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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도 사람이 산다. 살아가는 근본 모습도 같다. 다만 역사와 환경이 다름에서 풍습과 생활형식이 다를 뿐이다. 여행의 참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상식을 넓히고 지혜와 슬기를 익혀 나름대로 구김살 없는 풍요한 삶을 구가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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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3대 유일신의 각축장

제한된 면적의 작은 나라. 그러나 작은 나라에 어울리지않게 다양한 기후와 변화많은 풍경을 보여주는 이스라엘. 비옥한 갈릴리지방이 있는가 하면 불모의 네게브가 있고, 산악과 해안, 사막도 있다.  
지구촌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회교 유대교의 성지(聖地:holy gland)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곳에서 탄생했고, 회교의 경우는 모하메드가 승천한 곳으로 메카 메디나나 더불은 3대 회교 성지의 하나이다.
유일신 종교의 특징은 다른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있다. 자연 이 땅의 역사는 3종교의 힘의 각축장으로 바람 잘 날 없이 얼룩져 왔고, 그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평화의 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말썽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불화의 땅"이었다. 어쩌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중동의 교두보에 위치하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이 곳엔 1만년 전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도시인 여리고가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농경(農耕)이 시작된 구석기 시대로부터 ▲여리고 주민 ▲가나안 족 ▲구약성서 시대의 이스라엘인 ▲그리스인▲로마인 ▲비잔틴 시대의 사람들 ▲유럽의 십자군 ▲바므룩인 ▲터키인 ▲유럽과 러시아의 크리스찬들 등이 이 땅을 차례로 지배해 왔다.

금세기 중엽 이스라엘의 재건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결속을 바탕으로 한 민족자결주의로 이룩되었다. 오랜동안의 박해와 이산민족으로서의 수난을 종교적인 힘으로 이겨낸 결과였다. 종교적 결속이 기초가 되지 않았던들 오늘날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재건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건국 이후의 많은 고통을 참아내며 강한 국가로 성장하기 또한 쉽지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지순례의 성격에 머물지만, 역사가로서나 예술가의 위치에서 여행을 해도 손쉽게 기대 이상의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또 단순 휴양을 위해 찾아도 아름다운 홍해와 따뜻한 지중해 해변에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어 "겉으론 작지만 안으론 큰나라" 이스라엘을 잊지 못 하게 될 것이다.        
  
텔 아비브 (봄의 언덕) 이야기

유대인들이 마음의 고향인 예루살렘을 찾는데는 2천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2천년 유랑생활동안 유대인들은 세계 도처에서 박해를 받았다.
끝내 기독교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유대인들 사이에 나라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로 유럽에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 대두됨과 때를 같이한다.

19세기 초 독일은 수백개의 영방(領邦)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에 프로이센은 독일의 재건을 목표로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여 베를린 대학을 창설(1811)했고, 초대 총장이 된 J.G.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통해 독일인만이 전 인류의 도덕적 개혁에 공헌할 수 있는 민족임을 주장하면서 자각을 촉구하였다.
이것이 사상적 기원이 되어 후일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나치스독일시대나 일본의 황국신민시대와 같은 광신적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낳는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어쨌든 초기 내셔널리즘의 시작은 강력한 국가건설 보다는 사분(四分)된 국가의 체계확립과 민족적 통일이 목표였었다. 내셔널리즘이 유럽에 번지면서 이민족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소수민족으로 각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비난이 격렬해졌고 이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그나마 유럽의 전통과 타협하면서 생활하려고 하는 부모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민족주의적 이상에 불탄 그들은 다른 민족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 자기들 마음의 고향인 팔레스티나에 가서 그곳에 이상향의 나라를 세울 것을 생각했다. 유대인이기때문에 학대받는 일이 없는 나라,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다. 그들은 시온산을 국가건설의 상징으로 삼았고 전세계 유대인을 대상으로 "시오니즘(시온산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 운동"을 벌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인(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을 거부했다. 아랍인과 유대인들의 생존을 건 첨예한 대립은 이렇게 19세기 후반에 이미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의 기수를 자처하는 유대인 청년세력은 유럽에서 배를 타고 와 야포(Jaffa)에 전진기지(?)를 마련했다. 야포 역시 당시로서는 아랍인들로 가득했던 항구도시였다. 일단 근거 마련에 성공한 유대인의 수는 점차 증가하였다. 몇년 후(1906) 그들은 기금을 만들어 야포 북쪽 교외의 토지를 공동명의로 구입하였고, 여기에서 60여 세대가 건국을 꿈꾸며 새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그 마을을 텔 아비브(Tel Aviv:봄의 언덕)라고 했다. 텔 아비브는 바빌로니아시대(기원전 586∼536)의 유태인 촌락이며, 또한 시오니즘 운동의 지도자였던 헤르쯜의 저서 "오래된 새로운 나라"의 헤브라이어 번역에연유된 이름이다. 결국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의 공(功)은 아닐지언정 건국의 꿈은 이루어졌고, 마을은 이스라엘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했으며,  텔 아비브는 유대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도시로 기록되었다.    

