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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골프 끝내고 갈게." 하는 조크가 생겨났을 정도로 재미있는 골프. 재미는 진지함과 함께 할 때 가치를 지닌다. 알고 보면 골프처럼 에티켓을 요구하는 스포츠도 없다. 호쾌한 드라이버와 그린에서의 긴장...골프는 신사들의 운동이다.

골프한담
2013.11.24 14:49

’92 한 해를 뒤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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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월호 회상(回想)편)

 

사계절의 양지와 그늘

 

어느 듯 겨울이 되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며 베이지 색으로 변해버린 필드며 차가운 바람이 곧 닥쳐올 매서운 추위를 예고한다. 언제나 낭만적으로 보이던 클럽하우스들이 문득문득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일까. 골퍼의 마음이 먼저 쓸쓸해져 있기 때문일까.

한국의 사계절을 아름다움으로 예찬한 선인들이 많았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열대와 한대권을 제외한 지구촌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처럼 뚜렷한 곳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을 좋아하는 근래의 습속은 사계절의 아름다움마저 공격한다.

너무 계절이 자주 바뀜으로 해서 낭비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이 되었다고 새옷을 사 입어 몸에 익숙해질 만하니 봄이 되고 봄 옷 역시 그러하고, 1년이 지나 다시 꺼내 입으려하니 유행이 바뀌어 또 새옷을 장만해야하고어떤이는 자동차의 수명 짧은 것조차 사계절 탓으로 돌리고, 또 어느 토목기사는 우리 나라 아스팔트 도로 파손율이 유난히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로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무려 50에 이름을 지적한다.

그러면 골퍼들은 어느 쪽일까. 예찬 쪽일까 비판 쪽일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경우, 비판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움은 대단히 크다.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춥고 삭막하고. 봄가을이 최적의 시즌인데 몇 번 산책하는 사이 금새 지나가 버리니 여간 아쉽지가 않은 것이다.

원고를 쓰는 날 마침 눈이 내렸다. 첫 눈은 11월에 왔다지만 깊은 밤에 내려보지 못했으니 필자에겐 12일의 눈이 첫 눈인 셈이다. 아름답게 함박눈이 평평 나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내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체감온도는 영하 십도 이하로 떨어졌다. 방송에서는 대통령선거일이 낀 한 주간이 내내 싸늘할 것이라는 예보를 흘린다.

눈비가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하면 습관처럼 달력을 본다. 부킹이 되어있는 날이 언제인가를 확인하며, 그날만은 일기가 쾌청하고 따뜻하길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겐 마침 아무런 부킹이 없었다. 12월 둘째 주의 산책을 끝으로 1992년은 마감하자고 이미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유리창을 적시는 진눈깨비를 보니 마음은 감상에 젖고, 92년 한 해 골프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뒤돌아본 92년 한 해 필드산책

 

우성 어디어디를 가보았나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안양, 한양, 제일, 남부, 골드, 뉴서울, 로얄, 88프라자, 덕평, 태광, 양지, 제주, 중문, 수와소, 클럽700, 춘천, 한성, 한일, 이포, 국제

무심코 골프장 이름을 나열하다보니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게 뭔가. 이렇게 많아? 일년 내내 골프만 치고 다녔단 말인가.

각성을 해도 크게 해야할 일이다 싶어 이번엔 횟수를 헤아려보았다. 두 번 이상 가본곳을 가려보니 여섯곳이었다. 세 번 이상 가본 곳은 제일, 안양, 로얄, 한성, 네곳이었다. 그렇게해서 총 라운딩한 회수를 뽑아보니 30회에 이르고, 그걸 열두달로 나누니 두달에 다섯 번, 한달에 두 번 반 정도였다.

