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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골프 끝내고 갈게." 하는 조크가 생겨났을 정도로 재미있는 골프. 재미는 진지함과 함께 할 때 가치를 지닌다. 알고 보면 골프처럼 에티켓을 요구하는 스포츠도 없다. 호쾌한 드라이버와 그린에서의 긴장...골프는 신사들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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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모던골프  1993년 9월호> 클럽700


"명사 700분만을 최상의 예우로 모십니다"

서민골퍼 황금시대

올 여름은 서민골퍼들의 황금시기다. 회원권 없이도 웬만한 골프장 부킹 다 되고, 입장객도 줄어들어 웬만큼 진행이 느려도 독촉 받지 않는다.  월례회 총무나 부킹 간사를 맡고 있는 분들 입장이 한결 편해졌다. 예년 같으면 2팀 부킹도 어려운 명문에서 4팀 5팀이 간단히 월례경기를 즐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유행은 매월 경기 장소를 바꾸어 명문 코스 순례를 겸하는 것이라 한다.

주말에 위크엔드 골퍼가 몰리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그것 역시 예전보다는 한결 부드럽다. 각급 기관의 권력형 주말 부킹이 사라진 때문이다. 회원의 주말부킹이 용이해졌으니 회원의 권익이 신장됐다고 보아야 할까? 하지만 회원권 값은 바닥에 누워 일어날 줄 모르니 어찌 설명되어야 할까?

날씨도 참 희한했다. 장마전선이 물러갔음에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고, 삼복 중에도 더위를 느낄 수가 없다. 작년 여름만 해도 "열대야 현상"이라 해서 잠자기도 힘들었던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금년 여름은 비가 좀 많이 질금거려서 흠이지 골프에는 최적의 날씨가 계속됐다. 벼락 맞아 죽은 사람이 한 명 나왔지만 더위에 쓰러진 사례는 금년에 없다.

"위크엔드 골퍼"라는 말엔 "평생 핸디를 줄이지 못하는 사람"이란 슬픈 뜻이 숨겨져 있다하는데 이런 기회에 핸디를 줄여 봄이 어떨는지.

문민정부의 골프 외면이 생각하는 각도에 따라서는 서민골퍼의 황금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서민 골퍼들이 황금시대를 구가하는 반면 명문을 자부하는 프라이비트클럽들은 악전고투하고 있다. 이미 평가가 내려져 있는 클럽은 그래도 낫다. 문제는 신흥 명문이다.

목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함부로 개방하자니 이제껏 들인 공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회원권 분양에 심대한 영향이 미칠 것 같고, 명문의 자존심을 유지하자니 시간이 흐를수록 적자가 누적된다. 뭔가 당국의 대책이 있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 실명제다 의식 개혁이다 등등 보다 큰 현안에 두뇌가 총 집중되어 골프같은 사치성 스포츠(?)는 안중에도 없다.

이래저래 골프는 위기상황이다. 룰과 에티켓을 생명으로 하는 격조 높은 스포츠의 세계에 무매너 골퍼들이 판치고 있다. 골프장은 종합예술이요, 골프는 종합스포츠라는 등식이 한국에서는 잠시 적용되는 듯 하다 사라졌다. 종합 스포츠는커녕 부정, 사치와 함수관계에 놓고 획일적 운영을 감독 관청이 강제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

골프가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을 다시 정리해 보자. 첫째 골프는 처세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만남이되 서로 칭찬을 주고받는 만남이다. 동반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칭찬하고, 그 아름다움에 자신을 비춰보기도 하고, 가꾸고 다듬어 일상생활에 적용한다.

