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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장편
2002.02.02 04:49

새연재 - 위대한집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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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집념


                                     (1)

하늘빛이 유난히 고운 오후였다. 하늘빛만 보아서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한가하게 떠 있는 뭉게구름도 막 포장을 벗겨낸 새 솜처럼 싱싱하고 깨끗했다. 9월로 접어들어 서너 차례 태풍이 빗겨 지나가고 또 십여 일에 걸쳐 수시로 비가 내려 계절의 변화를 재촉한 감은 있었다. 그러나 한낮의 열기는 아직 후끈한 맛이 그대로 있어 여름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침과 낮의 일교차가 커 감기가 특히 조심되는, 추석을 며칠 앞둔 때였다.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출입문 옆에서 친구 장연숙을 기다리는 유선옥은, 아침에 바람이 서늘하여 긴 팔 투피스를 입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기상청은 한낮 최고 기온을 26℃ 정도로 예보했는데 체감온도는 한 여름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더위는 오후 네 시를 넘겨서야 한풀 꺾였다. 약속은 다섯 시였다. 명동제과점에서 아주 예술적인 케잌을 개발했는데 맛도 그만이라는 정보가 있어 함께 가기로 한 거였다. 연숙의 스물세번째 생일이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연숙에겐 선옥이 외에, 그렇게 어울릴 친구가 없었다.

문을 연지 반년 남짓한 명동제과점은 선옥의 언니 선희가 주인이었다. 언니지만 열두살이나 위여서 막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궁여지책으로 제과점을 차렸고 잘 운영하는 듯 싶지만 언니도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타입이어서 아직 미혼이었다. 어쩌면 삼십대 중반이 된 지금은, 혼자 지내기에 지쳐 세상과 타협하려고 번잡한 제과점을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문과 출신인 언니는 시를 잘 썼다. 대학 시절 학보에 발표한 시를 언니 스크랩에서 본 선옥은 너무 좋아 복사해서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언니는 시가 아닌 소설에만 매달렸다.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선생을 하면서 여력을 온통 소설 쓰기에만 털어 넣었다. 그러나 이렇다할 결과는 없었다. 어느 날 '이젠 소설을 포기해야 겠어' 하고 몇 번인가 중얼거리더니 십여년 교직 생활도 그만 두고, 퇴직금과 그 동안 모은 돈을 털어 제과점을 차린 것이다.

언니의 시 중에서 '탄생'이 선옥에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육신은 흙에서 솟아나고 영혼은 하늘에서 나리나니
몸은 자연이요 마음은 우주.
너의 울음은 신의 축복, 너의 허우적거림은 자연의 성무(聖舞)
오, 아름다워라. 이 세상 또 하나의 자연이어라.
너로 하여 생명의 신비 더욱 두터워지니
환한 대낮에도 별빛 출렁이고
온 세상이 새 봄을 맞는구나
  
선옥은 이 시를 지난 해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어 연숙에게 보냈다. 연숙은 시를 보니 저절로 악상이 떠올랐다며 보름만엔가 곡을 써 보내왔다. 선옥이 불러보니 노래가 제법 맛이 있었다. 선옥은 그 노래를 본격적으로 연습해서 유선희 작사 장연숙 작곡 유선옥 노래로 만들어 기회 있을 때면 불렀다. 명동제과점 개업 파티 때도 그 노래를 언니에게 선물했다. 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워했었다.


다섯 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오다보니 사십 분이나 일찍 온 것이다. 선옥은 명동제과에서 케익을 먹은 뒤에는, 연숙과 함께 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 들려 차 한 잔 마셔야겠다고 궁리해 놨는데, 앞의 시간이 남을 것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연숙은 얄미울 만큼 제 시간을 지키는 깍쟁이였다. 무료함을 느낀 선옥은 시간도 보낼 겸 꽃집을 찾아 장미를 스물 세 송이 샀다. 화원에서 쓸데없이 이것저것 물으며 시간을 보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선옥은 체념하고, 그냥 백화점 입구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심히 서서 모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듯 보니 그들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다양하고 재미있게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백양백태였다. 즐겁게 얘기하며 가는 사람, 속삭이며 걷는 사람, 혼자 콧노래 부르는 사람, 잔뜩 화난 얼굴, 불안 초조한 얼굴, 삶에 찌든 얼굴이 있는가 하면, 양키도 있고 아프리카인도 있고 인도 사람도 지나갔다. 그렇게 많은데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헤어스타일도 저마다 달랐고 심지어 걷는 모습조차 개성이 있었다. 선옥은 참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고 생각했다.

추석을 앞둔, 다소 들뜬 분위기의 명동 거리여서 평소보다 더 다양한 듯 했다. 너도나도 무엇인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즐거워하는 것이 저마다 고향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어머니 말씀이 새삼스러웠다. 추석이 이렇듯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 귀성 소동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어머니 어렸을 때만 해도 명절 하면 설날이나 파일, 단오날이 으뜸이었지 추석은 아니었다고 했다. 추석은 한식날처럼 차례나 지내고 성묘 가는 날쯤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도시로 나와 살게 되니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렬이 줄을 잇게 되었고 급기야 서울역 경기가 절정에 이르니 설날과 더불어 고향 찾는 인파가 가장 많은 최대명절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귀성 소동이 일다보니 서울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은 시골에 고향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막연히 부러워하게까지 되었다. 선옥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호경기로 추석보너스가 넉넉히 풀린 탓인지 사람들 표정이 하나 같이 밝았다. 특히 명동은 소비와 향락의 중심이어서 외롭고 불행한 얼굴이 흔하게 끼이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해도 거지나 남루한 옷차림의 소외된 인생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닐 터인데, 선옥의 눈에는 밝고 즐거운 사람들만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는 더 붐볐다. 빠져나가는 숫자보다 유입되는 인구가 배는 되는 듯 했다. 인도를 가득 메운 인파는 물결처럼 이리 쏠리고 저리 몰렸고 일부는 차도를 침범해 교통의 흐름을 방해했다. 덕분에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는 차도인지 인도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고,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더 느린 속도로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다만 그 혼잡한 사이를 곡예 하듯,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건 오토바이 따위였다.  