지금 이스라엘의 정치나 행정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지만 비즈니스는 텔 아비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도시를 인구 수로 단순 비교하면 예루살렘이 다소 많지만, 그러나 교외에 펼쳐져있는 주거 전용의 위성도시를 포함한 도시 규모나 경제적 크기로 따진다면 메트로폴리탄 같은 텔 아비브가 단연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텔 아비브는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며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도시로 예루살렘에는 없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기후가 따뜻하다는 것과 지중해 해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개방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번화가 카페들이 보도에 늘어놓은 테이블들은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스라엘 하면 연일 뉴스를 오르내리는 아랍과의 극한 대립으로 위험하다는 인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텔 아비브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온화하고 평화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오늘의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습이라 하여 과언이 아니다. 치안상태도 부족함이 없어서 적어도 여행자가 마음을 조려야 할 일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다.  

민족 관습

유대교도들만 사는 지역에 가면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그들은 하나같이 귀밑 털을 길게 기르고, 검은 모자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다. 그리고 성서에 쓰여있는 여러가지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며 산다. 안식일이 되면 일 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요리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침도 삼키지않고 전기도 켜지 않는다. 안식일에 걷는 거리도 정해져 있고 이곳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전부 차단되어 밖에서는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억지로 들어가면 지금도 돌멩이 세례를 받는다. 안식일에 오락이란 더더욱 말도 안된다.  

그들은 헤브라이어가 성서의 언어여서 일상에 사용하는 것을 황공하게 여긴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독일어와 비슷한 이시디語를 쓴다. 일부 유대인은 근대국가인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메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엔 이렇게 보수적인 유대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예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나 반대로, 이 나라 사람들이 한 가지 패턴에 구애받지 않고 산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런 의문은 "유대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 상기하면 쉽게 풀린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선진국에 있던 성공한 유대인만 돌아온 것이 아닌 것이다. 저개발국가인 예멘, 모로코에서도 왔고 동유럽에서도 왔으며 아프리카에서도 돌아왔다. 그중에는 천성적으로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전혀 교육을 받지못한 사람도 상당수 있어서 이스라엘에 정착한 뒤에야 교육을 시작한 유대인도 많았다. 그런만큼 모든게 다양하여 세계의 요리가 있고 풍속과 문화가 뒤섞여 버렸다. 자동차 옆으로 당나귀가 다니고, 초현대적 건물 옆에 고대의 유적이 나란히 남아있다.

아랍인들과도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경지대로 가면 여전히 전운이 감돌지만 나라 안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모스크와 교회와 시
나고그가 함께 있는 거리를 걷다보면 교회의 종소리에 코란을 읽는 소리가 사뿐이 얹히고 다시 유태교도가 불어대는 뿔피리 소리가 교차한다. 청바지의 젊은 배낭여행자 앞을 양떼를 모는 아랍인이 옛의상을 입고 지나가고, 그 뒤를 귀밑털 길게 늘어뜨린 검은 옷차림의 유대인이 바쁘게 걷는다.