둘째 골프는 질서이다. 약속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지킨다는 정신을 요구한다. 롤과 에티켓을 안지키면 골프의 참 멋을 느낄 수 없다. 이는 사회교육의 일익을 훌륭히 담당한다. 질서를 잘 지키고 예절 바른 시민으로 가득찬 신사 숙녀의 사회를 그려보자. 골프에 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

셋째 골프는 수양이다. 골프는 절대 동반과의 경쟁이 아니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미스 샷을 얼마나 적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지 상대를 이겨야 성취감을 느끼는 운동이 아니다. 따라서 골프는 끝없는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자기 반성은 자기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다. 마음을 비우고 오직 한 샷 한 샷에 정신을 집중, 정성을 다함으로써 미련 없는,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세 가지는 개인의 문화 인격품성을 이루는 바탕일 수 있다. 격조높은 명문 클럽에서 골프를 통해 처세를 다듬고 질서를 몸에 익히며 정신을 수양하는 일. 의식 개혁이 한창 요구되는 요즘 세태에 이 보다 더 효과적인 권장 스포츠가 또 있을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명문은 이러한 신념이 있기에 적자를 감수하며 기다린다. 어떻게든 정부가 골프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공감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 주기를….

클럽 700 이야기

이 달에는 오상옥 부장의 주선으로 여주에 있는 신흥 명문 "클럽 700"을 찾았다. "클럽 700"이란 명사 700분만을 회원으로 모시고, 오직 회원에게만 모든 권리와 혜택이 주어지도록 함으로써 국내 골프문화의 새 장을 열어가겠다는 의지의 함축이었다.

"클럽 700"에 이르는 길은 다양했다. 구리 양평을 경유해 갈수도 있고,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에서 나와 이포대교를 건너 갈 수도 있고, 영동고속도로 여주IC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필자는 성남 이천을 거쳐 이포대교를 건너는 국도를 이용했다. 반포 본동에서 12시 출발 1시 15분에 클럽하우스에 도착했으니 1시간 15분이 걸린 셈이다.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 산11번지. 총 48만평 부지에 건설된 클럽 700은 18홀 6,714야드 파 72의 골프 코스와 수영장, 실내외 테니스 코트를 갖춘 프라이비트 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는 특급호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서구 풍의 격조 높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우애 넘치는 대화가 오가는 19번 홀에 기대가 부풀게 했다.

이번 산책은 만화가 고우영 화백, 허영만 화백이 함께 해 주었다. 안부치(安富治) 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 사장의 첫 마디가 인상 깊다.
"땅 구입 때부터 제가 실무자였습니다"
수십명에 달하는 땅 주인과 직접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허가 얻고, 공사하고, 영업준비, 개장, 현재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원싸이클 실무자임을 안 사장은 강조했다. 이는 마치 골프장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부족한 탓이라는 말과 같이 들렸다.

"한번 돌아보시고 클럽 700에 아쉬운 점이나 도움말을 지적해 주십시오"하면서 안 사장은 '700'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설명했다.

"700이란 숫자는 원래 없었습니다. 상한선만 있었죠. 홀당 100분까지 회원을 모실 수 있으니 18홀 기준 1,800분이 상한선입니다. 1분부터 1,800분까지입니다. 우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회원의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는 선에서 가장 이상적인 회원 수는 700이었습니다. 그 이하가 되면 너무 귀족적이 됩니다. 우리 데이터를 제출하니 체육부도 공감해서 결국 하한선을 700으로 정하게 되었지요"

품격을 소중히 여기는 700분 회원을 중심으로 완벽한 부킹, 토탈 관리시스템을 구축, 최상의 서비스를 제고함으로써 프라이비트 클럽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이는 클럽 700의 홍보물 헤드라인에 극명하게 나타나있다.
"700분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클럽 700만의 자랑입니다"
"회원권의 자산 가치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정통 프라이비트 클럽 회원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어느덧. 골프인구도 늘었고 골프장도 많이 건설되어 이제는 골프문화의 가치 재정립을 통해 페이지를 바꿔야 할 시점에서 정통 프라이비트 클럽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클럽 700"의 탄생정신은 골프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따라서 일차 350분 회원모집은 순조롭게 완료되었다.

