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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주인, 반취입니다. 99년 4월 개설하였으나 아직도 이것저것 올리는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재미있거나, 유익하다 싶으면 이웃에 알려 널리 방문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반취에게 하실 이야기나 보내실 서류(원고청탁서 등) 모두 이 게시판을 활용해 주세요.

2017.11.20 12:38

나는 어디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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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갈까요? (소설가 - 반취 이기윤)

 

산다는 것은 기억 못하는 시작과 알 수 없는 끝을 엮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시작을 기억할까요.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외에.

 

나는 예전에 어디 있었을까요.

내 몸을 이루는 수십억 원자들이 어디에 흩어져 있었을까요.

어느 식물, 어디 놓인 돌멩이, 어떤 동물 속에 나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을까요.

생명이 탄생하기 전, 허공의 먼지들이 모여 지구를 만들기 전,

나를 이루는 퍼즐조각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요.

 

태초로 올라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간이 없었으니 그곳도 아니요, 시간 역시 없었으니 그 때도 아닙니다.

그저 어두컴컴한 무의 세계. 달 없는 밤보다 어둡고,

공동묘지보다 더 음산하고, 사막의 바람보다 더 허전한 것들 뿐.

 

물속에 우유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규칙적인 형태가 살아있듯 움직이지만 그것은 생명체가 아닙니다. 형태는 곧 사라지고 무질서가 지배합니다. 연기를 피워도 모양이 생겨납니다. 구름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양들입니다.

 

생명은 시간에 저항하면서 지속되는 형태입니다. 신비롭게도 생명은, 질서 있는 모든 것은 무질서를 지향한다는 보편적인 법칙을 거스르는 형태입니다. 그 형태를 이루는 물질이 끊임없이 재생됨에도 자신의 형태를 똑 같이 계속 유지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나의 입, , 입술. 글을 쓰는 손도 내가 태어난 이래 계속해서 세포를 교체해 왔습니다. 매 시간 우리 몸의 수십억 개 세포가 죽고 새로 생긴 것이 대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입니다. 강을 흐르는 물은 달라져도 강은 강인 것처럼 말입니다.

 

물질이 우리 존재를 이루는 게 아닙니다. 물질이 바뀌어도 남아있는 형태가 우리 존재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늪에 굽이굽이 흔적을 남기는 강입니다. 생명은 자신의 움직임을 계속 유지하려는 소용돌이입니다

사라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쓰다버린 연필, 낡은 일기장 속의 이야기, 멈춰선 손목시계들. 체취 스민 옷이며 양말 구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잘려나간 머리카락, 수없이 깎아 버린 손톱 발톱,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버렸거니 잃었거나 잊었거나 해서 사라진 것들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핏속에 뼛속에 사무친 그리움이며 눈물이며 후회들은 또 다 어디에 뭉쳐 있을까요.

 

늙어 버티기도 버거워 휘청거리는 발걸음-

왠지 허전해서 뒤돌아보면, 흔들리는 시선 속에 어른거리는 옛것들의 그림자

언제인지 알 수 없어도 정해져 있음직한 한 날,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겨울 서리처럼 내가 사라질 때.

그때 내 안의 나는 과연 어느 때의 나일까요?

나는 어디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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