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골프 끝내고 갈게." 하는 조크가 생겨났을 정도로 재미있는 골프. 재미는 진지함과 함께 할 때 가치를 지닌다. 알고 보면 골프처럼 에티켓을 요구하는 스포츠도 없다. 호쾌한 드라이버와 그린에서의 긴장...골프는 신사들의 운동이다. |
골프를 하는 게 악연 쌓기인가
전생에 무슨 악연인지…
생각할수록 분통만 터지는 것이 골프라는 운동입니다.
운동 같지도 않은 것이 얼마나 애를 태우고 욕되게 하는지…
그래도 공치러 갈 때는 희망도 있고
오늘은 잘 해 보자, 착한 마음을 가져보곤 했었죠.
그러나 돌아올 때 기분은 예외 없이 영 아닌 겁니다. 왜 인지 나열해 볼까요.
우선 친구 간에 우정이라도 돈독해진 게 있습니까. 아니죠.
열은 열대로 받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가고, 돈은 돈대로 들고.
그 뿐입니까. 내기 한답시고 알토란같은 비상금까지 다 털리고…
남들 열심히 일하는데 놀러 다닌다고 손가락질은 제일 먼저 받죠,
가뭄, 수해라도 왔을 때 골프채 들고 다니면 몰매라도 맞을 분위기죠,
정권만 바뀌면 그 분 눈치 보느라고 가재미눈이 되질 않나,
공직에 있으면 제 이름은 숨기고 아들 이름 내밀어야 하고
열심히 연습한다고 잘 맞기를 하나, 안한 놈이 운으로 버디 이글 하질 않나…
공 한개 값이면 자장면이 곱빼기로 한 그릇인데,
물에 빠뜨려도 의연한 체 허허 웃어야죠.
골프채는 무슨 금으로 만들었나, 우라지게 비싸죠,
드라이버랍시고 작대기 하나가 33인치 칼라 평면 테레비 값이죠,
그런데도 오늘 좋다 해서 사면 내일 구형이라고 또 새 것들 들고 와 자랑하고…
잔디밭 좀 걸었다고 내야하는 돈이 쌀 한 가마니 값.
그나마도 한 번 치려면 권세에다 인맥까지 동원해야 하고,
여름이라고 햇빛을 피할 수 있나, 겨울이라고 누가 따스한 입김 한 번 불어주나,
제대한 지가 언젠데 툭하면 이산 저산 오르내리며 각개 전투해야 하고,
호수랍시고 있어야 정취를 즐기긴 커녕 피해 다녀야 하고,
공이 갈 만한 자리에는 무슨 심술로 모래웅덩이를 그렇게 많이 파놓고,
콧구멍만한 홀컵은 또 왜 그렇게 처녀 엉덩이 꼭대기 같은 데다 박아놓는지…
욕들은 또 얼마나들 해댑니까.
잘 맞으면 ‘일 안하고 공만 쳤나?’ 안 맞으면 ‘운동신경 더럽게 없네.’
퍼팅 쑥쑥 들어가면 돈독 올랐군‘ 못 넣으면 ‘소신 없네’
길면 쓸데없는데 힘쓴다 하고, 짧으면 ‘쫄았냐’고 빈정거리고,
이글이나 홀인원 하면 축하는커녕, 눈들이 퍼래서 뜯어먹으려 들고,
돈 몇 푼 따면 곱빼기로 술까지 사야 되고, 돈 잃으면 밥 안 사주나 눈치 봐야 되고,
집에 오면 큰소리 나기 전에 비위 맞추느라 설거지해야 되고,
안 맞아서 채 한 번 집어 던졌다간, 상종 못할 인간이 되고
신중하게 치면 늦장 플레이라 욕하고, 빨리 치면 ‘뭐가 그리 급하냐’ 야단맞고,
화려하게 입으면 ‘날라리냐?’ 점잖게 입으면 ‘초상집 왔냐?’
시원하게 입으면‘노출’이 심하다, 따뜻하게 입으면 ‘쪄죽을 일 있냐?’
농담하면 까분다 하고, 진지하면 열 받았냐 하고
도우미언니와 농담하면 시시덕댄다 하고, 아차 한 마디 지나치면 성희롱한다고 욕하고,
입 다물면 분위기 망친다고 욕하고…
바이어가 공치자 해서 채들고 나가는데도 세관에 신고해야 되고,
그게 몇 번 거듭되면 세무조사 한다고 겁주고,
선물로 준 채 들고 오면 밀수꾼 보듯 째려보고,
새벽골프 나가면 ‘사업을 그렇게 좀 하지‘ 하고 욕하고,
마누라한테 욕먹고, 친구한테 원망사고, 직장 동료 눈치 보이고…
잘 쳐도 욕, 못 쳐도 욕, 자주 쳐도 욕, 자주 안쳐도 욕,
새벽에 쳐도 욕, 낮에 쳐도 욕, 비올 때 쳐도 욕, 눈 올 때 쳐도 욕,
조용히 쳐도, 시끄럽게 쳐도, 천천히 쳐도, 빨리 쳐도, 잘 맞아도, 안 맞아도,
욕만 먹게 되어 있는 이 요상한 운동…
골프를 왜 하는지, 내가 제 정신인지…
골프 한 날 밤이면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요,
욕먹기도 지쳤고, 비 맞은 참새 꼴로 이 필드 저 필드 떠돌기도 지쳤고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반복되는 고통으로 머리 속에서 유리가 깨어지는 같습니다.
골프 한 날 밤 기분이면 다시는 골프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 새벽이 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또 골프채 메고 연습장을 찾겠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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