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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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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만 하면 내 모습은 도처에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사진이란 게 찍을 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처럼 의젓하게 나오기도 하고 탤런트 뺨치게 훤하게 찍힌 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때는 초라하고 소박한 모습, 때론 현상수배범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진은 어떻게 나올지…

그래도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은 수정펜으로 가미(加美)하기에 마음에는 안 들어도 버릴 사진은 드뭅니다.

그러나 급해서 찍는 즉석 사진이나 일반 카메라로 찍은 스냅 사진 중에는 도저히 나라고 인정하기 싫은 흉측한 모습도 심심찮게 만납니다. 눈 감은 사진 따위를 도대체 누가 간직하려 하겠습니까. 한번은 어느 파티에서 찍힌 사진 중 내가 게걸스럽게 갈비를 뜯는 사진이 있었는데, 내 안의 야생짐승을 보는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음에도 오래도록 불쾌했던 기억이 사진을 찍을 때면 늘 새롭습니다.

인물 전문 사진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피사체가 사람의 얼굴이라고 말합니다. 쉬지 않고 눈을 깜박거리듯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생리에서부터 사랑하고 미워하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고독하고 불안해하는 심리상태에 따라 표정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등 사뭇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입가에 미소가 흐르면 볼에 탄력이 생기고 눈은 가늘어지며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을 발합니다. 반대로 화를 내거나 속이 상하면 눈이 삼각형이 되면서 얼굴 전체가 일그러집니다. 여기에 "찍히는 사람의 요구"까지 겹치게 되면 사진사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면 거울 속의 내가 떠오릅니다. 거울 속에서 보았던 여러 표정 중 괜찮았던 모습을 살려 내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입체감도 없고 생동감도 없어서인지 거울 속의 나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무수하게 나를 보아온 내가 원하는 나는 생리현상과 심리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한 생명체의 평균적 이미지인데 사진에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짧은 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것이 거울 속의 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도 불만이 많습니다. 눈섶 숫이 적은 것도 불만이고 눈을 자세히 보면 표독스럽게도 보입니다. 바로 볼 때 콧구멍이 보이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입술은 양쪽 끝이 밑으로 쳐졌습니다. 그러면 헤프다던데…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면 준수하지 뭐 하고 좋게 말해주지만 말입니다. 하긴 젊어서나 나이 들어서나 여자들 사이에 인기가 꾸준한 것을 보면 그 말이 듣기 좋으라는 말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참 모습을 모르는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남을 보듯 여유를 갖고 자세히, 혹은 평균적으로 나를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기껏 보는 것이 거울 속의 나이거나 사진 속의 나인데 거기에는 언제든, 기분에 따라 얼마큼의 꾸밈이 깃들어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다면 꾸밈없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며 언제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새 천년이 막 시작된 1월 초 나를 흡족하게 해 주는 한 장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동료 작가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을 때의 사진인데 대단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으니 그것은 소주를 한 잔 마셨을 때의 적당히 기분 좋고, 또 적당히 마음도 비운, 푸근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의 여유와 한 잔의 소주가 연출해 낸 꾸밈없는 나의 모습. 그 사진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한 잔의 칵테일을 청해 촬영 전에 마셨습니다. 새 천년 들어 처음 찍는 사진에 참 이미지가 찍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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