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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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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보다 한 시간 덜 자는 데 성공의 지름길이 있습니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나는 평생을 잠과 싸우며 사는 기분입니다. 잠을 이기지 못 해 낭패를 본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늦잠 때문에 허둥대다 중요한 시험을 망친 일이며, 사회인이 되어서는 아침 일찍 꼭 만나야 할 상대를 잠 때문에 하루 이틀 미루다 종내 일을 그르친 적도 있습니다.

중요한 상담을 하는 자리에서 졸기도 했는데, 그런 실수는 내 인생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까 의문입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운전 중 졸음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무수한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게 그저 신기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잠을 경험한 사람이면 그것이 얼마나 무조건적이고 걷잡을 수 없는가를 잘 압니다. 시간이 모자라 절절맬 때 이런 현상이 오면 "이 따위 잠 하나 이겨내지 못 하는 의지로 무엇을 해낼 것이냐" 스스로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생 잠과 싸우는 것이 나만의 일일까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견딜까요.

"잠과 싸우는 사람들"하면 진학을 앞둔 수험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대학진학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잠을 이겨야 합니다. 부모든 선생이든 "공부는 때가 있으니 힘들어도 제때에 해야 된다"면서 "무엇보다 잠을 이겨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깨어있음에도 잠이 부족해 늘 피곤해 하는 아이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깁니다.

사회가 온통 그런 분위기이니 당사자도 피할 수 없는 고비로 여기고 눈물겨운 노력을 합니다. 그 고비만 잘 참고 견디면 저 너머에 "푹 잘 수 있는 포근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잠을 이겨내는 갖가지 묘책을 다 동원합니다. 찬물에 세수도 하고, 몰래 커피도 마시고, 옆자리 학우와 서로 꼬집어 주자고도 하고, 껌도 씹고, 결정적일 때는 잠 안 오는 약도 먹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장 큰 소망은 1등도 아니요 합격도 아니요 "그저 푹 한 번 자는 것"이 될 정도로 소박해지기도 합니다.

사회인이 되면 나아지겠지, 하는 것이 학생 때의 기대입니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여서 대개는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맙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누구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며도 편히 푹 자게 두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싫컷 자고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나의 경우는 특히 유별난 것 같습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이십년 넘게 했으면 이골이 나서 눈감고도 해내야 하련만 지금도 마감에 임박해서는 의례 며칠씩 밤일을 합니다. 잡지사 인력이 넉넉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마감에 임박해서 모든 상황이 모아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러지 말자" "미리미리 청탁해서 받고 써야 할 것은 미리미리 쓰자"고 다짐도 하고 결의도 해봅니다. 그러나 써 달라는 날짜에 고분고분 써 주는 필자가 우리 사회에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까지 원고를 써 주면 되는 지를 필자가 더 잘 알고, 그저 꼴지 접수만 안 시키는 정도로 보내줍니다. 어찌 그렇게 남의 살림을 잘 아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취재 원고를 미리 쓰려고 하면 왜 그렇게 참고해야할 자료가 많고 만나 보아야할 사람이 많이 떠오르는지 모릅니다. 전문가 견해나 최근 통계자료가 필요하고, 외국의 사례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은 따위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내다 마감일이 임박하면 초인적인 집중력(?)이 발동되며 그냥 책상 위에서 대개의 원고는 해결되곤 합니다. 몰려오는 잠과의 싸움만이 여전히 괴로울 뿐.

경력자일수록 이런 생활은 타성이 되어 밤일을 안 하면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착각할 정도가 됩니다. 쏟아지는 잠과 싸우면서 원고와 씨름하다보면, 이런 정신으로 어떻게 좋은 책을 만드나 걱정이 되고,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짜증을 내기도 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될는지.

일찍 성공한 사람들이 TV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별 것 없습니다. 나의 성공은 남보다 한 시간 덜 잠으로서 가능했습니다"

그 별 것 없는 게 노력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기분 좋게 푹 잔 때를 더듬어 봅니다. 온 몸의 피로가 깨끗이 풀려 그렇게 기분이 좋고 발걸음이 가볍고 음식을 먹으면 향기와 맛이 느껴지던 때를 말입니다.

다소 출세가 늦고 벌이가 적어도 이런 맑은 기분에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출세가 늦고 벌이가 작으면, 그것이 근심이 되어 잠을 못 자게 합니다. 못 자는 것은 푹 자는 것의 반대 효과를 가져옵니다.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덜 자는 것보다 나쁜 상태입니다.

결국 잠이란 시간이 많다고 해서 푹 자지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과연 푹 잘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나는 늘 소망하던 전업작가를 선언했습니다. "책 만들기 위한 잡글 세상"에서 벗어나 소설만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 변신 과정에서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면 수면 욕구가 현저히 감퇴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성취를 이루었을 때는 한꺼번에 피곤이 몰려와 그야말로 푹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면 잠과의 싸움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간단한 진리를 왜 그렇게도 몰랐을까. 평생의 숙제에 대한 답 치고는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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