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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칼럼
2005.01.26 15:38

칼럼 - 담배와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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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담배를 좋아했다. 온통 사회가 담배 피우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폐암에 걸릴 확율이 높다 라든가 오래 사는데 지장 있다 는 말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공히 그렇게 골초셨는데 102세까지 동고동락하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102세에, 할머니는 2년 후 가셨다. 두 분 다 병고 없이 깨끗하게 가셨다. 할아버지는 80년, 할머니는 50년 정도 담배를 즐겼다. 그게 내 가족의 일이니 남의 말이 들릴 까닭이 없다.

하루 한 갑이 차(茶)를 즐기면서 두 배로 늘어났다. 차를 알기 전에는 저녁이면 머리가 무거웠다. 그런데 녹차를 자주 마시니 두 갑을 피워도 기분이 맑고 거뜬했다. 알고 보니 녹차의 카페인과 담배의 니코친이 중화작용을 한다고 한다. 차츰 담배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던 내가 담배를 끊었다. 막내 때문였다. 첫 아이가 자랄 때는 직장이 평범하여 단란하게 살았는데 막내 때는 잡지를 경영하면서 힘들어 집에 못 가는 날이 많았다. 막내는 차츰 아빠가 없으면 보고싶어 하고 앞에 있으면 뒤로 물러나는 아이가 되어 갔다.

형편이 나아지자 막내에게 신경을 쓰기로 했다. 퇴근하면서 전화하여 마중 나오게 하고 대학로에서 같이 놀아주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아이와 아빠는 곧 친해졌다. 잠 잘 때면 제 옆에 벼개를 놓고 “아빠 자리”라고 했다. 물론 나란히 잤다. 그러던 하루, 아침에 일어나니 옆에 있어야 할 아이가 없었다. 아내가 말했다. “아빠한테서 담배 냄새가 너무 난다고 옆방으로 갔어요”

그 순간 나는 그럼 담배를 끊어야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시간 이후 일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금단증상이 심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절실했다. 담배가 생각나면 그 위에 막내 얼굴을 떠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담배를 끊은 이후 내 눈에 비치는 흡연자의 모습이다. 여럿이 있는 좁은 실내에서 기세 좋게 연기 뿜어대는 무례파, 재떨이가 있음에도 바닥에 재를 털고 꽁초 함부로 버리는 만행파, 담배 입에 물고 일하거나 놀거나 운전하는 것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금연 구역에서 고통스러 하는 몸짓과 벗어났을 때의 그 행복해 하는 모습에선 연민의 정까지 느껴졌다. 아아, 내 모습도 저와 같았겠지,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담배를 피울 때야말로 예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담배를 양성화 해 예절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담배를 꺼낼 때는 언제라도 주위와의 조화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불을 붙일 때는 바람의 방향까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영향이 미친다면 참아야 한다. 흡연자가 이러한 예절을 익히고 지킨다면 지금 같은 강경 일변도의 금연운동은 필요 없지 않을까.

식탁에 모였을 때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이야기 해주었다. 어느 듯 대학 2년생이 된 큰 아이는 싱긋 웃었다.
“담배를 피우시면서 모범을 보여주세요. 그래야 설득력이 있죠”
담배의 속성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허허, 그걸 안다면 네 이 녀석. 너 벌써 담배를 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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