이렇게 고대와 현대, 전쟁과 평화, 보수와 진보 등 상반되는 요소가 적당히 균형을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는 나라가 아시아 서쪽 끝에 있는 이스라엘이다.

교육제도

이스라엘 국민의 교육열은 대단히 높다. 15세까지 의무교육이며 전국에 8개의 국립대학이 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배우고, 아랍인들은 아랍어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15세까지 의무교육이라지만 일률적은 아니어서 일정기준 이상 유복한 가정의 어린이는 의무교육 기간에도 학교에 돈을 내야한다. 유대인들은 일반대학이 아닌 예시바(Yechiva)라고 하는 유대계 신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는 군복무 기간이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누구나 남·녀를 불문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군의 기초교육 중 상당부분이 학교교육의 연장이다. 이 기초교육을 이수하지 못 하면 복무기간 만기가 되어도 전역이 안된다. 남자는 36개월, 여자는 2개월이 의무복무기간이다.  

여행 정보/가는 길

지난해부터 대한항공이 주 1회(매주 수요일) 텔아비브를 직항한다. 보통은 대한항공이 1회 운항하면 상대국 국적비행기도 한번 왕복하여 주2회가 되는데 이스라엘의 경우는 대한항공이 혼자 수요를 감당하고 있다. 파리나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는 매일 있다. 이스라엘은 성지순례를 위해 찾는 사람이 많은데, 성지순례는 카이로로 가서 버스로 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입국은 버스가 편하고 쉽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터키에서라면 배를 타고 한가롭게 지중해를 건너 항구도시 하이파로 입국하는 것도 이색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관광 목적의 여행자인 경우 입출국과 통관에 별다른 제약은 없다. 그러나 항상 테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인만큼 보안검색이 대단히 엄격하다. 특별히 주의할 사항은 입국카드를 기입하고 비자를 받되 여권에는 스탬프를 찍지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입국 도장이 있으면 이집트 이외의 다른 아랍국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권을 제시할 때 입국 검열관이 스탬프를 찍을지 여부를 반드시 물어본다.

출국하는 비행기표가 있어야 하며, 수백달러 이상의 현금도 있어야 한다. 현금을 충분히 가지지않은 여행자들이 입국을 거부당한 사례가 종종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숙박 음식

이스라엘을 찾는 성지순례자는 년중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나라답게 숙박시설은 다양하고 또 많다. 호텔의 등급은 별로서 표시되며 특급호텔부터 도미토리 형식의 유스호스텔에 이르기까지 형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특징이 있다면 -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지만 -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밝을 때 숙소를 찾아야지 어두워진 후에는 힘들다는 점이다.  간판도 작고 네온이나 가로등도 별로 없는데다 건물도 호텔같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신시가지나 텔 아비브같은 현대적인 도시는 조금 낫지만 그래도 도착하자마자 호텔부터 구해놓는 것이 정석이다.

호텔 외에도 잘곳이 많다. 예루살렘에는 관광객들이 민박할 수 있는 유태인 가정이 있다. 관광국의 허가를 받은 집들이며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집들인데 하루에 US$ 10 이면 충분하다. 또 캠프지역이 곳곳에 있는데 기온도 높고 비가 잘 오지않기때문에 침낭 하나로 충분히 잠을 잔다. 사해나 에일라트 해안, 마사다의 정상 등이 캠핑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다만 모기가 많으므로 "모기 대비책"만은 미리 강구해야 한다.

숙박비는 비교적 싼 대신 음식값은 의외로 비싸고 맛은 없다. 관광객 상대의 레스토랑들이 더 그렇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곧잘 현지인들에 섞여 카운터에서 그들이 먹는 것을 먹는다.