아름다운 가든형 골프장

2시 티오프 시간이 되었다. EZGO 전동카를 타고 1번 홀로 향했다. 전동카는 2인승인데 3인이 탈수도 있었다. 뒤쪽에 캐디 자리가 있었다.
"아. 캐디가 있습니까?"
"예. 30명 있습니다. 클럽에 처음 오시는 분이나, 연세 많으신 분, 또 운전 못하시는 분을 위해서입니다. 부킹 때 캐디도 함께 예약을 받습니다"

캐디 동반여부는 골퍼의 선택이라고 했다. 1호 전동카엔 고화백과 허화백, 2호 전동카엔 安사장과 필자가 탔다. 각각 캐디가 배치되어 뒤에 탔다.

1번홀 티그라운드에 서니 아웃코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1번 티 위치가 아웃코스 최상부였다. 골프 코스는 사실 언제 어디에 있는 것이나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클럽 700의 아름다움은 특색이 있었다.

거대한 정원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결코 높지 않은 아담한 산들에 포근히 싸인 코스엔 아직은 어린 소나무들이 홀과 홀을 구분해주고 있었고, 호수가 보였으며, 잘 다듬어진 페어웨이와  그린 위치를 알려주는 깃발이 보였다 러프까지도 참 잘 다듬어져 있었다.

지대는 매우 낮았다. 제법 높아 보이는 산이 200미터 내외이니 코스는 50미터 내지 80미터로 평탄했다. 하지만 언듀레이션이 있어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安사장은 말했다.
"처음부터 추구한 것이 가든형 골프장입니다. 어떻습니까. 정원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시죠? 그러나 시작해 보십시오. 도처에 가시가 있습니다"

세계적 명성의 골프코스 설계가 "데이비드 레인빌"에 의해 탄생된 클럽 700의 18홀 코스는, 플레이어 한 사람이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도록 코스에 스토리를 담았다고 했다. 티잉 그라운드는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전략의 난이도에 변화를 취하면서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호수나 벙커를 교묘하게 배치하여 한 타 한 타마다 신중히 생각하는 플레이를 요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량이 향상되도록 되어 있는 듯 했다.

순서를 정했다. 먼저 뽑은 허영만 화백이 3번, 고우영 화백이 4번을 뽑았다. 나는 2번, 안부치 사장이 첫 홀 "오너"가 되었다. 티는 백티였고 그린은 오른편 구릉 뒤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577야드의 만만치 않은 롱홀. 첫 티샷은 모두 화려했다. 대개 넷중 하나는 실타가 나오기 마련인데 모두 훌륭했다. 불변의 80대인 고화백 허화백의 기량이야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바 그대로인데, 안부치 사장의 장타는 일품이였다. 첫 홀에선 모두 보기를 하고 허화백만 세컨샷을 미스로 더블보기를 했다.

2번 홀은 호수를 건너 치는 179야드 짜리 숏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홀이었다. 아름다운 홀에 이르면 언제나 던지는 질문이 있다.
"클럽 700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을 꼽으시면 어딜까요?"
그런데 그럴 때 "바로 여깁니다"라는 답을 들어본 적은 없다.
"12번 홀과 13번 홀이 아름답죠"
"숏홀입니까?"
"아니, 12번은 미들 13번은 롱홀입니다."

그건 뜻밖의 대답이었다. 대개는 호수나 연못을 끼고 있는 숏홀의 아기자기함이 아름다움을 대표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살펴보니 거리가 짧은 서비스 홀도 아니었다. 12번은 파도 힘든 440야드 미들이었고, 13번은 566야드나 되는 롱홀이었다. 기대가 일었다. 대체 어떤 아름다움일까. 그러나 이날 그 아름다움을 볼 수는 없었다. 우리가 12번 홀에 이르렀을 때, 마치 안개 자욱한 새벽과도 같은 안개비가 내려 가시거리는 육칠십미터에 불과했다.

2번홀 성적은 좋지 않았다. 원온 시킨 안사장과 고화백이나, 투온 시킨 허화백과 필자 모두 그린에서 쓰리퍼트를 기록했다. 언듀레이션이 까다로운 그린이었다.