혼자 걷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친구거나 동료거나 선후배거나 일가 친척이거나 간에 두서너대여섯이 함께 걸으며 쉼 없이 웃고 떠들었다.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의 다정한 모습은 같은 그림임에도 눈에 크게 들어왔다.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쌍이 있었다.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데도 더 단단히 팔짱 끼고 걷는 쌍도 있었다. 선옥은 정해성을 떠올렸다. 정해성과 나란히 걷는 자기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는 제3자에게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니 야릇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며칠 전 그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정해성은 드디어 자기 고백을 했다.
"난 그림을 몰라. 그러나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려내야 돼.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이 있지.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야. 그런 목표에서 화실을 꾸몄어. 여자나 헌팅하려고 꾸민 게 아냐"
그리고는 계면쩍은 듯 화실에서 나와 포장마차에서 이별주를 나눌 때는 프로포즈 비슷한 것도 해왔다.  
"옥이. 나… 졸업하면 바로 결혼해야 돼. 외아들이라 부모님 성화가 대단해."
그는 선옥을 부를 때 '옥이'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해야죠. 나이도 적당하잖아요"
선옥은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옥이가 신부 되어줄 거지?"
"제가요?"
"…프로포즈로 여겨 줘"
제법 활달한 선옥이지만 그런 말에는 약했다.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에이 선배, 이런 식으로 프로포즈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선옥이 볼을 붉히자, 해성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깔 웃었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웃음은 짓궂었다. 선옥은 금세 화가 났다.  
"선배를 좋아하지만…" 선옥은 말했다. "이럴 때는 실망이 커요. 진지할 때는 좀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림도 그래요. 선배 말만 들으면 아주 진지해야 할 입장인데 선배에게선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어요."  
정해성과 헤어져 집에 가면서, 그래도 선옥은 묘한 기분의 변화를 느꼈다. 설혹 장난이었다 해도 신부니 결혼이니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2)    

둘 다 대학 3학년이었지만 그러나 정해성은 일년 재수한데다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였기에 네 살이나 위였다. 학번은 삼 년이 빨랐다. 때문에 선옥은 그를 선배, 또는 정 선배, 라고 불렀다. 그는 H대학 서양화과였고 선옥은 S여대 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둘이 만난 것은 3학년 봄이었다. 같은 과 친구 소개로 H대학 학생회관에서의 교내 미전 오픈 세레모니에서 축가를 부른 것이 계기였다. 연숙이와 함께 간 선옥은 그때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는데 앙콜이 나오자 '탄생'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물론 그 자리에서 작곡자 장연숙을 소개했다. 개막식이 끝나고 다과회로 이어지며 한쪽에선 전시작품 안내가 시작될 때, 한 준수한 청년이 선옥에게 다가와 사례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이번 전시회 추진위원장인 3학년 정해성입니다. 노래 감명 깊었습니다."
"어머, 이런 거 준다는 얘기 없었는데요. 기대도 안 했구요."
"H대 미대가 그렇게 무례한 곳이 아닙니다."
키도 크고 미남이었다. 성격도 밝고 쾌활해 보이는 것이 호감이 갔다. 선옥은 더 사양하지 않고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정해성 씨라고 하셨나요? 본인 작품은 어디 있지요?"
"하하…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약간 송구스런 표정을 보이며 한 쪽 구석으로 선옥과 연숙을 안내했다. 그의 작품은 60호 크기로 여러 가지 색이 어지럽게 엉켜 있는 추상화였다. 제목은 '잡념'인데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숙이 말했다.
"저흰 미술을 잘 몰라요… 설명 좀 해 주세요."
정해성은 웃었다.
"하하… 작가가 무슨 설명을 합니까. 오직 작품으로 말할 뿐이지. 해설은 평론가에게 들으십쇼"
"그래도 작가의 말은 있을 수 있잖아요."
"기본을 말씀드리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요? 제 작품은 추상계열입니다. 구체적 대상의 재현이 아닌 빛깔이나 선, 형태 등의 추상적 요소로 느낌과 상상을 표현합니다. 자유분방할 수도 있고 신비롭거나 환상적일 수도 있죠."
"그러면요…" 연숙은 머뭇거리다 웃음을 섞어 물었다. "사실화는 밑그림에 기초해 채색을 하니까 처음 의도대로 그려지잖아요. 추상화는 밑그림이 없나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에는 아주 정교한 밑그림이 있죠."
"정해성 씨 작품의 밑그림은 요?"
"그건…" 정해성은 잠시 당황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쾌활함을 되찾았다.
"그건… 기회가 되면, 나중에 화실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언제요?"
"제 느낌엔… 우린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선옥을 보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정해성은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의 외아들이었다. 학생으로서 자가용을 굴리는, 소위 부잣집 외아들인데 성격도 좋고 돈을 쓸 줄도 알아 학내에서 인기가 있었다. 부잣집 외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전위세 적인 독선이나 저밖에 모르는 소아병적 고집 등 구역질나는 구석도 그에게는 없어 보였다. 정해성은 그날 저녁 인상에 남을 만큼 멋진 2차를 샀고 덕분에 오랜 친구처럼 되어버렸다. 호칭도 선배, 정선배라 부르기로 정했고, 학생 신분에 4년이나 위인만큼 선배는 말을 놓기로 했다.  
그 뒤 선옥과 정해성은 자주 만났다. 정해성이 선옥을 자주 보고 싶어했다. 선옥은 정해성의 구김살 없는 밝고 쾌활한 모습을 좋아했고 정해성은 선옥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높이 샀다. 선옥의 성격도 활달한 편이어서 둘은 잘 어울렸다.

