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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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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의 발전 방향

“차 한 잔…”
오랜만에 차인지를 통해 음미해 보는 정답고 훈훈한 말이다. 여전히 차가 있는 곳은 좋은 만남의 자리다. 상대가 반가울수록 차 한 잔의 자리에 정성을 다한다고 했는데 글을 쓰는 마음도 그렇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함께 경계하라는 초의선사의 가르침(中正)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절대적이 되고 있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보니 「차문화의 발전 방향」이란 주제가 너무 과분하고 부담스럽다. 「월간 다담」에서 물러난 이후 한동안 차운동의 일선에서 물러나 문학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잊을 수 있는 세계도 아니요, 탕자나 되었던 것처럼 차생활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발 뒤로 물러나 차 이야기를 삼가며 지냈을 뿐이다.

그러나 눈만 감으면 이유 없이 그리운 차선생님들… 차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차선생님들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감미로운 차의 뒷맛만큼이나 가슴을 파고드는 그 그리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면 불쑥 불특정 다회에 참석하곤 했고 여전히 서로 부정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 다시 물러나 있곤 했다. 그런데 최근 몇몇 행사를 보니 이젠 성숙함이 확연히 드러남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차행사의 독특한 칼라가 없어지고 일상화(생활화) 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알리고 보여주려는 꾸밈이 사라지고,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니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다. 역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차선생님들이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음에 고개가 숙여졌다.

돌이켜보면 차운동에 가장 열심이었던 기간이 1980년대의 10년 간으로 회상된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정부는 한국의 대표적인 생활문화로 차생활을 선정했었다. 82년 11월 초의 일간지들은 "우리 차 마시기에 정부가 앞장서기로 했다"는 굵직한 제목 아래 "12월 초부터는 관청을 찾는 모든 손님에게 커피나 다른 음료 대신 전통차를 내기로 하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가 앞장 선 정책적 홍보란 정말 든든한 울타리였고 그것이 그때까지 소극적이었던 차를 일반에 알리는 도화선이었다. 문화공보부는 즉각 각 부처 장·차관과 청장, 원장 및 국장급 이상 고급공무원 부속실 여직원부터 다도를 교육하는 등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부나 언론에 다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따라서 차의 의미가 심도 깊게 다뤄지지 못했고 나아갈 방향도 바로 홍보되지 못했다. 교육도 너무 고유의 복장이나 구시대적 예절에 치우쳐 호응을 얻지 못했다. 설득력을 잃자 차운동은 이내 변질되어 100% 수입되는 커피의 대체 효과로서 국산인 차산업을 진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 시장의 형성이 먼저라는 판단에서였다. 생산과 소비가 활성화 돼야 문화도 생겨난다는 논리였다.

그것은 갈림길과 같았다. 필자도 그때 갈등을 느꼈다. 인사동의 다담 잡지사는 다경향실이란 찻집을 겸하고 있었다. 문화를 뒤로 미루고 산업을 장려하는 것은 잡지 발행을 멈추고 찻집 경영을 활성화 하는 것과 같았다. 이때 필자는 잡지를 택했다. 차운동의 변질이 차선생님들의 자리를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차문화 계도에 앞장 선 차선생님들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그러다가 설 자리가 모호해져 끝내 잡지 경영이 어려워지자 필자는 잡지 발행을 이어줄 사람에게 다경향실을 얹어주었다. 상처를 안고 한 발 물러나 있기로 한 것이었다.  

차선생님들도 상처가 컸다. 차운동이 민족정신을 고양시키고 예의범절을 되살려 한국인다운 인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라면 마땅히 정부가 차선생님들을 후원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차마시기를 장려하여 차산업 중흥에 기여했다면 생산 판매자들이 떠받들고 지원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쪽도 없었다. 한국적인 모습 되찾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보상받지 못했고, 차 장사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나 역시 대접받지 못했다. 얼마간쯤 지나니 모두 제가 잘나고 제가 노력해서 성취도 하고 공적도 세우고 돈도 벌었다는 식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차 마시기를 권장하고 차 정신의 회복을 외쳤던가?  그야말로 조국과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위해 헌신적 노력을 아끼지 않은 차선생님들은 버림을 받은 것과 같았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 (겸양을 미덕으로 하는 차정신에 위배되더라도) 스스로 의미를 정리해서 자기를 내세워야 했고, 그러다보니 서로 밀치고 부정하고 다투는 일까지 생겨났었다. 과도기적 현상이라 넘기기엔 그 아픔의 정도가 뜨거웠던 열기만큼이나 깊었었다.

그렇게 외면당하면서, 그래도 차의 소중함을 아낀 선생님들은 전통예절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며 ‘다례법’을 창안하고 ‘차생활’을 가르쳤다.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다도 다법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에 착안하여 문헌을 찾아내고 다례를 복원시켰다. 필자는 그들의 진실한 노력이 있어 오늘날 이만큼이나마 한국적 색깔을 되살리는데 기여했다고 외치고 싶다.  

차선생님들을 아프게 한 또 하나는 호사다마(好事多魔) 현상이었다.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자 그 물결에 슬그머니 동승하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재력 권력 학력을 앞세우고 대거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 마련을 위해 다도(茶道)냐, 다례(茶禮)냐 하는 따위 소모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일본식이다, 중국 것이다. 하며 차선생님들을 몰아 세웠다. 차산업이 먼저라며 시장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도 그들의 영악한 논리였다. 그들에게 차는 수단이기보다 다분히 목적격이었다. 인품이나 수양의 정도는 이미 다른데서 갖췄다는 식으로 재력 경력으로 눌러놓고 다계의 상석을 차지했다. 우리 집도 선대부터 차를 마셨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공개된 자리에서 스스로 다인(茶人)이라 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차운동은 이내 차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들로 무질서와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소비자로서의 안목조차 없는 그들 덕분(?)에 차와 다기, 관련 산물 값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인상되어 생산자들을 벼락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와서 과거를 탓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돌이켜볼 때 차산업은 차선생님들의 희생 위에서 성장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산업이 차문화 발전의 진정한 후원자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싶다.

문화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이나 습관의 총체이다. 물질적 소산은 문명으로 문화와는 다르다. 문화라는 용어가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라는 가리켰는데, 나중에 교양 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면 애써 관련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현대적 해석에서 문명은 산업을 가리킨다.

차생활의 대중화로 우리 사회가 차문명은 발전시켰다. 그러나 비문화인에게 차는  영원히 음료일 뿐이다. 차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문화를 지원하여 발전시키지 않는 문명, 즉 산업은 이내 쇠퇴하거나 문화를 앞세운 외국 문명에 먹히고 만다. 차시장이 커졌다고 하나 중국차 일본차의 범람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예고임을 깨달아야 한다. (월간 다인 08.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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