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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맑게 하고 소화를 돕는 차. 차는 인간에게 무한한 활력을 주며 오묘한 사색의 숲으로 인도한다. 성품이 부드러워 늘 마셔도 부작용이 없는 인생의 반려. 색향미를 음미하며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용서와 이해와 조화의 심미안이 열린다.

한국차문화사
2002.02.02 03:49

한국의 차문화/ 조선 건국과 신유학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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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그렇게 널리 민중의 사랑을 받던 차는, 조선조(朝鮮朝)로 접어들면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抑佛崇儒) 기운에 밀리면서 불교와 함께 급격히 쇠퇴하는 현상을 보인다.

온 국민이 즐기던 기호음료에 종교색이 있을리 없건만, 차는 "불교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는지, 조선의 분위기에서는 멀리하여 쇠퇴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차의 기원"에서 보았듯이, 차는 종교 이전에 약용이었다가 차차 음용
이 되었다. 차생활이 시작된 초기 신라는 불교국도 아니었다. 신라는 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에나 불교를 받아들였고 이후 통일신라에 이르러 번지
기 시작했다. 그 뒤 고려에서 불국토(佛國土)다운 융성함을 보였었다.

불교가 국교(國敎)였던 시대에는 왕실법도나 선비생활이나 민간 습속
모두 불교라는 하나의 큰 그릇에 용해되는 것이 당연했다. 가장 아낌받는
음료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국가의식에 사용하고, 또 국민이 즐겨 마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차에 불교색을 씨워 배척하는
것은 아무리 정치적 목적에서 억불·척불(抑佛·斥佛)이 시급한 과제였다
해도 현자(賢者)의 처세는 아니었다.

각도를 달리하면 그나마 이해가 어려워진다. 조선 건국과 더불어 새롭
게 국교로 등장한 유교의 경전, 즉 주자학(朱子學)에 의한 척불(斥佛)이,
차생활을 쇠퇴시킨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에 의문이 따르는 것이
다. 주자학이 척불을 주도하여 모든 불교적인 것을 멀리하도록 한 것은 사
실이지만, 그러나 차(茶)만은 받아들여 가례의 중심을 삼도록 하였다. 척불
과 차생활에 동반적 관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인데, 이유는 주자의 사상이
다름아닌 차생활(茶生活)로서 가꾸고 다듬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주자(朱子:朱熹1130∼1200)는 남송(南宋) 푸첸성(福建省) 우계(尤溪) 출
신으로, 그곳은 중국에서도 차의 본고장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그는 무이산
에 있는 문공서원(文公書院)에서 철학을 완성했는데 그곳의 다풍(茶風)은
검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14세에 부친을 잃은 그는 건안(建安)의 세 분 선생(유병산·호적계·유
백수)에게 사사하며 면학에 힘써 19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24세에 임관하
여 푸젠성 동안현(同安縣)의 주부(主簿)로 4년 여 근무하였는데, 초년에는
유교적인 교양을 쌓으면서 일편 노장(老莊)·불교에도 흥미를 보였다. 그
러던중 정이(程 :伊川)의 학통을 이은 이동(李 :延平)을 만나 사사하면서
퇴직을 불사하고 유교에 몰입하여 끝내 신유학의 정수(精髓)를 계시받기에
이르렀다.

주자의 학문이 차생활을 통하여 다듬어졌다는 것은 굳이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사상적 특징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이기철학(理氣哲學)은, 형이하
학적인 기(氣)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인 이(理)를 세워 이와 기의 관계를 명
확하게 하고, 생성론·존재론에서 심성론·수양론에 걸쳐 이기에 의하여
일관된 이론체계를 완성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차생활에서 가르치는 예술
적 사고의 일상화와 섬세한 인격을 위한 심성순화·자기수양과 일치하는
것이다.

주자의 학문수양법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것을 회복한다는 형식을
취하면서 이를 위한 노력을 거경(居敬) 궁리(窮理)라고 했다. 거경이란 마
음이 정욕에 사로잡혀 망년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일 없도록 하는 것이
며, 궁리는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이치를 규명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노력을 거듭 쌓아 근원(根源)이 되는 한 이치(理致)를 파악하는 것이 목표
라고 하였는데, 이부분 역시 차생활 훈련에서 강조하는 인간 본래의 성품
회복이나, 심미안(審美眼)으로 만물의 존재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찾아보
는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  
  