한동안은 밖에서만 만났다. 캠퍼스에서, 아니면 찻집에서 만나 저녁도 먹고 영화구경도 했고, 맥주잔도 기울였다. 아주 가끔 늦게까지 같이 있는 날이면 해성은 선옥을 떠봤다.
"호텔에 갈수 있어?"
선옥은 거침없이 말했다.
"아직은 싫어요."
"알았어. 그럼 그 말 취소야!"
그런 대화가 몇 번 거듭 되니 애가 타는 건 선옥이 쪽이었다. 적어도 여자의 육체를 요구할 정도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좀 더 절실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정해성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것은 싫었다. 유심히 보니 그는 자기 전공에 대해서도 진지하지 않은 것 같았다. .

두 번 만나면 한 번은 차로 선옥을 여의도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한 번은 늦은 밤인데 한강대교를 건너자 고수부지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선옥은 가만히 있었다. 한적한 고수부지에 차를 세운 그는, 그 달변이 말을 못 했다. 여럿 가운데서 웃고 장난치고 쾌활한데는 익숙했지만 둘만의 호젓한 시간에는 약한 그였다. 달도 없는 밤이어서 자동차 키를 끄니 깜깜하고 적막했다. 우주 공간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해성은 선옥의 손을 잡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왜일까. 선옥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냐, 여자 경험이 없어서일 거야. 여자에 약한 것이 아니라 진지함이 결여된 탓일 거야. 선옥은 더 기다릴 수 없어 말했다.  
"얘기해요, 선배. 왜 여기 왔어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해성은 말을 더듬었다. 선옥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이 촉촉해지고 있었다.
"나랑 키스… 하고 싶어요?"
선옥은 물었다. 무엇이든 진지하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직은 싫대며…"
해성은 어둠이 되어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한숨을 섞어 말했다. 선옥은 하마터면 웃을뻔 했다. 그만한 조건에 그처럼 착하고 순수한 남자가 아직 이 세상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평소에 안 들리던 그의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키스해도 돼요. 키스해 줘요 선배."
선옥은 해성의 손을 당겼다. 그제야 해성은 몸을 틀어 선옥을 보았다. 등받이에 몸을 편안히 기댄 선옥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윽고 해성의 팔이 선옥의 목을 휘감았다. 그의 입술이 선옥의 입술을 덮었다. 한번 입술을 덮은 그는 참으로 기분 좋게 입술을 애무했다. 여자를 모르는 남자가 절대 아니었다. 선옥은 점점 그가 알 수 없어졌다.
선옥은 브라우스 윗단추를 풀어 가슴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대담하게 그의 입술을 가슴으로 유도했다. 그는 뜨거운 입김을 선옥의 가슴에 거침없이 뿜어대며 작고 신기한 유두를 정열적으로 애무했다. 한 쪽은 입술로, 다른 한 쪽은 손으로 애무했다. 선옥은 신음을 흘렸다. 한참 가슴을 애무하던 정해성의 손은 슬슬 밑으로 내려가더니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만요. 이제 그만해요"
선옥은 말했다.
"어떻게 그만해…"
해성은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팬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싫어요. 그만 해요, 선배…"  
선옥은 그를 밀어냈다. 마치 전기가 끊겨 갑자기 동작을 멈춘 기계처럼 선옥은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 해성은 더 이상 힘쓰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 운전석인 제자리에 바로 앉았다.
"그만 갈래요. 데려다 주세요."
잠시 생각하던 해성은 키를 넣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졌다. 이어 기어를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선옥의 집 앞에 이르러 해성은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선옥은 역겨움을 느꼈다. 하나도 진지함이 없는 평소의 웃음이었다. 선옥은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걷는데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선배.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미안한 건 오히려 나라구. 내게 좀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 봐. 절실하게 나를 원해 보라구. 그럼 다 줄 수 있는데 이게 뭐야. 내가 장남감이야?… 미안하다는 얼굴에 왜 미안함이 없어? 표정을 나타낼 줄 모르는 병신이야?    
그의 구김살 없는 얼굴이며 밝기만한 목소리가 차츰 숙제화 되면서 선옥은 묘한 기분에 젖게 되었다. 웃는 하회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꿈도 꾸었다. 갈수록 선옥은 그의 진지한 모습이 목마르게 보고 싶어졌다.  

유선옥이 정해성의 진지한 모습을 그렇게 목말라 하는 것은 연숙의 영향일 수도 있었다. 선옥의 입장에서 보면 정해성과 장연숙은 철저히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정해성과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혼자 고뇌하며 모든 것을 신앙에 의지해 살고 있는 선옥은 대조적인 세계의 사람이었다. 첩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라면 연숙은 사생아였다. 그런 연숙에게 정해성의 세계는 동경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증오의 대상일 수도 있었다. 정해성의 구김살 없는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듯한 일면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연숙은 그를 만날 때마다 그것을 지적했다.  
"해성씬 다 좋은데 진지한 게 없어."
연숙은 진지함을 사람 판단의 첫째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가 선옥이었다. 때문에 정해성의 진지한 모습을 목마르게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연숙의 영향일 수 있었다.

