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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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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경제 2000년 8월 11일자 발언대에 발표되었습니다.



모처럼,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데 십수년전 일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자태로 앞에 서있는 젊은 여성 때문이다. 핫팬티에 배꼽티 차림으로 손잡이를 잡고 서있으니 도저히 시선 둘 곳이 없다. 만원이 되니 그 배꼽이 코에 달 듯 한다. 아무리 무심하려고 해도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라 더 앉아 있지 못하고 그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다.          

십수년전에도 이런 뭉클한 경험을 한 일이 있는 것이다. 2호선 3호선이 잇달아 개통되면서 지하철 시대가 열렸는데 두 가지가 기분을 거슬렸다. 하나는 한 사람씩 통과하는 게이트를 전 구간에 설치한 것이요, 또 하나는 손잡이가 너무 의자에 바짝 달린 것이다.

이웃 나라 지하철을 살펴보니 기계화 추세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손잡이는 달랐다. 홍콩 지하철은 지주를 가운데 세웠다. 앉지 못한 사람은 가운데 기대어 갈 수 있었다. 순간 콩나물 시루로 악명 높았던 저 옛날 만원버스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물론 책이나 신문을 본다. 때론 눈을 감기도 한다. 그러나 멀쩡한 눈을 계속 감고 가는 것도 우습고, 언제나 신문을 보는 것도 피곤하다. 어째서 지하철이 남자와 여자를, 여자와 남자를 그런 모양으로 대면하게 만들까. 설계자가 반성할 점은 없는가.  

모처럼 지하철을 탄 이유는 부끄럽게도 면허를 정지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20년 동안 술도 잘 마시고 용케 잘 피해 다녔는데 결국 0.06 상태에서 걸렸다. 한밤중에 경찰서 가서 가족을 불러내는 신세를 경험했다. 나는 이때 진심으로 신에게 감사드렸다. 보다 취한 상태에서 수 없이 차를 몰았는데 그대로 벌주지 않고, 나를 아껴 가장 미약한 상태에서 경고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다시는 모험 안 하기로 한 것은 물론 주위 사람 음주운전도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이 바뀐 상태에서 보니 우리 사회는 술이 너무 흔하다. 저 자유분방한 미국이나 호주도 술을 팔거나 마시는 곳이 엄격히 제한돼 있는데 우린 전역이 무방비다. 식당에서는 물론 포장마차에서도 얼마든지 다. 참새도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데 애주가가 어찌 술을 그냥 지나칠까. 온 국민이 인내심 데스트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문을 보니 TV 방송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 프로그램의 선정성과 폭력성이 사회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밀도 있는 키스, 격정적인 애무 신 때문에  가족이 함께 TV 보기가 민망하다. 그러나 어디 한 두 번 지적인가. 신문사들은 앞다투며 저질 선정성 잡지 안 만들었던가. 인터넷 성인(成人) 방송은 선정성이 아니라 음란성이 위험 수준을 넘어 성인(性人) 방송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진 국민을 대상으로 시청률 경쟁을 한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병폐를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너도나도 방향 감각 없이 갈팡질팡 하고 있다. 어찌하면 이 아슬아슬한 사회를 무사히 살아 낼 수 있을까.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발길이 여느 날 같지 않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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