주자 이전의 유교는 실천 도덕이었지 체계적인 사상은 아니었다. 주자
가 등장한 시기는 주돈이(周敦 ) 정호(程顥) 정이(程 ) 학통의 우주론과,
명분을 중요시하는 구양수(歐陽修) 계열 춘추역사학파가 쌍벽을 이루고 있
는 때였다. 주자는 차생활을 통한 깊은 연구와 사색으로 두 이론을 합성하
여 이른바 주자학을 완성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우주와 인간세상의 근본원
리를 도(道)라고 하였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의 이치를 규명하여(格物致知) 이 도(道)
를 터득함으로써 성인이 되는데 있다고 했는데, 주자의 도를 사회적으로
적용될 때면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 등 상하 질서로 나타나게
하였다. 여기서 주자는 다시 "이와같은 인간사회의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자를 간물(奸物)"로 규정하면서, 간물에는 필주(筆誅)를 가하는 것이 성인
의 도리(道理)라고 하였다. 주자학 도입 후 조선인의 모든 일상생활은 이
이론에 의해서 도덕률(道德律)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주자의 이러한 사상은 학문으로는 훌륭했지만, 현실에 적용할 때는 여
러 가지 폐단이 생길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인간이 모두 성인일 수 없
고, 설혹 성인시 되는 사람이 있다해도 만능일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충
(忠)과 효(孝)를 동시에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털고
털어도 남는 게 먼지일진대 털어 먼지 안 날 사람은 없었다. 나라에 충성
하다보면 불효를 저지를 수 있고 형제라도 뜻이 같지 않으면 불화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주자의 그릇은 너그럽지 못했다.

급기야 서로 자기 세계를 내세워 군자니 소인이니, 불효자니 해 가면서
관직에서 내쫒고 혹은 처벌하는 일이 벌어게 되었다. 범(法)이 아닌 도덕
적 엄격주의를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사회규범으로 삼은데서 조선의 당파
싸움은 심화(深化)되기 시작했다.

왕대비가 죽은 아들의 상복을 3년을 입느냐 1년을 입느냐 하는 것도 큰
정치문제였고 젯상의 생선꼬리가 동(東)을 향하느냐 서(西)를 향하느냐도
피를 부를만큼 큰 문제였다.  

도덕(道德)은 곧 실천이기에 이를 앞세우다보면 사유(思惟)하는 여유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주자는,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자신의 사상
(思想)에 차생활로 윤기(潤氣)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의 위정자들은 차는 멀리하고 사상만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도 윤활유가 없으면 불협화음이나 요란스럽게 내다가 쉽게
마모·파손되듯이, 물끼없는 도덕적 엄격주의는 조선을 공리공론(空理空
論)이 횡행하는 건조한 사회로 만들어 갔다.

생각할수록 아쉬움만 커지는 조선의 어리석음이었다. 만약 그때 학문하
는 사람들만이라도 차생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였다면, 이기사상(理
氣思想)과 어울려 멋진 조화를 보여주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물질생활이
천시되던 청빈(淸貧)의 시대에서 엄격한 처세법, 자기수양법을 잉태하며
소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선비정신을 대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은 사유(思惟)를 통한 의미 부여보다 인식(認識)을 더 중요
하게 여겼다. 조선의 이러한 특징은 사군자(四君子)에 대한 애정에서도 엿
볼 수 있다. 눈 속에서 피는 매화(梅花),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난초(蘭草),
늦가을까지 고고하게 남아 맑고 높은 하늘에 향기를 뿌리는 국화(菊花),
곧게 자라는 대나무. 이 네가지가 선택된 것은 하나의 인식으로 통하는 맥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절개(節槪)와 지조(志操)였다.

신유학의 득세로 억불이니 척불이니 하는 용어를 쓰게 되었지만 냉정하
게 판단하면 유교는 불교와 도교에 대립하는 학문이었다. 불교나 도교가
지닌 대응상의 약점을 유교는 여지없이 파고 들었다. 도교의 은둔경향과
불교의 초속적(超俗的) 출가(出家)는 가정과 사회를 멀리하게 하고 나아가
국가생활조차 가볍게 보게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맞서 인식을 중요시한
성리학은 우주와 인간세상의 근본원리를 하나의 궤(軌)에 묶어 도(道)라고
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교의 약점은 불교의 연기(緣起) 법계(法界)처럼 깊은 형이상학과 참
선같은 수행이 없는 것이었다. 유학은 이에 대항하는 이론이 논어·맹자·
중용·대학에 많이 담겨 있음을 파악하고 이 네 가지를 유학의 기본 경전
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학문적 대립, 사상의 반목 속에서 주자의 사생활까지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못한 조선은, 끝내 차생활을 불교 도교의 것으로 치부해 멀리
하게 된 것이었다. 다례는 물론 관·혼·상·제 사례(四禮)의 차(茶)는 모
두 술(酒)로 고쳐지게 되었다. 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성리학의 대가
들은 청정수(淸淨水)로 감로차(甘露茶)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

조선으로 접어들어 차생활이 쇠퇴일로를 걷다가 중엽에 이르러서 단절
되다시피 하는 것은 역시 척불(斥佛)이요, 척불로 인해 사원의 활동이 위
축되고, 이에 따라 사원 주변(茶村)에서 만들어지던 차의 생산이 급격히
감소된 데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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