                                   (3)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때 정해성은 그의 개인 화실로 선옥을 초대했다. 부잣집 아들답게 넓고 아늑한 화실을 마포에 갖고 있었다. 선옥의 집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아니, 선배. 이런 훌륭한 화실을 가까이 갖고 있으면서 왜 이제야 초대해요?"
선옥은 섭섭함을 실어 말했다. 선옥은 그렇게 말할 만 했다. 정해성은 빙글거렸다.
"잘 봐. 차린지 얼마나 됐겠나."
살펴보니 과연 모든 게 새 거였다. 이십 평쯤 되는 방에 놓인 응접세트며 싱크대 옆의 냉장고, TV 등이 모두 새 거였다. 다만 무질서하게 벽에 걸려 있는 십여 개 유화 작품이 있어 새롭다는 인상을 방해하고 있었다.
"졸업 작품에 몰두해 보려고… 꾸민지 며칠 안 돼"
"전에도 화실을 갖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건 친구들과 함께 쓰는 공동 화실이었지"
화실에는 크고 작은 십여 점의 유화가 걸려 있었다.
"와아, 이거 모두 선배 작품이에요? 대단한 실력파군요."
당연히 그의 작품이겠거니 싶어 선옥은 칭찬부터 했다. 그는 팔짱 낀 채 한 쪽에 서서 웃기만 했다. 열 점중 다섯 점은 추상화였는데 그중 한 점은 대학 교내 미전에서 본 것이었다. 두 점은 풍속화, 두 점은 인물화였고, 한 점은 인상주의 풍의 풍경화였다. 모두 그런 대로 좋아 보였다.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는 거에요. 화실에 오면 감상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죠. 이제 가르쳐 주세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뭐죠?"
선옥은 풍경화를 보며 물었다.
"포인트라…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건 공간의 미지. 작가와 대중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 같은 건가요? 서양화엔 그런 게 없잖아요?"
"이런. 서양화에 왜 공간이 없어. 서양화고 동양화고 그림엔 공간이 곧 생명력이야. 동양화에선 여백으로 나타내고 유화에선 원근과 빛의 주입으로 공간을 만들지. 마치 산소가 있는 듯한 공간을"
"이거 다 선배 작품이에요?"
선옥은 다시 물었다. 해성은 빙글거리며 답했다.
"내 작품은 옥이가 보았던 거 뿐야. 내가 좋아하는 풍의 작품을 모아 놓은 거야"
맥이 빠진 선옥은 그림 보기를 중단하고 소파에 앉았다. 해성은 냉장고에서 캔맥주와 땅콩을 꺼내와 맞은 편에 앉았다.      
"이제 곧 볼 수 있을 거야"
정해성은 손으로 새 캔버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케치북도 두 권 있었다. 선옥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웬지 그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선배, 영화나 소설에서는 이럴 때 여자 친구 얼굴을 그려주던데 요…"
"그럼 나도 옥이를 그려 줄까? 잘 못 그리지만"
"그래요. 부탁 드릴 게요."
선옥은 포즈를 잡고 앉았다. 해성은 더 피하지 않고 스케치북을 펴들고 4B 연필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시종 쾌활하게 웃고 떠들며 선옥을 그렸다. 그리고 내어놓은 것이 초등학생이 그린 '우리 엄마 얼굴' 같은 것이었다.
"아니, H대 미대 수준이 이 정도에요?"
선옥은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표정을 보였다. 순간, 그의 얼굴에 긴장의 빛 하나가 스쳐갔다. 아픈 곳을 찔렸을 때의 그것이었다. 선옥은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순간이 지나자 그는 곧 다시 밝아졌다.  
"하하하. 옥이가 뭔가 오해하는군. 미술대학은 실기나 연마하는 곳이 아냐. 실기는 기초만 익히면 얼마든지 혼자서도 연마할 수 있어. 소질만 가지고도 부단히 노력하면 대학에 안 가도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구. 대학의 목적은 학문에 있다는 걸 옥이도 알잖아. 미술대학은 미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이어야 한다구."
"저도 원칙은 알아요. 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 풍토는 안 그렇잖아요. 미술이구 음악이구 춤이구 온통 실기 위주 아니에요?"
"잘못된 거지. 잘못된 풍토를 우리가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이건 너무 애들 그림 같아요."
선옥은,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을 함부로 팽개치지는 않았다. 자꾸 보니 그 그림도 재미있어 보였다.  
"하하하…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함부로 내뱉다니… 시각을 바꿔 봐. 그 그림에서 동심을 느낄 수 있다면 나에겐 성공이야. 너나 없이 우린 예술을 감상할 줄 몰라. 어떻게 접근하는지도 모른다구. 그저 사실적이고 모방적인 것이 최고인 줄 아는데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런 게 아니야. 느낌이나 상상력에 의한 독창적이면서 개성적인 표현이 더 중요해. 음악도 마찬가지 아닌가? 쇼팽이나 베토벤의 곡을 원숭이처럼 똑 같이 연주해 내는 게 무슨 대수야. 그 보단 아름다운 동요 한 곡 창작해 내는 게 더 예술적이고 보람있겠지. 옥이 그림을 잘 봐. 잘 보면 옥이에 대한 내 감정까지 읽을 수 있을 거야. 나에겐 옥이가 가끔 엄마 같을 때가 있어…"
"어머머머…"
딴은, 자꾸 보니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았다.  
"하하하하. 얼굴을 붉히긴…"
그는 다가와 선옥을 힘껏 포옹하고 입술을 맞췄다.
"두고 봐, 실망은 안 줄테니"


해명은 해명을 부르고 궤변은 궤변을 낳는 법이다. 정해성은 그 날 자기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 마음에 걸린 듯 며칠 후 또 선옥을 화실로 초청했다. 두 번째 방문한 선옥은 화실 안을 살폈다. 살림이 늘어난 게 눈에 띠었다. 이젤이 3개나 세워져 있고 이젤 마다 캔버스가 놓였는데 색감을 본 듯, 여러 가지 색이 단순하게 칠해져 있었다. 빠렛트에는 더럽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물감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고 오일 냄새도 화실에 가득했다. 정해성은 그런 가운데서 고백하듯 털어놨다.