그렇겠지그럼 맞는거야. 그 정도는 다녔어. 그러나어휴

, 하는 한숨과도 같은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자기 핸디를 유지하려면 일주일에 두 번은 코스에 나가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는 못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해야 골프를 한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더구나 모던골프에 필드산책을 연재하는 만큼 나는 골프를 잘 해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글에 무게를 싣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기량을 닦아 가까운 장래에 아마추어 선수권이라도 하나, 따야만 하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해 돌았던 코스를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코스 구분 없이 재미있는 홀이란 대개 도그렉처럼 휘어진 홀이었다. 그래서 숲을 가로질러 치는 호기를 부리게 하고 기쁨과 절망을 맛보게 한다. 춘천의 북코스 5번 홀이나 안양의 인코스 5번홀, 제일의 동코스 4,5번홀 등이 좋은 경험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홀은 청아(淸雅)한 그린아름답고 깨끗하기가 여성과도 같아 남성적인 정복욕을 자극하는 그린을 발아래 만만하게 두고 휘둘러보는 멋이다. 양지의 아폴로 홀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그 손에 잡힐 듯, 만만한 도전에서 기대대로 정복의 기쁨을 누리는 골퍼가 몇이나 될까. 아마도 거기 성공하는 사람은 오랜 경력의 침착하고 노련한 골퍼거나 아니면 비기너일 것이다.

원온의 기대를 부추기는 숏홀이 아니더라도 산 중턱에서 주욱 시원하게 펼쳐진 페어웨이를 내려다보며 호쾌하게 휘둘러보는 샷의 진미는 또 어떤가. 한양 구코스의 1번홀, 제일 중코스 9번홀 티그라운드에서면 저절로 가슴이 트인다. 아아, 골프를 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했을 이 장쾌(壯快)

그러나 종합해보면 골프장마다의 특색은 그리 선명하지 못한 것 같다. 도고나 국제처럼 평지에 만들어진 몇몇 코스를 빼고 나면 한국의 전형적인 산야에 따른 눈에 익은 굴곡이고, 조경이라 해야 대표적인 수종 몇 가지에 불과하다. 필자의 산책반경이 주로 경기도 지역에 편중되어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런 가운데 명문으로 불리우는곳은 경영자들이 욕심을 덜 부리는 코스일 것이다. 힘있는 사람들의 무차별 청탁을 지혜롭게 피해 회원들의 불만을 덜 사는 것도 명문클럽 경영의 기술이요, 철저한 코스관리나 친절교육등을 강화함으로써 최대한 골퍼중심으로 쾌적한 플레이가 이루어지도록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명문 유지의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설이나 입지적 자연조건보다 누가 만들고 어떤 정신으로 경영하는가, 경영하는 사람에 따라 명문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인데, 골퍼의 기분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디에서 했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했느냐에 따라 멋진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쉽게 잊혀지기도 하는 것 같다.

 

좋은 동반자와 좋은 추억

 

92년 한 해 필드에서 만난 인연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경기력 향상을 위한작은 내기도 했으며, 윗분을 모시거나 점잖은 분들과 함께 할 때는 실타(失打)에 하나씩, 별그리기도 했고, 세기적 프로들이 벌이는 스킨쉽을 흉내내어 즐기기도 했다.

별그리기를 지난 호에 소개한바 있으니, 이번엔 우리가 즐기는 스킨쉽도 소개할까? 스킨쉽은 각 홀 우승제로 홀 우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게임이다.

4명의 동반이 각각 5만원씩을 내면 20만원이 된다. 18홀을 도는 동안 매 홀 우승자에게 1만원씩 주면 18만원. 롱게스트 1만원, 니어리스트 1만원, 하면 꼭 20만원이다. 이 게임은 핸디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기량이 비슷해야 가능하고 또 재미있다. 18홀을 도는 동안 단 한차례도 1등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하다보면 1등이 두명이 되어 상금이 다음 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어쩌다 한번 1등에 본전을 다 빼는 행운도 따르게 된다. 그런데 하다보면 이런 행운은 대개 팀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간다.

이렇게 어울리는 사이 내기의 호적수도 생기고, 누구와는 이런 게임, 누구와는 저런 게임, 하는 식으로 동반자 색깔을 정해 놓기도 한다.

