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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수상
2002.02.02 04:59

수상 - 제16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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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시 원론에, 정치는 좋은 뜻의 상식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고 했다. "정치에 기술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엔 모든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 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주주의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조선시대 당파싸움이나 사대주의를 망국풍조로 비판해 왔다. 그러나 현실과 비교할 때,  그때의 당파싸움, 사대주의가 지금보다 더 심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옛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지금은 미국,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로 바뀌었고, 옛날 노론 소론 벽파 시파 하던 것이 ○○당, ××당, △△당, ○×당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더 골 깊은 다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정권에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야당이나, 곡예를 보여주듯 거대 신당의 출현을 절묘하게 연출해 내는 여당이나 모두 보통의 청치 기술자들이 아니다.
  
물론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테지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정치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 싶다.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선거법이며,  나라의 주요 정책, 제도가 바뀌고 대통령 임기가 고쳐지고, 심지어는 민주주의 개념까지 달라지기 일쑤였으니 이 또한 우리 나라 이상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랴.

열살도 안된 어린아이에게 장래의 꿈을 물어보면 답은 각양각색이다. 장군, 의사, 신부, 소설가, 여행가, 정치가, 만화가 등등에다 어떤 철부지는 6백만불의 사나이가 되었으면 하고 어떤 아이는 우주비행사나 원더우먼을 꿈꾸기도 한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에게 꿈과 유사한 별명을 붙여준다. 예술가가 즐겨 쓰는 빵모자를 사주기도 하고 별 계급장이 달린 옷을 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아주 어릴 때 이뤄지는 가볍고 일시적인 것이어서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거기에 깊은 뜻이나 간절한 염원을 담는 사람이란 극히 드물 것이다.

어려서 나의 별명은 "16대 대통령"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리웠는지, 또는 누가 그런 별명을 지어주었는 지 알지 못했다. 나는 한번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런 별명에도 관심이 없었다. 주위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나를 "16대 대통령"이라 불렀다. 아니  우리 나라 대통령이 점점 16대에 가까워지면서 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차츰 16대 대통령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16대 대통령은 과연 언제 뽑나. 48년 정부가 수립되고 초대대통령이 취임 했으니 4년을 임기로 한 정상대로라면 60년후인 2008년에 16대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고, 49년생인 나는 60살 되는 때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 대통령부터 개헌을 불사한 장기집권으로 '물러나면 쫒겨나는 대통령' 풍토가 시작되더니 30살이 되기까지 단 세 명의 대통령 밖에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몇 대니 몇 대니 하는 것은 의미도 없었다. 특히 유신이후는 아예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해 그나마의 관심조차 더더욱 엷어졌다. 16대 대통령의 꿈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가 버렸다.  

그 어린 날의 별명이 다시 생각난 것은 80년 봄이었다. 여전히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는데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고치는 때였다. 지금이 몇 대인가는 계산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다섯 분의 대통령 밖에 뵙지 못했으니 16대가 되려면 아직 멀었을 텐데 7년씩 따지면 내 생전에 16대를 구경이나 할까? 공연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직접 선거가 아닌 탓인지 회상 어린 미소만 몇 번 흘렸을 뿐 또 잊어버렸다.

다시 생각난 것은 8년 뒤인 88년 말 대통령 선거 때였다 어떻게 된 셈인지 벌써 13대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 아닌가. 16대에 성큼 다가선 것이다. 대통령 임기도 5년으로 줄어들어 15년 후면 16대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었다. 생전에 선거조차 못 치를 줄 알았는데 어찌된 셈인지 옛날보다 빨리 다가왔다.

하루는 역대 대통령 역사가 궁금하여 이사람 저친구에게 "지금이 13대인데, 1대에서 13대까지의 대통령 사를 아느냐" 하고 물었다.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니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대통령을 지낸 분이 누구누구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정부 수립 후 40년의 빤한 대한민국 역사였다. 그 어느 나라보다 정치 열기가 뜨겁고 군중심리가 드센 국민이었다. 그러나 4대 대통령이 누구였느냐고 묻는 물음에 선뜻, 자신에게 대답하는 상식조차 만나기 힘들었다.  

3·15부정선거가 3대 대통령 선거인가 4대 대통령 선거인가, 그 선거에 당선된 것도 1대로 치는가. 안 치는가. 그런 문제는 옛일이라 치자. 최규하 대통령이 몇 대였던가. 또 전두환 대통령은? 불과 10년 이내의 상황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정치사회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증거 아닐까.

차제에 역대 대통령 사를 정리해보면 1대-이승만, 2대-이승만, 3대-이승만, 4대 대통령 선거가 악명 높은 3·15 부정선거였고, 여기에서 이승만 씨가 당선은 되었지만 취임은 못했다. 그래서 4대 윤보선 씨으로 이어지고 박정희 씨가 18년동안 5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10대가 최규하 씨 11대, 12대가 전두환 씨, 그 다음이 13대 노태우 대통령, 그 다음 14대가 김영삼 대통령, 15대가 김대중 대통령이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가 4대, 7대, 9대, 10대 등 4대나 된다. 11대는 전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채웠다. 한 때 대통령 임기가 늘어나 16대가 내 인생에서 멀어진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빨리 다가오게 되었다. 1년, 혹은 1년반 짜리 대통령이 5대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2002년 말이면 16대 대통령을 뽑는다. 정치와 거리가 먼 소설가가 되어버렸지만 16대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가 없다. 내 어린 시절, "대통령"이란 별명을 붙이면 붙였지 왜 16대라는 예언적 의미를 첨부했을까도 궁금했다.

설날, 모처럼 먼 친척까지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내 별명은 왜 16대 대통령이었을까. 누가 그랬지?"
하고 물으니 외삼촌 한 분이 기억을 더듬었다.
"돌아가신 큰외삼촌이 붙였을 거야. 그 때 너에게 위인전기를 사줬는데 네가 링컨 대통령을 그렇게 좋아했었어"
"그랬었어요? 기억에는 없는데…"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링컨이 믹구 제16대 대통령이었으니 그렇게 부른 것이다. 별명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제16대 대통령에 누가 선출될 지는 궁금하기만 하다. 누가 16대 대통령이 되든, 16대부터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 그런 정치로 풍토가 쇄신되었으면 한다. 좋은 뜻의 상식에 의해 행해지는 정치 사회가 그립다.
<1988년 월간 TTJ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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