"옥이, 난 사실 편하게만 살아왔어. 그림에 대해 약간 소질은 있었지만 내세울 정도는 못 되었어. 미술대학은 전혀 뜻밖이었지. 고등학교 때 내 관심은 친구들과 노는 데만 있었어. 폭력 조직 서클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불량학생이었지. 직장이 필요하면 아버지 회사에 다니면 되고, 또 언젠가는 아버지 사업을 계승해야 되니까 까짓 학교나 졸업장 따위에 신경 쓰지도 않았어. 영화보고 당구 치고 술 마시고…"
선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해요 선배. 그런 생활을 했으면 여자 문제도 있을 텐데… 선배는 담배도 안 피우고… 나에게 하는 걸 보면 그런 고백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누구나 과거가 있겠지. 비밀도 있고… 나 같은 놈에게 어찌 여자가 없었겠어"
그는 그답지 않게 주저하다 말했다.
"털어놓지. 남자들 사회엔 이런 말이 있어. '어떤 여자가 있어 잠을 못 자게 할 때 방법은 그 여자를 가져버리는 수밖에 없다' 는. 고 3 때 내게 그런 여자가 있었어. 참 예쁘고 순했는데… 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제 옆에서 담배 피우는 걸 그렇게 싫어했던 여자였어. 섹스 하기 싫다는 것을 무시하고 욕심을 채운 며칠 후였어. 나에게 유언을 편지로 보내고 죽었어. 싫다고 하는 여자를 범하면 저승에서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들어 있는 편지였어… 유언도 무서웠고, 세상 여자가 다 같지 않다는 걸 알았어. 그녀는 나 때문에 목숨을 끊었어… 죽은 뒤에 생각하니 내가 가장 좋아한 상대였어… 한동안 무서웠어. 꿈에 자꾸 보였어…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았지. 부모님은 좋아했으나, 그러나 동료를 쫓아가기엔 늦은 때였어. 예비고사 결과가 너무 나빠 시험을 봤다고 조차 말할 수 없었어. 재수를 해야 했어. 선택에 여지가 없었는데 부모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말을 만들더군. 공부를 못 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하는 거라고… 비로소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더군…"  
"좋은 쪽으로 생각을 했네요. 뭘"
선옥은 힘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에선 궁금증이 풀렸다. 그가 선옥의 몸을 완력으로 요구하지 않는 건 죽은 그 여자 때문이었다.  
"열심히 재수를 했지만 워낙 기초가 약하니 이듬해라고 달라질 게 없었어. 어머닌 크게 실망해서 나 보기를 역겨워 했고, 주위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었어. 그러나 아버진 포기하지 않았어. 대학 졸업장 없으면 사회에 발붙이기 힘든 현실을 아침저녁으로 일깨워 주셨지. 더 재수할 용기는 없고 어찌어찌 미술대학에 들어간 거야. 능력 있는 아버지 덕분이었지. 짐작하겠지만 내가 훌륭한 화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는 거지."
"……"
"나는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을 엉뚱한 데서 찾아보았어. ROTC 시험을 준비한 거야. 아버지는 그런 것을 좋아했거든. 그러나 그 시험마저 낙방하자 그 길로 군에 가 버렸어. 그땐 정말 세상이 싫더군.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구나 생각하니 한강에 뛰어들고 싶었어. 군 입대는 일종의 자학이었어."

그는 제법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다행히 군대 생활을 통해 나는 거듭날 수 있었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세계에서 나의 무능함을 내가 확인했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뼈저리게 절감했어. 동시에 하면 안 될게 없다는 믿음도 얻었지.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 나를 밀기 시작했어. 옥이가 보았듯 난 사실 그림에 선천적인 재주는 없어. 내 수준은 보통 사람이 갖고 있는 정도야. 그러나 해 보고 싶어졌어. 처음부터 정교한 인물화를 그리려면 안 되겠지만, 접시나 스픈 따위는 장님만 아니면 다 그릴 수 있겠지. 거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게 없어. 지도교수님도 내게 관심이 많아. 아버지 체면도 세워드리고 말 거야. 그런 각오에서 개인 화실을 꾸민 거야. 이제부터 올해는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여기 틀어박혀 작품에 몰두해 볼 거야. 만나는 사람도 최소화 할 거야. 그래서 보란 듯이 가을 전국 대학미전에서 상 하나 먹고 말 거야"