3번 티로 갔다. 1번 티가 클럽하우스 쪽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면 3번 티는 서쪽 외곽에서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며 아웃코스 전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와 서구식 클럽하우스의 조화는 카렌다 그림처럼 이국적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3번 홀은 어떤 구질의 골퍼도 마음놓고 때려볼 수 있는 홀이었다. 장타는 장타대로 풀 스윙을 시도해 봄직하고, 후커도 슬라이스도 두려운 요소가 없는 넓고 편한 홀이었다. 440야드 미들 홀이어서 티샷은 티샷대로 마음껏 휘둘러보고, 세컨샷 역시 마음껏 휘둘러 충분한 비거리가 나와야 했다.

페어웨이 잔디는 안양CC와 같은 직립형의 중지였다. 중지는 일반 잔디보다 오밀조밀해 페어웨이에서도 볼을 티에 올려놓고 치는 듯한 효과가 있고, 일반 품종보다 봄에는 일직 파래지고 가을에는 늦게 탈색되어 선호되는 품종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하루걸러 잔디를 깎아야 하는 등 관리가 쉽지 않은 흠이 있다. 조금만 길면 채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클럽 700의 코스는 잘 관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러프 지역에서조차 잡초를 찾아볼 수 없었다. 3번 홀을 마치고 나니 이런 저런 감이 정리되었다.

사장이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가시"는 대체로 그린에 집약되어 있는 듯 했다. 광활한 페어웨이의 곡선은 화려하지만 보기 플레이어만 되도 가시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린은- 언듀레이션이 살아있는 그린은 싱글도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가시"였다.

전희를 끝낸 볼이 절정을 향해 홀컵에 진입하려는 순간 그린은 정복당하기를 거부하며 엉덩이를 이리 빼고 저리 뒤틀었다. 언듀레이션의 곡선은 부드럽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골퍼에게 긴장과 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명문에 걸맞는 노련한 캐디들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가 오고 오후엔 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후 내내 비가 질금거리더니 차츰 안개비로 바뀌었다. 6번홀 그린 옆에 단종께서 드시던 어수정이 문화재로써 잘 보존되어 있는데, 조롱박으로 떠 한 모금 목을 축이고 7번 홀로 가니 그때부터 안개비가 심해 "안개 자욱한 새벽"을 연상케 했다. 가시거리는 2백에서 백오십으로 다시 백미터, 팔십미터로 점점 짧아졌다.

가시거리가 짧아지니 자연 캐디 의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감탄했다. 캐디들은 코스의 전 지형을 외우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 볼이 놓여도 거리와 방향을 정확히 어드바이스 했다.
만약 그렇게 노련한 캐디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나인 홀에서 채를 거뒀을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이목도 수려하고 몸매도 빼어나고 유니폼도 아름답고 목소리도 예쁘고 훌륭하고… 그 짙은 안개비 속에서 버디를 잡았을 때 "나이스 버디"를 외치는 캐디의 소리는 하늘나라 선녀의 노래였다.

가장 아름답다는 12번 13번 홀에 이르렀을 때 가시거리는 육칠십 미터에 불과하여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앞 팀도 뒷 팀도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날은 유난히 한가해 보이기도 했다. 허화백은 10년전 골프장 풍경과 느낌이 같다고 했다. 사장은 말했다.
"여긴 언제나 이렇습니다. 평일에 보통 30팀 밖에 안 받습니다"
"그렇게 해서 경영이 되십니까?"
"지금은 어렵지요. 어려운 이유는 1차 회원 350분만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경영을 700분 회원제로 구상한 것이니 700분이 다 차면 됩니다. 여러 각도에서 골프문화를 선도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코스 중 제일 높은 지역에 위치한 15번홀 티에서 안 사장은 봄의 행사를 기억해 냈다.
"1년에 한번씩 '샷건' 행사를 합니다. 회원을 상대로 샷건을 하는 건 저희가 처음일겁니다. 샷건을 아십니까?"
"샷건? 처음 들어봅니다"
나는 정말 처음 듣는 용어였다. 사장은 설명했다.
"72명이 동시에 플레이하는 겁니다. 18개 홀, 각 홀마다 4명 한 팀씩 배치됩니다. 5번 홀에서 시작한 팀은 4번 홀에서 끝나고 13번 홀에서 시작하는 팀은 12번 홀에서 끝나게 되지요. 골프카 시스템이기에 금새 흩어질 수도, 금새 모일 수도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18개 홀에서 동시 티샷이 이루어집니다. 4시간 후 경기가 동시에 끝나면 72명이 동시에 목욕을 하고 가든파티로 이어집니다"