92년 한 해 필드의 가장 즐거운 추억은 11월호에 소개한 한국여행인클럽회원들과의 회동이다. 몇 번 안 되는 모임이었지만 회원 한분한분이 다 우리사회 정상급 명사요 골프에도 정열적이어서 만나면 분위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회원 중에는 국내유력금융기관의 장도 있고 방송위원도 있고, 법조계 인사도 있고 인기 탤런트도 있어 신문 잡지에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 글을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한 해를 결산하며, 가장 즐거웠던 산책을 꼽아보면 역시 그 회원들과의 회동이니 이런 경우, 쓰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파워스윙, 깨끗한 스윙

 

회원 중에는 김실 회원(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이사장)이나 황경숙 회원(경희대 강사)처럼 철저히 즐기기만 하는 타입도 있고, 전중광 회원(JK무역대표)이나 필자처럼, 파워는 있으나 세기가 부족하여 기복이 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즐기면서도 노터치 노기브로 진정한 80를 치는 분들도 있다. 고우영 회원(만화가)과 노방현 회원(키와니스한국지구총재) 이경균 회원(대한항공상무) 등이다. 이런 남성들에 비해 여성회원들의 실려도 만만치 않다.

이군자 회원(재일교포실업가. 남북상사 대표)의 노련한 게임운영은 여성골퍼들의 귀감에 틀림없고, 이리자 회원(이리자한복연구소)의 정열과 파워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돋보이는 것은 김미숙 회원(탤런트)으로 깨끗한 스윙, 유연한 몸놀림이 교과서적이라면 과장이라 할까.

김미숙의 자기 소개가 재미있다.

골프를 전혀 모를 때 연기가 필요했던 적이 있었어요. 7번 아이언을 쥐어주면서 이렇게 휘둘러보라고 하더군요. 그 때 처음으로 골프채를 휘둘러 본거지요. 그런데 그 스윙이 아주 완벽했다는 거 있죠? 탤런트 기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나 봐요

그 후 그는 정식으로 프로에게 배웠다고 했는데, 미모와 조용한 성품, 깨끗한 스윙은 한 샷 한 샷이 모두 한 컷의 사진으로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행인클럽 회원들과의 골프는 이렇게 언제나 즐거운데 두세 분을 빼고는 대부분 시간이 없어 연습도 자주 못하고 필드에도 자주 나가지 못한다. 만약 이들에게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중에서 최소한 두분 이상은 한국의 자존심이라 불리울 골퍼가 나올 것 같은데

 

92년의 끝내기 골프

 

92년을 마감하는 산택은 129일 제일CC에서 있었다. 제일CC는 코스소개를 한 일이 있어 다른 코스를 희망했으나 회원들의 의견이 제일로 모아졌다.

두 팀을 부킹해 놓았는데 참가자는 7명뿐이어서 제일CC사장을 특별 게스트로 초청하니 선뜻 응해주었다. 하여 8명 성원이 되었는데 뒤늦게 회원 한분이 추가되어 3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의 92년 파이날 산택은 영광스럽게도 김미숙 회우와 제일CC의 김세준 사장과 같이하게 되었다.

금년으로 고희를 맞은 김세준 사장의 골프력은 30여년이라는데, 체계 있게 배운 골프가 아니라는 아쉬움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껏 귀로 들어오고, 눈으로 보아오고, 또 책에서 읽어온 골프의 깊은 맛, 즉 진수를, 그 날 구분과 함께 함으로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사람은 많은 정담을 주고받았으나 시종 조용했고,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다. 고희 노구에도 불구하고 김사장은 코스를 잘 살펴 아이언은 아이언대로 퍼팅은 퍼팅대로 한샷한샷에 집중했고, 정성을 다했다. 한 분이 그러하니 나머지 둘은 그대로 따라하게 되었다. 참으로 흐뭇하고 넉넉하고 정겹고 기억에 남을 코스 산택이었다.

지난 일들이 부끄러웠다. 친구들과 어울려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조심성 없이 쿵쾅거리며 걸어다니고, 내기를 함으로써 분위기를 해치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이런 반성과 함께 나의 골프는, 새해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날 것 같다. 아아, 눈이 내린다. 필드에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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