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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수상
2002.02.02 04:56

수상 - 유니섹스

조회 수 7484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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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sex)에 대하여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애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뱅이나, 지체 높은 양반이나, 일자 무식이나 간에.  감정을 지닌 인생이라면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법이다.
과거에는 이 본능적인 호기심을 유혹하는 방법으로 남자는 더욱 남성답게, 여성은 더욱 여성답게 가꾸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여자 흉내를, 여자는 남자 흉내를 내다못해 아예 중간에서 만나버리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른바 유니섹스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유행어가 되었다.

성전환이 가능해진 시대에서 성의 선택도 물론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타인이 성에 대해 더 강한 법이다. 거리에서 혹은 여행길에서, 남녀의 구별이 잘 안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공연히 화제에 올려보는 일은 아마도 그래서 생길 것이다.

부산에 사는 누이가 서울에 왔을 때 이태원의 한 피자점에서 만난 일이 있다. 어머니도 오셨는데 좀 늦었다. 그래서 누이와 나는 잠시 그 피자점 휴게실(대기실)에 있었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한 젊은 흑인이 들어와, 우리 맞은 편에 앉았다. 그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한 눈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누이와 나는 괜스레 그 흑인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남자다''아니야 여자다' 하고 옥신각신하였다. 나는 '입술에 루즈자국이 없다' '무슨 여자 가슴이 저러냐' 고 했고 누이는 '히프를 봐라. 히프 모양이 아무래도 여자야' 라고 우겼다. 서로 자기의 견해를 뒷받침해줄 또 다른 증거를 찾아 - 그분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 눈을 번득거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부숭숭한 특유의 곱슬머리, 새카만 피부, 수수한 캐쥬얼 차림 등, 어디를 봐도 뚜렷하게 성 구별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15분쯤 기다리니 어머니가 오셨다. 우리는 지정된 테이블로 가며 흑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60대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그 흑인을 잠시 보더니 '여잔데 뭘' 하고 간단히 잘라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손을 보면 안단다. 남자 손은 크고 양성이지만 여자 손은 작고 음성이니까. 다른 건 속여도 손은 못 속이게 되어 있단다."

우리는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손을 보고 성을 분별하니 얼마나 점잖은가? 무식하게 가슴이니 입술이니 히프니 하며 옥신각신한 건 참으로 저속하게 느껴졌다. 뿐인가. 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다리며 아랫배를 수없이 힐끔거리지 않았는가. 잠시 후 그 흑인은 기다리던 상대를 만났다. 그는 과연 여자였다. 목소리, 웃음소리를
들으며 누이와 나는 씁쓸한 미소를 나눴다.

자유의 땅 태국을 찾는 여행자는 방콕 다음에 파타야를 찾는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멋진 해변, 파타야에는 아름다운 산호섬이 있어 관광객을 한껏 유혹한다. 이 파타야 비치에 관광객이 빠짐없이 관람하는 알카자 쇼가 유명하다.  
야외에 설치된 특설 링에서 벌어지는 킥복싱이나 타이뻬이 야시장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노점상이 태국 특유의 구경거리를 얼마든지 무료로 제공하는데 반해, 알카자 쇼는 입장료를 US달러 15불씩이나 받는 만만치 않는 쇼이다. 그러나 모두들 이 쇼를 관람한다.

막이 오르면 태국 고유의 음악이 홀을 가득 매운다.  조명이 켜지고, 이윽고 남녀 무희들이 무대에 등장해 춤을 춘다. 태국 특유의 춤이 주종을 이루지만 구라파의 패션쇼를 연상케 하는 테마도 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그 쇼의 출연 여성들이 그렇게 여리고 고울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일행 중에 영화 속 여주인공을 사모하는 따위 순종파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알카자쇼의 여자에게도 빠져들 것이다.

그런데 쇼가 3분지 2쯤 진행 되었을 때 귀뜸이 온다. 여자 20명, 남자 10명 내외로 보이는 이 쇼의 출연자는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만약 이 중에 진짜 여자가 단 한 명이라도 섞여 있다면 이 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관중들은 그 순간부터 쇼 관람보다는 성 탐색에 열을 올리게 된다. 출연자들은 그 낌새를 눈치채면서 더욱 더 교태스런 손짓 몸짓에 눈짓까지 덧붙인다. 장내의 열기는 한껏 고조되는 것이다.

'거짓말이야. 어찌 남자가 저럴 수가…' 몸을 돌릴 때라든가, 유연하게 이리저리 비틀 때,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릴 때, 볼록한 유방이 힐끔힐끔 보일 때면 여기 저기서 그런 말이 한마디씩 튀어나온다. 무희들의 미소는 점점 더 간드러진다.

나는 이태원에서의 일을 기억하면서 빙긋 웃으며 손을 살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였다. 손놀림이 어쩌면 그렇게 유연한 지, 태국 춤을 추는 사람 손은 모두 여자 손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더욱 강해지는 호기심은 눈, 빰, 입술, 목, 가슴, 아랫배 등을 수도 없이 바쁘게 관찰하게 만들었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모두 완벽한 여자였다. 그렇게 탐색하고 살피고 일편 황홀해하는 사이 쇼는 끝난다.

막이 내리면 관중은 정해진 출구로 나온다. 그것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공연장 안마당으로 나가는 출구다. 마당에서는 쇼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관객과 어울려 사진을 찍어주고 팁을 받았다.

쇼에 출연한 복장, 화장 그대로였다. 나는 그곳에서 정말로 예쁘다고 점찍었던 무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사진 한 컷 같이 찍자고 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오 라이트, 생큐' 했다.  

순간 나는 졸도할 뻔 했다. 그 목소리… 목젖을 울리며 나오는 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녀가 내미는 손, 역시 틀림없는 남자의 손이었다. 알카자 쇼가 유명한 건 그런 출연자들 때문이다. 모두가 남자인데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다. 한달에 2회 정도 홀몬주사를 맞는다는데 가슴도 여자처럼 볼록해져 있다.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태국이 모계사회이기 때문이냐 아니냐를 여기서 시비할 일은 못되겠지만 우리 나라에도 저런 풍습이 금명간 들어오겠지 하고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왜 그런 비약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걸까. 강남의 퇴폐적인 요정에서 벌어지는 추잡한 쇼의 원형이 모두 태국 방콕에 있는 것을 여행하면서 확인한 죄일까?  
<1988-89년 월간 TTJ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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