그날은 정해성이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목표도 있고 의지도 내보였다. 선옥은 보고 싶었던 모습을 반쯤은 본 것 같았다. 원하던 것을 반쯤은 얻은 기분이었다. 선옥은 기뻐서 말했다.  
"선배는 해 낼 거에요. 내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정해성은 웃었다. 안도감을 내쉬며 긴장을 푸는 듯 했다. 선옥은 보았다. 그 순간 잠시 진지했던 모습이 다시 사라지는 것을. 해성은 본래의 이미지로 돌아가 빙글거렸다.    
"지난 번에 소설이나 영화 이야기를 했지. 이럴 때 미술학도가 뭘 부탁하지?"
선옥은 얼른 알아차렸다.  
"꿈 깨요 선배. 전 누드 모델은 안 해요."
선옥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해성에게 솟아나던 힘이 주춤, 하는 것 같았다.
"누드가 아니고… 공간이 있는 풍경을 그릴 거야. 공간의 미가 무슨 말인지는 저번에 말해줬지? 옥이는 자주 찾아와서 격려해 주면 돼"
"연숙이와 같이 와도 되죠?"
"물론 대환영이지."  
"그런 역할은 얼마든지 할 게요."
선옥은 그의 옆자리로 가 키스해 주었다. 해성은 이내 선옥의 허리를 휘어감고 깊은 입맞춤을 해왔다. 그리고 손으로 가슴을 애무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손이 밑으로 내려갔다. 저 때문에 죽은 여자 얘기가 아직 공중을 맴돌고 있을 텐데… 선옥은 남자란 이해할 수 없는 동물로 느껴졌다. 선옥은 그만해요! 하고 그를 뿌리치며 일어섰다.
"밖에 나가요. 오늘은 내가 한 잔 사 드릴 게요"
신기하게도 그는 '그만 해요' 소리만 하면 더 추근 거리지 않았다. 그 소리만은, 죽은 여자 영혼의 소리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4)

정해성을 생각하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이분 전이었다. 꼭 시간이 되어야만 나타나려는 친구가 얄미웠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때 연숙이가 보였다. 청바지에 까만 티를 입은 연숙은 길 건너 인파 속에서 선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밀려있는 것은 여전했다. 연숙은 그 자동차 사이를 가로질러 뛰었다. 그때였다. 자동차 사이를 곡예하듯 달리던 짐실은 오토바이가 연숙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부딪치고 말았다. 연숙은 넘어졌고 오토바이는 옆에 서 있는 자동차에 흠집을 내며 기대어 섰다. 짐이 흩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복잡한 지점이라 속력이 빠르지 않았던 덕이었다. 연숙은 얼른 일어나 떨어진 핸드백부터 챙겼다. 오토바이 청년은 오토바이를 인도에 세워놓고 연숙에게 와 머리를 조아렸다.  
"미안합니다, 아가씨."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사람들 시선은 하나 같이 청년을 나무라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미안합니다."
연숙은 일어나 툭툭 치마를 털며 몸을 움직여 보았다. 별로 이상한 데는 없었다.
"어디 다친데는…"
"괜찮은 것 같애요."
"정말 괜찮아? 엉덩방아를 심하게 찐 것 같은데"
선옥이 달려와 엉덩이를 털어 주며 잘 살펴보라고 했다.  
"정말 괜찮아." 하고 연숙은 청년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많이 놀라신 것 같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서"
청년은 뒷머리를 만지며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볼 수 없었으나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갑자기 호통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에 긁혀 흠집이 난 승용차 운전자였다. 차는 포니였다.  
"이봐 청년. 내 차 흠집 낸 건 눈에 안 보여?"
흠집은 눈여겨봐야 보일 정도였다. 자동차 흠집보다 마음에 흠집난 게 더 큰 듯 했다. 뒤에 늘어선 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흠집 난 차가 안 가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차를 옆으로 빼라고 아우성이었다. 청년은 그 운전자에게도 머리를 조아렸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하긴. 새 차를 흠집 냈으면 칠 값을 내야지."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하는 데 경찰이 왔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자동차가 서 있고, 뒷차는 경적을 울려대니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 온 것이다. 한 눈에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얼른 수습했다. 승용차 운전자에게는 보상을 원하면 차를 주차장에 두고 명동 경찰관 파출소로 오라고 했다. 오토바이 청년은 원동기 면허증을 빼앗고 파출소로 데려갔다.


선옥과 연숙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 따져보면 횡단보도 아닌 길을 건넌 연숙에게 원죄가 있었다. 어디를 다쳤으면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얘."
"내 잘못이지 뭐"
그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다. 예쁜 눈매와 까만 살결의 연숙은 선옥의 우유빛 처럼 희고 빛나는 얼굴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둘이 함께 있으면 곧잘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같은 음악대학에서 선옥은 성악을, 연숙은 작곡을 전공하는데 서로를 평생 새기기 위해 둘은 같이 피아노를 부전공으로 택하고 있었다. 그러면 학사학위증에 부전공이 병기되어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둘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명동제과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연숙아, 해성 선배가 개인 화실 차렸는데 놀러 오라더라."
"그래? 그럼 가서 축하해 줘야지."
"인생 고백도 들었어. 목표를 세우고 의지도 보여주는 게 변화가 있는 것 같애"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는…"
선옥은 싱긋 웃었다. 프로포즈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해 줄까 하다가 말을 돌렸다.
"넌 그 사람… 대순 씨 안 만나니?"
"에이. 우리야 완전히 헤어진 걸 뭐."
연숙은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말했다. 생각하면 얼굴은 떠오르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박대순은 3학년 가을 축제를 앞둔 미팅에서 만난 이웃 학교 일본어과 학생이었다. 대순은 문학 이야기를 좋아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 밝았고 이야기 솜씨가 구수해 더 좋아했다. 첩의 자식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는 연숙은 남자를 사귈 때 무척 조심했다. 나름대로 진실의 기준을 정해놓고 만났다. 그래서 오래 가지 못 하곤 했는데 박대순은 마음에 들어했다. 강의를 빼먹더라도 하루걸러 한 번은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이 질투를 했는지, 봄에 사건이 생겼다. 종로 책방에서의 일이었다. 박대순이 책을 샀는데 거스름돈을 받아 나오면서 히죽히죽 웃는 것이었다. 연숙이 왜 웃느냐고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그는 말했다. 거스름돈이 더 온 것이었다. 3천원짜리 책을 사고 오천원을 주었으니 2천원을 받아야 맞는데 종업원이 만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7천원을 거슬러 준 것이었다. 그는 어제 밤 꿈에 똥을 밟아 복권이라도 살까 하다 말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재미있어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연숙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렇게 믿고 있는 남자가 이런 인격이었나 싶어지니 갑자기 그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올 때만 해도 팔짱을 끼고 왔는데 나갈 때는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된 것이다. 식당을 나와 바로 헤어진 연숙은 책방으로 달려가 자초지종을 실토하고 제 돈으로 오천 원을 돌려주었다. 직원은 여러번 인사하며 고맙다고 했다. 직원은 자기가 착각하여 오천원 더 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를 찾으려고 금세 쫓아 나왔는데 어디로 갔는지 없어 포기하고 자기가 물어놓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었다. 연숙은 서점에 들리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연숙은 그를 만나지 않았다. 왜 라는 이야기도 안 했다. 만나면 구역질이 나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정체를 안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박대순으로부터 전화는 수 없이 왔다. 그러나 만나지 않았다. 만나고 싶은 생각조차 일지 않았다. 차츰 전화하는 간격이 길어지더니 여름 들면서 뚝 끊겨 버렸다.    


