이오대학, 워싱턴주립대학, 미국국립노화연구소, UCLA 등에서 주도했고, 일본은 교토대학, 오사카시립대학, 홋가이도대학 등이 주도 했다.

한국에서의 임상과 미국 일본 등에서의 임상은 차이가 많았다. 한국은 임상을 주도하는 의사나 임상 참여자들이 규칙 같은 걸 잘 안 지키므로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약해 횟수와 대상을 늘리고 통계에 의존해야 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미국 일본은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이 FM대로인 만큼 신뢰할만한 결과를 더 빨리 정확하게 얻을 수가 있었다.

 

처음 임상을 의뢰할 때는 관절염이나 콜레스테롤 조정, 성기능 개선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였다. 모든 기관에서 하나 같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보내왔다.

보고서는 씨놀이 피가 굳어지는 것을 억제하여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하였다. 염증을 낫게 하고 세포 파괴를 막는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손상된 장소를 찾아가는 능력이 놀랍다고도 하였다. 단일 화합물이 그런 복합적인 효능을 보이는 건 예전에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상 결과는 소문을 타게 마련이다. 소문이 나자 세계 유수의 기업에서 원료 주문이 쇄도했다.

보타메디에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다. 3050억 팔리던 것이 2019년에는 180억원이나 수출했다.

그렇게 원료를 팔면서 연구는 연구대로 (20년 간) 계속했다. 이제까지 밝힌 것만으로도 씨놀은 신의 만나였다.

씨놀은 어떤 고장나거나 약해진 부위에 가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뇌로 가서 뇌세포를 복원시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뇌세포가 복원되고, 피를 잘 흐르게 하니 혈류장애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이 근본에서 개선되는 것이었다. 씨놀이라면 치매의 공포에서도 해방을 기대할 수있는 일이고 나아가 모든 노인성질환에도 회춘의 빛이 되어줄 수 있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도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최대치를 살려 크고 잘생기고 건강하고 머리 좋은 성인으로 자라도록 <씨놀>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었다.

씨놀 연구회는 이런 결론에 이르러, 년간 200억 원에 가까운 양의 원료 수출을 모두 중지하고, 우리 국민, 우리 국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진정한 건강을 선물한다는 자세로, <씨놀>을 이용한 완제품 생산기업으로 거듭나기로 했다.

그 시작이 2020, 원료부터 우리 기술로 찾아내고 만든 제품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만나스올, 미웨이 등 보타메디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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