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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콩트
2002.02.02 04:41

신세대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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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과 윤수는 둘도 없는 친구다. 각각 강릉과 군산이 출생지인데, 동쪽 끝과 서쪽 끝이라는 게 통했는지 대학 기숙사에서 만나 금세 친해졌다. 1학년은 기숙사에서 보냈지만 2학년 되면서는 학교 앞에 방을 얻어 둘이 자취를 했다. 무수한 밤을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성(異性)으로부터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끝없이 주고 받으면서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동성 연애 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 거야. 여자랑 있으면 갑갑해. 여자보다 네가 좋아"
"여자는 부담스럽잖니. 신경쓰이고… 우린 그런짓 말자"  
그들은 정말 여자 따위에 신경쓰지 말고 둘이 살자는 말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 여자 따위를 "여따"로 가볍게 부르며 친구가 흔들리는 듯 할 때 경계를 주기로 했다.

윤수는 현철에게 말하기를 "당대 최고 인기의 탤런트를 품에 안겨준다 해도 너와 둘이 나란히 앞에 있다면 난 너를 택할거야"라고 말했고, 현철도 "나도 그래. 네가 없어 빈 자리는 영원히 빈자리가 될거야. 아무리 요조숙녀라도 '여따'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순 없을 거야" 했다.

급기야 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따가 생기면 함께 만나보고 둘 사이에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상대의 승낙이 떨어져야 사귀던가 결혼하던가 하기로 약속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란히 한양은행에 들어가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까지도 둘은 그렇게 지냈다. 그러나 현철은 광주로 발령나고, 윤수는 서울에 남게 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윤수는 나서서 나도 광주로 보내줄 수 없느냐고 청했지만 인사처는 반응하지 않았다.

어디나 그렇듯 은행원 생활도 입행 초는 일이 많고 배울 것도 많아 정신없이 지냈다. 일 년쯤 지나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러는 사이 광주의 현철에겐 여자가 생겼다. 그러나 윤수와 전화할 때는 시침을 뗐다.
"어떻게 지내니. 난 늘 네 생각만 하며 지내"
"나도 그래. 내 주변엔 너보다 좋은 친구가 없어"
"대화 상대가 없어서 여간 외로운 게 아냐. 여따와 있어도 네가 그립다."
"여따가 있니?"
"아니.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현철은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흘렸다가 얼른 걷어들였다. 윤수는 현철과 같이 지내던 옛날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차츰 현철은 갈등을 느꼈다.
여자와 사랑이 깊어지면서 여자 앞에서 약해지는 남자가 되었다. 어떻게 내 처지를 알릴까 고민하던 현철은 할 수 없이 여자와 의논을 했다.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럼, 둘이 동성연애를 했단 말이에요?"
"호모나 게이가 아냐. 그냥 좀 유별나게 친했던 거지"
놀란 여자를 진정시키느라 현철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여자는 그 친구를 보고 싶으니 한번 초대하라고 했다.
"이번 연휴에 한 번 내려오시라고 하세요. 보고 싶어요"
"안돼. 우린 약속을 했거든. 먼저 허락을 얻어야 했어."
"허락을 얻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면 되잖아요"
"안돼. 그 친구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 친구에게도 여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냐. 그 친구는 절대 내 허락없이 여자 사귈 친구가 아냐"
"그래요? 그럼…"  
여자는 꾀를 냈다. 배시시 웃으면서 제안한다.
"그럼 이렇게 해요. 날 그 친구에게 소개시켜준다 하고 부르는 거에요. 참한 여자가 있는데 너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하면서요. 그러면 난 두 가지를 알 수 있어요. 현재 여자 친구가 있나 없나를 여자의 센스로 알아낼 수 있고, 두 사람 사이가 변함없는가도 알 수 있어요. 어때요?"
현철은 굳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기를 잘 해낼까?
여자는 걱정 말라고 했다.