                                    (5)

명동 제과점에 닿은 것은 날이 약간 어둑해진 때였다. 가로등이 켜질 정도는 아니지만 상점의 화려한 불빛은 안과 밖을 보다 분명히 구분해 주었다. 여섯 시에 이렇게 어두워지다니, 엊그제 까진 이맘때가 대낮이었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구나. 하면서 둘은 제과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선옥의 언니 유선희는 얼른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제 왔구나. 다섯 시 반쯤 온다더니"
"언니, 우리 큰일날 뻔했어. 연숙이가 오다가 오토바이에 치었다구!"
"어머, 그래서?"
언니는 눈을 크게 떴다. 연숙이가 말했다.
"다행히 다친 덴 없어요. 제가 잘못한 거에요."
"다행이구나. 재수 나쁘면 오토바이엔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어진다는데."
언니는 연숙의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장사가 잘 되시나 봐요. 가게도 아주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주어요"
연숙은 선옥에게 받은 장미꽃 다발을 선물이라고 내놓았다.
"아니 웬 장미꽃이냐?"
"오늘 제 생일이라고 선옥이가 사 줬어요. 전 받았으니까 됐어요. 가게에서 쓰세요."
"그래요 언니. 연숙이 하숙방엔 사실, 놀 때가 마땅치 않아요"
선옥도 연숙의 뜻을 받으라고 했다. 언니는 '원 애들도…' 하며 한쪽에 장미를 두고 우유와 빵을 가져오라고 했다. 제과점도 추석 경기로 생기가 넘쳤다. 공간이 크지 않아 테이블은 6개에 불과했지만 케이크를 사러 오는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도 빈 자리가 없었다.  
"언니. 빵은 웬 빵? 내가 주문한 케이크를 줘야지."
명동제과점은 독특한 모양의 케잌이 유명했다. 명동제과에 밖에 없어서 더 인기였다. 선옥이 주문한 것은 슈 반죽을 기본으로 크고 작은 네모 모양을 구워내 탑 모양으로 쌓은 케잌인데, 소원을 빌고 먹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보기에도 예술적이고 맛도 일품으로 소문난 것이다. 언니는 미안해했다.
"조금 기다려야겠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안 오는구나. 우선 배가 고플테니 빵과 우유를 먹어"
"그럼 케잌 맛이 떨어질텐데…"
"조금만 먹으면 되지. 곧 올 거니까."
하는데 여종업원이 쪼르르 다가와 명동 경찰관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언니는 얼른 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황급히 가게를 나갔다.  


바쁜 걸음으로 파출소에 들어선 유선희는 전화를 건 최 경장을 찾았다. 최 경장 쪽에서 먼저 유선희를 알아봤다.
"명동제과점 사장님이시죠? 오토바이 사고 낸 김재일의 보호자"
"네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에 또… 큰 사고는 아닙니다. 현재로선 피해자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찾아올지도 모르고, 또 신원을 보증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재 좀 해 주시죠"
최 경장은 이미 작성된 조서를 보여주며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김재일은 파출소 한 구석 긴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사람이 다쳤나요?"
"여대생이 부딪혔다는데 괜찮다며 그냥 갔답니다. 자동차도 약간 흠집을 냈는데 그 사람도 아직 안 오고 있습니다. 보상해 봐야 큰돈은 아닐 테니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유선희는 최 경장이 내민 신원보증서에 기재하고 서명했다.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최 경장은 김재일을 불렀다.
"여사장님을 신원보증인으로 해서 보내 드리는데, 피해자가 찾아와 보상을 요구하면 즉시 달려와 적절한 조치를 해 줘야 합니다. 알았죠?"
"네"
"앞으로 명동 같은 복잡한 거리에선 더 조심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최 경장은 그제야 오토바이 키를 내 주었다. 김재일은 공손히 인사하고 경숙을 따라 파출소를 나왔다.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누님"
재일은 유선희에게 사과했다.
"할 수 없지 뭐. 일부러 그랬겠니. 참 케익은 괜찮니?"
"예, 괜찮아요. 그럼 먼저 가세요. 파출소 뒤뜰에 세워둔 오토바이 끌고 곧 갈게요"
"그래. 그럼 먼저 가 있을 게."  
유선희는 먼저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이상했다. 선옥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하고 재일은 오토바이 사고를 냈다. 아무래도 둘이 부딪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치지 않은 게 더욱 다행이었다. 밤이 되면서 명동거리는 더욱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인파도 더 늘어나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갔다.