"으와. 그거 멋지군요. 회원들간의 친교를 다지는데도 그만이겠습니다"
"회원님들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15번 티에서 필자는 샷건 행사에 초대된 상상에 젖어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그런데 소리가 이상했다. 볼은 크게 우측으로 휘면서 안개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 공은 찾지 못했고 그 홀에서 나는 트리플을 기록했다.
에이그. 참 요상스럽기도 하지….

클럽 700의 자부심… 19번 홀 클럽하우스

목욕을 끝낸 뒤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 모였다. 18홀 게임을 끝낸 뒤 마시고 이야기하고 즐거워하는 곳. 들어가려다 만 짧은 퍼팅의 아쉬움은 있지만 OB의 두려움은 없는 곳. 즐거움만 남아 골프의 낭만이 화려하게 꽃피는 곳. 이름하여 19번 홀이다.

명문일수록 이 19번 홀에 신경을 쓴다. 격조 높은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애쓰고, 세련된 서비스와 최상의 음식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특급호텔에서 느낄 수 있는 인테리어 감각과 신라호텔로부터 식당 운영 자문을 받는 '클럽700'의 클럽하우스는 그런 면에서도 돋보였다.

그 날의 화제는 클럽 700이 들어앉은 여주땅 이야기였다. 흐리고 비오고 또 나중에는 안개비가 자욱한 날의 플레이 결과는 이야기 꺼리가 못되었다.
역사적으로 여주는 부족한 것이 없는 풍요의 고장이었다. 농사만 지어서도 잘 살아온 곳인데, 옛 국도(뱃길)였던 남한강 줄기에는 쏘가리, 잉어 등 수산물이 풍부했고 남북을 통틀어 8번째로 매장량이 많다는 금광이 이곳에 있었으며, 광복 전 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여 임산물도 풍부했던 것이다.

'택리지'에 여주에는 사대부의 집이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산다. 라고 했듯이 이곳에는 일찍부터 벼슬길을 기다리는 양반과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대대로 많이 살았다. 특히 여흥 민씨나 안동 김씨, 원주 원씨 같은, 세도가 당당한 양반 집안이 이 곳의 터줏대감 행세를 하며 살았으므로 웬만한 양반은 양반 대접도 못 받았다.

안부치 사장이 매입한 부지의 상당면적이 원주 원씨 소유였다는 사실에서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자가 넉넉한 곳에 술집과 여자가 모이니 선말에는 요리집 기생집이 즐비해 '소평양'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정치깡패로 악명을 날렸던 이정재, 유지관도 이곳 출신이지만 고려의 대표적 시인 이규보의 고향도 이곳이다. 내력이 이러하니 시인의 노래가 어찌 없을까. 여주 팔경이 있다.

▲여강(남한강) 언저리에 내려앉는 기러기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의 저녁 연기 ▲신록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 있는 고깃배 등불 ▲두 영릉의 신록 ▲팔대수의 우거진 숲 등이 지금의 여주국민학교 자리에 있던 청심루란 누각에서 볼 수 있던 팔경인데 이 팔경은 청심루와 함께 사라졌다.

대신 클럽 700 클럽하우스에서 보는 팔경이 곧 노래되지 않을까. 우선은 클럽하우스에서 보는 석양이 골프 코스와 조화되어 매우 아름답다. 묘하게도 이곳은 광해군때 서양갑, 박응서, 이경준 등 서인파 사대부들의 서자 일곱명이 죽림칠현, 또는 강변 칠현을 구가하던 곳이다. 오늘, 명사 700분만을 모시는 클럽 700과는 어떤 인연의 끈이 있는 것일까. 클럽 700은 서너번 더 가 봐야지만 수수께끼가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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