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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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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 좋아하며 매사에 부정적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금강산을 다녀왔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환갑 기념으로 마련해 준 금강산 여행인데 아버지는 떠나면서도 불평이었다. 1인당 200불씩 북한에 관광세를 준다던데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금강산을 가야하니? 가서 자유롭게 즐기고나 오면 몰라. 갔다온 사람들 이야기 들으니까 나무 이파리 하나 따도 감시원이 눈을 부라리고 쵸코파이 먹다 부스러기 흘려도 쓰레기 버렸다고 트집잡아 벌금 물린다고 하더라. 산에서는 술 담배도 못 하게 하고, 허용된 구역을 벗어나선 흐르는 물에 발은 커녕 손도 담글 수 없고 사진도 마음대로 못 찍게 한다는데, 그런 관광을 뭣 때문에 해야 하니.  

어머니는 시각이 달랐다. 요즘 금강산은 그런 거 보러 가는 거랍디다. 천하 제일의 경승이라는 금강산도 보고 북한 사람 사는 모습도 현지에 가서 보고, 유람선도 즐기고, 아 그 정도면 훌륭한 여행이지.
당신 안 갈거면 관 두시구랴. 난 혼자서라도 다녀오겠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시는 분이었다. 떠나는 날 터미널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푼 아버지는 휴지를 쓰레기통 부근에 던졌다. 어머니가 그 휴지를 집어 휴지통에 넣으니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옆에 좀 떨어졌으면 어때. 당신은 참…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가 금강산에 갔다 돌아오신 날 저녁,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가 강남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딸이 물었다. 금강산이 어땠어요 아버지?
아유 말도 마라. 보통의 깃발부대 여행이 아니라 아예 군대식 편제를 짜서 다녀왔다. 700명이나 되는 관광객을 가반 나반으로 나뉘고 반은 또 30명씩 조로 나뉘어 단체 행동을 해야 하니 다 늙어서 군사훈련 하고 온 셈이다. 제한 규정은 왜 또 그렇게 많으냐. 여권이라는 관광증은 반드시 목에 걸고 다녀야 하고, 흙 한 줌 작은 돌멩이 하나도 가져와선 안 되고, 버스로 이동 중에 사진 찍어서도 안 되고, 안내원이든 감시원이든 북한사람과 같이 사진 찍으면 안 되고, 바위에 각인된 글귀를 소리내서 읽어도 안 되고, 원 세상에 무슨 놈의 안 되는 것이 그리 많은지.

아들이 물었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셨어요 어머니?
난 불편한 거 하나도 없었다. 산에서 담배 술 못 하게 하고 음식 먹지 못하게 하니까 난 오히려 더 좋더라. 물가에도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하니까 물이 어떻게나 맑고 깨끗한지. 세 길 쯤 된다는 물 바닥이 그렇게 선명할 수 없었다. 기암 괴석이 만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만물상은 참 신비감을 주는 절경이었다.

이 사람은, 하고 아버지가 끼어든다. 뭐가 좋았다구 그래. 등산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 그런 조건에서 우리가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구. 한 맺힌 실향민이나 가는 거지.

아버님. 하고 이번에는 사위가 말했다. 그래도 매일 칠팔백명이 금강산을 갑니다. 의미가 있으니까 가겠죠.  
의미는 무슨 의미. 다 돈지랄이지. 만물상 코스 올라가는 데는 세 시간 코스인데 화장실도 없단다. 그러면서 산에다 소변이라도 보는 날엔 벌금이 100불이란다. 그런 날도둑들이 어디 있니?

그래서 벌금 문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 며느리가 웃으며 물었다.
이런저런 위반으로 벌금 무는 사람이 꽤 있더라. 그야말로 꽃잎 하나 따는 것도 감시원에게 걸리면 그냥 두질 않으니까. 관광증 목에 걸지 않아 걸리는 사람, 김일성 김정일 이름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는데 큰 소리로 떠들다가 지적 당하는 사람, 그렇게 침뱉지 말라는 데 침 뱉다가 걸린 사람… 내 옆에 사람 하나는 삼팔담에서 침을 뱉었지 뭐냐. 그랬더니 금세 감시원이 나타나 "금강산이 침이나 뱉을 산입네까?" 하고 관광증을 탁 떼 가더라. 왜 그렇게들 하지 말라는 걸 하는
지. 정상에 올라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사람도 있었다지 뭐냐.

아 그놈들이 벌금도 수입으로 여겨서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세상에 그런 불한당들이 어디 있니.  

이런 일도 있었단다.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한 사람이 머루 넝쿨을 두뼘 길이만큼 끊다가 적발돼서 자연 훼손죄로 벌금을 물었단다. 그리고 조금 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곰치를 한 주먹씩 들고 올라오는 거지 뭐니. 내가 그만 놀라서 그 곰치 어디서 뜯었냐고 물으니까 올라오면서 뜯었다는 거지 뭐냐. 내가 기겁을 해서 얼른 배낭 속에 넣어드렸단다. 큰일날뻔 했지.

이제 옳은 소리 하는군. 거 봐라. 나물 하나 뜯지 못하게 하는 산을 뭐하러 가니… 설악산보다 뭐 나은 게 있다구.
그럼 아버진 다신 금강산 안 가시겠군요. 아들이 물었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 간다. 해금강이 열리면 또 모르지… 너희도 가보면 안다. 그게 얼마나 웃기는 관광인지. 현대가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국민들이 냉정하게 재평가를 해봐야 할 것 같애.  

산 오르는 건 힘들지 않았나요?
그것도 그렇다. 산길이라는 게 경사는 위험할 정도로 가파른데 폭은 두사람이 간신히 나란히 가거나 교차할 폭밖에 안 된단다. 그런 건 현대가 애초에 협상할 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그 좁은 길로 하루에 수백명이 산을 오르내리게 하니…

에이그 당신두, 어쨌든 그래도 체력이 딸려 낙오되는 사람 외엔 다 올라갔다 오잖아요. 어머니가 나섰다. 그렇게 독하게 하니까 그 많은 사람이 오르내려도 산이 깨끗한 거 아네요. 난 우리 나라 설악산이니 지리산 한라산이 모두 그랬으면 좋겠어요. 산천이 깨끗하니까 공기도 더 맑고 신선하게 느껴지더라. 아 당신도 구룡연 가면서는 그 맑은 물에 감탄했잖아요.

물은 좀 맑았지만 얻은 게 하나도 없는 여행이었어. 아버지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손자가 코 풀고 난 휴지를 바닥에 흘렸다. 아버지는 기겁을 하며 말했다. 얘 그 휴지 얼른 줏어 휴지통에 넣어라. 휴지를 그렇게  함부로 버리면 벌금이란다. 아니 아버지― 아들 딸 사위 며느리는 동시에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 얻은 게 전연 없는 것 같지도 않은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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