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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콩트
2008.01.20 06:02

(주)한국 홍길동 사장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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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가 주도하는 2015년 동남아 시장

“성공입니다, 사장님.” 오후 3시가 지났을 때, 흥분한 마케팅 팀장의 소리가 컴퓨터에서 터졌다. “한 중 일, 합쳐 780개 개봉관 중 690개소가 매진입니다.”
“정녕 그렇단 말이지.” 홍길동 사장은 키를 두드려 종합 현황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초조하게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회의를 합시다. 기조실장 무역본부장 생산본부장 모두 나오세요.”    
신호를 보내며 회의를 소집하자 간부들은 각지에서 즉각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벌써 주문이 오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주문량이 세 배나 됩니다. 감이 아주 좋습니다.”
무역본부장이 희소식을 보탰다. 홍길동 사장 얼굴에 화색이 돈다. 사운을 건 새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케팅에 전력투구한 결과이니 성취감이 느껴진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주요 도시를 정신없이 누비며 시사회며 기자간담회를 진두지휘했던 것이다.    
섬유제품 수출에만 전념하던 (주)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M&A 방식으로 영화사를 사들인 것은 18개월 전. 패션을 리드할 모멘텀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문이었다.  

자동차 조선 건설 플랜트 반도체 IT 휴대폰, TFT-LCD 등 세계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종목 군에 영화가 한 몫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이후. 드라마를 중심으로 2004년부터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이 동남아에서 아시아 전체로 번지더니 남으로는 호주 뉴질랜드, 서로는 동유럽과 유라시아로 영역을 넓혀가자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 한국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이 지역에 팔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 제작진의 기술과 테크닉도 급상승, 영화 산업에 최고의 인재가 모여들고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영화산업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첨단기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단발성인 영화보다 연속성을 지닌 드라마의 파워가 더 대단했다.

한 작품이 히트하면 주인공들이 입은 옷, 사용하는 휴대전화, 악세서리. 가전제품. 음악. 주인공들이 드나든 카페의 실내장식이며, 음식, 심지어 조크까지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것을 쫓아했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발표무대가 패션쇼장이 아닌 영화 드라마로 옮겨졌다.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패션이, 모델을 세운 스테이지에서의 그것보다 여러 각도에서 한층 다양한 모습을 실감 있게 보여 주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 살기 위한 경쟁은 대단했다. 그것은 마케팅 싸움이기도 했고, 스토리 싸움이기도 했다. 외국인 작가들이 상당수 한국에 건너와 생활하고 연구하며 스토리 작업을 했는데, 그것이 한국 작가들의 스토리보다 더 신선하고 인기가 있었다. 외국인 작가들의 일 단계 작품은 논픽션이 많았다.

인기 탤런트를 얼마나 많이 등장시키느냐 도 변수로 작용했다. 한 작품에 3국 젊은 남녀를 등장시켜 3각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드라마는 186편 중 21개가 떴고, 영화는 243편이 만들어져 30편 정도가 유료관객 3천만명 선을 넘겼다. 3천만명이란 한국 중국 일본의 그것을 합친 숫자로 3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09년 이후 이런 방식의 통계를 이용했다. 자유 투자협정도 이루어져 시장 원리에서 보면 동북아는 하나였다. 그러나 일본 것에는 일본의 색깔이 있고, 중국 것에는 중국의 색깔이 있었다. 한국은 색깔이 없었다. 색깔 없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한국 것은 3국 전체에서 거부감 없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홍길동 사장은 색깔 없는 한국을 연구한 미국인 작가의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이방인의 눈에 인상적인 한국 고유의 환상적인 특징을 살려 시장에 내놓았다. 제작비 80억원에 마케팅 비용 100억원을 투입, 사운을 걸다시피 했다. 그것이 다행히 반응이 좋은 것이다.        

모든 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히트를 쳤다 해도 유행하는 기간은 아주 짧았다.  드라마의 경우는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기간 동안, 영화 역시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기간 만 유행을 만들고 이끌었다. 새로운 화제작이 나오면 사람들의 기호는 금세 바뀌었다. 때문에 하나의 상품이 기획되면 그 기획단계에서 모든 예측이 이루어지고 마케팅과 함께 생산이 진행되며, 뜨는 느낌이 오는 순간 번개처럼 물량 공급이 이루어져야 최대의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예측이 잘못되면 생산해 놓은 물량은 엄청난 재고 부담이 되어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생산본부장, 물량 공급에 문제없습니까?”  
“예, 베이징과 상하이, 시안, 칭다오 등 중국 공급 물량은 엔빈 공장에서 충분합니다. 일본 수요는 사이판 공장에서 보내는 것으로 아직은 충분합니다.”
“본국(한국을 칭함)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국 시장엔 공급할 물량이 부족해 베트남 공장에 긴급 지시를 내렸습니다. 24시간 철야 생산을 하도록 말입니다.”
“중국 일본에 비하면 한국 수요는 적은 물량인데 한국 공장이 그것을 대지 못한단 말입니까?”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노조 파업 때문에…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우선 시장 상황에 대처하고 난 뒤 나중에 해결하겠습니다.”
“아아, 기회를 지금 놓치면 안 되는데… 도대체 요구가 뭡니까?” 홍길동 사장은 짜증이 났다.
“십년 전이나 같습니다. 분배에 대한 불만입니다.”

회사 제품이 각광받을수록 노조의 요구는 덩달아 커졌다. 모두 저희들 공로라는 논리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큰 것을 얻어내려고 회사가 아주 곤란한 때를 택해 파업을 일으키곤 했다.
“참 어렵군요. 정말 어렵습니다. 이번 상황 마무리되면 한국 공장은 정리를 검토합시다.”
“나중에 회의가 있겠지만 정리는 더 어렵습니다.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하니까요.”
홍길동 사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빠르게 돌아가는데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변할 줄 모르는 한국 노조의 구태의연함에 말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도 한국인인 것을. 저녁이 되면서 홍길동 사장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05. 3월. 월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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