현철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 방법이 윤수가 보다 정확히 내 여자의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방법도 되리라고 여겨졌다. 3·1절 연휴에 현철은 윤수를 초청했다. 여자를 소개받는 것보다 현철을 보고 싶은 마음에 윤수는 만사 제치고 광주로 왔다.
"인사해라. 김미경씨야. 고등학교 선생이셔"
"반갑습니다. 저는 황윤수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 번 들었을 뿐이지만 윤수는 그렇게 인사했다.
"저도 윤수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현철씨 만나면 늘 윤수씨 이야기 뿐이었어요. 마치 동성연애자 같이"
"두 분이 정말 자주 만나셨나보군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눈치가 빠르다더니, 벌써… 하는 생각이 들자 여자의 볼이 살짝 빨개졌다.
여자는 상대를 관찰하기 보다 자기를 감추는데 더 급급해졌다. 보통 때보다 더 예쁘고 깜찍하게 보이려고 오버액션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들은 여자에게는 관심없고 둘이서만 이야기했다. 킬킬 대면서도 아주 진지했다.
약이 오른 미경은 기를 쓰고 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윤수 모르게 현철을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참다못한 미경은 벌떡 일어났다.
"정말 웃기는군요. 흥. 두 분이 즐기시지 뭐 땜에 나는 불렀나요?"
그러자 현철은 당황하여 한손으로 미경을 붙잡고 윤수를 나무랐다.
"넌 어째 그 모양이냐. 일단 소개를 해주었으면 네 친군데"
"아, 내 친구였어? 네 친구 아니고?"
눈치를 챈 건지 능청을 떠는 건지 윤수는 그제서야 태도를 바꿨다.
윤수가 정중히 사과하자 여자는 마지 못한듯 다시 앉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여자는 누구의 친구인가.  

분위기는 달라졌고 여자는 엣다 모르겠다 윤수 쪽에 비중을 두고 어울렸다.
셋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무등산에 올라 광주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역사적인 금남로에서 맥주도 마시며 추억을 만들었다.
이럭저럭 밤 9시가 넘고 적당히 취했다. 하룻밤 자고 갈 요량으로 왔으니 잠자리를 정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기왕 소개를 받았으니 잠시 여자와 조촐한 시간을 갖고도 싶은 윤수였다.
현철이는 갈 생각을 안 했다. 나를 좋아하는 게 옛날이나 변함 없구나
생각되어 일편 흐뭇하면서도, 소개해 주고 끝까지 같이 있는 매너(?)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도 갈 생각이 없는 그들은 노래방을 찾았다.

노래방에 가자 여자와 현철은 바톤을 이어서 잔뜩 분위기 있는 노래만 불렀다. 현철이 최성수의 '동행'을 부르자 여자는 김수희의 애모를 불렀고 이를 받아 현철은 다시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불렀다.
현철을 믿는 윤수는 둘 사이를 의미있게 보기보다 현철이가 보통 여자를 소개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건 저 여자와 오늘밤을 같이 지내라는 신호일 거야. 그녀도 이미 나에게 마음을 연 거야."
허허, 남자 여자 만나 '당일치기'라는 말을 들어는 봤지만 체험하리라고는 상상 못했는데...
그래, 요즘 신세대는 처음 만난 날 아예 상대의 모든 것을 발가 벗겨보고 경험해 본다지.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그래, 알고보니 이 여잔 스스로 신세대로군.
아니지, 현철이가 미리 짜놓은 건지도 몰라. 아. 혹시 현철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그래서 내게 여자를 안겨주는 것? 짜아식- 어쨌든 제 역할 끝났으면 비켜 줘야지.  

시간이 흐를수록 윤수의 꿈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흥겨운 노래를 부를 때면 춤을 추었다. 춤추면서 윤수는 여자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려도 보고, 부르스를 출때는 가슴을 당겨 품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자는 예쁜 눈짓을 보냈다. 윤수의 가슴은 달아올랐다. 그러나 현철은 여전히 자리 비켜줄 생각을 안 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그들은 노래방에서 나왔다.
셋은 나란히 걸었다. 기다리다 못해 윤수가 말했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나도 가서 자야 하고"
그러자 현철이 말했다.
"그래. 너 자러가는 거 보고 갈께."
윤수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말했다.
"너 혹시 여따로 고민하는 거 있니?"
"우리 사이에 여따는 언제까지나 여따 아니겠니"
현철은 여자의 다른 한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윤수가 말했다.  
"너도 외로울텐데 어떻게 내 생각을 해서 이렇게 훌륭한 여성을 소개했니?"
현철은 아리송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외롭다니… 그렇지 않아"
밤은 깊어지고 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두 남자에게 한 손씩을 잡힌
여자는 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자기 존재는 없고 두 남자를 이어주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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