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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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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의 혜초가 유학한 불교대학  



금세기 초 실크로드를 탐사한 프랑스인 동양학자 P·펠리오는 돈황에서 여러 가지 귀중한 발견을 하였다. 전승설화 정도였던 달마의 행적을 밝힘으로서 실존 인물로 증거하였고, 신라 승려 혜초(慧超704∼787)의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발견하여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의 사회 제도를 소개하게 되었다. 천축이란 중국에서 인도를 가리키던 이름이다.

산스크리트(梵語)에서 달마(dharma)는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다른 모든 존재를 활동하게 하는 질서의 근거"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처음 이 용어를 번역한 지나(支那)의 학자들은 음(音)을 따서는 달마(達磨)로 적고, 뜻은 법(法)이라고 옮겼다. 따라서 베다시대(BC 1200년경)의 달마는 "하늘의 질서로서 나타나는 리타 브리다"와 함께 형이상학적 용어로 이해되었었다. 브라마나시대(BC800년경)로 넘어오면서 보다 인간적인 쪽으로 독립하게 된 달마는 이윽고 선(禪) 바로 위에 올려질 정도로 인간과 가까워졌다. 아무리 약자라도 달마를 지니면 강자를 누를 수 있다는 식의 "최고의 존재"인 동시에, 만물이 그 힘의 정도에 구애없이 공존할 수 있는 질서의 진리가 또한 달마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돈황에서 발견된 어록에서 뜻밖에도 달마의 행적 기록이 발견되었다. 독자적인 선법이나 제자들과 나눈 문답 내용을 보면 그는 6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이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함께 발견되었다. 앞뒤가 떨어져 나간 일부였지만 그것이 8세기 인도·파키스탄·중앙아시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현존본은 인도 동부 갠지스강 유역의 마가다왕국(現비하르지방)에서 서술이 시작된다. 이어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로 가서 다비장과 열반사를 보고 남쪽으로 여행, 녹야원이 있는 바라나시에 닿았다. 다시 동쪽 라자그리하로 가서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립정사를 참배하고 법화경 설법지인 영취산(靈鷲山)을 돌아본 다음 부다가야에 이르러 오언시를 지었다.

이어 중천축국의 사대영탑(四大靈塔)과 룸비니를 방문하고 서천축국·북천축국을 거쳐  지금의 파키스탄 남부지방과 간다라문화 중심지, 카슈미르지방 등을 답사하였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온 것은 24세 때인 727년 11월이고 남아있는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16세 때 중국 광주(廣州)에서 인도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를 배운 것으로 되어있으니 8년∼9년 여행을 한 것이다. 혜초는 여행만 했을까?

파키스탄 북부를 여행 중 이슬라마바드 서북쪽에 있는 마을 "탁실라"에서 옛불교대학의 유적을 보았다. 입구에는 서너길 되는 보리수나무 여러 그루가 성지를 지키고 있었다. 안내원은 뜻밖에도 혜초를 알고 있었다. 혜초가 이곳에서 6년을 공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보니 그곳이 곧 옛 간다라문명의 중심지였다. 한때 페르샤의 침입이 있었고 그 후에도 이민족의 점령·지배가 빈번하여 인도에서도 문화적으로 특이한 곳이었다. 특히 기원전후에는 인도의 전통미술과 헬레니즘 미술이 혼합되어버려 불상의 형태, 장식모양 등에 그리스 풍의 요소가 강하게 들어앉았다. 과연 독특한 형태였다.

불교대학, 즉 졸리안 유니버시티 유적은 약 1백미터쯤 되는 언덕 위에 지붕없는 돌담 형태로 남아있었다. 2백평쯤 되는 내부면적은 둘로 나누어져 오른 쪽엔 안뜰이 있고 4기의 스투파(stupa/불탑) 모형, 지난 날 승려들이 공부를 했음직한 강당도 있었다. 왼쪽에는 중앙에 열평쯤 되는 공중목욕탕이 있고 사방 벽을 따라 3평쯤 되는 일정한 규격의 방이 늘어서 있다. 숙소로 보이는 데 혜초가 머물었던 방은 어디였을까.    

대학다운 면모는 이곳에 불교의 4대 종파가 다 모여있는데서 느낄 수있다. 사각으로 만들어진 모형 스투파의 각 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각각 다른 유파의 미술이었다. 한쪽은 전통적인 보수계의 장로부불교, 한쪽면은 대승불교, 또 한쪽은 소승불교, 또 한쪽은 티베트불교의 상징물로 장식되어 있어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보니 부처님 인상도 참 다양했다. 서양인 모습의 부처도 있고, 중앙아시아인을 닮은 부처도 있다. 필자는 그 사이에서 갑자기 말을 잃어버릴만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를 발견하였다. 낮에도 빛이 들지않아 자연광으로 카메라에 담기 어려운 정도엮는 데 모나리자보다 더 신비감을 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곳은 밀교 대학이다. 밀교는 현교(顯敎)에 대응하는 명칭이며 진언불교(眞言佛敎)라고도 한다. 승려들은 이곳에서 배출되어 전세계에 밀교를 전파했다. 인도 대승불교 말기인 7세기 후반에, 힌두교의 영향이 가미된 밀교경전 대일경(大日經)·금강정경(金剛頂經)이 완성되면서 갑자기 융성해진 유파로 알려졌으나 실은 그 이전부터 밀교계 경전은 있었으며 뿌리는 베다시대까지 올라간다. 그리고보면 파키스탄의 사라진 불교역사는 밀교에 그 열쇠가 있는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엉뚱한 오지에서 혜초의 숨결을 느낀 것이 밀교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한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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