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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수상
2002.02.02 04:56

수상 - 언어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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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한다. 문득 지난 일을 생각하면 세월은 흐르는 물 정도가 아니라 날아가는 비행기 같다. 그런데 알고보면 흐르는 것은 인생이지 세월이 아니다. 세월은 항상 인생 주변을 맴돌 뿐 흐르는 것이 아니다. 천년 전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지금과 같았다. 유수(流水) 같은 것은 우리들 인간인 것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 시인의 노래와도 같이 흩어지고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은 우리들인 것이다.

여행에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장엄한 그랜드 캐년이나 낭만의 극치 알프스의 설경, 꿈 속에서 또 꿈을 꾸듯 여행에서 또 다른 여행을 생각게 하는 미항 시드니의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는 곧잘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한다. 하지만 사실 스쳐가는 것은 우리요, 그것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런 표현이 먹히는 것은 인간이 인간 중심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존심이 작용하는 결과이다.

어차피 인간은 인간끼리 모여서 인간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산다. 사진가들이 제딴에는 한껏 근사한 작품을 담겠다고 포부를 보이지만 결국은 인물로 시작하여 인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세계의 풍물을 보겠다는 여행이지만 막상 현지에 닿으면 그곳 사람을 사귀고 싶고,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 사는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본질적으로 한 울타리라는 말이 성립된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의 지구촌이 어찌 그리 언어소통은 어려운가.

서울의 지하철에서 하루는 이런 풍경을 보았다. 아침 러시아워를 막 지난 오전 10시경이었다.  시청 앞에서 한 서양 청년이 탔다.  키가 팔 척인 그는 한국 관광안내 책자를 갖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여학생 둘이 공연히 흘끔거리며 히히덕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서너 마디는 조심하는 것 같았으나 서양청년이 못 알아듣는 듯 무관심하자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서양 남자는 백 미터 미남이라더니 정말 너무 크고 징그럽다 얘,
"냄새도 나는 것 같애. 하긴 여자도 같겠지 뭐"
"아유. 저런 인간들과 어떻게 살까"
그녀들 자신이 한창때인 탓인지 공연한 사람을 옆에 두고 별별 이야기를 다했다.  
서너 정거장 지나 동대문에 이르자 서양청년은 내렸다. 그런데 그 청년, 이제껏 가만히 있었으면 내릴 때도 말없이 내릴 것이지 짓궂게 한마디를 흘리는 것 아닌가.
"저는 아가씨들과… 같이 살자고 안 했습니다"  

또렷한 한국말이었다. 두 여학생의 볼이 잘 익은 홍옥을 무색케 했음은 상상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녀들은 전철이 다음 정거장에 서기가 무섭게 내려야만 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말임을 절감했을게다.

그런데 그녀들, 무안해 한 것은 잠시였다. 일시 정지했던 전철이 움직이자 깔깔깔 허리를 잡고 웃는 것이 아닌가. 여기가 제 나라, 제 땅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역만리 여행길에서 말을 잘못해 봉변 당한 또 한 젊은이를 보자. 그는 예의가 아주 바른 청년이었는데 미국엘 갔다. 서부에서 동부로 갈 때 Pullman(침대차)을 탔는데 자기 침대는 2층이었고 바로 그 아래층에는 젊고 아리따운 미국 여성이 타고 있었다.  

재재 하니 인사성 밝은 성격에다 여행 기분에 들뜬 청년은 2층 침대에 오르내릴 때마다 "Excuse me], Sorry"를 연발했고, 뻔히 미국 여성인줄 알면서도 "what nationality are you?" 하기도 하고, 학생이라 짐작하면서도 "What's your job?" "living?" 하며 말을 걸었다.  여자가 기침만 해도 "what's the matter?" 하고 관심을 보였고 가방을 뒤져 "this is for you" 하고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미국여성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뭐라고 했다. 영어가 짧은 청년은 그녀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해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평소 외어둔 문장을 기억해 내 능숙한 척 툭툭 던져 보는게 고작이었다. 그녀가 뭐라고 하면 그저 씩 ― 웃을 뿐이었다.

밤 열 시쯤 돼서 잠이 오자 이 젊은 청년, 아래층의 미국여성에게 인사나 하고 자야겠다 생각하며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인사말을 만들어냈다. 시를 쓸까?
"I must go now. to dreamworld?…"
하고 말할까 하다가 여자가 잘못 알아들을 것 같아
"May I Sleep on you?" 해 버렸다.
청년은 분명 당신의 윗층 침대에서 먼저 자겠다는 인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What?" 하고 벌떡 일어나 청년의 따귀를 때리더니 고함을 쳐 차장을 부르고 법석을 떨었다. 결국 청년은 노기충천한 그녀의 항의에 차장에게 멱살을 잡히고 침대차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추방당하면서도 영문을 분간 못한 청년은 못된 미국 여성을 원망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차창 밖을 보며 막막함을 느꼈다. 조금 후 자기를 끌어낸 차장이 지나가자 청년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차장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기차 내에서 섹스는 안됩니다."

문득 자신이 한 말 "May I Sleep on you"를 되뇌어 본 젊은이는 그제서야 머리를 탁! 쳤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당신 위에서 자고 싶다"가 되어버린 것이다.
청년은 비로소 짧은 혀를 함부로 놀린 것을 후회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지나고 나면 이 일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테지만… 당할 때 기분도 그러할까? 아무쪼록 분수에 맞게 조심할 일이다. <1988-89 월간 TTJ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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