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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언제 읽어도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위선이나 불의에 대항하여 정의를 세우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정신을 이끄는 따위는 다음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가슴을 파고드는 반취 이기윤의 소설들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칼럼
2005.01.26 16:10

칼럼 - 시작과 끝

조회 수 6238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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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큰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SRS 영재스쿨의 강사가 되어 1월 말 첫 월급을 받더니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을 내놓는 데, 그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가 않다. 제 마음이 어떤지는 둘째 치고 아버지로서, 일단 사회인으로의 적응을 무난히 시작하였다는 안도감에 큰 딸에 대해서만큼은 일차적 짐을 벗은 것 같다.

가정마다 형편에 따라 다른 기준을 갖고 있겠지만, 딸 둘을 키우고 있는 나는 어떻게든 대학 졸업까지만 책임지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유학을 가거나 석․박사를 희망하는 따위 그 이상은 저희들의 능력에 맡긴다고 어릴 때부터 말해왔다. 비록 성적이 우수하다 해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대학졸업이 사회생활의 보편화된 자격이니 일단 사회에 적응을 해보다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 그때 진학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큰 딸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인가 했었다. 아버지에겐 못하고 어머니에게만 했는데 이유는 취직을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였던 것 같다. 나는 못들은 척 지냈다. 다행히 졸업을 한 달 남겨두고 취직이 되어 그 말은 흐지부지 되었다. 취직을 하더니 딸은 자신감으로 가득해졌다. 졸업에 취직까지 되었으니 모든 게 다 잘되었다고 태평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말해주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시작을 끝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딸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같은 착각을 했었다. 대학 합격이 끝인 줄 알았던 거다. 하긴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 입학을 목표로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던가. 그런 입장이기에 ‘대학 합격 통지서’를 끝으로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걸 끝으로 여겨 1, 2학년을 낭비하다 시피 보냈다. 저만 그러는 게 아니라 동기들이 모두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나선 제 때에 졸업을 하네 못 하네 고민하게 되었다. 웬만큼만 하면 졸업장이 주어지는 이 엉터리 같은 대학제도에서 하에서 졸업 학점을 걱정하는 학생이 그렇게 많다고 했다.

입학을 시작으로 보지 않고 끝이라 여기며 책을 던져버리는 풍토는 학생들만의 잘못된 정서일까. 내가 보기엔 온통 사회가 시작을 끝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직장도 취직만 하면 끝인 줄 안다. 하긴 평생 고용제도 하에선 입사가 곧 끝으로 착각될 수도 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으로 버티기만 하면 해고당하지 않고 평생 유지할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해서 노동조합에 한 다리 걸쳐 놓으면 더 든든해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찌 그게 끝일 수 있겠는가. 비교와 경쟁의 가시밭길인 기성사회 일원으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일 뿐이다. 맡은 바 직무에서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게 직업의 비정한 세계요 생리인 것을 어찌 부정하겠는가. 나눔으로 평화 공존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착각이다. 공평한 나눔의 기준이야말로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시작을 끝으로 여기는 풍토는 전 분야에 만연돼 있다. 문학세계도 등단만 하면 끝인 줄 안다. 작품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치열하게 매달리다 일단 등용문을 통과하면 쓰질 않는다.
시작을 끝으로 여기는 대표적 집단의 하나가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등 정치인들 아닌가 싶다. 선거에서의 당선이야말로 시작이지 절대 끝이 될 수 없다. 국민들이 표를 주어 일을 하게 한 것에 고마워하고 겸손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로 임기동안 직무에 임해야 한다.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 자기를 재정비하는 그런 자세여야 한다. 그런데 당선만 되면 끝났다고 태도가 돌변한다. 표를 구걸할 때와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목에 힘을 주고 권위를 세운다. 임기가 끝나면 또 선거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건 그때 가서 보면 되지.”하고 외면한다. 이런 게 바른 자세일 수가 없다. 과거 ‘무지한 백성들’ 시대에는 그러려니 하기도 했다. 왕정 치하에서, 식민 치하에서, 군사독재 치하에서 그랬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교육수준도 높아졌고 민주주의에도 익숙해졌고 시장경제도 몸에 배었다. 정치 수준이 국민 수준을 못 따라 온다는 말이 나온 게 10년이 훨씬 넘는다. 시작을 끝으로 여기는 정치인은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시작을 끝으로 여기는 착각의 극치를 대통령에서 보아온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야말로 당선되는 그 순간 무거운 짐을 지고 앞서 걷기 시작하는 자리다. 무거운 짐을 지워 드렸기에 국민들이 세금을 내어 많은 힘을 실어드리는 자리다. 그런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대통령부터가 하나 같이 시작을 끝으로 ― 즉 당선을 끝으로 여겼다. 아무리 단임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끝일 수 없고 끝이어서도 안 된다. 온 나라의 모범이 될 만큼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기를 마친 뒤 국민의 평가로서 뒷정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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