세계 각국에서 돌아온 유태인으로 구성된 나라이기에 각국의 요리가 뒤섞여 있다. 독특해보이는 피타(빵)도 중근동 지역의 것이고 피타에 여러가지 소스나 내용물을 넣어 먹는 음식문화도 주변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유태인의 음식(코세르)에 특징이 있는데 고기제품, 우유제품을 한꺼번에 먹지 않는 것이다. 피자에는 살라미나 햄을 넣지않고 조개류나 새우류도 금물이다.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금하므로 소시지는 닭이나 칠면조, 쇠고기로 만드는데 값이 매우 비싸다. 신앙심 깊은 유태교도는 커피도 밀크를 빼고 마신다.  

가볼만한 곳/ 예루살렘

보잘 것 없는 풍경과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유대광야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예루살렘. 그러나 성경을 읽은 사람에게 예루살렘은 길 가에 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로 보아지지 않는다. 회교냐 그리스도교냐 유태교이냐에 따라서 각각 부여하는 가치나 중요하게 여기는 순위(?)는 달라지지만 예루살렘 자체는 3대 종교 모두에게 다시없는 성지이다.

▲유태교에 있어서는 비탄의 벽(서쪽의 벽/통곡의 벽이라고도 한다)만큼 중요한 곳이 없지만 ▲회교에서는 이 벽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엘 아크사 사원이 절대적인 성지이다.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 기도시간이면 많은 회교도가 모여든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었던 길 "비아 돌로로사"도 이 부근에 있다. 길은 골고다 언덕이었던 성분묘 교회 쪽으로 이어진다.

회교도가 많은 구시가는 회교율법에 따라 금요일 하루가 안식일이어서 상점들도 문을 닫는다. 금세기 유태교도에 의해 만들어진 신시가의 안식일은 유태교리에 따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쉰다. 그리스도교는 일요일을 쉰다. 이렇게 각각이지만 신기하게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도시가 또한 예루살렘이다.

야포거리·벤 예후다 거리·킹 조지 거리로 대표되는 신시가지에는 유럽식의 빌딩이 서 있고 커피숖과 상점이 나란히 있다. 번화가라도 요란한 네온사인은 없고 도시 주변은 조용한 주택가이다. 작고 아담한 공원들이 곳곳에 있고, 벤치에 한가롭게 쉬고있는 시민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구시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크게 4개 지구로 나뉜다. ▲그리스도교지구 ▲유태교지구 ▲회교도지구 ▲아르메니아인 지구인데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

성지순례

이집트를 시발점으로 하는 성지순례는 "시내산"을 거쳐 "타바"로 이스라엘에 입국하여 홍해를 보고 "에일랏"에서 하루 쉰 뒤,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 예루살렘에서는 올리브산(감람산), 겟세마네동산, 기드론골짜기, 통곡의 벽(비탄의 벽), 성전산, 십자가의 길, 예수님 무덤 교회, 시온산, 다윗왕의 무덤, 마가의 다락방, 베들레헴, 예수님탄생교회 등을 둘러본다. 그리고 티베리아스로 가는 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 여리고, 요단강, 산상수훈의 팔복산,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 베드로 수위권교회, 가버니움, 갈릴리 호수 등을 거친다.

티베리아스에서 쉰 뒤, 가나마을 혼인잔치 교회, 나자렛, 므깃도, 갈멜산, 가이사리아, 윰바 등을 순례 후 텔 아비브에 닿는다. 텔 아비브에 들어서는 순간 성스러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갔던 성경 속의 세계에서 다시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한 현대로 되돌아온듯한 홀가분한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텔 아비브에서 쉬고 로마로 향하는게 일반적인 코스이다.

한 곳도 소홀히 여길 곳이 없는 성지를 짧은 일정으로 돌아보는 것은 바쁘고 피곤한 여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관점이 문제일 것이다. 말 그대로 성지순례인만큼 돈독한 신앙심으로 성경을 읽어가며 여행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여행사에서 취급하는 일정표는 9박10일짜리부터 16박17일짜리까지가 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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