  
                                    (6)

제과점 실내에 헨델의 곡이 흘렀다. 연숙은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보나마나 선옥이가 내 생일을 축하하여 준비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우유를 마시면서 연숙은 선옥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를 했다. 그런데 선옥은 그제야 헨델의 곡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이거 너 좋아하는 곡 아냐?"
"내숭 떨지 마. 네가 준비한 거 다 알아."
"아냐. 난 안 했다니까."
연극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연이라면 더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연숙은 눈을 감고 들었다. 오늘 하루 중 제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연숙은 사실 헨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관현악 모음곡인 물위의 음악만을 좋아했다. 유달리 경쾌하고 명랑한 동시에 변화가 있어, 재미있게 이 곡을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선옥이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상관없이 물위의 음악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선옥은 만족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언제나 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그 편해진 연숙의 눈에 마주앉은 선옥 너머로 벽에 걸린 유화 한 점이 들어왔다. 무심히 그림을 보던 연숙은 차차 이상한 느낌에 젖었다. 연숙은 점점 뚫어지게 그림을 보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니?"
선옥도 궁금하여 뒤를 보았다. 개업식 땐 없던 유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아니 둘러보니 벽마다 그림이 걸려 있었다. 연숙은 그 중 등 뒤의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바닷가 풍경이었다. 그림자가 희미한, 새벽이거나 늦은 오후 분위기인데 이상하게 관심을 끌었다. 한참 보노라니 그림 속에서 미풍이 일어 연숙의 머리카락을 하나 둘 부드럽게 날리는 것 같았다. 20호 정도의 그림이 넓은 벽을 훌륭히 채우고 있었다.  
"선옥아, 저 그림 좀 봐"
연숙은 선옥을 옆으로 불러 함께 보자고 했다.  
"그림이 이상해. 그림에서 바람이 불어 오는 거 같애."
선옥도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과연 한참 보니 이상한 느낌이 왔다. 연숙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정말 이상하다 얘."
볼수록 그림은 살아 있었다. 잔잔히 밀려와 부드럽게 해안을 애무하는 파도, 그 파도를 넘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선옥은 정해성이 말하던 공간의 미가 저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림에 코를 대면 산소가 듬뿍 맡아질 것 같았다. 그림에서 피어나는 신선한 공기가 제과점을 채우고 있었다. 그림에서 이런 생생한 느낌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화면 왼쪽에는 선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바다를 향해 소리를 치는 듯 했다.
"저 그림이 왜 이렇게 우리 눈길을 끌지?"
"정해성 씨 영향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아무도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었다. 해성을 만난 이후 그림에 특별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만 봐라. 그림 뚫어지겠다."  
선옥은 연숙의 눈을 가렸다. 연숙은 순순히 시선을 돌렸다. 잔에 남아있는 우유를 마저 비우며 연숙은 중얼거렸다.
"바다를 향해 소리치는 저 바위가 꼭 나 같아. 외롭다면 외롭고, 강하다면 강해 보이는 게…"
"울적한 모양이구나. 생일날 혼자라서…"
"아냐. 네가 이렇게 같이 있잖아… 해성 씨도 저렇게 잘 그리니?"
"그 선밴 추상 계열이야."
선옥은 그 부분만은 해성을 보호하고 싶었다.
"저걸 그린 사람은 누굴까?"
"언니에게 알아봐 줄게. 그나저나 어디를 갔지? 맞춘 케잌도 안 오고…"
선옥은 두리번 두리번 언니를 찾았다. 제과점 내에는 없었다. 연숙은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았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잠시 명동 파출소에 가셨어요. 곧 오실 겁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케잌 상자 여러 개를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헬멧을 쓴 폼이 어디서 본 듯 했다. 선옥은 깜짝 놀랐다. 그는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서 연숙과 부딪친 오토바이 운전자였다. 선옥은 얼른 연숙에게 청년의 존재를 알렸다. 연숙도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 또 문이 열리며 언니가 돌아왔다.    
"아이구 미안하다 얘들아."
돌아오자마자 언니는 연숙과 선옥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우리 집 맞춤 케잌을 만드는 청년이, 케잌을 가지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냈지 뭐냐. 피해자도 없는 사고라는데 파출소에 끌려가 조서 쓰고 나니 누군가 보호자가 와서 신원보증을 해 줘야 풀어 준대요. 그래서 잠시 다녀왔다."    
"……?"
"그런데 오면서 생각하니 너희와 부딪힌 게 그 사람 아닌가 싶더라?"
"맞아요 언니. 조금 전에 그 사람 들어오는 걸 봤어요"
연숙은 이미 언니 너머로 청년을 보고 있었다. 청년은 헬멧을 벗어 한쪽에 놓고, 갖고 온 케잌을 쇼케이스 안에 하나하나 정성껏 진열하고 있었다. 청년도 이쪽을 보았다. 연숙과 눈길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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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새연재 - 위대한집념1 반취 2002.02.02 6279
23 중편 대수대명(하) 반취 2002.02.02 6480
22 중편 대수대명(상) 반취 2002.02.02 8008
21 단편 금강산 관광 반취 2002.02.02 6613
20 수필 아호유감 (토지 7월호/한국토지공사) 반취 2002.02.02 6439
19 수필 나의 참모습 (월간 열린생각 2000년 2월호) 1 반취 2002.02.02 6753
18 수필 무섭게 쏟아지는 잠 (열린생각 99년 9월호) 반취 2002.02.02 6379
17 콩트 벌거벗은 주부 반취 2002.02.02 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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